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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2 떳떳한 그리스도인 시 99; 출 34:29-35; 고후 3:12-4:2; 눅 9:28-36
조금만 건드려도 곧 폭발할 것 같은 몹시 위험한 상태를 일촉즉발이라고 합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인용을 앞둔 시점에서의 사회적 분위기를 한마디로 일촉즉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찬성과 반대가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 질지 긴장된 순간입니다. 극단적 상황에서는 무장 폭도로 행동에 나서기까지 합니다. 계엄이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면 끔찍한 대한민국을 목도했을 것이라는 내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야구방망이, 수백미터 지하벙커, 심해 앞바다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만화 속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었을 가능성에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명백성에도 불구하고 반성보다는 오히려 실패를 아쉬워하는 모습에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존경받는 대형교회의 극우화 혹은 중립적 태도는 교회가 얼마나 그릇된 길을 가고 있는지 보여 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여 년 전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던 목사님이 있습니다. 대형교회에 대한 실망에서 일어나는 반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최근 은퇴한 지 한참이나 지난 분이 재소환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목소리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조용히 찌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셀 수 없이 수많은 십자가가 제 역할을 한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 같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자기 뜻, 자기 교회를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합니다. 매주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하고 전도하고 기도한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문제가 생겨서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주님께 기도한다면 그는 무속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깜짝 놀랄 일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 신앙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종교형식을 신앙이라 묘사합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을 무속으로, 이렇게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유명한 목사님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처럼 이름 없는 사람이 할 수는 있지만, 유명인의 입에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때문에 대형교회가 병드는 것입니다. 극우화, 중립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 시작에 제자들의 한마디 질문에 녹아 있습니다. “주님 왜 우리는 귀신을 내쫓을 수 없습니까?” 지금까지 저도 여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왜 그런 능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제자라고 한다면 자부심이 엄청날 것입니다. 스승의 유명세 만큼이나 어깨에 힘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귀신을 내쫓거나 병자를 고치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본질, 더 확실한 하나님의 뜻이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짧은 시간이지만 제자로 택함 받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이제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자리, 새로운 권력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큰 자가 될 것인지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주님께서 새로운 세상의 왕이 되는 그 순간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주님께 잘 보였으니, 주님 말을 잘 따랐으니, 주님의 오른팔이 되었으니,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라는 기대감, 제자들의 관심은 오롯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호시탐탐 더 큰 자리, 더 높은 자리를 꿈꾸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를 위한 포장이 아닌지 돌아봅니다.
벌써 고등학생이 된 찬이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릅니다. 젖을 떼고 제법 자란 어느 날, 혼자 양말을 신겠다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이리저리 발을 갖다 댑니다. 순간 송아지 같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았습니다. 어찌나 귀엽던지 한참이나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않고 계속되는 노력에 한마디 일러 줍니다. “찬아 머리를 써봐” 순간 아빠의 말에 영감을 얻은 듯, 머리를 양말에 끼워 넣으려 합니다. 이런 어린아이가 어찌 귀엽지 않겠습니까? 만약 아이에게 무엇인가 특별함을 바란다면 양말 하나 제대로 신지 못한다며 두들겨 팰 수 있을까요? 아이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여하고 1등만을 고집하고, 내몰아 가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에 도태될까 봐 아이의 길을, 아이의 생각보다, 아이의 장점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쏟아붓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런 아이를 꼭 안아주며 당신의 참뜻을전합니다. 제자들은 알아들었을까요?
3.1 운동, 혹자는 혁명이라고 합니다. 일제의 강압에 맞대결하는 혁명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제, 그럼에도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순국선열들을 봅니다. 기미독립선언문을 읽습니다만, 당당함은 우월 의식이 아닙니다. 인간의 고유성입니다. 세계만방의 인간에 대한 고유성입니다. 그에 따라 누구나 존엄함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당함입니다. 여기에 사소한 권력욕은 없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힘과 무력으로 통치하는 식민지배 일제에 분연히 맞선 선열들을 봅니다. 그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남은 자, 오늘을 산자의 몫이라 생각됩니다. 모두가 말렸습니다. 특히 가족들의 통곡과 울부짖음을 생각하면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요? 그분들의 독립혁명에 진심으로 고개 숙입니다. 그 뜻을 헤아리고 따라 살기 위해 마음을 모읍니다. 당당한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이러한 모습일 것입니다. 세상 속에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기 뜻이 아닙니다. 큰 자가 되기 위해 호시탐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뛰어넘어야 할 것입니다. 참 하나님의 뜻을 곱씹는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침묵!
250302 시 99; 출 34:29-35; 고후 3:12-4:2; 눅 9:28-36
시 99
표준새번역
제 99 편
1 주께서 다스리시니, 뭇 백성이 떠는구나. 주께서 그룹 위에 앉으시니, 땅이 흔들리는구나.
2 시온에 계시는 주님은 위대하시다. 만백성 위에 우뚝 솟은 분이시다.
3 만백성은 그 크고 두려운 주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4 1)주님의 능력은 정의를 사랑하심에 있습니다. 주께서 공평의 기초를 놓으시고, 야곱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셨습니다.
5 우리의 주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의 발 등상 아래 엎드려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6 그의 제사장 가운데는 모세와 아론이 있으며,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 가운데는 사무엘이 있으니,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으면, 그분은 응답하여 주셨다.
7 주님께서 구름기둥 속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이 그분에게서 받은 경고와 율례를 모두 지켰다.
8 주 우리 하나님, 주님께서 2)그들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한 대로 갚기는 하셨지만, 주님은 또한, 그들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9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을 경배하여라. 주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공동번역
제 99 편
1 야훼께서 왕위에 오르시니 뭇 민족이 떠는구나. 거룹들 위에 올라 앉으시니 온 땅이 흔들리는구나.
2 야훼는 시온에서 위대하시고 만백성 위에 우뚝 솟으신 분,
3 만백성이 그의 높고 두려운 이름을 찬양하리니, 그분은 거룩하시다.
4 능력의 왕이여, 당신께서는 정의를 사랑하시고 공의와 법을 세우시어 야곱의 가문에 바른 기틀을 잡으셨사옵니다.
5 야훼 우리 하느님을 기리어라. 그분의 발판 아래 엎드려라. 그분은 거룩하시다.
6 모세와 아론이 그분의 사제들, 사무엘이 그의 이름 부르는 한 사람이니 그들이 야훼께 부르짖으면 그분은 응답하신다.
7 구름기둥 안에서 그들과 말씀하시매 일러 주신 계명과 법을 그들은 모두 지켰다.
8 야훼, 우리 하느님,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해 주셨사옵니다. 당신께서는 잘못을 벌하시면서도 그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셨사옵니다.
9 야훼 우리 하느님을 기리어라. 그 거룩한 산 아래 엎드려라. 야훼, 우리 하느님은 거룩하시다.
출 34:29-35
29 모세가 두 증거판을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왔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주와 함께 말씀을 나누었으므로 얼굴에서 그렇게 빛이 났으나, 모세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30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모세 얼굴의 살결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로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으나,
31 모세가 그들을 부르자, 아론과 회중의 지도자들이 모두 그에게로 가까이 갔다. 모세가 먼저 그들에게 말을 거니,
32 그 때에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그에게로 가까이 갔다. 모세는, 주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하였다.
33 모세는, 그들에게 하던 말을 다 마치자, 자기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34 그러나 모세는, 주 앞으로 들어가서 주와 함께 말할 때에는 수건을 벗고, 나올 때까지는 쓰지 않았다. 나와서, 주께서 명하신 것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 때에는,
35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게 되므로, 모세는, 주와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까지는, 다시 자기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29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내려 왔다. 산에서 내려 올 때 모세의 손에는 증거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그런데 모세는 야훼와 대화하는 동안에 자기 얼굴의 살결이 빛나게 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30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쳐다보니 그의 얼굴 살결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으므로 모두들 두려워하여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
31 모세는 아론과 회중의 모든 지도자들을 불렀다. 그들이 자기 앞에 나아오자 모세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32 그 뒤에야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나아왔다. 모세는 그들에게 야훼께서 시나이산에서 주신 계명을 모두 전하여 주었다.
33 모세는 할 말을 다 하고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34 모세는 야훼와 대화하기 위하여 그의 앞으로 나아갈 때 수건을 벗고는 나올 때까지 쓰지 않았다. 모세는 하느님께 받은 명령을 나오는 길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였다.
35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쳐다보면 그 얼굴 살결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야훼와 대화하기 위하여 들어 갈 때까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있어야 했다.
고후 3:12-4:2
12 우리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주 대담하게 처신합니다.
13 우리는 모세가, 자기 얼굴의 광채가 사라져 가는 것을 이스라엘 자손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 얼굴에 너울을 썼던 것과 같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14 사실 그들의 생각은 완고해져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들은 옛 언약의 책을 읽을 때에, 그들의 마음에서 바로 그 너울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너울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15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들의 마음에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사람이 주께로 돌이키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 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1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서 이 직분을 맡았으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2 부끄러워서 드러내지 못할 일들을 우리는 배격하였습니다. 우리는 간교하게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밝히 드러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의 양심에다가 우리 스스로를 떳떳하게 내세웁니다.
12 우리는 이런 희망이 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일할 수가 있읍니다.
13 우리는 모세처럼 2)자기 얼굴에서 광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14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너울에 가리워져서 우둔해지고 말았읍니다. 그들은 옛 계약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 너울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비로소 벗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15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너울로 가리워져 있읍니다.
16 이 너울은 3)모세의 경우처럼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 갈 때에 비로소 벗겨집니다.
17 주님은 곧 성령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읍니다.
18 우리는 모두 얼굴의 너울을 벗어 버리고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비추어 줍니다. 동시에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아 가고 있읍니다. 이것이 성령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1 하느님의 자비를 힘입어 이 직분을 맡은 우리는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2 우리는 드러내지 못할 창피스러운 일들을 다 버렸으며 간교한 행동도 하지 않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비뚤어지게 전하지도 않았읍니다. 그리고 진리를 밝혀 드러내었으니 우리는 하느님 앞에나 모든 사람의 양심 앞에 우리 자신을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읍니다.
눅 9:28-36
28 예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따로 그에게 물어 보았다. "왜 우리는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까?"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런 부류는 5)기도로 내쫓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내쫓을 수 없다."
30 그들은 거기에서 나와서, 갈릴리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남들이 알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31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고,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 그가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뒤에 살아날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고, 예수께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갔다. 예수께서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34 제자들은 잠잠하였다.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것으로 서로 다투었던 것이다.
35 예수께서 앉으신 뒤에, 열두 제자를 불러 놓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36 그리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신 뒤에, 그를 껴안으시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8 그 뒤 예수께서 집으로 들어 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왜 저희는 악령을 쫓아 내지 못하였읍니까?" 하고 넌지시 물었다.
29 예수께서는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 낼 수 없다" 하고 대답하셨다.
30 예수의 일행이 그 곳을 떠나 갈릴래아 지방을 지나 가게 되었는데 예수께서는 이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31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따로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 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고 일러 주셨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가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집에 들어 가시자 제자들에게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35 예수께서는 자리에 앉아 열 두 제자를 곁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고 말씀하신 다음
36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앞에 세우시고 그를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미 독립 선언문(번역문)
우리 조선은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똑똑히 밝히며, 이로써 자손 만대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반 만 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 만 민중의 충성을 모아 이를 두루 펴 밝히며,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 박은 세계 개조의 큰 움직임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를 내세움이니, 이는 하늘의 분명한 명령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니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 있은 지 몇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려 고통을 겪은 지 이제 십 년이 지났는지라, 우리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무릇 얼마이며, 겨레의 존엄과 영예가 손상된 일이 무릇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백과 독창력으로써 세계 문화의 큰 물결에 이바지할 기회를 잃은 것이 무릇 얼마인가!
오호, 예로부터의 억울함을 떨쳐 펴려면,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앞으로의 위협을 없이 하려면, 겨레의 양심과 나라의 체모가 도리어 짓눌려 시든 것을 키우려면, 사람마다 제 인격을 올바르게 가꾸어 나가려면,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괴롭고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이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길이 누리도록 이끌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겨레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 각자가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고, 인류의 공통된 성품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무기로써 지켜 도와주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얻고자 하매 어떤 힘인들 꺾지 못하랴?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 수호 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죄주려 하지 아니 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물려 온 터전을 식민지로 보고, 우리 문화 민족을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럼 대우하여, 한갓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겨레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 하여, 일본의 의리 적음을 꾸짖으려 하지 아니하노라.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을 갖지 못하노라. 현재를 준비하기에 바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가릴 겨를도 없노라.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다만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로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한 때의 감정으로써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심에 희생된,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그릇된 상태를 고쳐서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바른 길, 큰 으뜸으로 돌아오게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의 요구로서 나온 것이 아닌 두 나라의 병합의 결과가 마침내 한때의 위압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지금까지의 실적을 보라! 용감하고 밝고 과감한 결단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와 한 뜻에 바탕한 우호적인 새 판국을 열어 나가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가까운 길임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울분과 원한이 쌓인 2천만 국민을 위력으로써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동양의 안전과 위태를 좌우하는 굴대인 4억 중국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새암을 갈수록 짙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의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지지하는 자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면하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의 문제리요?
아아! 새 천지가 눈앞에 펼쳐지도다. 힘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도다. 지난 온 세기에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의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도다. 새 봄이 온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도다. 얼어붙은 얼음과 찬 눈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 저 한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되돌아오는 때를 맞고, 세계 변화의 물결을 탄 우리는 아무 머뭇거릴 것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온누리에 민족의 정화를 맺게할 것이로다.
우리가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루어내게 되도다. 천만세 조상들의 넋이 은밀히 우리를 지키며, 전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나니, 시작이 곧 성공이라, 다만 저 앞의 빛으로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로다.
공약 3장
하나.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위하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스럽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 나라를 세운 지 사천이백오십이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 -길선주 외 3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