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었는데 문자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월드컵 경기장 옆 광장에서 '새우젓 축제'가 열리는데, '온누리 문화상품'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였습니다.
'기초 생활 수급자'인 저는 그 카드를 갖고 있었기에, 문자를 보냈던가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저는,
그러려니...... 하고 말았지요.
그런데 아침이 되었는데, 날씨가 참 좋더군요.
오늘 아침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는데, 어제 비가 왔기 때문에 '대륙성 고기압'이 몰려왔던가 보았습니다.
그런 날이 주로 그렇 듯, 날이 너무 깨끗하고 맑아서,
오늘 같은 날 아파트에 처박혀 있는 건 죄악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뭐 밖에 나갈 생각까지는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침 나절에 오늘도 햇볕이 방안 가득 들어오는 환한 분위기에서 그저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문득,
거기나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평소 같았으면 그럴 리도 없는데, 왜 그런지,
이렇게 날도 좋은데, 가서 새우젓이라도 한 병 사와도 될 거잖아? 했던 건,
거기 '마포'의 상암동은, 제가 사는 여기서 6호선 전철을 한 번만 타면 가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교통비도 들지 않는 곳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교통비도 들지 않고, 온누리 문화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돈(현금)을 쓰지 않아도 뭔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아파트에서 맹- 하게 있을 바에는, 이 좋은 날에 한 바퀴 밖에 나갔다 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래서 점심을 조금 서둘러 먹고(그래야 현장에 가서 다른 돈 쓸 일이 없을 터라) 입가심으로 단감을 깎아서 먹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습니다.
제 제자드라구요.(제가 외국 나가거나 할 때, 공항에 실어가고 실어오고 하는 이제 40년이나 되는 친구인지 제자인지 헷갈리는 제자요.)
"선생님~"
"그래! 난 안녕하시다."
"히 히 히... 근데, 뭐 하세요?"
"감 먹는다."
"그럼, 댁이세요?"
"응! 근데, 오지 말거라!"
"왜요?"
"선생님, 지금 곧 나가려고 하니... 온 걸로 여길 테니, 바쁜 너는 일이나 해라."
"오늘은 바쁘지 않은데요."(점심 무렵에 전화를 걸어온 걸로 보면, 점심을 같이 먹으려고 전화를 했을 것이란 추측은 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온 걸로 칠 테니, 오지 말아라. 나는 젓갈 사러 가려고 하니까." 했는데,
(제가 그랬던 건, 녀석이 추석 즈음에 전화를 걸어와, 추석 지난 다음에 한 번 찾아오겠다고 해서, 그러라고는 했는데 상황이 그러니,(게다가 녀석은 성과에 비해 늘 바쁘기만 하기 때문에) 다른 일에 신경을 쓰라는 뜻이었는데요.)
"거기가 어딘데요?"
"뭐, 월드컵 경기장 부근이라니, 지하철을 한 번만 타고 가면 된다." 했는데,
"그럼, 제가 모셔다 드릴까요?"
"니가 왜? 바쁘니까 오지 말래두!"
"아니, 오늘은 안 바빠요. 그리고 생각해 보니... 선생님과 함께 그런 데를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서요."
"물론 나쁘진 않겠지. 그렇지만 젊은 것이 무슨 젓갈이냐? 나 같은 늙은이나 찾을 법한 걸..."
"무슨 말씀을요?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오지 말라니까!"
"기다리십쇼! 30분 안으로 갑니다."
일이 그렇게 되었고, 어쨌거나 저는 밖에 나갈 준비를 하기는 했는데,
녀석이 온다는데, 굳이 그런 데까지 갈 일 있나? 하는 생각도 들어,
녀석이 오면... 국수나 삶아 '비빔국수'를 해 먹이고, 얘기나 하면서 오후를 보낼까? 하는 생각도 들드라구요.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녀석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을 했고, 잠깐 방에 앉게 되었는데,
"야, 우리 나가지 말고... 내가 점심해 줄 테니, 그냥 느긋하게 여기서 놀다가 갈래?" 하자,
"오늘은 나가요, 선생님!" 하기에,
"너, 점심도 안 먹었잖아?" 했더니,
"거기 가면... 먹거리 같은 것도 팔 거 아녜요? 그럼, 거기서 막걸리라도 한 잔 해도 되잖겠어요?" 하기에,
"그럴래? 그럼, 그렇게 하자." 했는데,
가만 보니(저는 녀석이 함께 막걸리라도 한 잔 하자고 해서, 지 차는 여기다 세워놓고 지하철을 타고 갈 걸로 알았는데,) 차로 가려는가 보았습니다. 그래서,
"차를 몰고 가면, 어떻게 막걸리를 마셔?" 하고 난색을 표했더니,
"에이, 저는 그저 한 잔 만 하고... 아무튼, 제 차로 가세요." 하기에,
어쩌겠습니까?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지요.
가는 길에 차가 제법 밀리드라구요.
그래도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지루한 줄도 모르고 현장에 도착을 했는데,
곧 김장철이라 그래선지 의외로 사람들이 많아서(거기 장소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니, 7-80%가 60대 이상 같았습니다.) 차를 댈 데도 마땅찮아 한참을 헤매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현장에 도착은 했습니다.
우선 젓갈 파는 부스를 돌았는데,
저는 그냥 '새우젓'밖에 모르는데, '추젓' '육젓' 등등... 제자 녀석은 오히려 저보다 젓갈에 대해서 더 잘 알더라구요.
사실 저는 새우젓 한 통에, '멸치 진젓'(생선 모양이 살아있는)을 하나 사려고 했는데, '멸치 액젓'은 보였지만, 생선 모양이 있는 젓은 나중에 택배를 이용하라고 해서,
그 쯤으로 끝내려고 했더니,
녀석이, 반찬으로 하라며 '명란젓'하고 '갈치속젓'을 하나씩 더 사서 저에게 떠 넘기드라구요.
그래서,
"내가 널 꼬셔서 축제에 왔냐? 난, 온누리 문화 상품권'을 이용하려고 왔다니까!" 하고 제가 나무라도,
"오늘은 제가 선생님께 점심을 사드리려고 했는데, 어차피 이렇게 나온 거니... 그냥 그렇게 하세요." 하고 어거지를 써서(?) 녀석에게 떠밀리고 말았는데,
"이제는, 먹거리 장터에 가서 막걸리 한 잔 하시죠!" 하기에 그 쪽으로 갔는데,
거기 간이 식당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자리가 없어서),
'바베큐'와 막걸리를 샀던 우리는, 차라리 공원 내 쉼터로 자리를 옮겼답니다.
아, 너무나 아름다운 오후였습니다.
처음엔 거기 그늘의 한 벤치에 자리를 잡았는데,
생각보단 안주도 맛이 있었고,
오래지 않아 녀석이 그저 얇은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던 터라 얼굴이 새파래지기에,(그늘은 퍽 쌀쌀하더라구요.)
우리는 햇볕이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서까지 그 시간과 날씨를 즐겼는데,
아닌 게 아니라 녀석은 막걸리 한 잔을 마셨을 뿐, 나머지는 제가 다 마셨으니(두 병을 샀는데)... 평소보다 더 많이 마셨던 전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 건지, 떠들어서 그랬는지...
별로 취하지도 않았답니다.
그렇게 난생 처음 가 보았던 '월드컵 경기장 공원에서(녀석도 처음이라더군요. 그런데도 우리는 거기 '축구장'과 '하늘 공원' 등엔 관심도 없이),
생각지도 않았던 제자와 술까지 마시면서...
아름다운 가을 날을 보냈답니다.
(나중에 저를 집까지 데려다 준 녀석은, 다시 자신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구요.)
첫댓글 그렇지 않아도 '마포새우젓축제' 한다고 친구가 올렸더군요.
날 좋은 가을날 잘 보내셨다니 저도 좋군요.
요즘, 날이 너무 좋네요!
저도 어제 마포구청 앞을 지나는데 장이 큰지 엄청 요란 하드라고요.
그래서 마포 하고 새우젓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 했습니다.
옛날엔, 배들이 마포 나루까지 들어왔다고 하지요?
그러니, 서해안에서 잡혀 만들었던 새우젓(생선들)도 그렇게 도착을 해서,
요즘 같은 김장철엔 '젓갈 장'이 섰을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