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종북 좌파들이 새겨들어야할 이호철의 훈계
분단문학의 큰 별’ 소설가 이호철님이 84세를 일기로 통일 조국을 보지 못하고 한 많은 세상과 하직을 하였다. 18세에 혈혈단신으로 남쪽으로 내려와 온갖 풍상을 겪으며 일생을 살아온 그의 인생역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다. 아래 글은 이호철님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하여 보도한 언론의 기사들을 종합한 것이다.
※※※※※※※※※※※※※※※※※※※※※※※※※※※※※※※※
'인간 이호철'에 대한 생각은 각자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작가 이호철’에 대한 평가는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탈향(脫鄕)’이란 말을 유행시킨 주인공이다. 1955년 미군 부대 경비원이었던 그를 작가로 데뷔시킨 첫 소설 제목이다. 함경남도 원산 태생인 이호철은 6·25 때 열여덟 나이에 미군 LST에 실려 월남, 부두 노동과 국수 공장 견습공을 하다 황순원의 눈에 띄었다. 탈향은 실향(失鄕)과 다르다. 탈향은 스스로 고향과 과거로부터 벗어나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고인은 유신헌법 개헌 반대 서명을 주도했다가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투옥되는 등 민주화 운동에도 앞장서기도 했다. 1970년대 이호철은 문인 시국 성명에 적극 나섰고 감옥에도 드나들었다. 그는 1987년 6·29 선언으로 민주화가 이뤄지자 ‘운동’의 현장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짐을 벗고 이제는 서재로 돌아가고 싶다”고 공언했다. 간섭과 연행과 투옥으로 이어지는 일상이 피로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사를 보는 그의 관점과도 관련 있지 않았을까.
그는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되자 문단의 반정부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가 1974년 '문인 간첩단 사건'으로 동료 문인 다섯명과 함께 구속됐다. 이씨를 비롯한 문인들이 일본에서 한글 잡지 '한양' 편집진을 만난 뒤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것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이씨는 열 달 동안 수감됐다가 재판 끝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씨는 2011년 법원의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만년에 이호철은 “북쪽 스탈린식 진짜배기 공산 독재 체제를 직접 겪어본 터라 박정희식 유신 체제는 내가 감당하기에 엿 먹기로 쉬웠다”고 회고했다. 다른 글에서는 “권력이 문화에 대해 두는 일정한 거리, 틈서리, 여유, 양식(良識)이야말로 남한 문화계가 북한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했다. “이런 차이가 남쪽의 오늘과 같은 활기를 담보해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고도 했다. 문단이나 문화계 내에는 이호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가 그제 여든넷을 일기로 눈감았다.
※※※※※※※※※※※※※※※※※※※※※※※※※※※※※※※※
“'인간 이호철'에 대한 생각은 각자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작가 이호철’에 대한 평가는 다름이 없을 것이다”는 말은 사상과 이념적인 면에서 인간 이호철에 대한 생각이 각자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은 일반인들은 그가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하는 보통사람으로 생각을 하지만 진보를 가장한 저절 좌파와 종북 좌파들은 그를 변절자로 취급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생각이다. 그러나 작가 이호철에 대한 생각은 사상과 이념의 구분 없이 같다는 의미인데 글쎄 진보 종북 좌파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필자는 동의하기가 곤란하다.
“그는 1987년 6·29 선언으로 민주화가 이뤄지자 ‘운동’의 현장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짐을 벗고 이제는 서재로 돌아가고 싶다’고 공언했다.”는 말은 목적이 달성 되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는 의미로 생각이 된다. 운동권에서 활동을 할 때는 소위 유신독재 타도가 목적이었는데 이제는 민주화가 되었으니 운동권으로서 할 일을 다 했으므로 자신이 순수한 문학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바로 ‘짐을 벗고 이제는 서재로 돌아가고 싶다’는 결기가 아니었겠는가.
꼬집어 말한다면 민주화의 목적이 달성되었으므로 운동권들도 이제는 변화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인정하고 만족하며 변화된 자신의 길로 가지 않고 민주화된 지금도 운동권 출신들은 독재니 유신체제니 하며 계속 70,80년대에 머무는 어리석고 추한 운동권의 짓거리를 하지 말라는 강력한 지적이라 생각이 된다.
“권력이 문화에 대해 두는 일정한 거리, 틈서리, 여유, 양식(良識)이야말로 남한 문화계가 북한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라는 이씨의 말은 황석영, 윤이상 같은 종북 문화예술인과 문화계에 깊이 침투한 저질 종북 좌파들에게 남한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북한에는 그마저 없는 암흑 세상인데도 북한을 편들며 남한을 부정하는 짓거리를 하느냐며 강하게 비난하는 말로 들리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호철의 “이런 차이가 남쪽의 오늘과 같은 활기를 담보해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말에서 오늘과 같은 활기를 담보 했다는 말은 북한 개인이 무시되는 공산 독재 사회인데 남한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 자유 사회라는 것이 남한과 북한의 엄격한 차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북쪽 스탈린식 진짜배기 공산 독재 체제를 (내가)직접 겪어본 터라 박정희식 유신 체제는 내가 감당하기에 엿 먹기로 쉬웠다”는 이씨의 말은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권리를 만끽하고 사는 진보를 가장한 저질 좌파와 종북 분자들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시의적절한 것이다. 북한체제와 남한체제를 고루 경험한 이씨가 소위 운동권이 주장하는 ‘유신 독재체제’는 북한의 공산 독재체제‘에 비하면 독재 축에 끼지도 못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니 지금 남한에 독버섯처럼 뿌리내리고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자유와 권리를 만끽하면서도 체제를 부정하고 독재 운운하며 북한에 동조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며 국민을 편 가르기로 갈등을 초래하는 진보 종북 좌파들은 정상적인 정신을 소유한 인간들이 아니라는 점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1987년 6·29 선언으로 대한민국은 민주화가 이루어졌는데도 운동권과 진보 종북 좌파들은 북한의 김가 3대 세습 공산 독재체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나 책임을 추궁하지 않으면서 현 박근혜 정권을 유신 독재의 연장이라고 우기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무지하기 짝이 없는 자가당착이라고 엄하게 훈계하고 꾸짖는 것이다.
그리고 “문단이나 문화계 내에는 이호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표현 역시 휴지통에 버려야할 종북 반미의 고루한 사상과 이념에 매몰되어 아직도 남한을 비방하고 독재국가로 취급하며 북한에 동조하는 종북 좌파 문인과 문화인들이 부지기수로 널브러져 있다는 것이다.
문단이나 문화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영역에 종북 이념과 사상을 가진 인간들이 요소요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진보 종북 좌파 대통령인 김대중과 노무현은 통치 10년 동안에 대한민국의 각계각층과 요로요로에 종북좌 파들을 심어놓았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 일파들이 심은 이러한 저질 인간들은 이제 그 뿌리가 땅속까지 퍼져 고 이호철님이 “북쪽 스탈린식 진짜배기 공산 독재 체제를 (내가)직접 겪어본 터라 박정희식 유신 체제는 내가 감당하기에 엿 먹기로 쉬웠다”고 하는 말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것은 그를 변절자로 매도하기 때문이다. 현실인식이 부족한 이러한 인간들을 말끔히 일소하지 않는 한 국론의 통합과 국민의 갈등해소는 백년하청이다.
http://forum.chosun.com/bbs.message.view.screen?bbs_id=1010&message_id=1261639¤t_sequence=zzzzz~&start_sequence=zzzzz~&start_page=1¤t_page=1&direction=1&list_ui_type=0&search_field=1&search_word=&search_limit=all&sort_field=0&classified_value=&view_count_id=fal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