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시집 안 가..! 엄마아빠하고만 살 거야..!”
오래 전, 딸아이가 했던 말이다.
그런데 어제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대체로 어색하고 경직되기 십상인 자리.
하지만 음식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지 얼마 되잖은 참,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조차...
“어머님.. 아버님...”
기왕에 여식을 맡기려 마음을 굳힌 탓일 것인데, 머잖아 모시게 될 시어른들을 향해 낸 여식의 말에도 정감이 깃들어 있음을 알고도 남았다.
여식의 시집가지 않겠다는 말을 믿고 살아 온 건 아니다.
그렇지만 오래 전에 했던 말을 이 날까지 기억하고 있는 건 그저 옆구리에 끼고 살고픈 마음이 없지 않은 탓일지도 모를 일.
“뱀과 돼지...相生은 아닌 것 같은데...”
나와 딸을 두고 한 누군가의 말을 신봉하는 건 아니지만, 딸이 성인이 되고나서는 사고의 차이로 인한 충돌이 적지 않았다.
딸의 의견이 꼭 옳아서도 아니고, 내 생각이 틀려서도 아니지만 ‘그렇구나..’ 며 한 발 물러서는 경우가 없지 않았었다. 相衝이어서가 아니라, 딸아이를 이겨먹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용 한 건지도 모를 일인데, 애비를 이겨먹을 수 있도록 자란 게 흐뭇하기도 하면서도 한 편으론 애비를 이겨먹는 놈이 괘심하기도...
이러나저러나 자식.
그런데 그런 놈이 어느 날 갑자기 히쭉벌쭉 거리며 남자가 생겼다더니 얼마 후엔 얼굴에 여드름 흔적이 남은 한 녀석을 데리고 와 절을 올리며, 이 남자가 너무너무 좋아 시집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녀석의 첫인상이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다.
“오빠~아 ~~”
게다가 여식은 여식대로, 코맹맹이 소릴 내며 여드름 자국이 남아있는 남자 녀석의 팔을 잡고 흔들어대며 있는 다정을 모조리...
‘놈, 지 애비한테는...’
그런 짓거리가 이뻐만 보이는 한편, 중학에 든 이후로는 애비 팔에 매달린 적이 없기에 슬며시 이는 치기를 어쩔 수가 없었는데 얼마 후면, 늦은 시각 귀가 해 여식의 방문을 열어도 고이 잠든 녀석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은 서운하게만 여겨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자식을 장가나 시집보내는 건 우리들 소임 중 하나.
그리고 녀석 또한 우리 눈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새로운 삶을 꾸려 갈 것이며, 아이를 낳고 길러 성인이 되면 배필을 구하게 될 것이다.
“잘 키운 따님을 내놓아 주셔서 뭐라 감사의 말을 드려야 될지...”
결혼은 정작 딸아이 쪽에서 서두는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녀석과 몇 번의 대면 끝, 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안사돈 될 사람이 입을 열었다.
딸자식을 향한 눈빛이 그저 겉치레 말만도 아닌 것 같아 아이에게 눈길을 주어 보았다.
스물아홉.
이전 같으면 늦었을 나이일 것인데, 제 어미가 시집가면 죽도록 할 일이라며 손끝에 물 묻히지 않고 키운 탓에 살림은 고사하고 라면 하나 간신히 끓여내는 처지이고 보면, 녀석이 차후 감당해야 할 일들에 생각이 미치자 안사돈의 인사말에 반해 걱정이 고개 드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 염려 마삼..! 신랑 굶겨죽일 일은 없을 테니...”
나완 달리 여유만만하기만 하던 아내.
게다가 녀석은 녀석대로 여식의 어설픈 살림살이야 아랑곳없다는 듯 두 사람이 차후 살아갈 바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밝히고 있었고, 여식은 여식대로 그런 녀석이 좋아죽겠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띠운 채 녀석에게서 잠시도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인연인지도...-
아이의 그런 눈빛을 본 적이 없기에 신기하다는 생각조차 없지 않았었는데, 사위 될 녀석은 녀석대로 딸아이와 양가 어른들을 번갈아보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저들 둘의 향후 계획을 밝히고 있었다.
간간히 둘의 눈길이 마주친 순간순간 녀석과 딸아이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그다지 오래 된 사인 아니지만 둘이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도 남았다.
-열심히, 그리고 맘껏 사랑하렴..!-
그 자리에서 둘을 한꺼번에 보듬어 안아보고 싶다는 충동을 의식하며 고개를 돌리자 안사돈과 눈길이 마주쳤다,
그 나이에 어울리는 피부와 눈가의 주름...
그간 보낸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 있었지만 삶에 찌든 흔적은 없다.
뿐만 아니라 목소리엔 단호함과 푸근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음을 알고도 남았는데, 그 엄마에 그 아들이겠지만 사위 될 녀석의 모두가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얼굴과 겸손한 언행은 마음에 들었지만, 나로선 딸아이가 좀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대를 만나길 바랐다.
가난이 꼭 대물림 하는 건 아니겠지만, 열심히 일하며 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날까지도 넉넉지 못한 살림.
물질적 풍요가 행복의 척도가 아님을 번연히 알면서도 조금은 여유 있게 생활하고 싶었지만 바람과는 달리 그렇지 못하기에, 적어도 여식만큼은, 돈 걱정 없이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괜찮을 것 같은데..!”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 아내가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애들끼리 살게 된 일이며, 사돈들의 가탈져 보이지 않는 성격이 아내의 마음에 든 것 같아 보였다.
살아가는데, 보다 잘 살기 위해선 무엇을 갖고 있느냐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갖은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한 일 일수도 있다.
때 묻지 않은 여식.
질 새라 사위될 녀석 또한 속되 보이지 않는 눈빛을...
아낼 옆에 앉힌 채 차를 몰며, 날도 잡지 않은 마당에 둘이 알콩달콩 지내는 모습을 떠 올리게 되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에 지나지 않겠지만, 우리 내외가 김치 한조각 올린 밥상 앞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듯이 저들 또한 그럴 것만 같아, 앞차의 동태를 주시하는 참에도 마음이 가볍기만 한 걸 알고도 남았다.
첫댓글 아빠에 심정 잘읽었습니다.
이쁜 따님 행복하게 잘살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고운 저녁 되세요.
추카드립니다,,,,,,,,,,,양쪽 부모님을 뵈니,,자녀들도 행복하게 잘 살거 같네요,,,,,,
아이가 자라서 제 인연을 찾고 엄마 아빠의 둥지를 떠난다는 것. 서운하기 보다는 기쁜 것 같은데 부모 마음은 그렇지 않나봐요.
그래도 다복한 가정에서 사랑 많이 받으며 자란 것 같네요. 알콩달콩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 것 같아요. 축하합니다.
차~암 잔잔~하게 글을 잘 쓰십니다...
아니 마음이 차~암 잔잔~하고 따스하신분 같네요...
따님의 나이를 보아~ 하니
저와 비슷한 연배이신것 같은데,
어떠한 인품의 아빠 이신지 눈에 서~어~ㄴ 합니다...
욕심과는 다른 아빠의 딸에 대한 바램...
사람을 바라보는 긍정성...
가족의 화목을 위해 애쓴 흔적...
보는 제 마으미(마음) 같이 흐뭇~해 지는 아낙입니다...
사람 사는게 뭐 별거 없고
그저...
여여하게...
길가에 핀 들꽃같이 살면 좋는게 우리네 인생이라네요?...(^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