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심은 측백나무의 정확한 품종을 알기 위해 글을 썼다가 내친 김에 짧은 생각을 적는다.
아마도 오늘 아침 클래식 선율이 잔잔하게 그리고 애잔하게 흐르는 걸 듣고 있자니 가끔 돋는 감성넘치는 분위기에 또 빠졌다.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방금 올렸던 측백나무 품종 문의 글을 보니 참 허하다.
어릴 적부터 나무를 보면 그저 좋았다.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사실 보이는 나무 대부분은 이름을 모른다. 어찌하여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따면서 나무 이름을 좀 알았다. 그마저 이제는 거의 까먹었다. 남천이 뭐였더라... 노간주나무가 뭐 어쨌더라..,
4년 전 경기도 연천에 들어왔다. 먹고 살기 위해서가 정확하지만 나는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 새로운 일과 함께 나무를 심었다. 조경일을 하시는 분을 따라 일을 배운다고 1년을 다닌 후 권유대로 밭을 빌려 포천에서 묘목 3천주를 사다 심었다. 동물도 식물도 새끼일때가 참 예쁘다. 가녀린 묘목이었지만 4월에 심은 측백밭은 바람에 살랑거리는 새끼나무들로 흐뭇하였다.
하지만 조경일은 그해 끝이 났다. 내 체력도, 경험도 없었거니와 결국 또 사람과 충돌하여 다쳤다. 남은 것은 밭에 심은 저 새끼나무들만..... 나무가 무슨 죄랴? 그때부터 혼자 그야말로 혼자, 키웠다.
어느 때, 인적없는 산골짝 밭에서 혼자 풀을 메며 문득. 내가 지금 대체 뭘 하는 거지? 뭔 고생이냐? 나무로 밥벌어 먹는 것도 아닌데. 한동안 발길 안 주다가 들러보면 어찌나 풀이 덤벼드는지. 돌아서면 풀이었다. 한번도 제초제도, 살충제도 주지 않은채 오로지 손으로만 게으르게 참 게으르게 새끼나무들을 키웠다.
현재. 약 2천주 좀 넘게 남은 것 같다. 심을 때부터 시원찮은 녀석이 있었고, 심을 때 품삯을 받는 아주머니들이 시간 안에 심느라 대충 심은 놈들이 그해 바로 죽었고, 말라 죽고, 병충해(로 의심 된다)로 죽고, 그냥 죽고, 내가 미안하다.
나는 죽어 나무가 될 수 있을까?
나무가 되어, 사람의 발길 닿지 않는 높은 절벽 쯤 어디 낙락장송이 되어 가면 좋겠다. 어느 저택의 정원에 기품있는 소나무는 어떨까? 그것도 좋지 않을까. 차차 생각해보자.
다소 어지러운 글이 되었다. 어지러운 느낌 받으신 분들은 얼른 나무 한번 보고 씻어내시길. 바란다.
첫댓글 나무 키우기 단상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잘 견뎌서...보상이 있길 바랍니다!!
최근 나무에 신경쓰면서 조금 찾았더니 나무를 보시는 분들과 접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 녀석들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고생을 많이 하신분같군요..이세상 수많은 일이있지만 나무을 키우는일보다 재미있는 일이 별루없지 싶습니다 이것을 직업으로 생각하면 일이지만 ..정원을 한번 만들어 보심이 어떨련지요 그리고 이세상에서 보이는것들은 다 하나입니다
아닙니다. 글만 번지르하지 남들에 비해 고생이 더 했다 할 수는 없겠네요. 쓴맛도 단맛처럼 맛을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조그만 밭을 마련하면 밭(작물)농사보다는 나무를 심고 싶습니다.
원래 나무 전문가이시네요.
이젠 정원의나무에 오셨으니
앞으로 좋은 일들이 더 많으실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위로가 되었습니다. 님도 나무와 함께 좋은 일들이 가득 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