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삶
질병은 어떠한 종류이든 개인의 삶이든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삶이든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펜데믹과 같은 세계적인 유행병은 사회적 국가적 대단한 혼란과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다주고 인간의 삶 자체를 망가뜨린다.
지금은 코로나19의 변질된 바이러스 펜데믹으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펜데믹과 역사적으로 투쟁해 왔지만 의학이 눈부시게 진보한 오늘날에도 개개인이 면력을 갖지 않는다면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중세에 있었던 페스트과 같은 전염성이 강한 질병에 의해서도 많은 인명이 희생 되었다. 까뮈의 소설 페스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면서 펜데믹에서 벗어날 미래의 진정한 희망을 고려해 보고 싶다.
'페스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알베르 카뮈가 1947년에 쓴 작품으로서 전염병이 주는 극도의 공포와 전염병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수작이다.
'페스트'의 줄거리는 사월의 어느 봄날, 프랑스령 알제리의 도시 오랑에서 '페스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랑 시의 의사인 리유가 병원 계단을 내려오다가 죽은 쥐 한 마리를 본다. 다음 날 병원 수위로부터 세 마리의 쥐가 죽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리유는 피를 토하고 죽은 쥐가 마음에 걸려 도시의 빈민가로 가 보는데, 이미 수많은 쥐들이 피를 토하고 죽어 쓰레기 더미에 쌓여 있는 것이었다.
오랑 도시 전체에서 쥐들이 죽어가기 시작한다. 엄청나게 많은 쥐들이 붉은 피를 뿜으며 길거리와 집안과 도시 곳곳에서 죽어간다.
페스트라는 무서운 질병이 발생했는데도 극소수의 의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것이 어떤 질병인지 알지 못한다.
당국에서는 사건을 은폐하다가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엄중한 조치를 취하여 마침내 오랑 시는 완전히 봉쇄되어 고립된다.
어느 날 쥐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자 이제는 사람들이 페스트로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페스트에 감염된 사람의 숫자가 매주 수백 명씩 불어난다. 예상도 못했던 도시는 공포에 빠져든다.
의사인 리유는, 오랑시를 멀리 벗어나서 병으로 요양 중인 아내 생각이 간절하다. 기자인 랑베르는 파리에 살고 있는 연인이 보고 싶다. 오랑 시민이 아니므로 죽어갈 이유가 없다며 도시에서의 탈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의사 리유는 아내 걱정이 커가지만, 너무나 처참한 오랑 시에 대한 연민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으로 오랑에서 용기 있게 페스트와 싸운다.
리유에게 선의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다. 오랑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보건대를 조직하여 리유를 도우려고 오는 '타루'가 있는데, 그는 잠시 오랑에 왔다가 봉쇄된 도시에 갇힌 청년이다.
기자인 랑베르는 오랑에서 벗어나려 리유에게 자신이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발급해 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한다.
랑베르는 부정한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도중에 의사 리유 역시 아내와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는 탈출을 단념하고 보건대를 돕게 된다.
이 와중에 교회는 호황을 누린다.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가 신의 징벌이므로 모두들 회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도 결국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보건대에 동참하게 된다.
순진한 어린이가 고통스럽게 신음하다가 죽게 되자 파늘루 신부는 적잖이 당황한다. 얼마 후 파늘루 신부 역시 밝혀지지 않은 질병으로 쓰러져 삶을 마친다. 도시에는 오직 절망만이 감돌고 있다.
마침내 그 해 겨울, 도시에 찍찍하며 쥐들이 돌아온다. 징그럽던 쥐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페스트가 물러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다시는 쥐들이 피를 토하고 죽어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생기를 찾는다. 정말 오랜만에 오랑이 사람 사는 곳 같다. 페스트에 감염된 사람들이 회복되기도 한다. 환희가 도시에 가득 찬다.
하지만 보건대를 조직하여 최선을 다한 타루는 페스토로 고열에 시달리다가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다. 마침내 페스트는 완전히 물러가게 된다. 도시는 문이 열리고 격리는 해제된다.
의사 리유는 피로와 고통에 시달리는 가운데 투병하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만 그는 끝까지 의사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의사 리유는 '사람들 속에는 경멸할 것보다도 찬탄할 것이 더 많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페스트는 언제나 다시 올 수 있으므로 항상 경계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 소설의 내용을 통해 까뮈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랑에서 페스트를 극복하게 한 것은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연대와 페스트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 그리고 용기였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페스트로 죽어가는 사람들, 파늘루 신부처럼 신의 저주라고 회개를 강조하는 사람도 죽게 되는 것이 과연 신의 저주와 관련 있는 일인가?
까뮈는 실존주의 작가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전염병이든 그 어떠한 일이든 간에 미리 예정되거나 신에 의한 저주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어떤 사람이 그 장소에 그 시간에서 만나는 상황에 따라서 그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페스트라는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이 그 자리를 떠났다면 그들의 삶은 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고대의 솔로몬 왕도 “예기치 않은 때에 예기치 못한 일이 모두에게 닥”친다고 하였다. 이러한 합리적인 견해에 의하면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예견되거나 결정된 것이 아니다. 시기와 우연에 의해 재난도 닥칠 수 있으며 펜데믹 같은 상황에서는 전염되지 않으려면 간염자와의 접촉이나 방역 수칙에 충실히 따른다면 예방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운명이거나 신의 저주라는 사상은 올바른 사고의 영역이 아니다. 성경의 필자인 야고보는 동료들에게 “시련을 겪을 때에 아무도 ‘내가 하느님께 시험을 받고 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악한 일로 시험을 받으실 수도 없고, 아무도 악한 일로 시험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편지 하였다.
그러므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나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재난이 하느님 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종교적 견해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인류에게 더 큰 슈퍼박테리아 또는 슈퍼바이러스의 재난들에 대해 예견들을 내 놓고 있다. 그런 예견들은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연구소들에서 질병의 매개체들이 유출될 수 있는 위험성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질병 매개체의 유출될 위험성을 제로로 만들 수 없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인간의 삶을 망가뜨리고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펜데믹 재앙은 소설 페스트가 강조하듯이 언제든지 인간에게 다가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에는 희망은 있다. 사람을 창조한 분의 예언자였던 이사야는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고 예언하였다.
우리 모두가 병들지 않을 세상에 산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의사라는 직업이 없을 때의 행복한 미래를 생각해 보는 것은 현재의 우리의 삶에 매우 긍정적인 이유들을 주는 것이 아닌가?
땅에 사는 모든 거민이 병들지 않을 희망의 미래에 대해 개개인의 것이 되었으면 하는 이 필자의 바램이 펜데믹의 현재에 개개인에게 기쁨이 되었으면 한다. |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