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영리가 처음으로 만들어 진 것은 필자가 알기론 ccc 라는 한국 대학생 선교회가 복음전도용지로
사용하면서 나중엔 일반 교회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전도지로 발전하였던 것 같다.
"사영리" 말 그대로 네 가지 영적인 원리를 소개하고 있다. 사영리를 선호하는 큰 이유는 비교적 쉽고
간단한 교육으로 누구나 전도에 활용할 수 있고 특히 전도하는 바로 그 순간에 준비된 기도를 따라하게 만들고 또 상대방의 고백을 설득하여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내용을 찾아보니 이렇다.
“여러분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중심에 들어오시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아시기 때문에 입으로 하는 말보다는 중심의 태도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 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기도가 여러분의 마음에 드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지금 이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 안에 들어오실 것입니다.여기서 꼭 기억할 사실은 감정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음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지 우리 자신의 느낌에 근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특별한 느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한 결과,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2) 여러분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았습니다. (3)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
니다. (4)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5).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새 삶이 시작되었습
니다. 여러분의 생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었습니다. 바로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하여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
위의 내용에 관하여 시시비비를 언급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성경상으로 틀린 부분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이는 사영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바르게 소개하지 않는다.. 또 죄에 대한 정의도 명확지 않고..
회개 없이 막연한 죄를 고백하게 한다. 등등의 교리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사실 부연 설명의
미비로 인하여 오해의 소지가 있을 뿐이지 성경을 왜곡하여 열거한 부분은 발견하지 못했다.
또 어떤이는 어떻게 복음을 네가지 원리로만 획일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하며 우려를 표하지만
복음을 네가지로도 표현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저 "예수 믿으세요"가 전부인 할머니 권사님도 우린
자주 접한다.^^누가 감히 그 할머님의 전도가 크게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겠나. 아니다. 할머님의
그 한마디를 하나님은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찾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현란한 혀로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영리의 전도지를 보면서 교리 보다 더 큰 문제점을 발견했다.
위의 내용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해야 한다는 촉구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촉구 후에 구원을 확신시키는 방법으로 "바로 지금 당신은 이 기도로 예수를 영접하는
겁니다." 라고 하면서 기도문을 읽어주고(기도문의 내용은 문제가 없음) 그 다음에 그 기도문이 마음에 드는가를 묻고(여기서 대부분은 분위기상 yes 라 말한다) 바로 그 기도문을 읽으라고 유도한 후에
기도문에서 약속한 대로 예수께서 당신안에 들어오신다는 확신의 멘트를 날리고 "당신은 이제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라고 말한다.
사영리의 내용은 성경적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영리에서 구원을 확신시키는 방법은 반대로 대단히 비성경적이라 말할 수 있다. 믿음이란 분명히 복음을 들음으로 생기지만 그 복음을 선포한 자의 의지나 유도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박옥수파의 구원파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카페 게시글에도 이 부분을 올렸다)
그들은 새로온 사람들과 성경을 퍼 놓고 개인 문답식 대화를 하고는 그들이 제시한 모든 성경말씀에
동의를 하면 바로 거듭났다고 구원을 선포하고 비로서 "형제"라 부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들이 제시한 성경구절들이 잘못되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분명히 복음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듣고 동의했으며 아멘하였다. 문제는... 그러면 구원인가? 이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영접할 능력이 없는 죄인이란 사실이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절대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가 전도자가 제시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에 동의하고 영접하고 픈 욕구가 생긴다 하여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사람 자신이 그리스도를 영접한다고 해서 그리 되는 것이 아니요.. 또 영접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영접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영접함이란 곧 하나님께로 난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권세가 위로 부터 주어진다고 성경은
요한복음에서 말하고 있다. 내 자신이 그리스도를 선택함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작정하시고 선택함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엡1;4)
다시말해 복음을 듣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거나 혹은 영접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의지나 동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권능이 그 사람에게 행사되는 것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전도자가 자신이 말하는 대로 상대가 따라오고 아멘한다고 하여 그것을 거듭남이나 믿음에 있다고 단정짓고 그 사람의 구원을 선포해 버린다면 구원사역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보는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동의하는 사람에게 두는 웃지 못할 촌극이요 하나님 앞에선 참람된 행사인 것이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으라!" 하고 외쳐야 한다. 주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침에 이를 듣는 사람이 믿음의 결단을 내릴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즉 복음을 듣는 사람의 의지적 행동을 통하여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전적인 "은혜"이다.
필자는 서두에서 밝혔지만 사영리의 내용에는 시비를 걸 마음이 전혀 없다.
오히려 얼마든지 복음 전도지로 혹은 학습교제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으로 구원을 확신시키는 방법이나 전도하여 교회의 부흥의 차원으로 이용한다면
반드시 시비를 걸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교회에 맡기신 복음이 아니며
따라서 올바른 전도법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첫댓글 이 글을 쓰신 분 그리고 사이트에서 꼭 맞는 말씀만 하시는 것은 아니라 봅니다.
하지만 정서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차분히 읽어보시면 유익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럼 지옥에 갈 사람이 정해져 있나요?
죄송합니다.
저의 불찰을 용서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윗글에서 에베소서 1:4 를 인용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좀 더 신경을 써서 글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