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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놈 옆에 있으면 벼락 맞는다더니 큰형이 저질러놓은 집안을 수습한다고 학업까지 포기하고, 고생고생 하더니 지금은 풍으로 쓰러져 불의의 객의 되어버린 작은형 뒤로 누나 중간 틈에 끼여 산길 따라 바쁘게 걷는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아침 일찍 어젯밤 어머니가 말씀하신 용지아제네 집으로 피신 아닌 피신을 가는 길이었다. 뒷산을 넘어 잡목우거진 숲을 지나 무덤 몇 기를 지날즈음 생각에 잠긴다.
‘동생은 지금 죽으믄 이런 무덤도 없을끼제.. 알라들 죽으믄 가마니 둘둘말아 땅속에 파묻는다 카던데.. 갸도 저승에 갈란가. 지금 내처럼 산 넘고 물 건너고 이보다 더 험한 길을 걸어서 49일 되야 저승에 도착한다 카던데 그 쪼메한 놈이 우예 49일 동안 걸어간다 말이로. 맨날 못된짖 하고 다니는 내보다 글마를 디기도 좋아 하는 엄마는 어째지?’
가는 중간에 옹달샘 물 한 모금씩 마시고 한참 쉴 때, 굵은 황소 메뚜기 한 마리를 잡았다.
“니 집에 아픈 사람 있을 때는 미미한 생물이라도 함부로 잡는 기 아이다. 그래야 하느님이 아픈 사람 안 아프게 해 준데이, 그카이 고마 살려 보내 조라.”
고분고분 작은형 말을 들었다. 다리하나 날개하나 다치지 않도록 살며시 풀 섶에 내려놓았다. 넓은 목화밭을 지나자 초가지붕 두 채가 반긴다. 낯선 점심으로 삶은 감자를 먹고는 툇마루에 가로 누워 한숨 자고 일어나니 벌써 컴컴한 저녁이 되었다. 그새 집이 궁금하다.
‘지금쯤 은이놈 이모와서 칼 날리고, 난리굿을 하겠제. 아부지는 뭘 하고 계실까? 동생한테 진짜로 조상귀신이 붙어서 그런길까, 조상이 이뻐하믄 일찍 데려 간다 카던데, 그럼 맨날 사고치는 내는 안 이뻐해서 안데려 가는갑다. 집나간 큰형은 골치 아플낀게 안데려 갈끼고, 엄마하고 조상들은 왜 동생만 이뻐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는 조상들이 계속 이뻐하지 말았으믄 좋겠다.’
저녁상을 물린 후 희미한 호롱불에 모깃불 피워놓고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동안 나는 마당에 있는 똥강아지랑 놀다가 삽작에 기대어 하늘에서 징그럽게 떨어지는 별을 쳐다보았다. 하늘 공간 빽빽이 많은 별들이 눈에 부신다. 그 별무리 속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액자 속에 걸린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꾸만 따라오라 손짓한다.
사고만치는 내 델꼬 가서 뭐할라꼬 그러냐, 발버둥 치다가 허우적 일어나니 목줄기에 땀이 흥건히 고여있다. 아침인가? 유난히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불안하다. 불안의 건더기는 무엇인가, 자루 한 포대기씩 넣어주는 감자를 머리에 인 누나들이 가끔씩 ‘음음’하는 소리 뒤를 따라 나뭇가지를 꺾어 빙빙 휘두르며 따른다. 작은 개울을 건너 언덕배기 올라서니 뉘엿뉘엿 마을엔 어둠이 내려있다. 내리막길을 누나 형을 앞질러 단숨에 달렸다.
‘엄마의 고운 한복이 혹시, 다른 색으로 변한 건 아닐까? 만약 그냥 그대로 보라색이면 그 치마폭에 쌓여 세상을 보고 싶다. 보라색으로 세상이 보일 테지’
나의 가슴도 하룻밤사이 그리움과 기다림의 색으로 변해 있었다. 집 앞까지 내리 달리다 멈칫 놀란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침묵이 집안을 감싸고 있다. 시간도 멈춰버린 찰나의 공간같이, 그저께와 또 다른 고독으로 휩싸인다. 골목 어귀 작은형의 모습이 보일 때 쯤 떠밀리듯 마당으로 조용조용 들어섰다. 누가 밝혀 놓았는지 흔들림 없는 희미한 남폿불이 한구석 홀로 놓여있고, 댓돌위엔 어머니 코고무신이 가지런히 힘겹던 시간을 말하고 있다.
짓눌리는 침묵을 작정하고 깨듯 “엄마!” 하고 불렀으나 이내 사라진다. 열린 방문 안으로 살며시 문지방 넘어 들어서니 콤콤한 동생 특유의 냄새가 없다. 항상 누워있던 그 자리에 대신 누군가 죽은 듯 누워있다. 엄마였다. 숨소리로 알 수 있고, 냄새로도 알 수 있다. 가라앉은 침묵에 돌아서 나올려다 어머니의 소리에 꼿꼿이 멈추어 버렸다.
“야야, 일로 온나”
음울하면서 따뜻한 목소리였다. 먼 옛날 아득히 잊고 있던, 아마도 엄마 뱃속에서나 들었음직한 그런 음성이었다. 천천히 돌아서 엄마에게로 갔다. 숨이 막힌다. 꼭 안긴 어머니의 품속이 생설다. 보이지 않아도 안다. 어머니의 치마는 여전히 사각사각 꽃보라 색이 라는 걸.
“갸는 어데 있는데?”
“응, 지금쯤 하늘나라에 있을끼다”
“뭐라카노? 그기는 우예 가는데?”
“ ... ”
그 이후부터 내 악동생활은 달라졌다. 아니, 어머니께서 나를 대하시는 것이 달라지신 것이다. 동생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난 뒤 부드럽고 다정다정 하게 변해 있었다. 동생의 몫을 내게 몽땅 쏟아 붓듯이... 나 또한 어머니의 그 가슴의 상처를 건드릴까 싶어 노심초사 조용조용한 하루를 보냈다.
힘든 여름이 지나고 어머니 따라 봉화 석포 이모집에 고사리 얻어러 가던 길,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도중 계곡 옆을 지날 때 쯤, 가느다랗게 솟은 파란 대궁에 초롱처럼 늘어뜨려 있는 몇몇 송이의 작은 꽃, 역광의 가을 햇살을 받으며 작게 축소되어 요정으로 변한 어머니를 발견했다.
“아이고야, 도라지 모싯대네!”
“응? 이 꽃 이름인가?”
“그래, 이뿌기도 하지!”
“엄마 한복 따라서 이렇게 폈는갑다. 그지?”
“아이지, 내가 이 꽃을 따라서 입은 거지”
“이 꽃은 그람, 누굴 기다리는데?”
“그야 난도 모르지, 누굴 기다리는지는 이 꽃만이 알겠지. 혹, 니를 기다린 거아이까!”
나의 악동생활을 청산하듯 해버리자 락이놈이 동네 악동 대장격으로 신분상승을 하고 있었다. 한번씩 내게 악동들 보는 앞에서 기를 꺾어 확실한자리 메김을 해 두자는 심산이었으나 내가 실실 웃으면서 피하니 제 놈도 더 이상은 날 건드리지 않고 은연중에 나를 꺾었다는 암시를 악동들에게 주입시키곤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듬해, 학교에서 단체영화 관람이 있었다. 반공교육이 철저할 때라 6.25전쟁 영화였다. 그 악마구리 같은 심성이 보랏빛 치마에 녹아버린 때문인가, 그날 밤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으며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본 괴뢰군이 내게 주먹질을 해오면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벽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빈 허공에 발길질을 하며 사투를 벌인다. 그러다 그놈의 주먹이 내 볼을 힘차게 때린다. 깨어보니 놀란 어머니의 손바닥이었다. 다시 누워있으면 이번엔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서 내게 덤비기 시작한다. 누워서 다시금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열이 펄펄 끊었고 하늘나라로 간 동생처럼 아랫목에 착 붙어 있는 날 아니면, 어머니 등에 업혀 읍내 병원으로 한약방으로 줄기차게 다녔다. 차도가 없었던 모양이다. 가물가물 희미한 어느 저녁, 내가 마당 한가운데 누워있다. 둥당거리는 시끄러운 소리 주위로 빙 둘러선 사람들 틈에는 락이놈도 보이고 깨준이 놈도 보인다. 몸 위에 덥힌 한지가 철판마냥 무겁다. 물줄기가 품어지는 듯하고, 다시 불길이 내 몸을 태운다. 뜨겁다. 무섭다. 무서움보다 저놈의 시끄러운 징소리가 더 고통스럽다. 큰방 사진틀 속에 걸려있는 빛바랜 사진속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보이고 죽은 동생 얼굴도 보인다. 겁에 질렸다.
‘나는 쟈처럼 착하지도 않는데 말라꼬 델꼬 갈라 카는기요! 나는 집이 더 좋으께 고마 이손 놓소!’
고래고래 소리치며 울부짖는다.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까, 팔이 자유롭다. 주위가 조용하다. 할아버지 모습도, 할머니 모습도, 동생도 보이질 않는다. 눈이 부시다. 한낮인가... 꿈이었던가! 어른어른 엄마의 보랏빛 치마가 눈에 들어온다. 아! 엄마가 옆에서 지키고 있었구나. 엄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작은놈 보낸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놈까지 데려 갈라 카는지, 내사 저놈 잘못되믄 나도 따라 갈라니더, 아들 둘 가슴에 묻고 어째 살아 가라꼬요!”
배가 고프다. 일어나고 싶었으나 허기져 고개들 힘이 없다. 부스스 대화중간 끼어들었다.
“엄마... 밥도..”
“하이고, 이 뭔 소리로? 이기 무신 소리로! 이눔아야, 니 어데 갔다가 이제사 오노?”
“할배, 할매 만나서 집에 간다꼬 깡다구 부리고 왔다.”
“하이고, 그래 참말로 잘왔다, 참말로 잘왔어 이눔아야!”
할아버지 만나고 오던 그날 아버지는 동네 희철이 아버지랑 내 놀던 뒷산에 구덩이 파놓고 왔단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유년시절의 생각에 잠겼었다. 오랜만에 둘만의 나들이라 여유롭게 다녀도 될 법 하건만, 추월한 차들이 아까워 쉴 여유가 없으니 빨라서 좋긴하다. 한번씩 속도 늦추자는 잔소리를 근성근성 넘기는 집사람에게 계속하면 부부싸움 될 것 같아 초월한 듯 앉아 또 하나의 타임머신에 몸을 맡긴 체, 홀로 사색에 잠기는 여유를 만끽했다.
얼기설기 난 숲을 헤치고 올라가는 길이 옛날 고향집 찾아가는 마음이다. 집 떠났던 탕아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닮아있다. ‘엄마!’하고 부르면, 주걱 채 뛰어나와 반겨 주실 것 같고, 아버지의 진한 먹냄새가 풍겨 나올 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문득 고개 들고 보면, 보랏빛 치마에 잔잔한 미소 지으며, 총총 걸음으로 어서 오라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일 것 같다.
정말 그랬다. 그렇게도 보고 싶어 이렇게 온통 꽃 보랏빛 세상으로 기다리고 계셨다. 입에선 절로 한숨과 함께 탄성이 흘러나온다. 무덤가 잡풀 가운데. 작은 요정으로 변한 어머니가 가을 햇살을 받아, 하늘하늘 반기며 춤추고 있다. 지난번 땀 뻘뻘 흘려가며 오동나무 뽑아낸 자리부터 둥글게 반대편 까지, 꽃 보랏빛 요정이 가늘고 긴 대궁을 타리밀고 피어있다.
“ 아, 이 꽃들, 도라지 모싯대네!”
누구 목소리인가? 집사람인가? 어머닌가...
양지 찾아 햇살 머금고
애타는 님의 걸음
재촉하듯 기다리네.
고운 매무새 하늘하늘 춤을 추고
한 마리 배추 흰 나비 되어
향기 속에 잠들래라.
작은형 유품을 정리 하면서 발견한 자작시 노트에 적힌 미완성 詩를 언제고 내가 완성해 보리라는 생각을 그만 접었다.
첫댓글 미완성은 미완성으로 남는게 좋지 않은가?
박초시님의 글을 읽으면 갈증이 해소되는 듯 합니다. 슬픔도 아닌 기쁨도 아닌 뭔가가 가득히 차오는 것 같아요. 빛나는 글솜씨! 참 잘 읽고 갑니다.
초시님! 잘 게신가요?...가슴속에 싸~아 하게 아립니다....내 어머니의 이야기 같아서....동생놈의 몫까지 열심히 사시라는 말 밖에 드릴 말이 없군요..
언제나 님의 글을 읽으면 눈으론 웃음이 가슴으로 강물같은 눈물이... 뭐~~ 그렇답니다. 늘 행복하세요!
외할머니는 자식 열 둘을 그렇게 그렇게 땅에다도 묻고 가슴에다도 묻고 우리 친정 엄마 13번째로 낳아 개똥이라 이름 짓고 키웠죠. 그런 딸이 자식 다섯 키우며 부대낄적에 삼십리길을 걸어 이고 온 보따리속 단감을 외손주 다 내쫓고 엄마만 먹였답니다. 그땐 야속했던 외할머니지만 지금은 그 심정에 눈물이 납니다.
초시님은 다 좋은데 한가지 나쁜게 있어요.................머냐믄 .......모놀에 너무 가끔 오는거.
풀어도 ~ 풀어도 바닥나질 않은 초시님의 추억의 창고가 부럽네요..^^
초시님 안녕하시지요? 가슴이 ...................
초시님 고맙습니다...가슴 찡한글을 읽는다는거..메마른 마음이 촉촉해 진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지요. 그 아픔을 글로 표현하셔서.우리에게 감동을 주신 초시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