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꿈에도 그리는 이상형의 여인을 만나 설레이는 마음으로 접근한다.
일이 너무 잘 풀려 만난지 단 하루만에 평생의 사랑을 이룰 것처럼 가까와진다.
그녀와 헤어져 집으로 향하는 사내는 벅찬 감정에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자신의 볼을 꼬집어본다.
꿈이다.
봄날 나무그늘 아래 늘어지게 한 숨 자고 깨어보니 그 모든것이 한낱 꿈이 아니던가.
스페인의 젊은 감독(72년생)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이 정도의 일장춘몽에서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 붙인다.
집으로 가는데 옛 애인이 나타나 그를 태워준다. 질투의 화신이 된 옛 애인은 자동차를 절벽으로 몰아 동반 자살을 기도한다.
여자만 죽고 남자는 살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긴 했지만 같은 여자와는 두번 자지 않을 만큼 외모에 자신있던 희대의 바람둥이가 그만 얼굴 수술로 프랑켄슈타인의 몰골이 되고 말았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 남자의 재산도 현대 의학의 한계를 넘어설 순 없다고 하니 이건 악몽이다.
사랑스러운 여인마저 그를 외면한다.
꿈이라면 빨리 깨라.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진 그를 꿈에도 그리던 그 여인이 부드러운 손길로 일으켜준다. 놀랍게도 갑자기 그녀는 용서를 빌고, 의사들은 새로운 기술로 사내의 얼굴을 완전히 정상으로 고쳐놓는다.
모든게 너무 쉽게 풀린다.
'미녀와 야수'의 결말, 이것도 꿈이 아닐까? 그렇다 꿈이다.
사실 사내는 지금 사랑하는 여인을 살해한 혐의로 정신병원에 갇혔고 정신과 의사가 진상을 알기 위해 상담하고 있는 중이다.
'오픈 유어 아이즈(2월6일 개봉)'가 이쯤에서 깨어 일장춘몽의 반전을 시도했다면 세계영화계가 그리 부산을 떨지 않았을 것이다.
스너프 무비(실제 살인하는 장면을 필름에 담는 다큐멘터리)를 소재로 날카로운 상상력을 보여준 데뷔작 '떼시스'가 모국 스페인을 휩쓸고 세계 각지의 비디오 숍에 묻혔을 때부터 영화광들은 그의 두번째 작품을 기다려왔다.
과연 '오픈 유어 아이즈'는 스페인, 선댄스, 베를린, 동경을 돌며 새로운 천재의 발견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러나 꿈과 현실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정신과의사가 나오는 대목에서 설명을 그쳐야 할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이 또 뒤통수를 노리고있다고 미리 알려주면 알아서 피할테니….
다만 감독이 들고 있는 무기가 어떤 종류라는 것은 미리 알아도 괜찮을 것 같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이름, 혹은 배경같은 것들이 모두 진짜 현실에서 경험한 것들이고 실제 나는 지금 꿈 속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면?
모든 스릴러에서 늘 해결사 노릇을 하던 정신과 의사마저 꿈속의 인물이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우리가 그꿈을 깨고 현실을 찾을 것인지, 그 꿈이 현실이라고 인정할 것인지 혼란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꿈인지 생신지 알 수 없는것이 유한 생명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일까?
현실과 기억을 조종하는 큰 손이 있다고 생각하는 세기말적 비관주의는 이미 SF '다크 시티'나 드라마 '트루먼쇼'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보았지만 '오픈 유어 아이즈'처럼 장르를 뒤틀며 나타난 적은 없었다.
꿈속의 여인을 현실로 착각하는 로맨스인가 하면 어느새 정신병자의 살인극을 추적하는 스릴러가 되고, 다시 '냉동인간' 운운하는 SF로 숨쉴 틈 없이 뒤바뀐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왕복하는 장면 전환 솜씨는 히치콕같지만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히치콕도 못해 본 일이다.
그렇다고 이런 비관주의가 지루하지도 않으니 쉽게 보고 어렵게 생각해야 될 영화인 셈이다.
잘 생긴 주인공 에두아르도 노리에가는 스페인 최고의 스타이고, 섹시한 여주인공 페네로페 크루즈는 '하몽하몽'과 '아름다운시절'에서 보았던 국제적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