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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인생 2막을 열다 .14] 前 고령 부군수 김종욱씨 | |||||||||||||||||
"虛虛…如如!…많이 가지려면 탈 나죠"
33년 공직생활 명퇴, 후배들 살리는 길 판단
일궈놓은 기득권 '훌훌' '지워가는 삶'고집
노자·장자 세계에 심취 '텅빈 충만감'이 …
"종일 여여(如如)하게 날 데리고 놉니다." "여여하지 않은 세상에, 혼자만 여여하게 살면 좀 뭣하지 않나요." "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몇몇은 그렇게 살아줘야 세상이…." 수필가 겸 전 고령 부군수 김종욱씨(65). 그는 요즘 허허(虛虛)하고 여여하게 산다. 2001년 1월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아듀, 고위공직자 시절이여. 그의 변신은 주위를 놀라게 했다. 왜 그는 오피스텔에 사랑채를 마련했을까? 1967년부터 33년간의 공직생활, 그는 인생 1막에서 구축한 기득권을 빨리 버렸다. 그게 후배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여느 은퇴자들의 삶과는 그 구도가 좀 달랐다. 다른 이는 인생 1막과 연결되는 일을 더 벌이려고 하는데 그는 '지워가는 삶'을 고집했다. 지난 관록이 갖다주는 각종 '유리한 것'들을 포기했다. 뽐내고, 으스대고, 서두르고, 장황스럽고, 구차스럽고, 우왕좌왕하고, 낯간지러운 것들과 결별을 했다. '글은 쉽게, 삶은 단순하게.' 그게 그의 삶의 모토였다. #어른들의 놀이터가 된 문화사랑방 허허재 지난달 14일 오후 4시, 대구시 수성구 법원 북측 푸른 빛의 킹덤오피스텔 1116호 문 앞에 섰다. '문화사랑방 허허재'. 차가운 빌딩의 외형과 달리 온기가 감돌았다. 종일 웃음과 덕담만 피어날 것 같다. 문은 열려 있었다. 누구나 들어오란 뜻일 게다. 안에 들어가니 원두커피 향이 클래식 음악과 춤을 추고 있다. 정면에 그가 붓글씨로 직접 쓴 당호가 액자로 걸려 있다. 방안은 방금 풀먹인 이불 호청 같다. 왼편엔 퇴직 후 지금까지 읽은 500여권의 책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자그마한 전축 옆에 100여개의 CD가 놓여있다. 그게 대화상대이다. 간이 부엌에는 지인들에게 줄 원두커피, 홍차, 전통차 등 각종 차가 잘 정리돼 있다. 벽에는 권기철의 누드 크로키, 화가 김창태가 한지에 아크릴을 사용해 점묘풍으로 그린 100호짜리 산수화, 소파 옆에는 경주 출신 장용호가 제작한 그의 흉상이 놓여 있다. 맞은편 벽엔 그와 지기인 야정 이원좌가 길쭉하게 그린 가야산 스케치도가 걸려 있다. 실내 분위기와 달리 책상은 엄청 치열해 보인다. 방금까지 수필 한 편을 적고 있었다. 곧 10번째 수필집을 펴낼 거란다. 신문에서 절취한 일일 외국어도 집게로 잘 집어놓았다. 요즘엔
#인생 2막 20대와 눈높이 공부로 시작 인생 1막은 채우는 공부, 2막은 비우는 공부다. 매일 오전 9시, 어김없이 수성구 파동 자택에서 떠나 허허재로 출근한다. 오면 화분에 물주듯 수필을 적는다. 86년 첫 수필집 '생각하며 이 길을' 등 지금까지 9권의 수필집을 냈다. 2년에 한 권 꼴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 5시쯤 시내에 있는 아내를 승용차로 태우고 귀가한다. 저녁 식사 직후 9시 뉴스도 안본다. 별로 도움이 안돼서란다. 일찍 자고 오전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반년 전부터 누룽지죽으로 아침을 먹는다. 발동이 걸리면 지인 몇과 외국 여행을 간다. 관광은 아니다. 지인들이 가장 놀라워 하는 대목은 그의 결단력. 정년보다 몇 년 빨리 명예퇴직한 것도 그렇고, 1주일 만에 경북대 어학연수원에 입학한 것도 아무나 흉내 못낼 구석이다. 폼잡는 건 아니다. 꼬박 3년간 영어를 배웠다. 대학생으로 되돌아간 '김종욱 학생'은 센스만점이었다. 20여명의 대학생과 함께 원형 테이블에 앉았다. 오전 내내 그곳에서 보냈다. 자주 젊은 학생들을 위해 커피 타임을 깔았다. 학생들도 자연 그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를 퇴직자로 아는 이는 없었다. 그는 '지금의 김종욱 얘기'만 했다. 하루하루가 신났다. 또 다짐한다. 노인 흉내는 절대 내지 않겠다. 양복과 넥타이를 버렸다. 결혼식장에도 허름한 차림으로 간다. 하지만 표정은 양복보다 더 단정하다. 재직 중엔 중국어도 배웠다. 또 배운 게 있다. '젊음'이다. 그는 확고한 삶의 계획표가 있다. 원칙과 기준에 맞지 않는 걸 절대 취하지 않는다는 것. 노추(老醜)를 경계한 다. 실제 그는 2006년 대구문학상도 고사해 향토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유는 이랬다. 자기는 원래 상을 싫어했고, 또한 받을 만큼 활동도 못했고, 평소 상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영남수필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회 등도 정리했다. 이제 그의 몸은 '겨울나무'같지만 메시지는 '만화방창(萬化方暢)'. 예전과 달리 예순은 젊은 나이죠. 젊은 시절 열심히 일을 한 사람들은 그 무렵 정년 퇴직을 해도 연금 등으로 인해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욕심을 안 내면 말입니다. 저는 노인들에게도 '삼불출'이 있다고생각합니다. 첫째는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는 것, 손자에게 엎어지고, 자식들한테 손을 벌리는 것입니다. 25세 이전까지는 배우는 시기입니다. 그 다음 50세까지는 돈을 버는 등 '실행하는 시기', 그후 50~75세는 '베풀고 나누는 시기'라고 봅니다. 젊은 시절 대충 산 사람들은 그게 힘들 수도 있을 겁니다. 자신이 가진 정열과 재능을 남과 나누면 더 젊어집니다. 은퇴후 무슨 일을 하려거든 절대 생소하고 특별난 것에 목숨을 걸지마세요.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그동안 잘 해오던 것과 연관된 걸 시작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