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벚꽃이 만개한 영천, 사물놀이로 반기다.(의흥 - 영천 40km)
조선통신사 걷기행사 14일째인 4월 14일, 아침 7시에 모텔에서 나와 군청버스를 타고 군위읍의 장원식당으로 향하였다. 날씨는 어제에 이어 아침에는 약간 쌀쌀하나 낮에는 20도 이상 올라가는 약간 더운 날씨라고. 고양문 교수는 어제부터 반바지차림이다.
식당에 이르니 아침상이 이미 차려져 있다. 서둘러 식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 출발장소인 의흥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소요시간은 약 25분, 출발예정시각보다 10여분 늦게 도착한다. 준비운동으로 몸을 푸는 동안에 면사무소에 들어가 어제 쓴 기록을 카페에 올리고 나오니 8시 20분, 벌써 출발행렬이 시작된다. 면사무소 앞길에 주민들이 나와서 박수로 환송하고.
오늘은 영천까지 40km, 이번 행로 중 가장 긴 여정이다. 갈 길이 멀어서인지 선두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한 시간 반을 열심히 걸어 산성면소재지의 화본역에서 10여분간 휴식하는데 간식으로 빵과 우유를 나눠준다. 산성면소재지의 담벼락에는 삼국유사의 고장인 것을 나타내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태극기를 두 개씩 달은 집들이 많은 것이 색다르다.
의흥에서 출발 두 시간 반이 지나니 영천시 신녕면 경계에 이른다. 주변에 개나리꽃이 유난히 많이 피었고 벚꽃이 활짝 핀 모습이다. 잘 보이지 않던 진달래도 제법 많이 눈에 띠고. 12시 경에 부산마을의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 허리가 아파서 상자 박스를 시멘트바닥에 깔고 몸을 눕혔다. 지금까지 발가락이 약간 아프고 종아리가 땅겨도 잘 걸어왔는데 허리가 아프니 걷기가 힘든다.
아내와 처제는 무리하지 말고 승합차에 잠시 오르라 권하는데 견딜 만큼 참아보기로 마음 먹고 몸을 일으켜 다시 걷기에 나섰다. 부산마을을 지나니 성덕대학의 큰 건물이 시골길 곁에 보인다. 마늘밭에서 일하는 아낙네들이 뙤약볕이 내려쬐는 길가에서 점심을 챙겨들고. 이를 보노라니 나도 한 때 하루 종일 뙤약볕아래 일하던 소년시절이 떠오른다. 허리가 좀 아프기로서니 힘든 노동에 비할까?
한 시간쯤 걸으니 신녕면소재지에 이른다. 제법 큰 마을이라 느껴지는데 예전에는 경주 인근까지 다스리는 큰 고을이었다고 선상규회장이 설명한다. 면사무소에서 화장실에 들렀다가 소재지의 끝자락에 있는 느티나무 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들고. 세 번째 이용하는 식당이라는데 음식 맛은 별로인 듯.
의성이 마늘의 명산지로 알려졌는데 군위, 영천에 이르는 들녘에 마늘밭이 계속 이어진다. 신녕면소재지를 벗어나는 길목에 '전국 으뜸, 마늘 양파'라고 적힌 입간판이 붙어 있고 주변의 넓은 들녘에 마늘이 한창 푸르다.
신녕면을 지나 화산면에 들어선다. 오후 3시 반, 화산면사무소에서 경산에 있는 영남외국어대학 일어과 학생들과 만나 나머지 길을 동행하였다. 1,2학년인 수십 명의 학생들이 교수들의 인솔로 어학실습도 하고 체력단련도 하는 학습의 일환인 듯, 좋은 프로그램이라 여겨진다.
중앙선 철길과 맞물려 몇 차레 철길을 가로질러 건너기도 하였는데 열차들이 빈번하게 통행하고 도로에도 대형트럭들이 끊임없이 질주하여 약간 위태롭기도. 농촌지역과 산업도시가 연결된 화산면에서 영천시내로 들어서니 길가에 벚꽃이 만발하여 화사한 꽃길이다.
도로 양 편에 활짝 핀 벚꽃 길을 따라 시내 중심부로 들어서니 힘들었던 40km 먼길도 어느덧 종착지가 가깝다. 도로에는 고려 말에 화약무기를 벌명한 최무선을 기리는 최무선로가 있고 국내에서 별을 관측하는 유명장소인 보편산천문대로 가는 이정표도 보인다. 영천의 상징어를 벌의 수도, 별의 도시로 표기한 것이 눈에 띠고.
걷기마무리장소인 영천문화원인근에 이르니 십수몀의 사물놀이패가 풍악을 울리며 일행을 선도한다. 오후 6시 조금 지나 흥겨운 풍악소리에 가벼워진 발걸음을 문화원 마당의 조양각에서 마무리하였다. 드디어 이번 걷기의 최장코스를 무사히 끝낸 뿌듯함과 함께.
여섯시 반부터 문화원 2층에서 환영공연이 이어졌다. 문화원예술단이 하모니카로 고향의 봄을 비롯한 여러 곡을 연주하고 무용단이 영천아리랑을 멋지게 부른 후 난타 팀이 신나게 북을 두드리고. 이어서 성영광 문화원장의 환영인사와 기념품 전달로 환영행사를 마무리하였다. 환영행사는 영천시, 영천시 문화원, 영천시 한일문화교류회, 영천시 향토사연구회가 공동으로 주관하였고. 엔도 야스오 일본대표는 가장 힘든 14일째 일정을 벚꽃 만발한 영천에서 흥겹게 맞아주어 감사하였고 일본어를 전공하는 학생들과 동행하여 흐뭇하였다는 소회로 답사하였다.
문화원 바로 옆에 있는 해물음식점에서 해물탕으로 저녁을 들고 그 옆에 있는 필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40km를 무사히 걸어온 것을 자축하는 건배를 하고. '먼 길 걸어온 일행 모두 대단하십니다.' 내일도 37km의 만만하지 않은 일정, 푹 쉬고 힘차게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