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성경 이야기 15>
의심하는 도마
영어표현 중에 의심이 많은 사람을 “a doubting Thomas” 라고 부르는데, 이는 부활한 그리스도와 제자들과의 만남을 다룬 일화 중 스승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에서 유래한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는 도마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도마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도마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나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복음 20.24-29)
[의심하는 도마] 4세기 중반, 대리석, 산타 기울리나 미술관, 브레스카
[의심하는 도마] 420~430년, 대영박물관, 런던
상처에 손가락을 넣는 토마, 예술가의 해석
복음서에는 도마가 예수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었다는 언급은 없지만, 예술가들은 일찍부터 그가 상처에 손가락을 넣는 모습을 전형적으로 재현하였다. 4세기 중엽 ‘아프리카 오닉스(African onyx)’라고 불리는 줄무늬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관의 일부에는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희미하지만, 팔을 들고 있는 그리스도와 옆구리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있는 도마의 긴장된 모습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다.
이처럼 최초의 이미지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상처에 손가락을 대는 도마의 모습은 예수부활의 상징으로 부활을 염원하는 죽은 이의 장례미술에 등장했다. 대영박물관에 있는 5세기 상아 패널은 장식함을 위해 제작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다룬 4점 중 하나로, 가운데 부활한 그리스도가 있고 4명의 제자가 좌우에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모두 로마식 토가를 입고 있는데, 도마는 옆구리가 아니라 찢어진 옷자락 사이에 손을 대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도마, 건축가와 목수의 수호성인
스페인의 실로스(Silos)에 있는 산 도미니코 수도원 클로이스터에 있는 조각에는 그리스도와 12제자가 모두 등장한다 1125년경 제작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부조는 12제자를 삼단으로 나누어 벽돌을 쌓아놓은 것처럼 구성하였으며,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제자들보다 1.2배 정도 과장되었다. 또 도마가 손을 댄 곳은 그리스도의 상처라기보다, 갈비뼈로 보인다. 이는 인체의 해부를 금기시 했을 뿐 더러 정확한 인체표현이 신학을 연구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던 당시의 인체에 대한 태도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의심하는 도마] 1125년 경, 산 도미니코 수도원, 실로스
두초 디 부오닌세냐 [의심하는 도마] 1308~1311년,
마에스타 제단화 후면,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 시에나
전승에 따르면, 도마는 인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왕실의 궁전을 짓는 목수로 가서 왕궁 건축 기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다 써버려, 왕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했고 결국 왕도 회심했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로 도마는 건축가와 목수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인도에서 순교한 도마 사도의 유해는 4세기에 메소포타미아 북부 에데사(오늘날 터키의 우르파)로 옮겨졌고, 13세기 이탈리아 중부 오르토나(Ortona)로 옮겨져 토스카나 지방에서 토마 사도에 대한 공경이 유행했다.
14세기 초, 두치오가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로 그린 [마에스타]의 뒷면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일생 중 한 장면으로 등장하는 [의심하는 도마]에는 예수를 중심으로 한 대칭구도이다. 또 이 작품에는 황금색을 사용한 그리스도의 의상과 황금색 배경과 같이 비잔틴의 영향이 들어나는 표현과 화면에 깊이를 주는 건축물을 배경에 등장시키는 새로움이 공존한다.
말하는 조각, 베로키오의 [의심하는 도마]
베로키오는 1476-83년 오르산미켈레 교회의 외부 벽감(nich)에 [의심하는 도마]를 제작한다. 원래 이 벽감에는 도나텔로가 성 루이(St Louis)를 세우려 했으나, 예수와 도마 두 인물이 들어가게 되었다. 정면에서 보면 환조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사실 인물의 등이 벽에 붙어있는 고부조로, 환조를 제작하지 않았던 중세 조각의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벽감을 뚫고나온 혁신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오른팔은 복을 주거나 세례를 주는 자세이며, 왼손은 상처를 보여주고 있으며, 도마는 머뭇거리며 손을 펼치고 있다. 높이가 230cm에 이르는 거대한 조각은 두 인물의 대화를 생생하게 전달할 뿐 아니라, 벽에서 튀어 나올 것 같은 인물들은 이곳을 지나는 당시 피렌체 인들과도 대화하는 ‘말하는 조각’이었다. 실제로 15세기 피렌체에서는 조각과 대화하는 모임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의심하는 도마] 1476~1478년, 브론즈, 높이 230cm, 오르산미켈레, 피렌체
치마 다 코넬리아노 [의심하는 도마] c. 1505,
215 x 151 cm, 아카데미아 미술관, 베네치아
도마의 손을 이끄는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상처를 보여주기 위해 들고 있던 부자연스러운 팔은 16세기에 접어들면 한결 자연스러워진다. 1504-5년 베네치아의 화가 치마 다 코넬리아노가 그린 [의심하는 도마]에서 예수는 도마의 손목을 잡아 옆구리에 난 상처 속으로 이끈다. 또 그는 도마와 예수가 만나는 장소를 제자들이 모여 있는 밀폐된 방이 아니라 베네치아의 전통대로 평화롭고 밝은 전원풍경이 펼쳐진 공간으로 옮겨 놓았다. 화면 왼편, 그리스도의 뒤쪽에 있는 인물은 성 마그누스(St. Magnus)로, 그는 도마와 함께 이 작품을 주문한 베네치아 석공조합의 수호성인이다.
카라바지오 [의심하는 도마] 1601~1602년, 캔버스에 유채, 107cmx146cm,
포츠담 신궁전 소장
1600-1년 경 카라바지오의 작품에서 도마는 그리스도의 손에 이끌려 스승의 상처에 깊숙이 손을 넣고 있다. 카라바지오는 등장인물 외에 모든 배경을 생략하고 검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머리를 모두 한 곳에 모은 구도와 예수의 상처에 집중된 모두의 시선을 통해 관람자의 시선을 토마의 손가락으로 이끈다. 찌푸린 미간과 연결되는 깊은 주름, 섬뜩함이 느껴지는 상처속이 손가락, 놀라움과 두려움이 혼재된 토마의 표정에서 성경의 일화를 당대 현실처럼 그리고자했던 카라바조와 자신이 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놀라운 사건을 믿기 전에 실체를 요구한 토마가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도마인가? 루벤스의 [의심하는 도마]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가 섬뜩할 정도로 극적이라면, 플랑드르의 대가 루벤스가 그린 [의심하는 도마]에는 부활한 그리스도가 “평화가 너희가 함께” 라고 말하는 듯 부드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피터 폴 루벤스 [의심하는 도마] 1613~1615년
나무에 오일, 143cmx123cm(중앙), 146cmx55cm(좌우), 왕립미술관, 앤트워프
앤트워프의 시장을 지낸 귀족이자 인문학자였던 니콜라 록스(Nicolas Rockox)는 1613-5년 그의 사후, 프란체스코 성당에 마련될 자신의 무덤에 놓기 위해 세폭 제단화(triptych)를 루벤스에게 주문하였다. 중앙 패널에는 [의심하는 도마]가, 좌우 패널에는 록스와 그의 부인의 초상화가 그려졌다. 그리스도는 왼쪽 옆구리에 상처가 났지만, 제자들의 시선은 손바닥의 상처에 머문다. 그리스도를 둘러싼 세 명의 제자 중, 상처에 손을 넣는 이가 없으므로 누가 도마인지도 확실치 않지만 가장 주의 깊게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는 가운데 인물이 도마로 여겨진다. 루벤스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도상의 전통을 따르기 보다는 성서원문에 충실하게 그리스도와 도마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글 정은진 / 문학박사 | 서양미술사
중세 및 르네상스 미술사 전공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가르친다.
첫댓글 놀라움과 두려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