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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으로 찾아낸 '101명'의 환자들 중앙의대 유석희 명예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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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대 유석희(65) 명예교수는 지난 8월 정년 퇴임했다. 1972년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했으니, 의사로서 40여년의 삶을 살아왔다. 그 중 33년은 중앙의대에서 보냈다. 유 교수는 중앙대병원 근처에 연구실을 얻었다. "장사 안되는 약국 자리를 권리금 없이 얻었다"며 웃는 그는 "앞으로 돈을 벌기 위한 진료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까. 그는 지금까지 진료했던 환자 101명의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냈다. 필기가 하기 싫어 의대생 시절 '짝꿍'의 노트를 반으로 나눠 번갈아가며 공부를 했다던 유 교수. 101명의 환자 이야기로 구성된 '기억속의 환자들'의 절반 이상은 차트 기록이 아닌 유 교수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 냈다. -책 이름이 꽤 인상적이다. 어떻게 작명했나. 아휴. 말도마. 책 이름 정하는데 한참 걸렸어. 학교 다닐 때 워낙 노트 필기를 안했어. 해부학 실습을 하면서도 하나도 적지 않았지. 시험공부 할 때 필기를 빌려주던 여학생이 없었으면 졸업도 못했을걸. 책을 낼줄 알았으면 진작부터 자료를 모았을텐데, 솔직히 자료는 하나도 없어. 결국 내 기억에 의지해 글을 썼으니 '기억속의 환자들'이라는 이름이 나온거지. -필기를 싫어했는데, 책을 냈다. 계기가 있었나. 요즘은 스타일이 바뀌었지. 가능하면 글을 쓰려고 해. 처음에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병원에서 만들어준 블로그 때문이지. 블로그에 단편적으로 환자 시리즈를 올리고 있었어. 퇴임을 앞두고 뭘 할까 고민이 많았어. 어떤 사람은 심포지엄을 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전공서적을 내기도 해. 아, 수필집을 내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환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낸 사람들은 없었던 같아. 그래서 블로그 이야기를 취합해서 가감작업을 했지. 내가 1972년에 의사국가고시 합격을 하고 바로 서울대병원에서 인턴을 했어. 인턴 때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잖아. 그래서 기억에 의존해서 전반부 이야기를 썼고, 후반부는 차트를 찾아보면서 썼지. 그런데 신기하게 72년에 진료했던 환자들 이름이랑 차트번호가 생생히 기억나. 고생하면서 돌봤던 환자는 칼륨 수치까지 기억난다니깐.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발작성 야행성 혈색소뇨증을 겪었던 환자(기사 앞부분에 인용)야. 이 환자는 아주 친했어. 부인, 환자, 사위하고 아직까지 연락이 되고 있으니깐. 아, 책의 100번째 스토리 '공들여 얻은 미숙아' 환자도 생생하지. 퇴임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 유 교수는 지난해 여름 임신중독증으로 내원한 여성을 돌본 적이 있다. 젊은 부모에게 '이 아기는 어쩌면 당신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해야 하는 순간. 임부와 태아의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산모는 임신을 유지하기로 했으나 임신 27주째 제왕절개술로 518g 몸무게의 아이를 출산해야 했다. 태어난지 이틀만에 폐출혈로 응급수술을 박고 136일동안 신생아실에 있었던 아이. 며칠 전 아이의 엄마가 찾아와 '예쁘게 키워서 데리고 올게요'라고 말했을 땐 퇴임 전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책에 표현돼 있다. -돈을 벌기 위한 환자 진료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가 있다면. 요즘 진료하기 어려운 환경이야. 퇴임을 앞두고 언성 높은 환자들을 자주 경험했는데 너무 힘들었지. 그래서 이젠 연구실에서 리포트 쓰고, 글도 쓰고 싶어. 아, 요즘 방송통신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모르지 법학 공부하고 사시를 볼지도(웃음). 한 학기에 3일 출석하는데, 출석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업을 들어. 리포트 숙제가 있는데, 아직까지 못하고 있으니 오늘은 연구실 가서 써야겠어. |
첫댓글 저에 대한 기사가 나왔군요. 이거 낯 간지러워서 어디.
이 사람 사진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누구시더라?
개인적으로 환자 몇을 의뢰한 일이 있다, 하나는 임신 중 급성 신우신염으로 급히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환자의 거처가 마침 흑석동 인근이라 급히 이른 아침에 전화를 하니 쾌히 응답하여 입원가료를 해 주었고 또 한 번은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얼굴이 몰라보게 부어올라 급히 조치를 의뢰하였더니 그날로 용산병원에 입원이 되어 가료를 받고 나와 지금은 투석을 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두 경우 공히 나는 한 것은 없었으나 진단을 하였으므로 명의가 되었고 지금도 신세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의사로서의 보람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부디 건강하라.
결국 법학공부를 시작하셨네요... 축하합니다. 부디, 사시에도 패스하셔서, 새로운 성취를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사시는 절대로 보질 않기로 처와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저 의료법이나 의료관련 민 형법 공부를하여 의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게 저의 희망입니다.
의료 관련법을 연구하여 약하고 힘없으며 억울한 의사에게는 용기와 도움을 그리고 일부 못되고 사악한 의사에게는 법의 엄함을 일깨워 주시기 바랍니다.
맞아요..... 의사들 중에 장사꾼보다 지저분하게 하는, 못 된 사람들 많습니다. 그 자들은 혼내서 그런 일 못하게 해야하고, 환자만 보다가 선의의 사고가 생긴 의사들의 힘이 되어줄수 있는 법을 연구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