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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구하라(약 1:1-8)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추석 명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모님들이 계시는 그리운 고향을 찾아, 대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청년 시절, 고향 내려가는 귀성 열차를 예매하려고, 아침 일찍부터 보라매 공원에 나가 여러 시간 동안, 줄을 섰지만, 원하는 날짜의 표를 구하지 못하고, 힘없이 돌아서야 했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태백에서 사역할 때에는 고한, 사북, 영월, 제천, 충주를 지나, 증평까지 와서, 고속도로를 진입하여, 전라도까지 내려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옛날에는,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어서야, 흩어져 있던 가족과 친족들이 겨우 만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도로가 워낙 잘 되어 있고, 차도 좋아서, 마음만 먹으면, 전국 어디든, 금방 갔다 금방 되돌아올 수가 있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지만, 그래도, 명절은 명절인지라, 귀성이든, 역귀성이든,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보고픔과 그리움이 완전히 해소되어지는 즐거운 명절이 되었으면 하는데, 간혹 오랜만에 만났던 가족들이 대판 싸우고 헤어지는 경우도 있음을 듣게 됩니다.
올 추석 명절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풍성한 한가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때일수록,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세상 풍조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마냥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처럼,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요, 기도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십자가에서 다 용서해 주시고, 성령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우리의 믿음이 무엇으로 나타나야 합니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도로 증명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찾고, 누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을 것이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4)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관한 책을 읽다가, “기도, 행복을 퍼 올리는 두레박”이라는 글과, “기도, 황금 씨앗”이라는 글을 보고는, 너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행복을 퍼 올리는 두레박이요, 기도는 황금을 얻을 수 있는 씨앗입니다.
저는 산골짜기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북청 물장수처럼, 물통을 양 어깨에 메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산골짜기 우물인지라, 비가 오지 않아, 물이 없을 때에는 우물 바닥이 보일 정도였지만, 그래도, 두레박을 내려, 이리저리, 흔들면, 조금의 물이라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두레박을 내리면, 물을 얻을 수 있지만, 두레박을 내리지 않으면, 물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두레박이 물을 퍼 올리는 것처럼, 기도는 행복을 퍼 올리는 두레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우리 아파트에 사는 어떤 분이 부모님이 직접 농사한 고구마를 판다는 글을 올렸기에, 고구마를 구입하여, 바로 삶아 먹었습니다. 고향에 있을 때, 고구마를 엄청 많이 먹었습니다. 고구마를 밭에 직접 심기도 했습니다. 봄에, 고구마 순을 심으면, 가을이 되었을 때, 줄줄이 사탕처럼, 고구마들이 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한 줄기 고구마 순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거기에, 수많은 고구마들이 달려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후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여 주시는 넉넉한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라고 말했습니다.
염려스러운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안고, 밤새도록 고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해야 합니다.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 문제를 내가 끌어 안고 있으면, 내가 해결해야 하지만,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기도는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시기에,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며칠 밤 밤새워 고민하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하나님께서 거뜬하게 해결해주시는데, 감사하지 않습니까?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맡긴 문제를 남몰라라 방치하지 않고, 해결하여 주시니, 감사해야 합니다.
맡긴 문제만 해결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는 길을 인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공급하여 주시니, 감사해야 합니다.
5-7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야고보는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라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구하면, 얻을 수 있지만, 의심하면,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구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지만, 의심하면, 응답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내 기도는 들어주실까? 나에게 관심이라도 있으실까?” 하나님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누구 기도합니까? 자기 자신에게 뭔가 부족하다고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족함을 가지고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지식을 달라고 기도하고, 재물이 부족한 사람은 재물을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가고자 하는 길이 막혀 있는 사람은 길을 활짝 열어 달라고 기도하고, 가는 길에 자기 힘으로 넘어가기에 벅찬 큰 장애물이 있는 사람은 그 장애물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청년들, 더 나은 직장과 더 나은 삶을 위해 힘쓰고 애쓰는 사람들처럼, 우리네 인생에는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홍해와 같은 건널 수 없는 장애물이라고 할지라도, 여리고와 같은 난공불락의 문제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길을 내주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과거에 일어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삶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큰 산이 옮겨질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면, 그 믿음으로 응답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의심하면, 될 일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의심을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슬픔과 고통 속에 태어난 야베스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
야베스는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태어남은 가정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또다른 근심과 염려의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풍족하게 도와줄만한 가족이나 친족이 전혀 없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무슨 일이든 도와줄 수 있는 친족도 없었고, 재물이 많아, 그를 언제든지 밀어줄 수 있는 친족도 없었습니다. 다급할 때, 의지할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힘들 때, 찾아갈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되었건간에, 발벗고 그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의지할 사람 한 사람없는 야베스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야베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에게 복을 주옵소서. 나의 지역을 넓혀 주옵소서.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기도 외에는 그가 처한 상황을 돌파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그의 기도는 간절했습니다. 기도야말로, 그가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최초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기도에는 중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는 그가 하나님께 구한 그 이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인색한 분이 아니라, 후히 주시는 넉넉한 분이십니다.
길거리의 천막에서, 복숭아를 사면, 덤으로, 파지를 많이 주는 곳이 있습니다. 같은 값이라면, 그렇게 인심이 좋은 곳을 다시 찾아가게 됩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죽은 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낳고 자란 동네 이름을 아예, “야베스”라고 고쳐 불렀습니다.
어려운 가정에 태어난 야베스였지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그의 인생은 역전되었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을 수밖에 없던 그의 삶이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어찌 그러한 일이 야베스에게만 일어난, 과거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 니까? 지금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어야 합니다.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 응답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일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놀라운 일이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제 2차 전도 여행 중,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귀신이 들려 점을 치던 한 여종을 만나,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종으로 돈벌이를 하던, 그의 주인이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바울과 그 일행을 고소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도 바울과 실라는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 16:25-26)
여러분! 하나님은 기도하고 찬송하는 믿음의 사람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닫힌 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다 풀어졌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낙심하고 주저앉아 버리면, 더욱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 빠질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어려운 일로부터 그를 구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낙심되는 상황을 만났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거나,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시고,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하는,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하는 믿음을 갖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라”
여기 “구하라”는 말은 “도움을 청하라”라는 말입니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시 40:17)라고 기도했습니다.
솔로몬도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시 72:12-13)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도움을 구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등을 돌리지 않습니다. 빈 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도움을 구하는 자를 만나주시고, 도와주시고, 그의 손에 풍성하게 안겨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색한 분이 아니라, 후히 주시는 넉넉한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쉽게 하나님께 달려갈 수가 있습니다. 인색한 분이라고 생각하면, 가야 할 걸음이 옮겨지지가 않습니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인색하고 무자비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뭔가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자 하시는 넉넉한 분이십니다.
열왕기상 3장을 보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기브온의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일천 번제를 다 드린 밤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
솔로몬은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라고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그가 구하였던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덤으로 챙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후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경우, 무게를 재야 하는 물건일 때, 저울 눈금을 보고, 올린 물건에서 몇 개를 덜어내는 주인보다, 눈금이 원하는 무게를 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를 더 올려주는 주인을 만났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그런 가게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가게 됩니다. 아주 철두철미하고, 꼼꼼하고, 정확하고, 똑부러진 것도 좋지만, 때로는 우리도 그런 넉넉하고, 후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릴 때에는 “믿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의심합니다. 이렇게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두 마음을 품어서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의심하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믿음은 전진이고, 의심은 후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진해야 합니다. 뒤로 후퇴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갈 힘을 가져다 주지만, 의심은 우리를 멈추게 하고, 오히려 뒤로 후퇴하게 합니다.
우리는 의심이 아니라, 두 마음이 아니라, 오직 한마음, 오직 믿음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은 느리더라도, 조금은 더딜지라도, 앞으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고 있을 때, 물결이 세어,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갈릴리 호수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오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 14: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바라보아야 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바라볼 수 없는 바람을 보았습니다. 딴 데 마음이 쏠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는 물 위를 걸었지만, 딴 데 마음이 쏠리게 되었을 때에는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도움으로만 살아가려고 하고, 세상 풍조에 따라 살아가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의 작가 괴테가 하루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만나자마자, 의심에 가득찬 눈으로,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괴테는 친구의 말을 가로막고, “친구여, 잠깐만 말을 멈추시오. 당신의 의심을 내게 말하지 마시오. 나는 내 자신의 의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당신의 의심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당장 큰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매사에 부정적으로,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심이 몸에 배여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람 앞에서는 오직 믿음으로, 소망을 주고, 위로를 주고, 격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후하게, 더 넉넉하게 채워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주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오니,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나아가는 길을 활짝 열어 주옵소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소망을 이루어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를 기억하사, 건강하고, 행복하고, 풍성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