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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정·이도현 관계를 스캔들로만 볼 수 없는 이유(‘멜랑꼴리아’)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학원물에 멜로 게다가 수학이 더해진 휴먼드라마. tvN 수목드라마 '멜랑꼴리아'를 굳이 설명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설명은 '멜랑꼴리아'가 가진 소재들에서 연상되는 어떤 공식화된 드라마들을 떠올리게 한다. 즉 기득권층의 자제들이 부모의 부와 지위를 이용해 상위 1%의 특혜를 누리는 학원물은 'SKY 캐슬'이후, '펜트하우스', '하이클래스' 등이 먼저 떠오르고, 나이차가 나는 남녀 사이에 만들어지는 미묘한 관계(주로 멜로) 역시 '18어게인' 같은 작품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멜랑꼴리아'가 가져온 수학이라는 소재와 이를 통해 학교의 문제는 물론이고 관계의 문제 또한 풀어나가는 방식 이런 선입견들을 깨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말하는 수학은 저 'SKY 캐슬'에서 김주영(김서형) 입시코디네이터가 요구하는 입시교육의 관건으로서 점수로 대변되는 그 수학이 아니다. 대신 '풀리지 않는 문제'나 '정답이 없는 문제', '전제 자체가 틀린 문제' 같은 좀 더 삶과 가까운 수학의 이야기다.
수학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인물로서 아성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수학교사 지윤수(임수정)와 풀리는 문제보다 풀리지 않는 문제에 더 관심을 보이는 수학천재 백승유(이도현)가 등장한다. 이 입시교육의 정점에 서 있는 아성고등학교에서 지윤수가 1기 수학동아리 칼쿨루스 선발을 위해 낸 문제는 입시교육 속에서 정답만을 찾는 습관이 든 아이들에게, 수학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먼저 알려주기 위한 도발이다.
학생들은 모두 정답을 적어 내지만, 진짜 해답을 적은 이는 백승유다. 그는 게시판에 붙어 있는 문제지에 '전제 오류'라 적은 후 '여백이 부족하므로 설명은 생략함'이라 적어 놓는다. 그만이 문제의 의도를 파악한 것. 그리고 그 답을 쓴 장본인을 찾아내기 위해 일부러 그 답이 '허세'라는 도발적인 메모를 적어놓은 지윤수에게 백승유는 보란 듯이 그 해답의 풀이를 적어 놓는다.
'멜랑꼴리아'는 이처럼 수학 문제를 통해 어딘가 익숙한 학원물에 멜로 구도라는 공식에 대해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며 '전제 오류'라고 선을 긋는다. 아성학원 이사장의 장녀인 노정아(진경)는 그 통속적이고 세속적인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인물로 지윤수가 낸 '전제오류'가 답인 문제에 대해 "장난을 좀 치셨네요"라고 말한다. 노정아는 이런 문제가 자신의 아성고에는 "안 어울리는 문제"라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답하는 건 문제 자체를 부정하는 거잖아요. 우리 아고 아이들은 이런 답 쓰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말에 지윤수는 자신의 소신을 전한다. "정해진 답을 맞추는 건 이미 아이들이 잘 하는 거잖아요. 때로는 전제가 틀리거나 답이 없는 문제들도 경험해보면 좋겠어요." '멜랑꼴리아'는 전제가 오류인 수학 문제를 통해 이 드라마가 그려나가려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늘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목소리들 또한 존재한다는 걸 노정아를 통해 드러낸다.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다는 걸 우리 아이들이 알아야 할까요?... 우리 아성고 아이들은 그런 걸 알 시간도 필요도 없어요."
멜로드라마의 공식은 마치 '멜랑꼴리아'의 노정아가 말하는 수학공식처럼 나와 있는 게 사실이다. 멜로는 결국 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것이고 갈등이 전제인 드라마는 그 사랑의 방해물들을 세우기 마련이다. 남녀는 그 방해물을 헤쳐 나가며 더 절절해지고 애틋해진 사랑을 하게 되고 그것이 결실을 맺거나 파국에 이르는 게 멜로드라마의 공식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멜랑꼴리아'도 그 공식적 틀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우연히 첫 만남을 갖게 된 지윤수와 백승유가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며 관계가 진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공식적 틀에도 불구하고 '멜랑꼴리아'가 그려나갈 멜로(혹은 휴먼)가 기대되는 지점은, 사제 간의 이렇게 만들어진 관계를 저 노정아는 분명 '스캔들'로 보려는 통상적이고 뻔한 공식의 시선을 드리우겠지만 실제 그들의 관계는 그 공식 바깥의 다른 결을 그려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수학을 매개로 하고 있지만 '멜랑꼴리아'는 어쩌면 우리네 남녀관계를 단순한 공식에 맞춰 사랑, 불륜, 스캔들 등으로 규정하는 그 단순한 시선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드러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제 간에 함께 풀어가는 문제들 속에서 애정도 만들어질 수 있겠지만 사랑도 존경도 아닌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 있는 그런 감정을 주고받는 관계도 가능하지 않을까. 비록 세상은 그것을 '스캔들'이라고 단순화할지 모르지만, 전제 자체가 달라 그렇게 단순화할 수 없는 관계들도 존재한다고 '멜랑꼴리아'는 말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