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원전이 멜트다운에 이어 멜트스루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을 전한 일본 뉴스 화면.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원자로 1~3호기가 ‘멜트스루’ 상황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 정부가 7일 발표했습니다. ‘가능성’이라며 또 다시 모호한 표현으로 끝을 흐렸지만 공식적으로 밝힌 것을 보면 사실상 멜트스루 발생을 인정한 셈입니다.
멜트스루는 멜트다운이 한 단계 더 진행된 것으로 훨씬 위험해진 상황입니다. 멜트다운은 원자로 내부에서 핵연료가 녹아내린 상태인데요. 녹은 핵연료가 압력용기를 뚫고 외부로 흘러나오면서 격납용기 아래 쌓이게 되면 멜트스루가 시작된 것입니다.
지난달 제가 인터뷰했던 히로세 타카시 씨는 일본 원전의 멜트다운으로 인한 향후 시나리오를 세 가지로 전망했는데요. 그 가운데 핵연료가 녹아서 격납용기 하부로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하면 물과 접촉해 수증기 폭발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 시나리오가 있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시나리오는 수소폭발입니다. 핵연료의 강한 방사선에 의해 수소와 산소로 이뤄진 물 분자가 화학적으로 분해되는 지경에 이르면 엄청난 양의 수소가 한꺼번에 발생하면서 결국 수소폭발로 이어진다는 설명입니다.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에 이어 후쿠시마 제2원전에서도 바닷물에 방사능 오염수 3000톤을 버리겠다는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전한 일본 뉴스 화면.
수소폭발은 마치 핵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그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피해 역시 막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히로세 씨는 이런 과정을 거쳐 상공으로 올라간 방사성 오염물질이 기류를 타고 세계 곳곳을 오염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멜트스루에 이어서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2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3000톤을 바다에 버리는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한 것도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일본은 이미 지난 4월 후쿠시마 제1원전 방사능 오염수 1만여톤을 태평양에 버려 국제적으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9일엔 일본 정부가 설정한 방사능 오염 지대 20km 권역 밖 토양에서 스트론튬이 검출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스트론튬은 인체 내에 들어올 경우 뼈에 축적돼 골수암이나 백혈병을 유발하는 성분으로 방사성 요오드나 세슘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일본이 내뿜거나 버린 방사능 오염물질은 이처럼 대기와 바다를 통해 전 세계 각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은 과연 안전할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62km 떨어진 지역의 토양에서도 스트론튬이 검출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일본 뉴스 화면. 스트론튬은 방사성 요오드나 세슘보다 인체에 훨씬 치명적인 물질이다.
이제는 ‘체내피폭’ 가능성에 대비해 철저한 준비를 할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체내피폭은 방사능 오염물질이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와 장기 등 신체 조직에서 피폭이 일어나는 것인데요. 체내피폭의 위험성에 대해 히로세 타카시 씨가 슈칸아사히(週刊朝日)에 연재 중인 칼럼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히로세 씨는 엑스레이 촬영이나 비행기 탑승 시 우주선(宇宙線) 등으로 인한 방사능 노출이 한 번 몸에 쏘이고 지나가는 것과 달리 체내피폭은 방사성 물질이 몸 안의 세포에 들러붙기 때문에 방사선을 지속적으로 쐬게 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방사선의 강도는 거리에 따라서 제곱 단위로 반비례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따진다면 오염 물질과의 거리가 사실상 없는 체내피폭은 가장 위험한 방사능 노출이 되는 셈입니다.
방사능 오염물질이 1m 앞에 있을 경우와 몸 안에 들어왔을 경우의 방사선 차이를 비교해보면 방사선 강도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체내 조직에 부착된 방사능 오염물질과 몸 사이의 거리를 1μm(마이크로미터)라고 가정한다면 이 수치는 1m의 100만분의 1과 같아서 강도는 제곱 단위로 늘어나 무려 1조배나 높아집니다.
방사능 오염물질이 너무 많이 함유돼 처리되지 못한 채 쌓이고 있는 폐기물.
방사선을 쐰 세포가 단 한 개라도 암을 일으킨다고 가정한다면 이 암 세포는 몸속에서 점차 증식하게 됩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 비해 세포분열이 왕성한 태아, 유아, 어린이는 이 같은 영향을 훨씬 많이 받을 우려가 큽니다.
따라서 방사능 오염물질은 극미량일지라도 몸 안에 들어오게 되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히로세 씨의 주장입니다. 그는 ‘안전론’만을 반복하는 일본 방사능 전문가 대부분이 이 같은 인식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아마 지금 한국 정부나 전문가 인식도 크게 다르진 않을 듯 합니다.
일본 정부는 폭발을 막고자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바닷물을 퍼부었는데요. 이미 바다로 방출한 오염수 말고도 냉각에 사용되면서 방사능 오염물질을 머금고 씻겨 내려간 바닷물은 원전 바로 앞의 바다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갔을 것입니다.
전 세계의 바다는 모두 연결됩니다. 또 해류가 바닷물을 이리저리 옮기고 다닙니다. 오염물질은 희석될지언정 어느 지역의 앞바다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물질이 검출될 수 있는 것입니다.
후쿠시마 여성의 모유에서 방사성 세슘이 검출된 소식을 전하는 일본 뉴스 화면.
바다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대기 중에 퍼진 방사능 오염물질은 비가 내리면 그대로 토양에 떨어집니다. 이렇게 방사능에 오염된 흙에서 재배한 채소에는 이 오염물질이 물과 함께 그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하수 등 사람이 마시는 식수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미 한국 시금치와 상추에서도 방사능 오염물질이 극미량 검출된 바 있는데요. 체내피폭은 아주 적은 양이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냥 두고 보기만 해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히로세 씨는 미국 핸포드 핵 재처리 시설의 방사능 농축 조사 자료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이 시설에서 컬럼비아강으로 유출돼 검출된 극미량의 방사능 오염물질 양을 1이라고 가정하고 생태계에서 농축되는 정도를 실제로 분석한 결과입니다.
강물에선 겨우 1이 검출됐지만 이 강에 서식하는 플랑크톤에선 그 양이 2000배로 쌓였습니다. 이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물고기에선 1만5000배로 그 양이 급증했습니다. 물고기를 먹은 새들의 몸에선 4만배가 농축됐습니다.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능 오염물질 방출량이 당초 발표했던 것보다 2배나 더 많았다는 사실을 밝힌 소식을 전한 일본 뉴스 화면.
또 강물에 사는 곤충을 어미새로부터 받아먹은 새끼의 몸에선 농축된 양이 무려 50만배나 됐습니다. 이 강에 서식하는 새들의 알에선 100만배가 검출됐습니다. 이 자료를 통해 극미량으로 검출된 방사능 오염물질이 생태계에서 얼마나 많은 규모로 쌓여 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히로세 씨는 이 같은 과정을 ‘음식물 연쇄(食物連鎖)’라고 표현했습니다. 체내 중금속이 먹이사슬 피라미드 위로 올라갈수록 더 많이 쌓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중금속도 위험하지만 방사능 오염물질은 인체에 더욱 치명적입니다.
잡식성 생물체로 생태계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한 인간의 몸에 농축될 방사능 오염물질 양은 도저히 추산하기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히로세 씨는 일단 세포분열이 왕성한 30세 이하 젊은층과 유아, 임신부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최소 250km 밖으로 대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식품으로 인한 체내피폭은 사실 어디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가공식품이나 화장품처럼 인체와 직접 접촉하는 공산품의 경우 오염 지역이 아닌 곳에서 생산됐더라도 그 원료 하나하나가 어디에서 왔는지까지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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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선 오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일본산 식품의 수입을 최대한 막고 수소폭발 등 사태가 심각해질 경우엔 국내산 물, 생선, 채소, 잡곡, 육류 등의 방사능 오염 여부도 철저하게 가려내는 방법 말고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출처:Rocketeer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