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대학생을 위한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시지프스
※ 스포일러가 있는 감상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경계도시2>는 다큐멘터리
영화이기 때문에 스포엘러가 있어도 영화를 감상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많은 분들께서 <경계도시2>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경계도시2>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들을 시사해 주는 좋은 영화입니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의 하이퍼텍 나다에서 <경계도시2>를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는 2003년 하반기에 대한민국을 낡은 색깔론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송두율 교수의 37년 만의 귀국 이야기를 카메라로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개봉 첫날이라 그런지, 당시의 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이 다수 극장에 찾아와
상영관은 거의 가득 찬 상태였습니다.
비록, 동숭아트센터의 하이퍼텍 나다가 200명 남짓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개봉관이라는 사실을 고려 한다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비인기 장르인 정치
다큐멘터리 영화에 상당히 많은 관객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예상 밖의 관심은 국회에서 있었던 시사회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송두율 교수는 37년 동안 고국에 귀국하지 못한 채 독일에서 철학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가며 남과 북의
평화통일을 꿈꾸는 이상주의적인 사상을 지닌 철학자였습니다.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은 송두율 교수의 그러한 경계인으로의 삶을
존중 했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송두율 교수를 북한 노동당 정치국부호의원
김철수의 다른 이름이라고 그를 의심하며 그를 거물급 간첩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국정원의 이러한 판단으로 인해 송두율 교수는 지난 37년 동안 고국에 귀국
하지 못한 채 타향만리의 독일에서 오랫동안 남과 북의 화합을 꿈꾸며
경계인으로 살아갔습니다.
37년 동안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던 송두율 교수는 대한민국이 민주정부와
참여정부의 10년 동안 민주화가 많이 이룩 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며 마침내 귀국을 결심하게 됩니다.
37년 만에 귀국하여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들인 송두율 교수는 많은
진보진영의 인사들과 매스컴으로부터 환대를 받았습니다.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에서도 독일 국적을 가진 한국의 철학자가 3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며 감성적인 기사를 실었습니다.
송두율 교수는 귀국과 동시에 국정원의 관리를 받게 됩니다.
국정원에서는 송두율 교수가 빠른 시일 안에 자진출두 하여 간첩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그를 연행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기자들이 3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송두율 교수에게 관심을
쏟아냈습니다.
2003년 가을, 저는 이때 대학교 4학년의 졸업을 앞둔 상태였습니다.
저는 이때 졸업 사은회를 준비하기 위해 수유리에 있는 아카데미 하우스에
사은회 장소를 알아보기 위해 찾아갔었는데, 그때 송두율 교수가 묵고 있던
숙소가 바로 아카데미 하우스 호텔이었습니다.
아카데미 하우스 호텔에 몰려들어 어마어마한 취재 열기를 보이고 있던
기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송두율 교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그의 귀국으로 인해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송두율 교수는 젊은 시절 독일에서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해외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였으며, 북한에 여러차례 다녀온
바가 있고, 북한 주석인 김일성이 사망 하였을 때는 장례위원으로 초대
받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정원은 이런 송두율 교수를 거물급 간첩인 김철수로 단정하고
있었습니다.
송두율 교수가 국정원에 자진 출두하여 조사를 받는 와중에, 국정원에서 그를
북한 노동당 정치국의 고위급 간부인 김철수로 의심하기 시작하자, 매스컴은
물 만난 물고기 처럼 달려들어 뜨거운 취재 열기를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송두율 교수는 김철수인가?"하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으며, 사실유무와 관계 없이 계속되는 이러한 보도로 인해
'송두율 = 김철수'라는 공식이 만들어 졌습니다.
기자들은 연일 송두율 교수에게 "김철수가 맞나요?"라고 질문을 던졌으며,
송두율 교수는 "아니다!"라는 답을 되풀이 했습니다. 그러자 신문에서는
"송두율 교수 김철수 신분을 완강히 부인!"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내면서 국정원 측이 그를 김철수로 의심하는 이유 등을 상세히 소개
했습니다.
그러한 신문기사들을 다수 접하다 보면, "송두율은 김철수와 관련이 있다"
라는 생각을 시나브로 가지게 됩니다.
송두율 교수는 과거 젊은 청년 시절에 북한에 입국했을 때 노동당에 가입했던
적이 있음을 국정원에서 시인 했습니다. 이 사실은 국내에 엄청난 여파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의 인사들은 총선을 앞둔 상태에서 좋은
먹잇감을 찾게 되었다는 듯이 "색깔론"을 들고 일어나 "좌파 정부가 북한의
빨갱이를 귀국시켰다!"라는 식의 주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조중동은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한나라당 측의 주장을 기사로 실었으며,
그 결과 송두율 교수는 언론에 의해 경계인이 아닌 빨갱이로 낙인 찍히게 됩니다.
연일 계속 되는 수사 속에서 송두율 교수는 잠시 짬을 내어 고향을 찾아갑니다. 그 곳에서 그는 37년 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송두율 교수의 아버지께선 그가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날,
"세계인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셨으며, 송두율 교수는 세계인이 되기 위해
경계인의 삶을 선택한 채 37년을 살아 왔습니다.
보수시민단체에서 송두율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 하면서
송두율 교수는 검찰 조사를 받게 됩니다. 검찰은 그에게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경계인으로써 가지게 되었던 친북적인(경계인은 양쪽의 경계에서
양쪽 모두와 교류를 가지며 평화롭게 화합을 이끌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북한에게도 남한에게도 친화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분들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하고 남쪽으로 완전히 전향할 것을 종용합니다.
국내 여론 역시 송두율 교수에게 경계인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이 아닌,
남쪽의 사람으로 완전히 전향할 것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그의 친인들이자
진보진영의 인사들 역시 송두율 교수에게 독일 국적일 포기하고, 남쪽으로
완전히 전향할 것을 강요합니다.
송두율 교수와 그의 와이프는 이를 완강히 거부합니다.
무려 37년 동안 그들이 경계인의 삶을 살았던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버리라고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송두율 교수가 37년 만에 고국을
찾은 것은, 이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충분히 발전한 만큼,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에 따라 남과 북의 경계에 선 활동을 국내에서도 벌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수많은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 부으면서, 은근히 그에게 남쪽으로 완전
전향 할 것을 강요합니다.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그의 철학을 지지했던
진보진영의 사람들 마저도 총성을 운운하며 그에게 경계인을 버리고
남쪽으로 완전 전향할 것을 강요합니다.
이때 당시 뉴스에서 제가 보았던 송두율 교수의 모습은 언제나 심각한
표정이었으며, 항상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때는 그가 왜 그렇게 무거운 표정과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경계도시2>를 보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진보진영의 인사들이 그에게 경계인의 삶을 살아가던 철학자
송두율이라는 한 사람의 신분이 당신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현재 민주진영의 상징이며 진보진영의 정당성을 대변해야 할
인물이기 때문에 당신 개인의 삶만 생각하지 말고 남한에 살고 있는
민주화 세력 전체를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만약, 이때 송두율 교수가 독일 국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외추방을 당하는 정도로 사건이 마무리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그를 국내로 초대한 진보진영에게
있어서는 매우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결과였기 때문에 진보인사들은
그에게 독일국적부터 먼저 포기할 것을 계속해서 강요한 것입니다.
경계인의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했던 철학자 송두율은 결국 백 아니면 흑을
반드시 고르도록 만드는 극단적인 대한민국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남쪽으로의 완전 전향을 선언하게 됩니다.
이는 그가 지난 37년 동안 경계인의 삶을 살아간 것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상의 자유가 원칙적으로 보장 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2003년에 벌어진 일입니다.
기자들은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해 광기어린 취재 열기를 보입니다.
오랜만에 찾은 특종이라도 된다는 듯이 연일 국정원과 검찰에서 법을 어기고
피의사실을 공표하자 이를 그대로 완전한 진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대로
받아적어 뉴스로 내보내게 됩니다.
검찰의 피의사실공표라는 말을 들으면 생각나는 얼굴이 있을 것입니다.
검찰에 출두 했던 故노무현 대통령님의 모습입니다.
검찰은 송두율 교수에게 그랬던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해서도
피의사실을 실시간으로 언론에 공표 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피의사실 공표죄(被疑事實公表罪)는 검찰·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사람이나 감독.보조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공판청구) 전에 공표하는 죄이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형법 126조).
이 죄의 직접적인 보호법익은 물론 피의자의 명예지만 피의사실의 공표로
말미암아 증거인멸 등 범죄수사에 지장이 초래되는 일도 있으므로 국가의
범죄수사권의 행사도 이 죄의 보호법익이 될 수가 있다.
따라서 피의사실공표죄는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 (反意思不罰罪)가 아니며,
또한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310조)'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위법성이 조각(阻却)되지 않는다. '공표'는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그 내용을 알리는 것이다.
1인의 신문기자에게 고지(告知)하는 경우도 신문의 특성으로 보아 공표가
된다. 또한 신문기자가 기록을 열람하는 것을 묵인하는 경우와 같이
부작위에 의한 공표도 있을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는 검사나 직무상
수사에 관계 있는 자의 비밀 엄수 등에 관한 주의 규정(형사소송법 198조)이
있고, 소년법에도 조사·심리중인 형사 사건에 대한 보도금지에 관한 특별
규정이 있다.
법을 수호해야 할 검찰은 스스로 피의사실공표죄를 마구마구 어겨가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을 실시간으로 언론에 뿌렸으며, 언론은
검찰이 공표한 피의사실에 대해 그것이 기사화 될 경우 어떤 여파를
지니게 될지 전혀 고민조차 하지 않은 채 진실의 여부와는 상관 없이
앵무새처럼 검찰이 말한 내용을 그대로 기사화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대통령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검찰과 언론의 파렴치한 행위는 송두율 교수 사건에서도 그대로
발생했습니다. 송두율 교수는 검찰의 말만을 사실인것 처럼 받아 적어 보도한
언론에 의해 북한의 고위급 간첩으로 낙인 찍히게 되었으며, 그러한 흐름으로
인해 결국 37년 동안 지켜온 경계인으로의 삶 마저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뒷일을 전혀 책임 지지 않는 언론.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왜곡된 사실이라도 거리낌 없이 보도하는 언론.
이것이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입니다. 2003년에도 언론은 이러했으며,
2009년에도 여전히 언론은 무책임하기만 했습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언론의 태도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송두율 교수는 2년 동안의 기나긴 법정 공방 끝에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말합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을 계몽해야 할 한국의 언론에 대해 실망이 매우
큽니다. 여러분이 쓰는 기사 한 줄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부디 기사를 쓰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송두율 교수의 이러한 부탁이 제대로 받아들여졌다면, 2009년에 우리가
겪어야만 했던 비극을 우리는 겪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언론은 과거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여전히 저널리즘의 소중한
가치를 잃은, 기자라는 직업을 먹고 사는 도구로만 사용하는 무식한
집단입니다.
송두율 교수는 결국 검찰에 의해 구속되어 구치소에 구속당하게 됩니다.
송두율 교수의 가족들은 그를 구명하기 위해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색깔론을 즐겨 사용하는 보수 세력들의 정치도구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해 사회운동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일인시위를 하는 모습이 몹시 반갑습니다^^;
송두율 교수의 가족분들이 겪어야만 했을 고통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송두율 교수의 석방을 위해 그의 가족들과 진보진영의 인사들과 시민단체가
모여 다양한 활동을 벌이기 시작 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언론의 광기어린 취재 열풍이 송두율 교수의 구속과 함께 급속도로 잦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열띤 과열 취재 속에서 송두율 교수를 변호하다가 자칫 빨갱이 소리를
들을까 겁을 먹었던 진보진영의 인사들과 시민단체들이 언론의 관심이
사라지자 그를 구명하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매우 역설적이게도, 송두율 교수는 구속을 당하기 전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좀처럼 내지 못했습니다. 경계인으로써의 삶을 살고자 노력했던 그는 주변
사람들의 강한 목소리와 언론의 과열된 취재열기 속에서 기자회견을
제외하곤 거의 언제나 침묵을 유지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언론의 관심이 사라지자 본격적으로 37년 동안 경계인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법원에서 꺼내기 시작 했습니다.
몸의 자유가 있을 때 그는 몰상식한 언론으로 인해 '정신'의 자유를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구속당해 몸의 자유를 잃어버렸을 때에는 언론의
관심이 사라진 덕분에 정신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자유란 무엇일까요?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하며 검찰의 피의사실공표만을 앵무새처럼 읊조렸던
언론은 생각없이 쓰는 자신들의 기사 문구 한 줄이 어마어마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요?
"과거는 묻지 마세요."
"아니면 말고."
라는 썩어 빠진 정신상태를 지닌 언론은 자신들이 저지를 죄를 반드시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들은 37년 동안 경계인으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기 위해 노력했던 한 철학자의 삶을 짖밟았으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죽음으로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언론인들은 과연 자신들이 그동안 저지른 과오을 얼마나 깨닫고 있을까요?
부디,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인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길 희망합니다.
개인적으로 <경계도시2>를 보고 깊은 감회에 젖어 들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저와 송두율 교수는 인연이 있는 듯 싶었습니다.
제가 조중동광고불매운동 사건으로 인해 검찰에게 2박 3일 동안
조사를 받았던 기억들이, 송두율 교수의 고문을 당하는 듯한 국정원과
검찰의 조사 모습을 보며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검찰의 조사는 상상 이상으로 사람의 정신을 매우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이제 지쳤지? 지쳤으면 우리가 말하는게 사실이라고 빨리 인정해!"
라고 말하는 것처럼 피의자를 괴롭힙니다. 똑같은 내용의 질문을 조사
몇 개만 바꿔서 수십차례 질문할 때도 있으며, 일부러 길게 질문 하여
피의자로 하여금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을 하도록 유도심문을 하기도 합니다.
송두율 교수의 피고인 변호인단에 있던 변호사 중 한 분인 김진 변호사님께서
검찰에서 제가 조사를 받을 때 제 변호를 해주셨으며, 저를 수사 하던 검사는
송두율 교수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송두율 교수가 재판을 받았던 중앙지방법원 서관 311호 법정은
제가 지난 1년 동안 재판을 받았던 법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 311호
법정에서는 한명숙 총리님에 대한 재판이 진행 되고 있습니다.
대학 4학년이었던 2004년에 저는 송두율 교수 사건을 바라보며
언론과 일반 국민이 전혀 따로 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색깔론을 운운하며 '빨갱이'를 운운하는 것을 매우 낡은
정치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색깔론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편입니다.
때문에, 송두율 교수의 사건이 진행 될 때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빨갱이를 운운하며 저렇게 사건을 과열 양상으로 만드는 걸까?"
라고 생각 하였습니다.
송두율 교수는 피고인 변론 시간에 다섯 마리 원숭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육사가 원숭이가 사는 동물원의 한가운데에 긴 철봉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바나나를 걸어 두었습니다. 그리곤 철봉에 고압전류를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기 위해 철봉을 만졌다가 전기에 감전 되었습니다.
두 번째 원숭이도, 세 번째 원숭이도, 네 번째 원숭이도 모두 바나나를 따려다
전기에 감전 되어 고통을 겪었습니다.
다음날, 다섯 번째 원숭이가 동물원에 들어와 바나나를 먹기 위해 철봉에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네 마리의 원숭이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저 철봉에 전기가 흐르기 때문에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원숭이는 네 마리 원숭이의 말을 마시한 채 철봉에 다가갑니다.
그는 철봉을 기어 올라 꼭대기에 걸린 바나나를 얻는데 성공 했습니다.
다섯 번째 원숭이가 들어온 날 아침에 사육사가 고압전류의 스위치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네 마리의 원숭이는 고압전류가 흐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례 겁을
먹어 바나나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은 바로
이 네 마리의 원숭이와도 같습니다. 이미 양극화 된 냉전 체제는 붕괴
되었습니다. 국가 보안법은 이제 더 이상 필요치 않은 법입니다.
더 이상 빨갱이니 친북좌파니 하는 말을 운운하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길
바라며, 감상문을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에 담긴 메세지가 많아
하고픈 말이 태산과도 같지만, 못 다한 이야기는 여러분들께서
<경계도시2>를 본 후에 기회가 될 때 마저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