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농담 (외 2편)
김행숙
몸에서 30센티 40센티 50센티 떨어져 있는 통증을 어떡하죠? 그것이 두통이라면, 내게서 50센티 60센티 70센티 떨어져 있는 머리를 어떻게 데려오죠? 70센티 80센티…… 통증으로부터 달아나는 중인 머리라면, 80센티 90센티…… 사실은 그것이 통증에 다가가는 중인 머리라면, 우리가 모두 통증에 연결되어 있다면, 통증이 우리의 중앙관제시스템이고 시민들의 폐활량이고 침묵의 지평선이라면, 머리를 감싸 쥐거나 머리에 압박밴드를 묶거나 머리 꼭대기에서 찬물 세례를 퍼붓거나 관자놀이에 권총을 사과나무 묘목처럼 심거나
머리를 가지고취할 수 있는 이 모든 조치가 긴급하다면, 머리부터 찾고 볼 일입니다. 1미터 2미터…… 일단 시야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담장을 넘고 싶고 그때부터는 당장 강을 건너고 싶고 바다를 건너고 싶은 법이니까요. 두통에 내내 시달리는 머리로 자신의 길을 결정했다면, 멀리… 멀리…… 굴려버렸을 것입니다. 앞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뒤에 남겨지는 것들을 생각도 못 했을 것입니다. 남겨지는 것들로만 나를 구성했다면, 나는 나를 완전히 잊어버렸을까요? 잊어버릴 뻔했는데 기억나는 말이 있다면, 다시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둬야 하는데 나를 대신해서 기억해줄래요?
말을 하려고 하면, 말이 잘 안 됩니다. 말이 안 돼도 말을 하려고 애쓰면, 사람들은 걱정스레 묻습니다. 어디가 아픕니까? 그것이 복통이라면, 토하세요. 토하고 싶다면, 토하고 싶은 것들은 무엇입니까? 토할 것 같다면, 토할 것 같은 것들은 무엇입니까? 무슨 냄새를 맡았습니까? 대체 무엇을 보았습니까?
질문하고 질문하고 질문하는 자는 대관절 누굽니까? 처음엔 사회복지사처럼 머리를 숙여 내 상처를 들여다보았다면, 머리를 들었을 때 나타난 그 형사는 상처에서 죄를 건져올린 것 같습니다. 그가 내 약점을 잡은 것 같다면, 나는 나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죄를 고백하려고 하면, 먼저 어떤 죄를 고백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아프다고 하면, 마음을 보여달라고 할 것 같고, 내 마음이 어딨는지 내가 모른다고 하면, 그가 대신 찾아서 말해주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그가 친절하게 말해도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말만 자꾸 생각나서 침묵했습니다. 침묵이 길어지면, 긴 침묵은 기다리는 자의 것이었다가 시간이 무심하게 흘러 죽은 자의 것으로 석양 밑에 깔립니다. 친절한 그가 대신하여 이야길 시작하면, 나는 죽어서 어느 날의 내 목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밤에
밤에 날카로운 것이 없다면 빛은 어디서 생길까. 날카로운 것이 있어서 밤에 몸이 어두워지면 몇 개의 못이 반짝거린다. 나무 의자처럼 나는 못이 필요했다. 나는 밤에 내리는 눈처럼 앉아서, 앉아서 기다렸다.
나는 나를, 나는 나를, 나는 나를, 또 덮었다. 어둠이 깊어…… 진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많이 가진 것이 밤이다. 밤에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은 밤의 우물, 밤의 끈적이는 캐러멜, 밤의 진실. 밤에 나는 네가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낮에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은 낮의 스피커, 낮의 트럭, 낮의 불가능성, 낮의 진실. 낮에 나는 네가 떠났다고 결론 내렸다.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옷은 호주머니가 없고, 계절이 없고, 낮과 밤이 없겠지…… 그렇게 많은 것이 없다면 밤과 비슷할 것이다. 밤에 우리는 서로 닮는다. 밤에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은 내가 보이지 않는 것같이, 밤하늘은 밤바다같이,
존재의 집
그런 입 모양은 아직은 침묵하지 않은 침묵을
침묵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입구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기다리고, 끊어질 것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을 뜻한다
그 사람이 얼음의 집에 들어와서 바닥을 쓸면 빗자루에 묻는 물기 같고
원래 그것은 물의 집이었으나 살얼음이 이끼처럼 끼기 시작하고
물결이 사라지듯이 말수가 줄어든 사람이
아직은 침묵하지 않은 침묵을
침묵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를
그런 입 모양은
표시했다
식사 시간에 그런 입 모양이 나타났을 때 숟가락을 떨어뜨렸고, 그 사람은 숟가락을 떨어뜨린 줄도 몰랐는데
그 숟가락은 무엇이든 조금씩 조금씩 덜어내기에 좋은 모양으로 패어 있고
구부러져 있다
숟가락의 크기를 키우면 삽이 되고 삽은 흙을 파기에 좋다
물, 불, 공기, 흙 중에서 흙에 가까워지는 시간에
이를테면 가을이 흙빛이고 노을이 흙빛이고 얼굴이 흙빛일 때
그런 입 모양은 아직은 입을 떠나지 않은 입을
아직은 입으로 말하지 않은 말을
침묵의 귀퉁이를
아직까지도 울지 않은 어느 집 아기의 울음을
〈2015년 제1회 전봉건문학상 수상작〉
_심사위원 : 남진우, 홍일표, 권혁웅, 조재룡
—수상 시집『에코의 초상』(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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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 1970년 서울 출생. 1999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사춘기』『이별의 능력』『타인의 의미』『에코의 초상』. 현재 강남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현대시학》2015년 10월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