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우(姜連佑)
영조 78권, 28년(1752 임신/청건륭(乾隆) 17년) 12월 16일(임인) 2번째기사
여러 신하들이 양위하려는 뜻을 거둘 것을 청하다
정청(庭請)을 다섯 차례나 아뢰었으나, 모두 답을 내리지 않았다.
낙창군 이탱 등이 세 차례나 아뢰었으나, 모두 답하지 않았다. 여러 승지가 합문에 엎드려 청대하니, 그만두라고 하교하였다. 승지 이창유가 금군정령(禁軍正領) 등이 땅에 엎드려있는 일을 넌지시 아뢰자, 하교하기를,
“내가 너희들을 저버렸다. 포장을 치고 잘 휴식을 취하면 내 마음이 기쁘겠다”하였다.
상중(喪中)에 있는 신하 정우량(鄭羽良)이 상소하여 궁으로 돌아갈 것을 청하니, 비답하기를,
“경의 글을 보니, 경을 본 것같다. 30년동안 괴로워하였던 마음을 경은 알 것이다. 이미 자전의 윤허를 받았고 또 진전에 아뢰었는데, 오늘 한 이 거조는 나의 마음에 하고자 한 일이 아니다.”하였다.
경기감사 김상익(金尙翼)이 수령·찰방들과 같이 연명으로 상소하여 어가를 돌리라고 청하였는데, 상소를 되돌려 주라고 명하였다. 전참판 정형복(鄭亨復)등이 상소하여 어가를 돌리라고 청하였는데, 도로 내주라고 명하였다. 관학생원 이언중(李彦中)등이 상소하여 어가를 돌릴 것을 청하였는데,
손수 써서 비답을 내리기를,
“아! 33년동안 임금이 임금과 스승의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는데, 너희들이 어떻게 신하와 제자된 직분을 닦을 수 있었겠는가? 오직 원하건대, 많은 선비들은 명륜당에 걸려있는 훈계와 향교(香橋)의 기둥에 새겨있는 교훈을 조금이라도 본받아 편당이 없이 나의 후사를 섬기도록 하라.”하였다.
오부(五部)에 사는 백성 이진성(李震成)등이 상소하여 어가를 돌릴 것을 청하였는데, 비답하기를,
“부덕한 내가 너희들의 임금 노릇을 한지 지금 33년이나 되었는데도 백성들에게 온전한 혜택도 입히지 못하였으므로 항상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옛날 선왕의 훌륭한 덕과 깊은 사랑이 백성들의 살갗에 졌었으므로 도성 백성들이 나에게 소를 올려 간청하는 것은 물론 당연한 이치이다마는, 아! 내가 너희들에게 무엇 하나 나를 못잊어 하게 할 수있는 일을 하였는가? 너희들의 글을 보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지금 내가 한 이 거조는 이미 자전의 허락을 받았으며 또 진전에 고하였으므로 백번을 생각해 보아도 마음은 한조각 돌과 같다. 아! 우리 백성을 저버렸다. 특별히 유시를 손수 써서 승선(承宣)으로 하여금 읽어 선포하게 하노라. 아! 도성 백성들은 나의 뒤를 잇는 임금을 잘 받들도록 하라.”하였다.
한성부서리 한시걸(韓時杰) 등과 의정부서리 이덕만(李德萬)등과 사군문(四軍門)서리 임세무(林世茂)등과 충훈부서리 홍우택(洪禹澤)등과 돈녕부서리 최태용(崔泰容)등과 의빈부서리 손희경(孫希敬)등과 중추부서리 김상서(金象瑞) 등이 모두 상소하여 궁으로 돌아갈 것을 청하였는데, 비답하기를,
“이미 도성 백성들에게 하유하였다. 아! 너희들 역시 나의 백성이니, 모두 나의 뜻을 본받도록 하라.”하였다.
훈련도감마보군정령기대총(馬步軍正領旗隊摠) 강연우(姜連佑)등과 금위영경표하칠색기대장(禁衛營京標下七色旗隊長) 김세창(金世昌)등과 어영청경향군병기대장(御營廳京鄕軍兵旗隊長) 나만영(羅萬英)등이 모두 상소하여 어가를 돌릴 것을 청하였는데, 손수 써서 하유하기를,
“부덕한 내가 항상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옛날 군민(軍民)을 아끼고 보살피던 선왕의 지극한 덕을 본받아 가엾게여기는 이 마음은 가슴 속에서 느슨해지지 않고 있었다. 박덕하고 능력이 없어 우리 삼군(三軍)을 고생하게 하였는데, 오늘날 또 우리 삼군을 저버리게 되었다.
아! 삼군들은 내가 부덕하다하지 말고 모름지기 옛날 선왕의 훌륭한 덕을 본받도록 하라.”하였다.
승정원서리 백수륜(白壽倫)등이 상소하여 궁으로 돌아갈 것을 청하였는데, 손수 써서 비답하기를,
“나의 뜻을 이미 삼군에게 유시하였으니, 너희들은 그만 청하라. 내가 너희들을 저버렸다.”하였다.
○庭請五啓, 幷不賜答。 洛昌君樘等三啓, 幷不答。 諸承旨伏閤請對, 敎曰: “其止之。” 承旨李昌儒, 以禁軍正領等伏地事微稟, 敎曰: “予負爾等。 若覆布帳, 善爲休息, 則予心欣矣。” 草土臣鄭羽良上疏, 請還宮, 批曰: “見卿之章, 若見卿焉。 三十年苦心, 卿知矣。 旣蒙允又奏殿, 今日此擧, 非我心也。” 京畿監司金尙翼, 與守令察訪聯名上疏, 請回鑾, 命還給。 前參判鄭亨復等上疏請回鑾, 命還給。 館學生員李彦中等上疏, 請回鑾, 以手書賜批曰: “噫! 三十有三載, 君不能君師之道, 爾等何修臣弟子之職? 惟願多士, 少體倫堂懸揭之訓、香橋竪刻之敎, 無偏無黨, 事我後哉。 五部居民李震成等, 上疏請回鑾, 批曰: “以予否德, 君臨于爾等, 今三十有三載, 而一惠不及于民, 心常自恧于中。 昔年聖德深仁, 洽于小民之肌膚, 都民之陳章懇請, 理固當也, 而嗚呼! 不穀於爾等, 有何眷戀于予者乎? 覽爾等之章, 不覺顔赤。 今予此擧, 旣承慈許, 又奏眞殿, 百爾思之, 心若片石。 噫! 負吾民負吾民。 特手諭, 令承宣讀宣。 吁嗟! 都民, 善奉我嗣君。 漢城府書吏韓時杰等、議政府書吏李德萬等、四軍門書吏林世茂等、忠勳府書吏洪禹澤等、敦寧府書吏崔泰容等、儀賓府書吏孫希敬等、中樞府書吏金象瑞等, 竝上疏, 請還宮, 批曰: “旣諭都民。 吁嗟! 爾等, 亦我民, 咸體予意。” 訓鍊都監馬步軍正領旗隊摠姜連佑等、禁衛營京標下七色旗隊長金世昌等、御營廳京鄕軍兵旗隊長羅萬英等, 竝上疏, 請回鑾, 以手書下諭曰:
以予否德, 心常自恧。 然體昔年愛恤軍民之至德, 眷眷此心, 不弛于中。 涼德無能, 苦我三軍, 今日又負我三軍。 吁嗟! 三軍莫曰予否德, 須體昔年之盛德。
承政院書吏白壽倫等上疏, 請還宮, 以御筆批曰:
予意旣諭三軍, 爾等休請。 予負爾等。 予負爾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