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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호암지구 재개발
본가가 있는 아파트에 거리를 하나 두고 안양1동 966번지 및 그 주변일원을 호원초등학교 이름을 따서 호원지구라고 부른다. 학교 뒤로 부모님이 사는 럭키 아파트가 있고 학교 밑창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일반주택 사이에 우리 집의 기둥이라 할 송암 건물이 있다. 지하층은 노래방, 1층은 약국하고 통닭집이 있고 위로 태권도장 당구장 사무실들이 포진한 승강기 딸린 5층 건물로 큰 도로에서 조금 들어와 동네 한 가운데 위치한 관계로 몫이 좋다는 곳이다. 비록 대지 89평으로 다소 협소해 보이기는 하지만 코너 변으로 거의 빈 층이 없이 그간 잘 지내왔으니 큰 도로변에 위치한 건물보다는 오히려 낫다싶은 알짜배기 건물이었다.
그런 건물의 화평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 2009년쯤이다. 안양 권 재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515-2 일대(구역 면적 12만 3962㎡)에 위치한 임곡3지구와 덕현지구와 더불어 호원지구가 신문지상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그 이전인 2006년 8월 경기도 기본계획이 고시되었고 2007년 2월 추진위원회 승인을 거쳐 2007년 4월 28일 조합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이어 5월 29일 조합설립인가를 득했다고 하지만 신문에 큼지막하게 나오니 비로소 실제 상황이다 싶고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송암 건물이 태어난 지 고작 16년이니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싶었다. 그런데 갈수록 묵과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재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도시계획위원회심의와 지정고시를 한 후 조합설립 추진위원회 구성 및 구청장의 승인이 있은 후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사업시행 인가를 받고 시공자 선정이 이루어지고 관리처분 계획인가를 받는 수순으로 진행된다. 2011년 6월 말 안양시청 도시개발과 재개발팀에 51명의 조합설립동의서 철회신청을 했을 때만해도 한마디로 지지부진의 연속이었다. 여타 지역들도 태반 거의 비슷한 추세지만 호원지구도 추진 위원들 간에 내분이 일어났었다. 급기야 그 무렵 추진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그것도 여성들이 주동이 되어 일명 ‘삭발식’도 가졌다. 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해 당시는 의아했지만 지금은 그들의 당찬 결의가 우리집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음을 이제 실감한다.
호원지구는 구역면적은 약5만6.000평으로 안양 지역 내에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안양시 정비구역지정 당시 기존 1종, 2종, 준주거지역이 용도 변경되어 3종일반주거지역 및 준주거지역으로 대폭 상향되는 등 안양 시에서는 특혜성의 전무후무한 승인을 받고 평균 층수가 상향되어 건축물의 높이가 최대 35층까지 적용되는 등 우수한 사업성을 갖추고 있었으니 누구인들 군침을 아니 흘릴까. 안양시와 추진위원회측은 전체 건축물, 약 66%가 노후불량 건축물로 특히 2~3층 이하 건축물이 약 81%로써 여름 장마철 침수 등에 의한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을 하였지만 그곳이 침수가 된다면 그 보다 낮은 위치의 지역들이 대부분인데 그 쪽은 안전할 것인가. 이는 단지 허울에 불과한 것이다.
말인 즉 호원지구는 호원초등학교, 덕현초등학교, 호계중학교, 평촌공업고등학교, 신기중학교, 대한중학교 등 다수교육시설이 인접해 있고 인근 지하철역은 금정역, 범계역, 인덕원역 등이 위치해 최고의 입지를 자랑하며 편의시설 역시 국제유통단지, 호계 근린공원, 평촌 아트홀, 평촌 중앙공원, 자유공원, 홈플러스 등이 있어 재개발 사업이 이뤄질 경우 최고의 명품단지를 구성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 누구나 호시탐탐 재개발이 성사되기를 학수고대 했었다.
아무튼 2010년 9월 1일 정비구역지정고시를 획득하고 2010년 12월 15일 최단기간 내에 조합설립동의서 75%를 징구하였다고 하는 추진위원회는 갈등과 분쟁으로 약 1년 이상의 시간을 낭비하더니만 2012년 새 조합장을 선출하더니 2012년 5월 29일 조합설립 인가를 득하였다. 그때부터 나도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사업시행인가 단계로 그것이 통과 된다면 재개발은 거의 기정사실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때부터 투쟁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현실을 직시한 사람들이 앞에 나섰다. 이미 덕천지구의 경우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부 이주가 시작된 상태라 위기감은 고조됐다. 원주민의 경제 수준에 맞지 않아서 원주민의 절대 다수가 쫓겨나는 것을 뻔히 예측 하면서도 정비 사업 인가를 내주었다면 안양 시장은 시민의 공복임을 망각한 것이라고 반대파들은 입을 모았다.
관련법은 이러하다. <도시 및 주거 환경법 제 16조 2항(조합 설립 인가의 취소) (2)토지등 소유자의 100분의 10이상 요청이 있는 경우 시장,군수는 토지등 소유자의 의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개략적인 정비 사업비 및 추정 분담금 등을 조사하여 토지등 소유자에게 제공 할 수 있다. 이 경우 시,도지사는 조사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 할 수 있다.>
위 조항에 근거하여 안양 시장은 즉각적으로 위 조항대로 해줄 것을 청원하고 이에 근거하여 사업 타당성 조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인가와 허가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밖에 매몰 비용(정비 사업비)을 즉각 공개 하라든지 용산 참사를 기억 하느냐 , 무리한 개발은 중지되어야 한다고 많은 말들이 나왔지만 이 또한 허사였다.
그 무렵 호원지구는 정비구역지정 변경 승인업무를 진행 중으로 절차상 주민설명회를 개최하고 주민공람을 실시하던 때인데 2013년 5월 22일, 6월 5일에 개최된 주민설명회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참 마음 아픈 일이지만 엄마도 시청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신문에 엄마 얼굴이 찍혀 나왔다. 반대파들은 이어 재개발추진 동의서가 위조됐다는 증빙을 제시하며 검찰에 고소를 하고 국과수에 감정의뢰까지 했으나 어찌된 것인지 위조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판결을 질질 끌더니만 번복은 되지 않았다.
엄마는 이번에는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소송비용까지 추렴해서 냈는데 결과가 그러니 낙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재개발 사업 해제를 위한 한시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의 근거에 기대를 걸었었다. 즉 분양 절차가 끝난 뒤에도 재개발지구 지정을 해제할 수 있는 기준인 25%를 넘어서 26% 해제동의서를 제출했지만 시는 일부 문건에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해제동의 전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과연 관청이 공정한 업무를 본것인가에 대해 지금도 의문을 갖는다.
지루한 소송은 계속 이어졌다. 어제까지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길을 한가운데로 두고 반대파와 찬성파로 나뉘어 각기 다른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를 걸고 아수라장 한 복판에 서서 갈등을 수년째 계속했다. 그 와중에 2015년 6월 2일 호원지구는 안양시로 부터 사업시행인가를 받았고 정비계획 변경에 따른 후속 절차도 마무리 했으며 감정평가 및 분양신청 준비에 돌입할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반대파들은 패망할 수밖에는 없는 처지였다.
흔한 말로 실탄이 없는 사람들이 당해낼 재간은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그들은 어디서 탄알이 조달되는 것일까. 그들이 2012년 5월 29일 조합설립인가를 마치자마자 한 일은 시공사 선정이었다. 노른자 땅을 노리는 시공사 10개 업체와 설계업체 17개사가 득달같이 달려 왔고 시공사로는 포스코 현대 대우 SK건설이 선정 됐다. 누구는 그들이 이미 수백억을 지출했다고 했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 둘 것이 있다.
재개발과 재건축, 이 차이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재개발은 공공사업이고 재건축은 민간사업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재개발은 전부 다 갈아엎는 경우(새로운 동네가 만들어지는 것)를 생각하면 되고 재건축은 일부만 다시 보완하는 경우(아파트 재건축)를 생각하면 된다. 그렇기에 투자를 할 때는 재개발은 감정평가액이 얼마로 측정되었는지가 중요하며 재건축은 단지 내에 평형 순위가 몇 등이냐가 중요하다.
재건축은 조합설립에 동의하지 않은 자에 대해 토지 및 건축물의 소유권을 매도할 것을 청구할 수 있는 '매도청구권'이라는 것이 있고 재개발은 공공사업의 성격이 강하여 해당 사업 부지에 대한 강제수용권이 있어서 조합설립에 동의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조합원이 된다. 이주비의 차이도 있다. 재개발은 세입자에게 이주비가 있지만 재건축은 없다. 하지만 이 말도 정설은 아니다. 이번에 강남 재건축을 보면 그 진면을 알 수 있다.
주요 건설사들이 강남 재건축 수주를 위해 수조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이주비와 이사비를 지원할 예정이라 시중 유동성 과잉 우려가 짙어졌다는 뉴스를 얼마 전 보도 한 바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수주전을 벌이는 현대건설과 GS건설은 감정평가액의 60%를 이주비로 무상 대여하겠다고 제시했다. 현재 반포주공1단지 전용 84㎡의 경우 시세가 약 27억 원이며 107㎡와 196㎡은 각각 약 34억 원, 42억 여원 수준이라 60%를 이주비로 받을 경우 적어도 가구당 16억원에서 26억 원까지 무이자 대출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현대건설은 이사비 명목으로 가구당 7000만원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빌려주는 게 아니라 1600억원(조합원 2292명)을 공짜로 주겠다는 것이다. 이 작은 평수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은 거위가 되었다.
30억이 넘는 반포 주공 , 이는 어찌 가능한 노릇인가. 질때만 해도 5층에 용적률도 적었으니 용적률 300%에 수십층 고층으로 쭉쭉 뻗어 오르면 바로 남는 돈이 된다. 재건축에서 용적률은 사업의 승패를 거의 좌우 한다.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 바닥면적의 비율로 높아질수록 재건축 가구 수가 늘어난다. 과거 180%정도인 용적률이 300%를 육박한다면 교통 좋고 편리하다는 강남에 위치한 요지의 땅은 돈방석에 오르는 것이다. 재개발은 공공사업의 성격이 강해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적용 되고 있기 때문 관할청은 재정비를 통해 말끔한 동네로 탈바꿈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암암리 재개발 편을 들기 십상이다. 호암지구도 마찬가지였다. 사업시행인가를 받자 안양시(시장 이필운)는 임대주택 건설비율 완화에 대한 정비계획 경미한 변경(안)을 고시했다.
이곳의 임대주택 건설비율은 당초 전체 세대수의 17% 이상에서 5% 이상으로 축소됐다. 이에 따라 임대 세대수도 670가구에서 193가구로 대폭 줄었다. 이는 곧 일반분양분의 추가 확보로 이어져 사업성 제고 효과를 가져다준다. 그 정비계획 변경으로 전체 계획세대수는 3936가구에서 3850가구로 감소했으나 분양 세대수는 3266가구에서 3657가구로 늘어나 전체 세대수 대비 분양분 비중이 83%에서 95%로 늘어난 것이다. 뭐 이런 상황이니 가짜뉴스도 난무하고 프리미엄도 부추기며 법원도 마다하지 않고 건설업체가 돈을 쓰며 온 동네를 안 누릴 수 없다.
이윽고 2016. 04.22.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되고 7월부터 입주민 이주가 시작되었다. 비산동 대림대학교 인근에 위치한 임곡3지구 또한 2016년 11월 관리처분 계획 인가가 되고 주민들이 이주를 시작했으며 한때 취소됐다는 소문이 나돌던 덕현지구 주택 재개발지역 또한 관리처분 인가가 2017. 2.27 고시가 되었다. 어느 곳이고 공공사업추진을 이겨낸다는 것은 역부족이다 싶다. 결국 돈과 공공기관의 후원에 반대자들은 지치고 등 떠밀릴 수밖에는 없다. 그쯤 사람들은 이게 아니다 싶었던 모양이다. 공시지가 수준의 보상비라 하니 난리들이 났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이주를 해야 하니 주변 임대료는 엄청나게 올랐는데 당장 갈 곳도 없다.
생활터전을 떠나 멀리 나설 수도 없고 그 지구가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해도 그 보상비로는 내 집 마련도 가당치 않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정류장을 떠난 지 오래다. 엄마도 그간 마음고생만 죽도록 하고 허탈하게 돌아서야만 했다. 말끔하게 단장될 새 아파트 환경, 건설사는 돈 벌어 좋고 관청도 수년간 진짬 흘린 결과로 축배를 들지는 몰라도 그 동네 원주민들은 모두 눈물의 이삿짐을 싸야 했다. 꼭 그렇게 정비사업을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원주민들은 모두 원수가 되어 버렸고 동네어귀에서 떡볶이를 팔던 영세상인들은 살길마저 막연해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뉴스가 마음을 또 아프게 한다. 호원지구에 조합 측이 수십 대의 CCTV를 설치, 이를 두고 ‘치안 확보’와 사전 예고도 없이 진행된 ‘감시 목적’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며 갈등을 빚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다. 조합 측은 호계 1ㆍ2동 재개발 정비 지구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 조합 측은 설치 목적에 대해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될 시 빈집 발생으로 말미암은 각종 범죄 예방과 치안 확보를 들고 있지만 조합 측이 설치한 CCTV를 두고 일부 세대주와 주민들은 보상협의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떠한 사전 공지도 없이 설치된 CCTV가 반대 의사를 가진 일부 주민들을 위한 개인 감시용 목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이렇듯 아직도 그곳은 완전하게 청산이 된 것은 아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보상비 문제, 다음에는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