제목: 낮아도 괜찮은 사회
우리 나라 사람들 중 ’당신은 노동자 입니다‘ 라는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두 ’근로자‘라는 단어를 쓰며 애써 ’노동자‘이길 피합니다. 근로자는 우리에게 꽤나 괜찮은 이미지를 줍니다. ‘건강하게 취직하여 성실히 일하는 정당한 사람들’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면, 우리에게 노동자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들, 건물 청소부 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이들을 ’성실하게 공부하지 않은 사람‘ 혹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항상 시위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근로자‘라는 단어를 쓸 것 없이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가 되거나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장도, 의사도, 판사도, 변호사도, 모두 노동자입니다. 아무리 학벌이 좋고 직업이 좋을지라도 국가 혹은 기업에서 노동을 대가로 돈을 받는 노동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동자들은 왜 학벌이 좋지 않고, 왜 시위를 벌일까요? 그것이 과연 그들 개인의 잘못뿐 일까요?
우리는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왜 학벌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는지, 왜 시위를 벌일 수 밖에 없었는지를 말입니다. 우리 사회구조가 그들을 그렇게 몰아가진 않았는지, 사회구조가 그들의 인간다운 권리를 빼앗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 전체를 볼 줄 아는 ‘구조적 관점’입니다.
인간다울 권리를 박탈당한 한 개인은 힘이 없습니다. 구조적으로 사회적 약자는 자신을 위한 주장을 내세우면 묵살당하고 잘려버리기 일수 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이 함께 모인다면 또 하나의 사회 구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차별적으로 박탈당한 권리를 마땅히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노동 조합입니다. 노동조합은 단체 교섭을 통해 협상하며 노동에 대한 조건을 맞춰볼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이를 통해 불합리하고 차별적이던 자신의 임금 또는 그밖에 대우에 관하여 협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노동조합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기업 편향적인 한국에선 그저 국가와 기업의 걸림돌로 생각할 뿐더러 자신이 노동자라는 인식이 없기에 불편함으로 인식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들의 파업, 시위 등이 따가운 시선을 받는 이유입니다. 이것들이 그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이러한 것과는 달리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외국의 선진국에서는 조금 상황이 다릅니다. 먼저 그들은 노동과 노동 조합, 단체교섭등에 대해 초등시절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습니다. 어릴 때부터 잠재의식 속에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과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또한 노동 파업에 관한 정서도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선 그로 인한 피해와 불편함등이 먼저 보도되는 반면, 다른 선진국에서는 파업의 이유에 대해서 먼저 조명이 됩니다. 또한 파업으로 인한 불편함이 있어도 ‘내가 잘 참아 볼테니, 파업에서 승리하시오’라고 말하는 시민의식이 있습니다. 내가 불편함을 좀 감수하더라도 타인의 마땅한 권리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사회와는 참 다른 정서입니니다.
국가와 사회는 국민 전체을 위한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양극화가 심해지며 사회적 약자층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모두들 밥그릇 싸움에서, 불안정하고 불안한 삶에 터전에서 힘겨운 일상을 보냅니다. 우리 국가는 사회의 가장 낮은 사람부터 최소한의 인간다울 권리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리 모두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또한 서로를 위한 협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돈 많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몸이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모두 마땅한 권리 속에서 차별적으로 대우받지 않는,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