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판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이적 시장이 문을 닫은 9월 2일 0시. 유럽 언론들은 이렇게 외치며 한탄했다.
비교적 잠잠하던 2008년 여름 유럽축구 이적시장은 마감 시한이 다가오면서 또 한번 격렬하게 요동쳤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대형 거래가 쏟아져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인공은 선수가 아닌 $$$,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였다.
세계 경제를 주릅잡는 달러화도, 유럽 단일 통화인 유로화도, 축구계에서는 이미 주도권을 잃은 지 오래다. 섬나라 영국에서만 통용되는 파운드화는 유럽 축구 시장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으며 어느새 축구계의 최대의 빅머니로 자리잡았다. 이번 이적 시장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전통적 빅 클럽들이 상대적으로 소비를 자제한 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지출은 여전히 용맹했기 때문이다.
유럽 이적 시장의 '돌격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세기말을 전후해 천정부지로 치솟던 유럽 축구 이적료 경쟁은 지네딘 지단이 유벤투스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경신한 4,600만 파운드(약 900억원)의 이적료 기록을 정점으로 거품의 끝을 달렸다. 축구 사상 첫 ‘금전 거래’ 이적 사례로 기록된 1905년의 앨프 커먼 (미들즈브러->선덜랜드)의 이적료는 1,000파운드였고 이 액수가 10만 파운드에 도달하는 데에는 55년이 걸렸다(1961년). 그리고 100만 파운드 시대가 열리는 데에는 14년(197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에 비하면 1,000만 파운드의 이적료가 흔해빠진 액수가 된 요즘의 축구 시장은 그야말로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일궈낸 셈이다. 그러나 이처럼 끝을 모르고 치솟던 이적료 경쟁은 지단 시대를 끝으로 주춤하는 듯 보였다.
이탈리아와 독일 구단들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시작된 이적료 경쟁 자제 분위기는 2000년대 중반까지 그 흐름을 유지했고 덕분에 업계는 ‘제 정신’을 찾은 듯 보였다. 대륙 구단들은 2002년 이후 '크게 지르는' 경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단 표 참조) 그러나, 잉글랜드에 ‘지름신’이 강림하면서 이적 시장은 다시 불을 뿜기 시작한다.
잉글랜드 축구에 돈이 몰리기 시작한 가장 큰 근거는 영국인들의 축구 사랑이다. 축구 외에 별다른 여가 거리를 갖지 못한 영국 남자들은 주말마다 축구를 보고, 축구를 하고, 축구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삶의 재미를 느꼈고 덕분에 잉글랜드 축구팀들은 돈을 쓸어 담았다. 정책적인 뒷받침도 있었다. 1989년 힐스보로 참사 이후 가동된 테일러 특위가 만들어낸 ‘테일러 리포트’를 기반으로 대개혁에 들어간 잉글랜드 축구는 1992년 프리미어 리그를 출범시키면서 축구 산업의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관중 안전을 위해 입석을 없애고 전 객석 좌석제를 도입하는 등 경기장 시설 강화에 초점을 맞춘 이 같은 변화는 입장료 증대로 이어졌고 경기장 내 반입 물품의 통제 역시 구단 수입을 크게 늘렸다. 여기에 케이블TV 도입과 ‘영어’를 매개로 한 리그의 국제화는 잉글랜드 축구 산업이 돈을 끌어모으는 데 결정적인 변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매출 증대는 잉글랜드 축구가 ‘지름신’을 불러들인 첫번째 이유였다.
잉글랜드 축구 산업에 강림한 '지름신'들두 번째 이유는 모두가 알다시피 ‘그 분’의 등장이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축구팬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졸부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구단주로 등장하면서 잉글랜드 리그는 유럽 이적 시장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아브라모비치는 첼시 구단주로 부임한 2003년 이후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팀 스쿼드 자체를 거의 뒤바꾸는 개혁을 단행했다. ‘섬’이라는 입지 조건과 ‘구름과 빗줄기’로 상징되는 우울한 날씨 덕분에 해외 톱스타 영입에 어려움을 겪던 프리미어 리그는 아브라모비치의 등장과 함께 이적 시장의 ‘메인 보드’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이후 프리미어리그는 더 많은 해외 갑부들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고 맨유, 아스톤 빌라, 웨스트 햄 등 여러 팀이 그들 손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프리미어리그는 수 많은 해외 선수들을 받아들이며 ‘영국적’ 색깔을 잃고 있다.
우수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로 쏟아지는 실질적인 이유는 잉글랜드 구단들이 지급하는 높은 수준의 급료다. 1995년 1억 파운드(약 2천억원) 수준에 머물던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의 총 급료는 2007년에 이르러 무려 7억 파운드까지 치솟았다. Deloitte가 발행한 <축구 산업 연간 리뷰>에 따르면 스탭들의 급여까지 포함할 경우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이 쓰는 돈은 연간 9억7천만 파운드(약 1조8천억원)라고 한다.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이적료와 급료가 축구계 내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데에 있다. TV 중계권료와 경기 관련 수입으로 예산을 충당하는 기존 구조에서 ‘조만장자’ 구단주들의 쌈지돈에 의존하여 규모를 무한정 확장해버린 현재 잉글랜드 몇몇 구단들의 재무재표는 구단주가 흔들릴 경우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축구팀의 운영과 선수 구성 자체가 감독이나 단장의 식견보다는 ‘물주’인 갑부 구단주의 손에 좌우될 수 밖에 없다. 최근 뉴캐슬과 웨스트햄 감독이 연이어 사임을 선언한 사태는 이러한 풍토에 대한 반발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겨우 시작이라는 데에 있다.
대책없는 '지름'의 결과로 파산한 리즈 유나이티드. 사진은 2004년 EPL에서 강등된, 스미스의 리즈 시절. |
'외화내빈'의 그림자이적 시장이 닫히기 하루 전 소유주가 바뀌면서 이적 시장 막판을 크게 놀라게 한 맨체스터 시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보다 몇 십배(!)나 부자라는 보도가 있을 정도로 부유한 것으로 알려진 아랍 에미리트 출신 자산가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맨체스터 시티는 이적 시장이 닫히기 직전 레알 마드리드에서 브라질 공격수 호비뉴를 극적으로 영입했다. 전임 탁신 구단주 시절에도 이미 조, 벤 하임, 콤파니,
숀 라이트-필립스, 자발레타 등을 영입하는 데 5,000만 파운드에 가까운 돈을 썼던 맨체스터 시티는
호비뉴를 3,250만 파운드에 데려오면서 올 여름에만 8,000만 파운드가 넘는 이적료를 지불했다. 이 과정에서 호비뉴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액 연봉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져 맨체스터 시티의 지출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맨체스터 시티의 새로운 구단주는 또 베르바토프 영입에도 공을 들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베르바토프를 데려오는 데 1천만 파운드 이상을 더 쓰게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길게 나열한 맨시티의 ‘지름신’ 행적은 결과적으로 잉글랜드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를 더욱 더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우수한 인재들을 길러내 주전으로 기용함으로써 경제적인 면과 경기력 면에서 모두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기 때문이다. 상위권 팀들일수록 클럽 유스팀 출신 선수, 나아가 자국 선수의 비중이 매우 낮은 것은 그런 점에서 장기적으로 잉글랜드 축구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잠재요소로 꼽힌다.
다시 ‘돈’의 문제로 돌아가면, 현재 프리미어리그는 속부터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앞서 언급한 <축구 산업 연간 리뷰>는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이 총 25억 파운드의 빚을 지고 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약 5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 간행물은 또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의 총 매출액 중 급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인건비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프리미어리그의 화려한 이적시장은 비정상적인 ‘지름’의 무한도전에 불과한 셈이다. 어쩌면 ‘비교적’ 잠잠하게 이적 시장을 보낸 이탈리아와 독일의 축구 클럽들은 잉글랜드의 화려한 ‘매매’를 보면서 혀를 차고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 세계 축구 역대 최고액 이적료 TOP 12
1. 지네딘 지단 (유벤투스->레알마드리드) : 4,562만 파운드 / 2001년2. 루이스 피구 (바르셀로나->레알마드리드) : 3,700만 파운드 / 2000년3. 에르난 크레스포 (파르마->라치오) : 3,550만 파운드 / 2000년4. 지안루이지 부폰 (파르마->유벤투스) : 3,260만 파운드 / 2001년5. 호비뉴 (레알마드리드->맨체스터시티) : 3,250만 파운드 / 2008년6. 크리스티안 비에리 (라치오->인터밀란) : 3,200만 파운드 / 1999년7.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토트넘->맨유) : 3,075만 파운드 / 2008년8. 안드리 셰브첸코 (AC밀란->첼시) : 3,000만 파운드 / 2006년9. 리오 퍼디낸드 (리즈유나이티드->맨유) : 2,910만 파운드 / 2002년10. 가이즈카 멘디에타 (발렌시아->라치오) : 2,900만 파운드 / 2001년11. 호나우두 (인터밀란->레알마드리드) : 2,849만 파운드 / 2002년12. 후안 베론 (라치오->맨유) : 2,810만 파운드 / 2001년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football&ctg=news&mod=read&office_id=260&article_id=0000000096&date=20080905&page=1
첫댓글 여전히 지단과 피구는 ㅎㄷㄷ 하군요! 하지만 서형욱 전문가께서 잘못 짚으신것은 이제 EPL팀들은 물주가 흔들려도 걱정하지 않을것 같네요... 왜냐하면 아랍애들이 계속 들어오고 싶어해서.... 하지만 물주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말에는 동감.
이적료 탑 12에 맨시티라는 이름이 보이는게 정말 신기하네요. 라치오는 한때 지금의 첼시급이였고 첼시는 프리미어에서 4년간 탑 2를 유지해온 팀이라서 이해할만한데 "맨시티"라는 이름 보는순간 정말 ㄷㄷㄷㄷㄷㄷ 1부리그로 승격한게 2000년이후로 알고있는데 대단하네요
진짜 아이러니 한 것은 엄청난 이적료가 판을 치고 있는 EPL에서는 정작 탑 4에는 없었다는 것... 아마 맨시티가 깰거 같애요.ㅡㅡ
진지한 기사에 좀 미안한 리플이지만....말로만 듣던 "스미스의 리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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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라고 하던데요 아직 임대신분이라던데.
스미스 옆에 비디치가 있네 ㅋㅋㅋㅋㅋㅋ
그 또 옆에는 베니테즈?ㅋ
그 위 위 에는 리에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큰일입니다.
서형욱씨 센스있네... 스미스 리즈시절.... ㅋ
영국인이 아닌 제 3자 입장에서는 재밌기만한데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