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완 하이 댐과 미완성 오벨리스크 (3)
윤연모
카이로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반쯤 날아서 이집트의 가장 남쪽에 있는 아스완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남쪽이라 그런지 소박하고 귀여운 꽃이 많아서 아기자기하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버스를 타고 아스완 하이 댐과 인공호수를 구경하러 간다. 아침부터 마음이 푸른 하늘의 구름처럼 둥둥 떠다닌다.
영국인들이 1902년에 이집트에 아스완댐을 지었을 때, 많은 유적이 침수되고 홍수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였다. 하여, 1971년에 아스완 하이 댐을 건설하였는데 유적들이 다시 물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 많은 유적을 꿀꺽꿀꺽 삼킨 아스완 하이 댐은 그저 말이 없다. 유네스코가 아스완댐 때문에 물난리가 나서 가라앉은 유적 중에서, 필레 신전과 아부심벨 유적지를 중요하게 인식하여 구출해서 두 개의 유적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유적들을 구출해서 오늘날 우리가 이집트 역사의 향기를 풀풀 풍기는 귀한 유물과 만나 감상할 수 있게 해준 유네스코에 크게 감사라도 하고 싶다.
아스완 하이 댐을 중심으로 한쪽으로 나일 강이 흐르고 반대쪽에 엄청난 수량과 크기를 자랑하는 나세르 인공호수가 강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다. 호수와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 하늘에 하얀 새털구름이 끼어 한가로운 느낌까지 든다. 나는 호수를 배경으로 하여 두 팔을 벌려 자세를 취하며 나의 존재감을 확인해 본다. 사진을 찍고 위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대추야자 나무가 가로수로 서서 관광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이사이에 분홍색 유도화, 진분홍 부겐빌레아가 다소곳이 앉아 멀리서 온 이국의 여인을 환영하여 준다.
아랍어로 쓰인 커다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념비가 있었다. 나세르 대통령이 아스완 하이 댐을 만들어서 그의 치적을 새겨 놓았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나세르 호수라고 이름 지었으며 나세르 대통령 앞에 위대하다는 뜻의 ‘궤멜’을 붙였다고 이집트인 버스 기사 밀레르 씨가 말해주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키 큰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원을 이루고 있는 듯한 멋진 건축물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아스완 하이 댐을 지을 때 러시아에서 기술력을 제공하여 이집트와 러시아의 협력을 상징하는 탑을 만들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연꽃 모양이란다.
고맙게도 밀레르 씨가 가끔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현재 이집트와 미국 사이가 좋은데 이집트는 나일 강에 아스완댐을 지을 때, 어떻게 러시아의 협조를 구할 수 있었을까? 이집트의 외교력이 상당히 좋았던 모양이다. 외교에 있어서 영원한 우방이란 없지 않은가. 다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누런 사막에 돌산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보인다. 이곳에 나일강이 흐르지 않았다면 시가지가 조성될 수 있었겠는가.
아스완댐 근처에서 보트를 타고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있는 채석장으로 갔다. 채석장의 규모가 대단히 커서 룩소르에 카르낙 신전을 지을 때도 이곳에 있는 화강암을 가져다 신전이나 피라미드를 지었다고 한다. 오벨리스크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하늘에 있는 태양을 찌르는 ‘작은 바늘’이다.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는 모두 스물아홉 개인데 이집트에 아홉 개가 남아있고 스무 개는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내가 본 것 중에서 이탈리아 로마와 터키의 히드포럼 광장에 있던 오벨리스크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집트가 지정학적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문명의 교차로에 존재하며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당한 이집트로서, 오벨리스크를 모두 보존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오벨리스크가 태양을 찌른다기보다 태양신을 숭배하여 태양에 도달하고 싶은 염원을 건축물로 나타내었을 것 같다.
이 채석장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내가 고대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하였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노동자가 돌을 캐거나 쪼고 작업반장이 인부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영화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발밑을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채석장에 도착하자, 바위를 깨는 도중에 만들어진 많은 돌 조각들과 세로로 길게 누워 있는 오벨리스크 모양의 바윗덩어리가 그 위용을 드러내었다.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소? 나 좀 보아주시오. 내가 완성되지 못하여 긴 세월을 이곳에서 누워 있어 원통하오.”라고 그 큰 바윗덩어리가 여행객인 나에게 말을 걸며 하소연하는 듯하였다. 원래 이집트의 제5대 여왕 핫셉수트를 위해 만들었으나 균열로 인해 실패한 미완성 오벨리스크이다. 현존하는 최장 오벨리스크가 30m이다. 과거에 이것을 완성하였다면 43m로 가장 키가 큰 것이 될 뻔하였다. 이 오벨리스크는 미완성이지만 고대 이집트의 토목 기술의 비밀을 밝히는 귀한 자료가 되었다는 점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이집트인들이 오벨리스크를 만들어서 세울 때, 그들의 놀라운 지혜를 발휘하였다. 기반암의 약한 부분에 구멍을 뚫어 그 구멍에 나무쐐기를 차례로 바위 전체에 박고, 그 구멍에 물을 부어 원하는 형태의 커다란 바위를 떼어냈다. 오벨리스크는 위로 올라갈수록 뾰족하게 깎아 놓은 사각기둥이며, 위쪽에 고대의 파라오나 신의 업적을 상형문자로 쓰고 꼭대기는 황금으로 장식하였다. 또한, 그 엄청난 돌덩이로 만든 오벨리스크를 신전 앞에 세울 때 오벨리스크를 눕혀 놓고 뾰족한 쪽의 아래에 뭔가를 받치고 바닥이 될 부분에 흙을 계속 파서 오벨리스크를 세웠다고 한다. 이집트인은 기원전 3,500년에 오벨리스크를 정확한 위치에 쉽게 세웠다. 하지만 로마는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이것을 바르게 세우는 데 8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놀라운 차이를 누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기도하는 곳이라는 팻말만 있으면 신에게 기도하는, 이집트인의 간절한 신앙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