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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1:36
태초의 동산에서 사람에게 명하신 두 동사는 보살피고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만유의 창조주와 피조 세계를 섬기고, 돌보고, 안내하고, 살피라는 '아바드'와 경계를 보존하고, 수호하고, 지키라는 뜻의 '샤마르'입니다. 야곱은 길 위에 나선 공동체를 보존하는 경계의 기둥을 세우고 있습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함 민복, 꽃)’는 말을 아시나요? 야곱은 그 경계를 허물기 까지 험악한 세월을 보내야했습니다. 야곱은 라반이 드라빔을 못 찾자 그동안 참았던 불만을 한꺼번에 토로합니다.
The two verbs that were ordered to man in the garden in the beginning are: Take care and preserve. They are Abad, who means to serve, care, guide, and examine the world of all things, and Shamar, who means to preserve, protect and preserve boundaries. Jacob is building a pillar of boundaries that preserves communities on the road. Do you know the saying, "Every boundary blooms?" Jacob had to spend many harsh years trying to break it down. When Laban couldn't find Dravim, he complained about his pat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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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에서 죽도록 고생한 20년 생활을 회고하면서 라반이 얼마나 고약한 소유주였는지를 고발합니다. 야곱은 성실했습니다. 20년 동안 한 결 같이 밤낮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정직했습니다. 자기 것이 아니면 어떤 것도 함부로 손대지 않았습니다. 고대 근동 법에 따르면 낮에 양을 잃은 것은 목자의 소관이지만 밤에는 주인의 책임입니다. 맹수가 물어 듣거나 죽인 양들도 목자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 증거만 있으면 됩니다.
Recalling the 20 years of hard work in Haran, I accuse Laban of being a bad owner. Jacob was sincere. For 20 years, he did his best day and night together. And he was honest. He did not touch anything other than his own. According to ancient Near Eastern law, it is the shepherd's responsibility to lose sheep during the day, but the master's responsibility at night. The shepherd is not responsible for the sheep that the beast bit or killed. All you need is the pro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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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야곱은 그것을 물어냈고 자신이 돌 본 양들을 20년 동안 낙태 한 번시키지 않을 정도로 성실하게 돌보았습니다. 라반은 삼촌이 되어가지고 조카에게 양을 치는 대가로 약속한 품삯의 조건을 열 번이나 고쳤습니다. 처음에는 얼룩덜룩한 새끼를 주겠다고 했는데 얼룩이가 많 자, 이번에는 하얀 양과 검은 소를 가져라. 아니다 점박이들만 가져라 등등 계속해서 노동계약서를 다시 썼습니다. 결국 궁지에 몰린 라반은 불안감을 느낍니다.
Nevertheless, Jacob took it out and cared for the sheep he cared for so faithfully that he did not have an abortion for 20 years. Laban became an uncle and changed the terms of his wages ten times in exchange for beating his nephew. At first, he said he would give him a spotty baby, but there are a lot of stains, so this time, take a white sheep and a black cow. No, only the spotted ones, etc., he continued to rewrite the labor contract. Laban, who was eventually in a tight spot, feels anx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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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른 부인을 안 두는 것과, 서로 나와바리를 침범하지 말자는 내용으로 언약을 제안했고 장인이자 삼촌인 라반의 속셈은 모를 리 없는 야곱이 동등한 입장에서 언약을 받아드립니다. 나의 야곱이 당하고 산 세월동안의 품삯을 계산해주신 하나님이 있고 이제 당당히 라반을 책망하는 야곱이 있습니다. 오늘의 신앙 영역들 중에 내가 보존해야 할 범주는 무엇인가? 나는 억지 주장하는 라반이 아닌가? 제발, 이제 그만 나도 밧단 아람의 훈련학교를 졸업해야 하지 않은가?
So he proposed a covenant not to have other wives and not to invade each other's me and Bari, and Jacob, who cannot be unaware of the intentions of Laban, his father-in law and uncle, will take the covenant from an equal standpoint. There is a God who calculated the wages of my Jacob's years, and now there is Jacob proudly reproaching Laban. What category of today's faith areas should I preserve? Am I not a forced Laban? Please, shouldn't I graduate from the training school in Badan 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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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라반을 책망함(36-42)
야곱과 라반이 언약을 맺음(43-55)
a.야곱과 라반이 돌기둥과 돌무더기를 세움:43-49
b.야곱과 라반의 언약 내용:50-53
c.언약의 식사와 이별: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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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노하여(36a)
라반을 책망할 쌔(36b)
야곱이 라반에게(36c)
대척하여 가로되(36d)
나의 허물이 무엇이나이까?(36e)
무슨 죄가 있기에(36f)
외삼촌께서 나를(36g)
불같이 급히 쫓나이까?(3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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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께서 내 물건을(37a)
다 뒤져 보셨으니(3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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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의 가장집물 중에(37c)
무엇을 찾았나이까?(37d)
여기 나의 형제와(37e)
외삼촌의 형제 앞에(37f)
그것을 두고(37g)
우리 두 사이에(37h)
판단하게 하소서(3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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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20년에(38a)
외삼촌과 함께하였거니와(38b)
외삼촌의(38c)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38d)
낙태하지 아니하였고(38e)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38f)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3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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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 찢긴 것은(39a)
내가 외삼촌에게로(39b)
가져가지 아니하고(39c)
스스로 그것을(39d)
보충하였으며(39e)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39f)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39g)
내가 외삼촌에게(39h)
물어내었으며(3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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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와 같이(40a)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40b)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40c)
눈 붙일 겨를도 없이(40d)
지내었나이다(4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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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41a)
이 20년에(41b)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14년(41c)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41d)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41e)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41f)
10번이나 변역하셨으니(4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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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의 하나님(42a)
아브라함의 하나님(42b)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42c)
나와 함께(42d)
계시지 아니하였다면(42e)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42f)
공수로 돌려보내었으리다마는(42g)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42h)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42i)
어제 밤에 외삼촌을(42j)
책망하셨나이다(4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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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이 야곱에게(43a)
대답하여 가로되(43b)
딸들은 내 딸이요(43c)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43d)
양떼는 나의 양떼요(43e)
네가 보는 것은(43f)
다 내 것이라(43g)
내가 오늘날 내 딸들과(43h)
그 낳은 자식들에게(43i)
어찌할 수 있으랴(43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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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라(44a)
너와 내가 언약을 세워(44b)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44c)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4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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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야곱이(45a)
돌을 가져(45b)
기둥으로 세우고(4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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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형제들에게(46a)
돌을 모으라 하니(46b)
그들이 돌을 취하여(46c)
무더기를 이루매(46d)
무리가 거기(46e)
무더기 곁에서 먹고(4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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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은 그것을(47a)
여갈사하두다라 칭하였고(47b)
야곱은 그것을(47c)
갈르엣이라 칭하였으니(4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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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의 말에(48a)
오늘날 이 무더기가(48b)
너와 나 사이에(48c)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48d)
그 이름을(48e)
갈르엣이라 칭하였으며(4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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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스바라 하였으니(49a)
이는 그의 말에(49b)
우리 피차 떠나 있을 때에(49c)
여호와께서(49d)
너와 나 사이에(49e)
감찰하옵소서. 함이라(4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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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50a)
내 딸들 외에(50b)
다른 아내들을 취하면(50c)
사람은 우리와 (50d)
함께할 자가 없어도(5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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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하나님이(50f)
너와 나 사이에(50g)
증거 하시니라 하였더라(5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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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51a)
내가 너와 나 사이에 둔(51b)
이 무더기를 보라(51c)
또 이 기둥을 보라(5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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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52a)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5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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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52c)
네게로 가서(52d)
해하지 않을 것이요(52c)
네가 이 무더기(52d)
이 기둥을 넘(52e)
내게로 와서(52f)
해하지 않을 것이라(5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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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하나님(53a)
나홀의 하나님(53b)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53c)
우리 사이에(53d)
판단하옵소서하매(5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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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그 아비 이삭의 (53f)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53g)
맹세하고(5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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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또 산에서(54a)
제사를 드리고(54b)
형제들을 불러(54c)
떡을 먹이니(54d)
그들이 떡을 먹고(54e)
산에서 경야하고(5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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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이 아침에(55a)
일찍이 일어나(55b)
손자들과 딸들에게(55c)
입 맞추며(55d)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55e)
고향으로 돌아갔더라(5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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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로운 야곱의 당당함_Pathetic Jacob's imposingness
꼼수와 거짓으로 일관한 라반의 비겁함_ Laban's cowardice, consistent with trickery and falsehood.
야곱을 채워주신 하나님의 신실함_ the faithfulness of God who filled Jac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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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야곱을 불의한 일에서 보호하셨던 에벤에셀의 하나님, 방황하는 야곱을 지키셨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킬 것이라고 약속하셨나이다. 내가 그 약속하신 길을 위해서는 반드시 결별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 됐던 간에 끊거나 버릴 수 있도록 믿음을 주옵소서. 많은 사람들과 화목하되, 구별 되어야 할 사람들과 구별되어 거룩함과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
the God of Ebenezer, who protected my Jacob from injustice, He kept Jacob wandering and promised that he would keep you wherever you went. For the path I promised you, there is something you must break up, and whatever it is, give me faith to cut off or discard. May the people be reconciled with each other, but may they be distinguished from others.
2026.4.28.tue.Clay
신학 비평//
나는 지금 무엇을 보존해야 하며, 누구와는 거룩한 거리를 세워야 하는가? 창세기 31장 36절부터는 야곱의 반격입니다. 도망치던 야곱이 드디어 멈춰 섭니다. 숨죽이고 참던 20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옵니다. “나의 허물이 무엇입니까? 무슨 죄가 있기에 나를 불같이 쫓아옵니까?” 이 장면은 단순한 분노가 아닙니다. 억울한 노동자의 항변이고, 착취당한 목자의 고백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기 삶을 증언하는 순간입니다. “딸들도 내 딸, 자식들도 내 자식, 양 떼도 내 양 떼,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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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라반의 본질입니다. 그는 사랑의 언어를 쓰지만, 속은 소유의 언어입니다. 그에게 딸도, 손자도, 양 떼도, 야곱의 20년도 모두 자기 소유입니다. 라반은 관계를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를 점유하는 사람입니다. 아바드와 샤마르의 사람이 아니라, 착취와 통제의 사람입니다. 반대로 야곱은 20년 동안 돌보았습니다. 낮에는 더위를 견디고, 밤에는 추위를 견디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물려 찢긴 것까지 스스로 물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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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맡겨진 것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속이는 자로 하란에 들어왔지만, 고난의 학교를 지나며 돌보는 자로 훈련되었습니다. 여기서 은혜의 역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한순간에 성자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20년의 노동, 억울함, 더위와 추위, 품삯의 배신 속에서 야곱을 빚으셨습니다. 야곱이 세운 돌기둥과 돌무더기는 단순한 표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경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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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라반의 세계가 야곱의 공동체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거룩한 선입니다. 믿음에는 화목도 필요하지만, 경계도 필요합니다. 용서도 필요하지만, 다시 착취당하지 않을 분별도 필요합니다. 사랑도 필요하지만, 소유하려는 손길 앞에서는 “여기까지”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핍니다. 왜냐하면 경계는 미움의 담장이 아니라, 생명을 보존하는 울타리이기 때문입니다. 미스바의 언약은 아름다운 축복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감시의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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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를 감찰하옵소서.” 이 말은 낭만적인 기도가 아니라, “너도 넘지 말고 나도 넘지 말자”는 약속입니다. 라반은 더 이상 야곱을 소유할 수 없고, 야곱도 라반의 방식으로 복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세운 경계는 복수의 끝이며, 새 출발의 시작입니다. 나는 누구의 라반인가? 혹은 누가 나의 라반인가? 내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은가?반대로 누군가의 기대와 통제에 묶여 하나님이 주신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