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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용회장과 함께하는 가을여행
MBC보도국장을 하셨던
김주태기자의 북콘서트
3부:
엄의현시인과 나누는 대담
기자, 언론인, 국장, 조견당 대표
어떤 호칭이 익숙? 국장
어머니 김희선여사에 대한 경외심
어머니의 지혜로운 삶
소나무상주
언론인
2017년 책은 고택에 담겨있는 가치 정신과 철학
이런 거에 주안점을 뒀다면 이번 책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은 그
이따가 그거까지입니다.
석주 이상형 선생은 상하이 임시 정부의 초대 국무령입니다.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을 하와이에 계시던 이승만 대통령하고 취임하고 돌아가시고 그 안산을 했던 분이 석죽 이상형 선생인데 소재 국무령이라는 국무총리같은 겁니다.
임청각 종손이었던 이상형선생 일본 놈들이 우리를 병합한 2010년 그다음에 겨울에 안동의 위생들을 데리고
남부로 남자는 지고 여자는 이고
광목 두루마기를 휘날리면서 서간도로 건너가는 것이 그 독립운동의 시청 그래서 저는 그 집 주인 세 번이나 조카집을 팔아가면서 군대를 양수하고 끝까지 일본 사람들과 맞섰던 이상형 선생은 정말 너무나 훌륭한 13명의 에구 훈장을 받았던 집이나 멸무지화를 다녀오셨죠. 그 중선자인 이항증 이범주 형제는 자기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지 엄청나게 자기네 집인지도 모르고 서류를 떼어가지고 안동을 돌아다니면서 뒷박스 장사로 고학을 한 사람들이에요. 제가 근거를 알린 사람이 전부입니다.
구름 문자 세 조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짙어가셨다고 칭송받았던 집이 구례감은 무조건 여러분 한번 가보십시오 왕조 때 유희주 장군의 집인데 영조의 임금이 유주장으로 국방을 지키는 무인이었어요. 근데 그분의 공을 들여서 왕궁의 목수를 보내서 집을 지어줬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지금 그 집의 종손이 도둑이 와서 잔뜩 물건을 훔쳐가다가 종손이 도둑이야. 그랬더니 종손을 쳐가지고 몸은 회복됐으나,
정신이 돌아오지 못해가지고 그 영광스러운 집안의 종손이 지금 왔다 갔다 하는 집이고
시간의 영화와 인간의 삶이 과연 무엇인가 참으로 운조루
우리가 지나쳐온 시간이 머문곳.
먹을 딱 찍어가지고 핵을 빠르게 가면 화선지의 먹이 그 묻지 않은 여백이 생겨요. 그게 뭐냐 하면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여백이거든요.
저도 대한민국 사회가 그런 사회라고 봅니다. 빨리 가다 보니까 무언가 타임라인 현상 타임의 지체
시간의 지체 현상이 있다는 거죠?
90년대 많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은 60년대 70년대 시멘트 빼먹고 콘크리트 빼먹고 무엇인가 철근 빼먹는 것 때문에 삼품백가점 무너져. 그 지체 현상이 한국에는 존재한다는 것이죠. 시간이 2025년도 있지만 1990년도 있고 80년도 있고 60년도 있다는 거죠. 그게 고택에도 있다는 거죠. 이시대 글로벌하게 이끌어 있다는 걸 저는 이제 익히 알았던 거죠
35년 동안에 그 MBC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보면 제 제 능력에 비해서 굉장히 버거운 직장을 선택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냥 아주 좀 안정되고 조용한 그런 직장인이었다면 좀 행복하지 않았을까? 근데 MBC 기자 특히 사회복지 기자
2080 기자는 해도 해도 제 능력이 부족하고 해도 해도 뭔가 모자라고
제가 뭔가 기자라는 어떤 MBC라는 큰 회사를 등이 없고 뛰어도 내가 겁나지 못하고 뭔가를 할 수 없는 조직들이 벽처럼. 그런 거를 느끼면서 이제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행복했다는 거죠. 그래서 일단 굉장히 행복합니다. 지금 행복하고 어 또 한 가지는 고향을 위해서 뭐 제가 뭐 미력하잖아요? 힘도 없고 이제 나이도 먹고 뭐 별 힘이 없으나. 그래도 뭔가 고향 옆에서 자그만한 일이라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없이 왔거든요. 근데 살다 보니까 여기 있는 분들 만나보니까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합니다.
요령이 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감히 인간이 정신과 육체 두 가지가 있다면 저는 인간의 육체는 정신의 하부기관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이 시대는 다른 것 다 풍족하나 정신이 없는 시대라고 저는 말할 수 있어요.
또 우리 어머니나 이전 세대들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정신은 똑바로 박혀서 오늘날 이 변화와 풍요를 우리에게 갖다 줬다고 봅니다. 우리는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고택을 들여다봐야 돼요. 충분히 우리 고택 안에는 정신과 철학과 노블레스 오빌리쥬 정신이 들어있다는 거죠.
저는 거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내가 높은 집이 올라가고 옛날에 뭐 안동이나 진주나. 이런 쪽의 분들이 고관 대작이 많았어요. 그런 분들이 정삼품 이상에 올라가서 내가 잘나고 내가 그 직위를 통해서 부를 축적했다고 해서 커뮤니티가 인정하지 않습니다. 커뮤니티에 인정하려면 소통을 해요.
제가 이 고택 속에서 무엇을 배우게 되느냐? 소통하는 방법이 됩니다. 아까 그 운조루에 그 쌀도 흉년에 그 쌀 속에서 한방식 꺼내가지고 죽을 써서 연명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은 절대로 그 집에 불사지르지 않았죠. 없다는 거죠. 소통할 때 집이 살아남았고 소통 안 하고 잘난 척했던 집들은 다 불사지르고 죽창에 가서 죽었다. 이게 이제 지금 결론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았고 명절이면 좀 동네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흥겨운 어떤 장면이 있었단 말이죠? 요즘 청소년들은 생활은 뭐 피자도 먹고 콜라도 마시고 뭐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정신적인 풍요를 주지 못했다. 그들은 또 다른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고택 속에 있는 우리의 바탕에 정신과 철학에 좀 더 가까워지려면 고택에 담긴 정신과 철학을 좀 알려는 그래서 제가 이번에 이 책을 2017년에 출판을 했던 책을 다시 리모델링해서 낸 이유는? 그죠 할머니 할아버지 옛날에는 가면은 비슷한 책이 있었단 말이죠. 근데 저희 세대가 이미 서울에 있는 애들은 아파트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청소년들이 고택을 알 순 없겠죠. 그래서 멀어져 가고 있는 정신의 기원 정신의 세계를 찾아가라고 제가 이 책을 청소년들한테 바치려고 새로 만들었습니다.
뭐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소통과 어 좋은 관계 두 가지 단어로 소통과 관계겠죠? 그것이 잘 이루어진다면 그렇게 외롭진 않다. 내려와서 죽을 것 같지는 않다. 외롭더라도 적당히 외롭다. 저는 외롭다 고독하다는 것을 창조와 창작의 원천이라고 봅니다. 너무 사람들 속에서 행복하면 우리가 내보내고 들어갔으면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잖아요. 욕망이 그러나 외롭고 고통스럽고 극한 상황에 처해지면 살기 위해서 뭔가 쓰게 되고 살기 위해서 뭔가를 발버둥친다는거죠? 저는 그 결과물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그래서 그렇게 봅니다 .
5년을 고택에서 지내며
그 고택에서 저보다 더 조건이 안 좋았던 우리 할아버지들은 겉에 오고 300년을 내려왔기 때문에 조금해 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조금 최근에 좀 하게 됐습니다
살아남았고 어떤 점은 어떻게 백플도 사 왔고 어떤 고저고 이제 그런 책들이 옛날 이야기인데 저는 제 포커스는 그게 아닙니다. 여기에서 전세계 이를 대상으로 해서 우리의 독특한 문화가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상품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 요즘에 우리의 음식도 우리의 케이뷰티 화장품도 또 위에 뭐 케이 하우스 바로 또 저는 뭐 저 한옥에 살지만 한옥이야말로 전 세계 내로 좀 아름다운 건축물 과학이고 그래서 저는 이 안에서 옛것을 찾는다기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먹을 거리는 자원과 자산 이것을 찾는다면 아니 연극 한편이 영화 한 편이 두석엽 대기업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시대잖아요. 그런 정신적인 자산과 스토리는 이걸 찾을 필요가 있다.
근데 그중에 대표적으로 문화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나라에 대한민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이나 문화원을 한옥으로 치워놓으면 그 한옥의 스토리를 외국에 팔면 참 그런 아이디어가 이 책속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거 참 구현해서 그런 세상이 좀.
뭐 어떻게 불려가가지고 밥 한 그릇 먹고 헤어질 때 제가 그런 집에 산다는 걸 스티븐 데스가 알아요. 그러면서 제가 그런 제안을 했어요. 미국에 있는 한국 대사관 빌딩에 대사관이야.
그랬더니 대사 관저라도 외지에 멋지게 져서 거기서 외국 대사들을 불러서 파티에도 하면 얼마나 우리 문화를 그날 대사 부부가 한복을 입고 우리 음식을 대접한다면 몇 가지의 우리 한류를 전달할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계기가 될 거라고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살아가겠습니다. 그냥 300년 살아오면서 10대를 내려온 그 조변단 터전의 저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분이 300지 5대인지 7대인지 알 수 없으나 뭐 홍경래의 난 때였는지 아니면 뭐 동학군이 쳐들어왔을 때인지 알 수 없으나 전부 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터전을 지켜왔다. 나는 오히려 그 할아버지들보다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그런 마음으로 그냥 살 생각입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는 흔적이 남는다. 지나가 버린 뒤에 돌아보지 않으면 사라지는 게 너무 많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많습니다. 조견당뿐 아니라 철학도 정신과 문화 돈보다 소중한 게 너무 많습니다.
김국장님 귀한 이야기 들려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함께해 주신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제는 조급해 하지 않겠다. 외로움 그것이 저한테 굉장히 큰 약이에요. 그래서 저는 그냥 그 집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면 되고 세상이 그 집이 필요하다면 무엇인가 변화가 올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그 집이 필요하다면 또 무엇이고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뭘 해달라고 하자고 이제 앞으로 주장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세상에 알아서 할 것이고 조급해 하지 않으면 될 것이다. 뭐 제대에서 안되면 제 딸이 지금 21살짜리가 내려와 그 집을 지키고 있는데 걔가 하든지. 저는 조금 마음을 요즘에 조금 내려놨습니다.
사실은 지금 가지고 있는 조변당의 모습을 그 정신이 남겨있는 그 외향들을 훼손하지 않고 잘 전달해주는 것이 제 역할이다. 그러니까 고대 할아버지가 6대 아들한테 또 7대 손자한테 넘겼듯이 제가 10대 종소리 11대인 우리 딸한테 넘겨주는 것이 그리고 제가 잘 가르치고 있어요. 걔는 주차장에 와서 5년 동안 학교도 다녔기 때문에 그런 거를 배울 준비가 돼. 있고 지금 추천해 내려와서 살거든요. 그래서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터득할 거라고 믿습니다. 여기서 대사님 말씀 좀 부탁.
대사님: 근데 아마 제가 박물관을 그것도 제나라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걸 가지고 한지. 지금 16년이 됐는데 지금 이 조현당인 게 지금 한 세 번쯤 제가 가봤습니다. 근데 박물관이죠 저의 땅이 박물관이 되는 게 진짜 변화하는게 아니고 우리가 전통을 지키면서 그 가치를 인정을 할 때 그때 그 자체가 박물관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김시태 국장님이 사실 참 저 문화재인데. 누가 유산이거든요? 근데 이제 국가가 관심을 갖는다고 하다가 그걸 또 해제했다고 하는 얘기를 듣긴 했습니다. 근데 이런 것은요? 아, 한국 국가가 그런 지정을 했대면은 이런 거는 그렇게 쉽게 처리하거나 그렇게 자유롭지가 않았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우선 합니다. 그러나 어 저는 아까 우리 김국장님이 얘기했듯이 그리고 내게 아니다. 이후 우리 한국인의 유생인데 이걸 내 개인의 재산이다라는 생각을 안 갖게 되면은. 그러면 우리 모든 자산이 우리에게 되지 않을까? 이런 말씀을 감히 정확하게 어렵습니다. 그러나 박물 대표한테 16년 나이 70이 돼가지고 16년을 어 박물관 어 결혼한 지 16년째 되니까 설마 살았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이 사회에 내놓겠다고 공언하고 어 군하고도 원칙적인 봤지만 진행이 안 되고 있는 상태인데 이거 이 이편한 요사를 내가 관리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고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어떻게든지 유치될 것으로 좀 믿습니다. 이 애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잘못하면 생각이 달라지는데 이거 우리 조상께서 물려주신 우리 국민. 한국인의 유산을 그리고 영혼에서 이렇게 또 번영회가 관심을 가져주시고 우리 동강문학회가 또 관심을 가져주시고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는 염려하지 않아도 되지 제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동국대 대학원장:
그 인쇄협동조합 이사장을 하고, 또 이런 언론 또 이런 문화 이런 쪽에 관심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작년까지 소상공인의 회장을 하다가 이제 다 내려놓고 이제 자연이 일어나. 프리미엄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데 그 저 고택에 대한 관심도 있고 나도 없고 서울에서 있기보다는 또 좀 어디 멀리 가면 안 될까? 내가 태어난 곳이 원주입니다. 그래서 어른 고향이 안동이고 그래서 제가 오늘이 내 생일입니다. 그래서 아내하고 생일 여행을 이렇게 무언가를 보고 왔어요. 올라갈 때도 7시 38분 타고 올라가야 되는데 오늘 너무. 저는 좋은 선물을 받고 다녀갑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김지훈가수: 문화부장관이 계셨죠? 이참씨로 그분하고 제가 고택을 대사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홍성모화백: 환갑에
우리 김주태 국장님의 북한 콘서트를 축하드립니다. 저는 고향은 전라북도 부안인데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영월에 와서
네 제가 근데 동양당을 처음 그 접한 건 92년도 정도로 생각됩니다. 그때 이제 아버님이 이미 성함이 진짜 길자이신데 그때 그 풍경 그 보호책을 보고서 저는 전국에 있는 사찰과 소나무 재경 작가였었어요. 그래서 그 소나무와 고가가 잘 어우러지는 형태라서 영월에도 이런 참 선택이 있었구나 하고 그때 감독하고서 그 후에 우리 국장님은 MBC에서 근무할 때 저는 그때는 몰랐었어요. 근데 제가 4계절 조견당 차를 보게 되면서 조견당 4계를 그려 달력으로 그려 드렸습니다. 조견당이 천년동안 빛나기를 바랍니다.
김주태국장님의 클로징
고택에 얽힌 감동의 스토리
김해김가집에 시집오셔서 8남매를
잘 키우신 어머니
원피스로 2원짜리 똬리를 아끼나
맛난 된장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시는 후한인심
동네 사람들의 결혼식장 고택
갈데 없는 신혼부부의 신방
혼인시키고
애를 받아준 넉넉한 사랑
우리 가락에 맞춰 스텝을 BTS
고택에서 문화를 지켜
외국과 차별됐으니
글로벌 시대에 독창적인 우리 문화
고택이 있다.
앞으로 우리를 먹여 살릴
중요한 문화스토리 고택
스토리텔러 김주태.
우리나라의 지켜야할 우리 자산
조견당
꽃방화방벽
구름
우주
음양오행
2022년 은퇴후
고택에서 생활하는
김주태 기자
자랑스러운 유산 조견당
우리가 같아 자켜야
가수 김지훈님의 노래
시작하며
동강문학회 고진국회장님 축사
300년 고택 조견당
그는 고택을 지키며
고독했을 것이다.
이런 그를 우리가 같이
지켜줘야 할 것이다.
영월군 번영회에서 주관해주신
제도권밖의 일을 해주시는
황성일번영회장님 감사합니다.
도의원 축사
소중한 문화자산을 어떻게
자손에게 잘
고택을 지키며
저희 한국푸드표현예술치료협회도
푸놀치마음여행 힐링 에세이
<너, 밥먹다 뭐하니?>
등
하루5분 밥상 위의 심리학
시리즈를 출간하게 되어
많이 배울수 있는 기회가 되니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를 선물 받은 날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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