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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아야 소피아 자미(Aya Sofia Camii) 성당
아담이 태어난 이 후 지금까지 볼 수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전무후무한 성전을 지으리라
오늘날까지 남아있게 된 이 성당은
약 1000년 동안 콘스탄티노풀의 대 성당으로 사용되었고
비잔틴제국의 상징이 되었으며 비잔틴 제국의 최고 걸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오스만 제국의 정복으로
약 5세기 동안 아야 소피아 자미(Aya Sofia Camii)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이스탄불 왕실의 모스크 중
첫 번째로 꼽혔으며, 터키 공화국 초기까지 모스크로 사용되었으나 1935년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성소피아 (S.Sophia)성당.콘스탄티노블
Santa Sophia-신의 지혜라는 뜻
3대 건축양식을 대표하는건축물(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로마의 판테온신전)
초기 비잔틴 최대의 돔 바실리카이며 고대 건축의 최후의 장식으로 대걸작이다.
평면은 Greek Cross평면이다.
후에 외부에 Minaret이 추가 건축되었다( 사라센 건축의 영향을 받었다.)
주두에 부주두를 겹쳐 얹었다.
황제가 직접 측량에 나서기도 하면서
매일 100명의 기술자와 만 명의 인부가 동원되어 5년(537년 12월 27일)만에 완성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약 천년간 세상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준공식에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너무나 감격하여 "오,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보다 더 훌륭한 성진을 지었소! "하고 외쳤다 한다.
그 후 잦은 지진으로 계속 위협을 받고 손상되기도 했으나 아직까지도 세계에서 4번째로 큰 건물이다.
1204년 엔리쿠스 단달로(Henricus dandalo)가 이끈 제4차 십자군 원정대의 콘스탄티노풀의 점령으로
소피아 성당은 철저히 유린되었으며 이제는 더 이상 회복할 가능성이 없게 되었다.
사실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 점령 당했을 때 만해도 양초나 기름을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이 성당은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미술사에도 큰 몫을 하는데
모스크로 사용하면서 우상을 금지하는 이슬람 교리 때문에 모든 인물상이나 그림은 제거되고
따라서 벽과 아취에 있던 모자이크들도 두꺼운 회칠 속으로 그 아름다운 자태를 감추게 된다.
1847년 스위스의 건축가 풋사티(Fossaati)가
건물을 보수하는 중 감추어져 있는 모자이크들을 발견했으나 그것은 다시 석회석으로 덮어져야만 했다.
이 성당은 내랑, 외랑 합친 총 면적은 7,570평방미터(약 2,290평),
본당의 커다란 도움은 지상에서의 높이가 56m, 직경은 동서가 31m, 남북이 32m로서
중앙의 도움은 4개의 작은 아취가 바쳐주고, 이 아취들은 다시 4개의 튼튼한 기둥이 바치고 있다.
40개의 창문은 중앙 도움을 띠 모양으로 두르고 있어 실내의 조명을 밝게 해주는 동시에 도움 자체의 무게도 경감시켜준다.
미나레트다(minaret)
무아딘(mu'addin)이라는 기도 시보원이 하루에 5번씩 이 탑에 올라가 외침으로써 신자들에게 기도하도록 했다.
이러한 탑은 항상 이슬람 사원과 붙어 있으며 발코니나 외부에 노출된 회랑을 1개 이상 갖추고 있다.
예언자 마호메트가 살던 때에는 이슬람 사원 근처에서
가장 높은 건물 지붕에 올라가 기도시간을 알렸는데, 초기에는 그리스 시대의 망루와 그리스도교 교회의 탑을 사용했다.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미나레트는 튀니지 알카이라완에 있는 것으로
724~727년에 지어졌으며 커다란 4각형 모양이다(→ 알카이라완 모스크).
미나레트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이라크 사마라에 있는 것(848~852)처럼 나선형으로 비탈진 통로가 있는
육중한 것에서부터 하늘을 찌를 듯이 높고 연필처럼 가는 것까지 있다.
이슬람 사원과 연결된 바닥부분은 정4각형이다.
그 위로 원형·6각형·8각형 구조물을 잇달아 올렸고 층마다 발코니가 있다.
꼭대기는 볼록한 공 모양의 돔이나 철로 된 원뿔 지붕을 씌우거나 탁트인 정자처럼 만들었다.
미나레트 상층부에는 많은 장식이 새겨져 있으며, 계단을 안으로 낸 것도 있고 밖으로 낸 것도 있다.
하나의 사원에 있는 미나레트의 수는 1~6개이다.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는 이러한 탑은 한 지역에 이슬람교의 특징을 심기 위한 '이슬람교의 표지물'로 세워졌다.
성소피아 지하의 비밀통로 발견
4년 전부터 시작 된 ITU (Istanbul Teknik Univercity)와 터키와 스위스 고고학 박물관 팀들의
노력에 의해서 지하 2.5m 위치에 있는 통로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성소피아 밑을 직접 팔수가 없어서 과거 아크로폴리스로 분류된 언덕 밑부터 탐사.
먼저 톱카프궁전 밑에서 이레네 성당 근처로 들어가기 시작.
전문가들은 서기 4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통로들과 당시의 사람들이 1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의 물 저장고를 찾아냈다.
입구가 넓이 5m, 지하 20m 크기의
이 물 저장고에 훗날 오스만제국의 미말시난이 40개의 꼭지를 만들어 물을 사용한 모습이 남아 있었다.
또한 수로가 연결이 되어 이 물길을 따라가 보니 성소피아 밑으로 흐르고 있었고,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넓이 100cm 정도의 비밀통로도 발견.
역시 이 통로의 길도 성소피아 밑으로 나 있었다.
또한 소피아 정원에서 무려 9개나 되는 우물을 발견.
사람들이 퍼서 쓴 흔적이 없는데 아직도 맑은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봐서 좀 더 탐문이 필요.
흘러온 이야기들에 의하면 "성당 밑에 사제들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 졌는데 이번 발굴에서 전혀 무덤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4세기에 지어진후로 전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벽도 발견.
박물관 팀이 이제 더 깊숙이 땅 속의 미로들을 찾아 옛날의 모습들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중앙 도움 천정에 아랍어로 된 코란 귀절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성당이 모스크로 개조된 후 19세기경에 쓰여진 것이다.
중앙 본당의 양쪽 편에 있는 녹색 기둥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에페스의 아르테미스(달의여신) 신전에서
4귀퉁이에 2개씩 서 있는 8개의 붉은 기둥은 바알백(Baalbek)의 헬리오스(Helios-태양신)신전에서 가져왔다.
이 기둥들의 꼭대기 머리는 코린트 양식으로 화려하게 장식 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그의 아내 데오도라 칭호인 "바실레우스"와 "아우구스타"의 인장이
각각 모노그램 되어 있고, 마치 강한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아칸서스 나뭇잎이 코린트 양식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중앙 바닥의 오른쪽으로 녹색, 붉은색의 대리석 석판들이 모자이크 되어 있는데,
소위 오푸스 알렉산드리움(Opus Alexandrium)라고 불리는
이 중앙 원은 당시 왕이 앉아서 예베를 드린 곳으로
왕이 앉은 의자에서 발을 내린 부분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성소피아 성당은 대단한 성전이었다.
이곳에서 비잔틴 황제들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훗날 오스만 제국 시 추가로 설치된 시설물에 왼쪽의 격자 창으로 되어
이는 술탄의 예배실, 중앙 정면에 움푹 들어가게 만든 미흐랍은
이슬람교리에 따라 사우디의 메카를 향해 예배 드릴 수 있도록 표시해 놓은 것 이다.
본당의 8개 기둥 위에 커다란 나무 원판에 초록색 바탕의 금색글씨로 하나님(알라), 예언자(모하메드),
그리고 이슬람 초기의 칼리프(후계자)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
2층은 원래 초기에는 여성들만의 예배 장소였는데,
나중에는 황제의 가족들을 위한 예배장소 및 비잔틴 고위 성직자들의 회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11세기 이후 만들어진 모자이크들을 볼 수 있다.
펜덴티브 돔 (Pendentive Dome)
비잔틴 건축의 구조법의 특색있는 펜덴티브 돔의 사용이다.
비잔틴 건축에서는 돔 아치. 궁륭 등이 사용되었으므로
그리스와 로마 건축에서 사용되었덤 앰터 블래처는 불필요하게 되었다.
비잔틴 건축에서의 돔은 4각 평면 위에
돔을 올리는것을 팬덴티브라는 3각형곡면부를 도입하여 비잔틴 시대에 왕성을 보았다.
정방형의 평면 위에 돔을 올리려면
우선 정방향과 외 접하는 반구에서 각면에 수직으로 자르면 4점에서 지지 되는 반구의 일부가 남게 된다.
여기에 다시 수평으로 자르면 3각형이 남게 되는데 이것을 펜덴티브(Pendentive:현수 3각형)라 한다.
이 위에 다시 돔을 얹는다.
이는 정방향 평면의 모서리에다 거대한 피어를 세우고 가설한 거대한 아치위에 돔을 얹고
이경우에 생기는 4모서리의ㅣ 팬덴티브를 나중에 메꾸는 건축공법이었다.
펜덴티브:아치와 돔 사이에 생기는 3각형 구조. 돔 하부 횡압력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
페르시아 지방의 스퀸치 기법을 발전시켜 개발해냄
순서 : ①정방형 평면의 모서리에 4개의 기둥을 세운다.
②기둥을 연결하는 4개의 대청아치를 만든다.
③아치 위에 돔을 가설한 후 돔과 아치 사이의 삼각형 포물면을 채운다.
돔을 중앙에 사용 : 전체 평면이 대개 정방형 또는 정십자형, 전후좌우가 거의 대칭적인 평면
아케이드 : 열주에 의해 지탱되는 아치군과 그것이 조성하는 개방된 통로
스퀸치 : 아치의 건축과정을 응용하여 만들어낸 구조.
성소피아의 세라핌 160년 만에 황금마스크를 벗다.
2009년 7월24일 금요일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 중에 하나인 성 소피아 천정에서 드디어 160년 동안 얼굴을 덮었던
황금색의 덮개를 떼어내고
그 속에 있던 세라핌 천사의 얼굴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게 되었다.
**Serafim은 가장 높은 천사 중 날개를 여섯 개 단 치품(스랍)천사로서 이사야 6장 2절 **
오스만 튀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1453년)한 뒤 소피아는 성당의 기능을 잃고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점령 3일 만에 정복자는 천정에 휘장을 급한 대로 치고 이곳에서 이슬람식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계속 회칠로 기독교식의 모자이크들을 가리게 되었다.
인물상들은 다 가려지고 남은 문양들은 군데군데 오픈되어 있었다.
훗날 Sultan Abdulmecid 는 스위스의 건축가
Gaspare Fossati 형제에게 이 성당을 복원시키면서 천정에 날개 가운데에 있는
천사의 얼굴이 회칠해진 것을 복원과정에서 보게 되었다.
이에 14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천사의 모자이크를 술탄 압둘메지드는 이것이 절대 손상되지 않게 잘 회 속에 가려지게 하라고 했다.
이에 금색으로 도색된 메탈로 그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워 드러나지 않게 한 것이다.
당시 이 모습을 사진에 찍어 남겨 놓았는데 이것은 스위스에 있다고 한다.
새로운 복원 팀들은 혹시 세라핌 얼굴에 손상된 부분이 있을까 조마조마 하면서 10일간의 작업 끝에
마스크를 벗겨내고 보니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160년 만에 세라핌천사가 햇빛을 보게 된 순간 복원 팀들은 감탄을 연발~
도서렛(Dosseret:부주두)
비잔틴 건축의 기둥은 주두가 2중으로 되어 있으며 상부는 부주두라 하여 아치를 지지하는 베이스 되었다.
부주두에 동양식의 주두와 서양식의 주두가 혼합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비잔틴을 동서 문화가 합쳐진 양식이라 한다.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AD 532년 2월 23일)는 전무후무한 성전을 짓기 위하여 당대에 유명한
트랄레스의 건축가 안데미우스 와 밀레투스의 기하학자 이시도루스를 임명하고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제공해 주었다.
소피아성당에서 또 하나의 보물고 발견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밀봉된 창고 안에서 1848년에 사용되고 넣어 둔 많은 물건들이 발견되었다.
3개월 전에 새로 부임해 온 박물관장 Jale Dedeoglu (여)는 현재 관리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 뒤쪽 벽이
너무 길고 큰 것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냥 두꺼운 벽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곳이다.
이 새 박물관장은 관리인실의 뒷벽을 면밀히 관찰한 후에 뜯어보니 밀봉된 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속에서 먼지를 완전히 뒤집어 쓴 많은 물건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1848년 오스만 투르크 황제 Abdull Meciti (돌마바체 궁전을 지은)는 지은 지 1300년이 된
소피아 (당시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를 수리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압둘 메짓트 황제가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했을 때 그 건물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보고 누가 건축했는지를 묻고
당시 당대에 유명한 건축 기술자 이태리 인 Gaspare Fossati 의 작품임을 알고 그를 불러 보수를 부탁했던 것이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보수공사를 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정확한 설계도가 없어 어디를 어떻게 보수했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 방문을 열자 수리 당시 사용했던 10톤이나 되는 철재 받침대와 각종 보수에 필요한 물건들, 보수 설계도,
비잔틴 당시에 만들어진 황금 모자이크 등 수많은 보물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박물관 측은 이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이곳에서 나온 물건들을 정리하여 앞으로 관광객에게 공개할 방침이라 한다.
얼마 전에도 소피아 성당의 지하의 한 창고에서 수많은 카펫이 쏟아져 나온 일이 있었다.
이곳은 창고 문에 열쇄가 걸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열어 볼 생각을 안 하고 있다가
한 신문 기자의 의혹에 이 문이 열렸던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이 창고도
1968년 한 신문 기사에 의문을 제공했으나 박물관계자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첫댓글 사진과 글 잘 봤습니다!^^
언제봐도 참대단합니다
성당내부가 많이 달라보이네요
요즘엔
예전에 한달 정도 뒤지고 다닌 터키였는데 지금 글과 사진을 보니까 저는 다른 나라를 다녀온 것 같아서....ㅋㅋ.
자세한 설명과 사진 감사히 보고 갑니다.멋져요~
사진과 내용을 잘 보고요 터키 여행시에 많은 도움이 되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꼼꼼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여행할 때 참고하겠슴다. ㅎㅎ
이스탄불이 터키에서 인기가 좋은 도시고 여행하기에도 좋은곳입니다 이스탄불+프라하를 같이 가야 여행의 맛을 알수있죠 이스탄불 프라하를 아직 안가봤지만 가게되면 묶어서 갈것입니다
글과 사진을 보며 큰 감동을~ 내년 이스탄불 여행이 잡혀있는데 그때 다시한번 읽고 가야겠습니다. 멋진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사진과 글 참 좋네요. 저도 지난 해 다녀왔지만 다시 보니 기억이 새롭고 좋습니다. 상세한 설명글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