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0]
지나간 60년대 이야기지만 선친이 청와대로 근무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와 그 때 같은 시기에 경북도경국장에서 서울 시경국장(요즘에는 서울경찰청장)으로 발령이 난 안명수씨의 부인을 육영수여사가 함께 불러 청와대 대통령 관저 식당에서 오찬을 베풀고 환담을 나누었다. 육여사는 그 당시 주요 포스트에 임명된 분들의 부인들에게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대접하고 그 분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높여 드리는 내조를 했다.
또한 고위 공직자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부인들과 양지회(陽地會)라는 단체를 만들어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사회봉사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그런 걸 보면 육여사가 그 후에 다른 대통령 부인들에 비해 아주 섬세하고 배려가 있는, 모든 면에서 격이 다른 정말 훌륭한 품성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안명수씨는 북아현동에 자택이 있었는데, 어머니와 안명수씨 부인은 그 때의 인연으로 그 후 친교가 지속되었다.
〔에피소드 11〕
어머니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독서를 즐겼다. 그중 일본의 무교회주의 기독교 신학자 우찌무라 간죠 선생이나 동경대학 총장을 지낸 신학자 야나히 하라 다다오 선생의 책을 특히 좋아 하셨다. 법정스님이 쓴 수필집의 고정 독자이기도 하셨다. 말년에는 성경읽기, 독서, 기도, 산책, 글쓰기를 주로 하셨는데 열권이상의 방대한 메모와 작문노트를 남기셨다. 특별히 야나히 하라 다다오 선생의 역작(力作) “예수전”을 번역하여 소천(召天)하시기 직전 출간하셨다. 어머니는 소천하시기 수년전부터는 “고요하게, 고통 없이, 홀연히 하나님 앞으로 가고 싶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다.
어머니는 소원대로 허혈성 심근경색으로 고통 없이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기쁨과 환희의 나라 천국본향으로 가셨다. 어머니가 소천하신 때는 2004년 11월22일이었고, 86세의 일기(一期)였다. 나는 임종 시 어머니를 진료하고 사망을 판정한 담당의사에게 가장 궁금한 점을 물었다. 궁금했던 것은 임종 시 고통에 관한 것이었다. 의사의 대답은 “고통이 전혀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확인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셨던 것이다.
아버지와 같이, 어머니도 비록 역경 속에서 고투(苦鬪)하는 삶을 사셨지만 인생을 승리로 장식하셨다. 사도 바울 선생의 말씀대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 나는 “등이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옛말처럼 어릴 적 부모님의 속만 썩이던 내가 18년 동안 어머니를 봉양해 드렸다. 물론 나는 립서비스에 불과한 행동을 했고, 실제 어머니를 모시고 온갖 고생을 한 것은 나의 아내였다. 이 자리를 빌어 아내에게 그간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정을 보낸다. 어머니는 모든 인생의 질곡(桎梏)과 융기(隆起)를 경험하고는 “축복은 언제나 저주의 가면을 쓰고 온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극단적인 행동을 생각할 정도로 한때 극심한 고통의 골짜기를 통과하셨지만, 인생 후반부는 효자, 효부를 만나 호강하며 산다고 몇 번 말씀하셨다
비록 어머니를 흡족하게 못 모셨다는 회한은 있지만, 어머니에게 효도하려고 노력했던 나에게, 어머니의 나를 향한 그러한 말씀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러나 날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님의 하해(河海)같은 은혜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족할 뿐이다.
끝으로 어머니가 고달픈 인생 속에서 그리움과 시정에 젖으면, 자주 애송(愛誦)하곤 했던 “타향살이”, 그리고 그리운 경주 월성군 안강읍 하곡리(일명: 蘆室) 고향을 생각하며 향수에 젖어 부르던 노래 “고향꿈”과 부끄러운 글이지만 어머님의 80회 생신 때 내가 지은 헌시(獻詩)를 소개한다.
타향살이
1.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2.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 쪽
3.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때는 옛날
4.타향이라 정이 들면 내 고향되는 것을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언제나 타향
고향꿈
1. 진달래 곱게 피는 정든 언덕은
내 마음의 꿈이 피는 고향이라오
달이 뜨면 토끼들이 춤을 추는 곳
그 언제나 찾아가나 그리운 내 고향
연분홍색 유리창에 가물가물 그린다
2. 물방아 돌아가는 고향길에는
피리불던 어린시절 남아 있다오
해가 지면 산마루에 부엉새 울고
가고파도 또 못가는 서러운 내고향
비 내리는 가로등에 가물가물 그린다
獻詩
어머님 80회 생신을 경축하며
霞谷
경주
대구
서울
가슴 저미는 情恨
가득 차서
아직도 방황이
끝나지 않은 채
18세 소녀처럼 문학이
가슴속 잔잔히 흐르고
水道山에선
죽음과 마주하고
자식들 눈망울이
눈에 밟혀
희원
광언
선자
광하
희주
광우
혜영
미혜
끝내 삶으로 돌아선
아! 潔曲한 조선의 여인이여
비아돌로로사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었죠
그길에서
악인도 선인도
모두 만났죠
삶의 실험처럼
절망도
배신도
익숙해졌죠
지금
무슨
생각하시고
그윽한 눈으로
승리
임박한 승리!
아! 그 痛切한 인생의 무게에도
후회마시고
후회하신들!
삶은 신속히 지나가고
희망만이 다가온다
십자가
부활
내잔이 넘치나이다
내잔이 넘치나이다!
오늘 80개의 찬란한
별이 빛나는 아침에
어머니
이제
낙옆처럼
愛憎의 나무에서
自由하세요
홀가분하게
멍에를
벗어던지시고
저 들녘 움터올
상큼한 봄의 향기에
마음껏 취해보세요
옛 서라벌에서
아름다운
소녀의 꿈을
꾸어보세요!
문학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첫댓글 축복은
언제나 저주의 가면을 쓰고 온다는 말씀이. 와 닿네요
열심히 최선을 다 해 사셨으니
당근
효도도 받으셔야죠
기도 하신 대로
86세 적당한 나이에 고통없이 소천 하셨습니다
리야님 격려 댓글 감사드립니다 ㅡ
자신이 불효자라 말씀은 하시지만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절절함을 이미 토로하셨으니
제눈에 다저스님은 효자라 하겠습니다.
어머니 슬하에
자녀들도 많고..
또 그런 가정을 잘 이끌어 가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문학을 향한 마음과 다저스님의 글이 오늘 만나고 있으니
이런날엔 가을빛이 더 빛이 나겠지요?..ㅎ
가을이 님 매번 저의 글에 댓글을 보내주시니 무엇으로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한 마음 가득합니다 ㅡ
리야님 댓글 감사합니다 ㅡ
어머님이 가신후
자식들은 언제나 잘못한 점만 생각납니다.
효자 효부였습니다.
그런대로 잘 사신 분으로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