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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의 삼백 용사
삿 7:1-8
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삿 7:1-8 / [너무 많은 이스라엘 군인들] 여룹바알이라고도 부르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민병대가 모두 아침 일찍 일어나 하롯 샘 부근에 진을 쳤다. 미디안 진영은 이스라엘 진영의 북쪽, 즉 모레산 앞 골짜기에 있었다.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기드온아! 너를 따르는 민병대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내가 미디안 사람을 그 민병대의 손에 넘겨 주지 않겠다. 만일 내가 미디안 사람을 너희 민병대의 손에 넘겨준다면 이스라엘 민병대가 이길 것이 뻔하지 않느냐? 그러면 자기들이 싸움을 잘해서 이긴 줄 알고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를 것이 아니냐? 3) 그러니 이제 너는 민병대에게 자세히 일러주어라. 누구든지 싸움터에 나가 싸우기가 두려운 사람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좋으니 길르앗산에서 내려가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여라.' 그러자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2만 2천명이나 되었고, 남아 있는 사람이 1만 명이었다.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아직도 민병대의 수가 너무 많다. 자, 이제 저 사람들을 데리고 물가로 내려가거라. 거기서 정말 싸움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가려내겠다. 만일 어느 사람이든지 내가 `이 사람은 너를 따라가 싸워도 좋겠다' 고 하면 따라가게 하고, 또 내가 누구든지 `이 사람은 너를 따라가서 싸울 수가 없겠구나' 하고 일러주면 그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5) 그래서 기드온은 민병대를 이끌고 물가로 내려갔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렇게 일러주셨다. `모두 물을 먹게 하여라. 그래서 개처럼 물을 혀로 핥는 사람은 따로 세워 두어라. 또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도 따로 세워 두어라.' 6)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사람들이 어떻게 물을 먹는가 하고 보았더니 손으로 물을 한움큼 쥐고 입으로 핥아 먹는 사람은 300명이고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먹었다. 7) 그러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물을 손으로 움켜 쥐고 핥아 먹은 사람 300명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리라. 그들이 너희를 구해 내리라. 남은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여라' 8) 기드온은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고 가려 뽑은 300명만 남아 있게 하였다. 이 300명은 집으로 되돌아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식량과 신호용 나팔을 거두어들였다. [확실한 승전] 미디안 사람들은 그 아래 평원지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전쟁을 준비케 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기드온에게 이르시되(1-3) 기드온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진을 친 곳은 하롯 샘 곁이었고 미디안 군대는 이스라엘 북편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당시 미디안 군대의 수는 약 십삼만 오천 명이었는데 반하여 이스라엘의 군대는 삼만 이천 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수적으로 상당한 열세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수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과 온 천하에 알리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떠는 자들을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라고 하신 말씀과도 부합됩니다(신 20:8). 이처럼 두려워하는 자들이 군대 중에 섞여 있으면 그들로 인해 다른 이들의 마음까지도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으므로 그런 자들은 전투에 합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백성을 인도하여(4-8) 사실 이스라엘은 말도 안 되는 수적 열세에 처해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 군대의 숫자가 많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군대의 수가 줄면 줄수록 더욱 하나님의 권능이 돋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3분의 1로 줄어든 이스라엘의 군대가 아직도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전투에 참여할 군인을 선발하는 방법으로 물 마시는 태도를 보게 하셨습니다. 즉, 물을 마시는 자세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는 합당치 아니하고, 손으로 물을 움켜 개처럼 핥아 먹는 자만이 전투를 수행하기에 합당한 자라는 것입니다. 결국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 구천 칠백 명을 돌려보내고 남아 있는 군사는 삼백 명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삼백 명은 4,50대 1이라는 싸움에서 승리해 세계 전쟁사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긴 영광의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적 용 :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며 그의 길도 사람의 길과는 다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기 위해 오늘도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한 깨달음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드온이 두려워 떠는 자를 다 돌려보냈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수가 많다고 하시며 삼백 명만 남기셨습니다. 그들의 상황이 너무 열악해 보입니다. 미디안의 진영에는 많은 군인이 있어서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해변의 모래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영적 전쟁 앞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이 우리 안에 영원히 함께하시는 것을 믿고 성령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기 바랍니다.
< 설 교 >
하나님의 경영지침
사사기 7:1-8,9 요 6:7-13
오늘 제일 각광받는 분야가 경영전략 분야입니다. 학교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학과가 경영학 분야입니다. 각 기업에서도 핵심부서가 경영 전략부서입니다. 사원 중에서 가장 명석한 사원들이 포진하고 있는 곳도 경영 전략실입니다. 오늘은 전략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비즈니스에도, 인생 운영에도, 재정 운영에도, 신앙 운영에도 이 전략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기드온 이야기입니다. 기드온은 사사였습니다. 왕이 없을 때 국가에 위기가 발생하게 되면 하나님은 지도자를 내 세우셨습니다. 그가 사사(士師)입니다. 여호수아 사후에서 왕정시대까지 350년간을 사사시대라고 합니다. 기드온은 기원전 1120년 경 활동하였습니다. 기드온이 300명 군대로 메뚜기 같이 많은 미디안 군대를 물리칩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용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전략이 나옵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그 전략에 순종한 결과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관찰 포인트는 기드온이 처한 현실이 곧 나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사사 기드온
미디안 군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농사짓던 기드온이 사사로 부름을 받습니다. 부름 받고 전쟁할 수 있는 군대를 소집하니 32,000명이 소집되었습니다. 그들은 훈련도 준비도 되지 않는 민간인들입니다. 상대는 숫자도 엄청나지만 훈련된 상비군들입니다. 성경은 미디안군은 메뚜기 같았다(6:5, 7:12)고 했습니다. 낙타 수는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다(7:12)고 했습니다. 전쟁은 불가능합니다. 현실이 암담하였을 것입니다. 그때 기드온은 무슨 심정이었을까요. 그래서 심각하게 고민하였을 것입니다. 현실은 언제나 크게 보입니다. 사람들이 그래서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고민과 갈등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숫자가 많다고 줄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적은데 하나님은 많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됩니다. 어느 이론을 따라야 합니까. 갈등 어디서 오는가 하면 불균형에서 옵니다. 양이 적고 수가 적을 때 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수와 양을 따지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양을 채우느라 출혈하고 지출하고 안간힘을 다 씁니다.
여기서 주시는 메시지는 신앙 안에서는 양이나 수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통해서 배우는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6장 오병이어 사건이 그런 경우입니다. 광야에 5천명이 모였습니다. 모두 굶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 주라고 하십니다. 찾아보니 오병이어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 드리며 “이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양이 터무니없이 적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5개”, 그런데 거기 모인 사람은 5천명입니다. 아이들 부녀자까지 합하면 3만 명 이상이 됩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양은 적은데 현실은 큽니다.
그런데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심은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요한복음 2장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목격하였습니다. 4장에서 왕의 신하 아들이 죽음 직전에 치유 받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5장에서 38년 된 병자가 고침 받고 6장에서 광야에 5천명이 모여 있습니다. 여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왜 모여 있습니까. 그런 기적을 보았기에 오늘도 그런 기적을 또 보려고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고자 함이라”고 성경을 말씀합니다. 그 말은 빌립이 오늘 여기서도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나 안 믿나 시험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현실은 광야입니다. 사람은 5천명이 모였습니다. 먹을 것을 구할 방법이 전무합니다. 빌립은 그런 현실을 만나자 지금까지 본 기적들은 순간적으로 다 잊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많이 모인 사람들만 눈에 보입니다. 그들을 먹이려면 3백 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까짓 5병 2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말합니다.
여러분 현실은 우리에게 고민하고 갈등하게 합니다. 현실은 더 크게 보이고 더 암담하게 생각되게 합니다. 빌립의 모습은 곧 내 모습이고 그의 생각은 곧 내 생각입니다. 기드온이 생각할 때 오늘 현실은 너무 컸고 우리 모습은 작습니다. 우리는 3만 2천명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도 많다고 줄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갈등이 오는 온 것입니다. 기드온이 그래서 고민하고 갈등했습니다.
순 종
마침내 기드온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두려운 자는 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3만 2천명가운데 2만 2천명이 돌아갑니다. 1만 명만 남았습니다. 기드온은 그렇게 많이 돌아갈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순간 기드온의 마음에 또 다시 두려움이 엄습해 왔을 것입니다. 3만 2천명도 적은데 1만 명으로 전투를 해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전투는 그래도 병사가 많아야 합니다. 미디안군대와 비교해 보니 터무니도 없습니다. 너무 빈약하고 상대가 안 됩니다. 이 비교가 문제입니다. 비교해 보니까 내가 너무 초라합니다. 큰 사람 옆에 서 보니까 내가 너무 왜소합니다. 노후 준비가 상대와 비교해 보니까 너무 초라합니다. 딸을 시집보내려고 하니까 상대방이 너무 부자입니다. 거기에 비교하니까 우리는 너무 빈약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초라해지고 왜소해 보이고 비굴해 집니다. 그 심정이 기드온의 심정입니다. 너무 초라하고 빈약하고 작습니다. 그러니까 더 두려움이 배가되고 떨림이 배가되고 흔들림이 더 커지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시험
그때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또 다시 시험을 하십니다. 3만 2천 명 중 2만2천 명 돌아갔습니다. 겨우 1만 명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그 1만 명가지고 전쟁하기로 일단 작정하고 결단하였습니다. 결단하고 나니까 마음이 평안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만 명도 많으니 더 줄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슨 대책이 있으신지 아무 말씀도 없이 그냥 줄이라고만 하십니다. 납득이 안 되는 기드온은 심각한 두려움에 빠집니다. 또 다시 갈등에 직면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때로 이런 갈등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암담한 현실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기도해도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시간은 흐릅니다. 날짜는 다가옵니다.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를 다 해 보아도 아무 징조가 없습니다. 그때 오는 심각한 갈등이나 두려움이나 흔들림을 우리는 경험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한 가지 알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자세하게 말씀 안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난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응답만 있다면 뭐가 두렵겠습니까. 그 심정이 기드온의 심정입니다. 한 가지 알 것이 또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살아갈 때 당장 무슨 응답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세한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홍해를 건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홍해 앞에서 보란 듯이 서서 손을 번쩍 들라, 그러면 물이 좍 갈라질 것이다“ 그렇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폼 잡고 손을 들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 지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홍해 앞에서 허둥댔고 주춤거렸던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때 훌이 우물쭈물하는 모세의 등을 강물로 떠밀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모세가 떼밀려 물을 밟자 홍해가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팔려갑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부모 곁을 떠난 아이가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걱정 마,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니 기다려”, 그랬으면 얼마나 신나게 유혹받고 신나게 감옥에 들어가서 기다렸겠습니까. 그런데 아무 말씀도 없습니다. 그래서 현실은 암담한 것입니다. 죽을 목숨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다 보이지 않습니다. 왜 보이지 않을까요. 다 보인다면 믿음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믿음을 요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기드온은 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납득은 안 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순종하기로 합니다.
이 태도가 중요합니다. 일단 지금은 납득이 안 됩니다. 그런데 그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때서 일단 순종하기로 합니다. 성경을 읽는데 이 자세가 중요합니다. 납득이 안 됩니다. 그때 “성경이 뭐 이래”하고 집어던지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이 성경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일단 믿고 나아가 보자“ 이 태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32,000명 중 두려운 자는 돌아가라 했더니 22,000명이 돌아갔습니다. 만 명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도 많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1만을 놓고 테스트를 했습니다. 만 명을 물가로 데리고 가 물을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두 태도가 나왔습니다. 한 부류는 사주경계를 하면서 손으로 물을 움켜서 마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개처럼 무릎 꿇고 궁둥이 쳐들고 물을 마시는 자였습니다. 궁둥이 쳐들고 물 마신 자들은 다 돌려보냈더니 남은 자가 300명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이 300명을 가지고 수십만 명의 미디안 군과 싸워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사기 7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메시지
하나님은 왜 군대의 수를 줄이라고 하셨을까요? 300명 가지고 전쟁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왜 줄이라고 하셨습니까. 그 이유를 알아야 여기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전쟁은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군대가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전쟁은 “내가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구경만 하라는 것입니다. 구경도 쉽지 않습니다. 궁둥이를 쳐들고 물마시던 9,700명은 전쟁하는데 방해만 됩니다. 그래서 300명만 남기신 것입니다. 그 300명을 용사라고 하는데 말이 용사지 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항아리 300개를 들고, 횃불 300개를 들고, 나팔 300개를 들고 전쟁에 나간 것뿐입니다. 그것이 전쟁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럼 무엇입니까. 이 전쟁은 내가 한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구경만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리더로, 사업가로, 지휘관으로, 지도자로 성공하려면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기드온이 용사를 선택하는데 세 가지 테스트를 하였습니다. ➊ 정신입니다. 성공은 양이나 수에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일은 양이나 수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자는 돌아가라 했습니다. 엘리야가 이방 선지자 850명과 싸울 때 그 싸움도 수에 있지 않았습니다. 850:1, 세상 이치로 보면 완패 당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이치로 보면 완승할 수 있습니다. 오병 이어 사건도 수에 있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문제입니다. ➋ 자세를 보았습니다. 물을 마시게 하였더니 궁둥이를 쳐들고 무릎 꿇고 물을 마셨습니다. 지금은 전시입니다. 자세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선택하기 위해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밤새워 고기 잡는 베드로 일행을 관찰하셨을 것입니다. 밤새 그물을 던지고 또 던졌습니다. 지칠 만도 한데 중단안하고 던지고 또 던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다가가 “깊은 데로 가서 한 번 더 던져보라”고 하십니다. 이젠 잡힌다 해도 만사가 귀찮을 때인데도 “말씀하시니 한 번 더 던지리이다.”하고 또 던집니다. 이 태도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력서 내봐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조건이나 환경이나 이력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한 가지 보신 것은 그들의 정신이었고 자세였습니다. 이 자세가 문제입니다. 세상일이나 하나님 일에도 이 자세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이 자세를 봅니다. 하나님도 이 자세를 보십니다. 보시고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➌ 사명감입니다. 용사됨, 준비됨입니다. 300명은 사주경계를 하며 물을 손으로 떠 마셨습니다. 지금은 전시입니다. 안일하게 대처할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 일이나 삶이나 사업이나 모든 분야에는 이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우연히 재수 좋게 성공하는 법은 없습니다. 벤처 기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식 기술 집약적 기업을 벤처기업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사명과 부지런함이 모아져야 하는 분야입니다. 벤처기업을 한창 띄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우후죽순처럼 벤처 열풍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열기가 식어지자 벤처기업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쓰러지는 순서가 사무실이 번쩍번쩍 한 순서대로, 인태리어 호화순위로, 사장실 넓은 순서대로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망하는 회사의 특징은 화장실이 더럽고, 사무실이 지저분하고, 직원들이 불친절하고, 회의가 길고, 상하 위계질서가 문란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망하는 기업인은 사장이 정치와 도박에 관심을 두고, 역술인을 의존하고, 주민 등록지를 자주 옮기고, 자주 자리를 뜨고, 호화 생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세상에서 사업을 하던 신앙생활을 하던 성공했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남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두 전투생활한 분들입니다. 궁둥이 쳐들고 물마시고 두려워 떨고 편히 쉬고 잠잘 것 다 자는 사람은 어림도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달려갈 길 다 가고 믿음을 지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말은 “나는 치열하게 싸웠고 힘썼고 최선을 다하며 노력했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전쟁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에서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모두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본문을 통해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삶의 승리는 수에나 양에 있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전략이 있었고 그 전략을 순종함으로 길이 열리고 목적이 이루어짐이 있었습니다. 이런 은혜가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