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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전악으로 벌(심판)을 받지 않는다. | E. Swedenborg
저 세상에서는 아무도 부모로 부터 유전된 죄악으로 벌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을 물려받은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기가 행한 자기의 악으로 인해, 다시 말하면 실제 생활에 의해 유전악을 자기 것으로 만든 정도에 따라서 벌(심판)을 받는다.
임마누엘 스베덴보리의 생애와 사상 (정인보 지음)
Ⅴ 스베덴보리와 직접 오간 사람들의 인상기 그가 하도 전무후무한 영계의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주의 계시를 알리는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이성을 잃은 없는가, 상식을 벗어난 일은 없는가, 평상시 그와 접한 사람들에게서 인상기를 들어 보기로 하겠다. 1. 홉킨(Coun A. J. Hopken) 홉킨은 그 당시 스웨덴의 총리대신이었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과거 42년간 그와 더불어 친면이 있고, 그의 벗으로 매일 같이 만났다. 이 긴 세월동안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사귀어 장점도 단점도 알고 있으나, 그만큼 언제나 변함이 없는 덕성을 갖춘 사람은 모른다. 항상 족하고, 찌푸린 기색이 없으며 전 생애를 거쳐서 그의 영혼은 장엄한 사상과 사색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참다운 철학자였고, 그 생활도 소박한 가운데 근면하였다. 그는 자주 여행하였으나 집에 있는 이상의 호사는 아니하였다. 그는 모든 면에 천재적 재질을 받았으나 그렇다고 모순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젊을 때는 한 시인이었고, 라틴어 오빗트에 이르러서는 자기를 부끄럽게 할만하며 중년기의 그의 라틴어 사용은 우아 그것이었다. 만년에 심령면에 기울어져서는 우아보다 선명을 주로 하였다. 그는 근대어에 능숙하였을뿐만 아니라 히브리어, 그리스어에도 정통하였으며, 수학, 기계학 및 제 과학에 익숙하였으며, 모든 일에 건전한 판단을 내렸다. 간단한 방법으로 전함을 산과 바위뿐인 육지를 건너게 하여 정말 함대를 놀라게도 하였다. 그는 가장 정확한 기억력을 소유하여 1761년 국가 재정적 위기에는 국회에 최선의 서한을 내었다. 언제인가는 내가 그에게 요청하기를 당신이 영계에서 보고 들은 것을 책에 삽입하지 아니하면 단순한 신앙을 가진 사람의 오해와 회의를 사지 아니할 것이 아니냐 하였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요 또 나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요, 오직 주께서 명령하신 것을 쫒아서 쓴 것뿐이며 다만 위에서 계시하여 주신 증거에 불과합니다.]고 말하였다. 2. 스프링겔(Christopher Springer) 그와 각별히 친밀하게 지냈던 스프링겔이 쓴 것 가운데 [그의 아버지 제스퍼. 스베덴보리는 스카라라의 박식한 감독이었으나 임마누엘 스베덴보리는 더 풍부한 신학이 부여되고, 그의 지식은 진지한 것이었다. 그는 변함없는 우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생활은 극히 검소하였다. 입는 것도 소탈하였고, 먹는 것도 커피에 밀크, 버터에 빵뿐이었다. 간간이 물고기는 즐겼으나 육지 물고기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포도주는 언제나 두잔을 넘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뜨기 전 예루살렘 교회가 언제 나타나느냐 물었더니 그것은 천사도 아무도 모르고 다만 주님만 아신다. 계시록 21장 2절을 보면 새 예루살렘이 틀림없이 나타날 것을 알것이다]라고 3. 쟌. 크리스티안. 쿠노(John Christian Cuno) 스베덴보리의 인상에 대하여 그가 45세 때 새긴 흉상이 있으나, 그 얼굴은 항상 의식적 능력에 차 있었으며 활기를 띠고 있었다고 쿠노는 말한다. [그가 웃는 푸른 눈으로 나의 얼굴을 보면 그는 마치 진리 자체로 나에게 말한듯 보였다. 그는 순진무구하고 나는 그를 보면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무엇인지 침착한 것이 보였다. 나는 그를 만나자마자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 나이 많으시면서(81세) 수행원 하나 없이 여행을 하십니까? 하자 나에게는 수행원이 필요하지 아니합니다. 천사가 언제나 나와 함께하며 말하며 또 사귐을 계속하기 때문입니다]고 쿠노는 그의 단순한 생활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스베덴보리는 어떤 상정 방 하나를 빌어 살았다고 하며 거기엔 몇 아이가 있었다. 그가 그 노인에게 대하여 묻자 그들은 대답하기를 그분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므로 그를 위하여 할일이 별로 없어요. 다만 아침에 난로에 불을 피워 드리는 것 뿐입니다. 그리하여 밤 7시에 침실에 들면 아침 7시가 되어야 나온다는 것이었다. 낮에는 스톱가에 앉아 있어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여 밤에 자리에 들때에는 불조심을 각별히 한다는 것이었다. 의복도 손수 마련하므로 어느 때는 그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며 아이들을 어떻게 귀엽게 하든지 아이들이 부모 이상 따른다는 것이었다. 단순과 진실, 이것은 그의 생활철학이었다. 겸손과 친절 이것은 그의 도덕철학이었다. 가장 높으신 주님을 모시고도 가장 평범하게 사는 것, 그것은 그의 신비생활 철학이었다. 펜으로 주님의 명령을 긁은 그곳이 그에게는 유일한 낙원이요, 위안이었다. 그 모습 그 긁는 소리가 지금도 보이는듯 들린다. 스베덴보리에 얽힌 일화 | E. Swedenborg
Ⅵ 스베덴 보리의 영적 통찰력 스베덴보리는 그 생활이 극히 다방면이어서 우리가 이해하기 곤란할 정도이나 그는 균형이 잡힌 원만한 사람이었다. 더욱이 새로운 사명을 띠고 쓴 방대한 수십권의 책도 이론 정연한 것이었다. 그 책에는 주님을 비롯하여 영계에 관한 것, 12제자를 만난 것, 많은 벗들, 또는 수천년 전의 성인, 군자 및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한 것을 비롯하여 시정해야할 기독교의 모든 것이 기재되어 있으나 먼저 땅위에서 관계있는 것과 결부하여 생각하며 이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게 할까 한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많은 사람이 입증하는 것이므로 독자들도 다소 확신할수 있으리라 믿어서이다. 1. 스톡홀름의 불 1759년 7월말 토요일 하오 4시에 스베덴 보리는 영국에서 골덴불그에 도착하였다. 그때 윌리암 . 카스텔은 그를 그의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같이 하였다. 그때 초대를 받은 사람은 15,16인이었고 모두 평화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6시경 스베덴보리는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갑자기 자리를 떠나 밖으로 나갔다. 돌아올때는 그의 얼굴은 수심과 걱정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큰 일이 난 것을 암시하였다. 사람들이 웬일인가 묻자, 지금 스톡홀름(300마일 떨어진 장소)에 불이 나서 아주 맹렬히 타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언제 꺼질지는 모를뿐더러 내 친구 집은 벌써 타버렸으며 우리집도 무엇인가 위험하다고 하며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그러자 8시경에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더니 대단히 기뻐하며 말하기를 [하나님께 감사한다. 불은 꺼졌으며 우리집 세 번째 집까지 와서 꺼졌다]하였다. 이 말은 골덴불그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더욱이 수도와의 밀접한 거래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걱정하였다. 골덴불그 지사는 다음날 아침 스베덴보리를 불러 그 실정, 이재상황, 손해 정도들을 묻자 그는 눈으로 본듯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다. 주일을 지나 월요일 스톡홀름에서 특보가 도착하였다. 이것은 스톡홀름 상공회의소에서 불이 아직 타고 있을 때 보낸 것인데 그 내용은 스베덴보리가 말한 것과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화요일 아침에 조정에서 어서가 지사에게 왔는데, 그에 의하면 화재의 이모 저모 타버린 중요 건물, 손해액 등 스베덴보리의 말과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불은 8시에 꺼졌다는 것이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도 1758년 8월 10일 코닉스버그에서 크노부로호에게 보낸 편지에 스베덴보리에게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이러한 초인적인 능력이 있는 것을 믿을수 밖에 없다 하였다.(유물론자이니 신을 말한다 할지라도, 그러므로 나중에 부정하였음, 예언자의 꿈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2. 죤 웨슬레(Rev. John Wesley) 감리교회 교주 죤 웨슬레는 스베덴보리의 저서를 읽다가 처음에는 상당히 경건한 사람으로 보았으나 나중에는 1760년 2월 28일 그의 일기장에 기록한바와 같이 그의 말을 믿으려면 차라리 미신같은 이야기를 믿는 것이 상책이라 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말한 저서 가운데는 무엇이라 말할수 없는 깊은 진리가 있는 것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그를 한번 만나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자기만 알고 가지고 있었다. 1772년 2월 웨슬레는 그 보조 설교자 사무엘 스미스 목사와 더불어 순회전도 계획을 세우고 있는 차에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그 편지를 내보여 주었다. 그 편지의 내용은 “1772년 2. 전략, 나는 영계에서 당신이 나와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강한 소원을 알았습니다. 만일 귀하께서 나를 찾아 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당신의 종 임마누엘 스베덴보리] 웨슬레는 이 편지를 보여주며 실은 자기가 심히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그 말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였다 하였다. 그후 웨슬레는 6개월의 전도여행을 떠나므로 돌아와서 만났으면 하고 편지를 띄웠으나 스베덴보리는 그때까지 자기는 이 세상에 있지 않을 것을 말하고 그는 3월 29일에 저 세상으로 갔던 것이다. 3.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 스베덴보리는 자기의 죽을 날을 예언하였다 하였거니와 남의 죽을 날짜도 예언하였다. 스베덴보리가 스톡홀름에 있으면 친구들은 으레히 그에게 그의 영계에서 본것에 대하여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돌자 스베덴보리와 친면은 있으나 그의 영계의 소식을 별로 믿지 아니한 프랑스어 교수 제이비쉬러는 이런 말을 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잇던 몇몇 사람들이 그의 말이 확실한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이런 문제를 제출하게 한 것이다. [우리 친구 중에 누가 먼저 세상을 뜨겠는가? 알아 맞히라]는 것이었다. 스베덴 보리는 그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고 잠시동안 묵상한 뒤에 엄숙하게 말하기를 오로프 오로프슨이 내일 아침 4시 45분에 이 세상을 뜬다 하였다. 그때 그 말은 믿을수 있는 정도로 들렸으나 오로프의 친구 중 한 사람은 그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 보기 위하여 다음날 새벽 이른 아침에 오로프 집을 찾았다. 그때 마치 그가 잘 아는 오로프의 사환이 나오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자, 사환은 그에게 말하기를 주인이 방금 갑작스러운 발적으로 세상을 뜨셨다 하였는데 그 방 시계는 이상하게도 그 주인의 세상을 뜬 시간을 알리는듯 4시 45분을 가리키고 멈추어 있었다. 4. 피터 3세의 죽음(Peter 3 of Russia) 1809년 사이에 융 스프링의 기념수첩에는 어떤 사랑하는 친구의 증거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1762년 러시아의 황제 피터 3세가 세상을 뜬 바로 그날 나는 스베덴보리와 더불어 암스테르담에서 몇몇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도중 스베덴보리의 얼굴은 갑자기 변화하였다. 이것은 그의 영혼이 그 몸안에 있지 아니한 증거였으므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평상시와 같은 얼굴 빛으로 회복되었으므로 무슨 일이 났는가 물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대답을 않고 있다가 다시 묻자 그때 대답하기를 [방금 피터 3세가 옥중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이 신문에 어떻게 발표되는가 비교대조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이에 대한 신문보도는 그가 말한 직관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를 증거하였다. 그는 이렇게 그가 보고 들은 정확한 것을 말하고 공상이나 망상으로 말하는 것은 없었다. 5. 그는 참으로 지금은 세계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져서 영계의 영인들과의 교통이 가능하다 하여도 모두 반대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ekdt는 그렇게 일반적인 것이 아니였다. 그러므로 대다수가 그에 대하여 의심하였고 반대도 하였으나, 그를 직접 아는 사람만은 그의 주장이 거짓이라고는 볼수 없었다. 그의 친구 칼롭삼이 말하기를 [언제인가 나는 나의 교구 목사로 계시는 분에게 가서 스베덴보리의 학설과 그의 성경해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그 존경할만한 노인목사는 “그러한 사실이 어떠하다는 비판은 주님께 맡기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많은 사람이 그에게 대하여 비난하는 그것으로 대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직접 그와 더불어 말하여 보고 그는 참으로 경건하고 선한 사람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6. 영계에 있어서의 러시아 여왕 러시아의 궁정목사 오로노스코우가 스톡홀름 주재 대사로 와 있을 때 칼롭삼은 그에게 스베덴보리를 소개하고 그의 저서를 권하였다. 그의 책을 읽어 보고 그는 스베덴보리를 만나보기를 심히 원하였다. 가장 큰 기쁨으로 그 책을 읽었다는 것이었다. 롭삼은 그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스베덴보리 및 몇 친구를 식사에 초대하였다. 거기에는 국립상과대학장 및 저명한 인사들도 있었다. 회식 중 오로노스코우는 여러 가지 질문 끝에 혹 영계에서 러시아 여왕 엘리자벳을 만났느냐 물었다. 스베덴보리는 대답하기를 [네 만났습니다. 여왕이 백성을 위하여 측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영계에 가시고 난 다음에 알려졌습니다. 왜냐하면 여왕은 회의에 나아갈때는 언제나 그 나라가 그백성과 더불어 잘 다스려지게 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하고 나아간 일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놀라움과 감격에 넘쳐 눈물을 흘렸다. 7. 여왕 우루리카의 아우(Uerica Eleonora Queen) 스베덴보리는 어느날 여왕 우루리카의 초대를 받았다. 그때 여왕은 여러 가지 질문을 한 다음에 그의 아우인 프러이사의 황태자를 혹 영계에서 만났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여왕은 그러면 이번에는 여왕의 인사말을 좀 전해 달라 하였다. 그는 그러자고 대답하였다. 여왕은 아마 그가 영인들과 교통도 있는 것을 알고 웃음의 말로 건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 다음 초대에 여왕 앞에서 서슴치 않고 나아가 그의 아우 오구스터스 윌리암에게서의 인사말을 전하고 그가 누나의 마지막 편지에 대하여 회답을 못하고 세상을 떴다는 요지의 전인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스베덴 보리를 거쳐서 하려는 바라고 말하였다. 그러져 여왕은 아주 놀라고 [하나님이 아니고 누가 이 비밀을 알리요]고 하였다. 그것은 스베덴보리와 프러시아가 전쟁 중이어서 적의 나라에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허락되지 아니할뿐 아니라 설사 보낸다 하더라도 스웨덴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 편지는 독일 용지를 써서 조심스럽게 백림에서 부쳤던 것이다. 그 편지를 받은 황태자는 그 답신을 하려 하였으나 병으로 이루지 못하고 다만 그 편지를 황제에게 주고 세상을 떴던 것이다. 황제는 나중에 미완성대로의 그 편지를 우르리카에게 보냈는데, 그 문맥과 스베덴보리의 말은 일치하였던 것이다. 8. 하트빌드 여사와 죽은 남편 이것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제자 후라우혼 크노부로흐(Charlotte Knobloch)가 스베덴보리의 영적 통찰력이 있는가 없는가 판단하여 달라고 조른데 대한답신 가운데 있는 것으로 보로우스키 저 [칸트의 생애]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스톡홀름 주재 전 화란 대사의 미망인 하트빌드 여사는 남편이 죽은 뒤 은물세공자 크로운에게서 죽은 남편의 은물세공값을 치루어 달라는 청구를 받았다. 부인은 그것을 분명히 지불한 기억이 있으나 영수증이 없으므로 걱정만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액수도 상당하므로 상심 끝에 한번은 스베덴보리를 초대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를 초대한 다음 일부러 오시게 하여서 대단히 죄송하다 하고 자기의 딱한 사정을 말하고 혹 영계에 가서 자기 남편을 만나 그 대금을 지불하였으면 그 영수증을 어디에 두었는가 물어 보아 줄수 없는가 물었다. 스베덴보리는 부인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3일후 다른 사람과 함께 커피 아워에 스베덴 보리를 또 초대하였다. 그때 스베덴보리는 침착한 태도로 그가 부인의 남편과 만났다는 것, 그라 말하기를 값은 병이 나기 7개월 전에 지불하였다는 것, 영수증은 이층 양복장 미닫이 속에 두었다더라는 말을 하였다. 그러자 부인은 실은 그 양복장을 모조리 뒤져 보았으나 그 영수증은 찾지 못하였다 하였다. 스베덴보리는 대답하기를 부인의 부군은 이렇게 말하더이다. 그 서랍을 열면 판자가 하나 있으니 그 판자를 들춰 내면 그 속에 영수증이 있을 것이라고 이 말을 듣고 그 방안에 있던 손님들은 전부 이층으로 올라가서 판자를 하나 들춰보자 그 밑에 과연 상자가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상자를 들춰보니 부인이 찾고 싶어한 영수증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칸트는 말하기를 [나는 내게 이러한 놀라운 그러나 연약한 것을 쉽게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누가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믿기 어려운 영계의 환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확실도 합니다. 나는 언제나 건전한 이성으로 이러한 것은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 왔으며 이것이 스베덴보리에 대하여 나의 주의를 끌때까지의 나의 위치였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주어진 확실성은 나를 아주 놀라게 하였습니다.] 9. 스베덴보리와 한 상인 1770년경 앨머훨드에 한 상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어떠한 면으로 보든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 이러한 일화가 있다. 그는 상용으로 암스테르담에 갔었다. 그때 그곳에는 스베덴보리가 살고 있었다. 상인은 이 이상한 사람에 대하여 듣기도 하고 읽기도 하였으므로 직접 그를 만나는 것이 더욱 좋다고 생각되어 그를 방문하기로 정하고 한번은 찾아 갔더니 이 드높은 친근한 노인은 정중하게 그를 맞아들이고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이러한 말이 오고 갔었다. “상인: 상용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에게 경의를 표시하려고 찾아 오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쓰신 책을 읽고 당신이 얼마나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리: 어디서 오셨습니까? 상인: 나는 벨그 공원에 있는 엘버훨드에서 왔습니다. 당신이 쓰신 책은 아주 아름답고 유용하여 퍽 인상깊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얻은 근원은 실로 불가사의하게 보통 것이 아니여서 정말 이것이 틀림없이 영계에서 왔다고 무슨 증거라도 받을수 있을는지요? 보리: 혹 그가 잘못 받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있을수 없습니다. 나는 전후 모순당착이 없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인: 그것은 다 잘아는 여왕의 죽음이라든지 스톡홀름 화제 말이십니까? 보리: 그것도 그렇습니다. 상인: 그러나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아직도 그것을 의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당신은 내게도 그것이 믿을만하다는 무슨 증거라도 보여줄수 있습니까? 보리: 왜 못하겠습니까? 해보지요. 상인: 나는 전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디스벨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폐병으로 죽었으나 그가 죽기 얼마 전에 나는 그를 찾아가 한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같이 논쟁하였습니다. 당신은 이 죽은 나의 친구에게서 우리가 그때 무엇을 가지고 말하였는가 말하여 주실수 있습니까? 보리: 만나 보지요. 그의 이름은 무엇이라 합니까? 상인: 상인은 이름을 대었다. 보리: 언제까지 여기 머물러 계시겠습니까? 상인: 한 열흘 더 있으려 합니다. 보리: 그럼 다시 한번 와 주실까요. 그를 혹만나 뵈올지 모르겠습니다.” 상인이 일을 마치고 수일 후 보리를 방문하자 그는 웃음을 띄고 그를 영접하며 당신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은 [만물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쌍방의 내용을 자세히 일러줬다. 이 상인은 아주 놀라고 감격에 넘치면서 묻기를 내 친구는 지금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아주 행복한가요? 보리는 대답하였다. 그는 아직도 음부에 있어 [만물의 회복]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이 대답은 그를 극도로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외쳤다. [오오 주님 저 세상이란 무엇입니까?] 보리는 대답하였다. [저 세상은 이 세상 생활대로 계속 됩니다. 거기서 벗어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있을때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상인은 잘 납득하고 엘버훨드로 돌아갔다. 10. 스베덴보리와 공장주인 칼 게올그 드 후래스의 아내이며 골덴버그의 공자주 보란델의 손녀인 에이 에이 드 후레스 여사는 1869년 루돌프 레오날드 타훌 목사에게 아래와 같은 서신을 보냈다. 1770년 스베덴보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골덴버그에서 큰 모임이 있었다. 그때 큰 직물공장을 가지고 있던 공장주 보란델도 참석하였다. 식사중 스베덴보리는 갑자기 보란델을 향하여 [당신은 지금 곧 당신의 공장에 가 보시지요]하고 날카롭게 말하였다. 평상시와는 다른 어조였기 때문에 공장 주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보다 하고 곧 공장으로 돌아갔었다. 그랬더니 큰 푸대 하나가 난로 가에 넘어져서 막 불이 붙으려 하고 있지 않은가 조금만 늦게 도착하였다면 그의 공장은 다 불에 타서 재가 될뻔한 것이었다. 그는 불을 끄고 곧 돌아와서 스베덴보리에게 감사한 말을 하였더니 그는 웃으면서 위험한 것이 보여서 또 시기가 박두하여 할수 없이 그렇게 급히 가시도록 하였다 하였다. 11. 스베덴보리와 항해. 1766년 9월 스베덴보리는 영국에서 스톡홀름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크리스토프 스프링겔은 스베덴보리에게 잘 가시라는 작별의 인사를 마치고 선장 딕슨에게 항해중에 그를 위한 준비는 잘되었는가 물었다. 선장은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스베덴보리는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친구여 우리들은 많은 준비가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다음 주일 오늘 두시에 스톡홀름에 도착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후 선장이 영구에 다시 돌아왔을 때 하는 말은 그 배는 스베덴보리가 말한 바로 그날 2시에 입항하였는데 내 평생 그렇게 알맞은 순풍에 항해하여 보기는 처음이라 하였다. 위에 있는 보기들은 스베덴보리를 보고 그의 말을 듣고 그의 예언이 틀림없이 들어맞은 것을 직접 경험한 증인들의 말인 것을 엿볼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볼 때 그냥 가소롭게만 여길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주께서 왜 그를 거쳐서 이러한 증거를 나타내어 보이셨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아직도 진리에 대하여 단순하지 못하여 지극히 간단하게 믿을수 있는 것도 이렇게라도 해서 보여 주지 않으면 믿지 않으려는 인간의 심리를 보살피시고 그의 심리상태를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하여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한 것이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 가운데는 또 이런 말을 할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지나치게 환상이나 직관이나 꿈으로 본 것이다. 완전한 이성을 가진 사람은 믿을수 없다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앞에 말한 모든 사람도 완전한 이성을 가진채 증언하였거니와 그들은 그래도 직접 경험이라도 하였기 때문에 믿었을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러한 경험은 하지 아니하였으나 건전한 이성에 입각하여 보아도 그의 말이 진리인 것을 믿게 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명인사들의 말을 아래에서 소개할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