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이나 거의 모든 예술작품들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반전이다. 상황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이제 이 반전이 없으면 작품이 밋밋하고 밍밍하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그러다 보니 막장 드라마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극적인 더욱 자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수요자들에게 강력한 폭탄을 안기는 것이 바로 막장 드라마의 특징 아니던가. 그만큼 사람들은 지금 반전에 반전을 기대하고 그 반전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그렇게 느껴진다. 물론 그런 자극적인 요소들을 만들어낸 것은 이 시대 현존하는 대부분의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 반전은 알게 모르게 우리곁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뿐 아니고 우리의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나그네가 산길을 걷고 있었다. 길을 잃어 배고픔과 지침에 이제 기진맥진 상태이다. 주변은 칠흑같은 어둠뿐 인가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나그네는 땅에 주저앉는다. 그러자 슬슬 졸음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자 환영 (幻影/눈앞에 있지 않은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여인이 귀에 속삭인다. 편안한 잠을 주무시라고 말이다. 따스러운 여인의 체취에 나그네는 황홀경에 빠진다. 그때 또 다른 여인이 나타난다. 몹시 밉게 생긴 모습이다. 그녀는 다짜고짜 소리를 치기 시작한다. 무슨 잠이냐고 지금 잠 잘때냐고 빨리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이다. 피곤한 나그네는 그런 그녀에 말에 짜증이 난다. 좀 쉬려는데 왜 방해짓이냐고 화도 낸다. 하지만 계속되는 그녀의 성화에 마지못해 잠에서 깨어 길을 간다. 그래서 그 나그네는 추위에 얼어죽지 않고 하산할 수 있었다. 부드럽게 속삭이며 잠들을 것을 권한 그 여자는 악마였으며 그를 혼내고 깨운 여자는 천사였던 것이다.우리의 주변에 이런 상황이 한두가지인가. 불의에 대한 유혹 그리고 부정부패에 대한 유혹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유혹이 정당하다고 부추기는 세력은 바로 악마이고 힘들지만 정신을 차리고 정도를 가라고 나무라는 세력은 바로 천사들의 세력이 아니겠는가.
집안에서 잔소리하는 부인도 반전의 핵심이다. 남편에게 술 마시지 말라, 담배 피지 말라, 옷 자주 갈아 입어라,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 꾸지마라 등등 잔소리를 해대서 정말 짜증이 난다. 만일에 옆에서 상냥하게 웃으며 술 많이 드시라고, 담배도 많이 피우라고, 옷은 뭐하러 갈아입냐고, 옷 갈아 입지 않아도 향기가 난다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도박에 올인하라며 꼬드기는 부인이 있다면 그녀는 분명 남편을 파멸시키는 악마일 것이다. 반대로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는 부인은 천사임에 틀림없다. 물론 습관적 잔소리라면 경우가 다르지만 말이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새옹지마(塞翁之馬)는 바로 반전의 극치를 보여주는 예이다. 세상에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누구도 모르는 세상이라는 교훈이다. 잘 나간다고 교만할 필요도, 못나가간도 위축될 필요도 없다. 잘 나가던 사람이 어느날 역적이 되어 감옥에 가고,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 천하에 잡놈이 되어 비판받는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던 사람도 세월을 얻고 기회를 찾아 최고봉에 오르는 상황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지금 잘 나간다고 자랑하고 뻐길 필요가 없다. 천하를 손에 넣었다고 자만하고 교만할 이유도 없다. 머지않은 시간안에 또 대 반전이 일어날테니 말이다. 이런 반전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으니 사람들이 이젠 더 강한 반전을 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술작품들을 만드는 작가들이 엄청난 반전 그러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막장 소재를 꺼집어 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교훈적이지만 흔해서 그냥 흘러버리는 것이 새옹지마의 의미 바로 반전의 의미라고 느껴본다. 곰곰히 생각하면 인생에는 참으로 경이로운 반전이 꽤 많은 편이다.
2023년 1월 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