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박세영
일 년 농사 외
김장은 이제 그만하세요
다 사서 드시게요
세월은 도돌이표
겨울나기 위한 재가동이다
배추를 에워싼 고추 마늘 깨 파 젓갈 새우
어찌 보면 일 년 내내 준비한다
김장을 위해 한평생을 갈고닦는다
계절별로 갖은양념들을 한데 모아
절인 배추 머리부터 무 엉덩이까지
다독다독 잘 버무린다
생은 결코 만만치않음을 상기하며 무쳐간다
고추 양념이 배추 옹이까지 구석구석
김장철이 되어야 속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비로소 탄생을 알린다
부뚜막의 장작더미가 타오르고
문고리에 내려앉은 서릿발이 쩍쩍 갈라질 때
아랫목 고무대야에선 증기 꽃이 피어오른다
생의 첫 울음소리
흰 눈 덮인 태백산맥의 한파를 뚫고
평야로 내려온 길 위의 흔적엔 언제나
우리의 동반자가 있었다
흉요추의 압박골절로 요통이 떠나질 않고
심장 부정맥과 심부전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김장을 지휘하는 어머니 앞에서
손놀림은 점차 빨라진다
족근과 비복근을 끌어당기는 중력에 항거하듯
맨손으로 각개전투를 벌인다
온 가족의 일 년 농사를 겨울에 짓고 있다
농부의 땀과 가족의 정성이 만나는 날
통증은 사랑이 듬뿍 담긴 맛으로 풀리고
김장이며 음식의 손맛이 대 잇길 원하나
오랜 삶의 흔적이 다 배어나진 못할 것이다
희로애락의 정점은 명품 김장이 되고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어머니의 맛과 멋을
앞으로는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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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미
불현듯 떠오른 노래미
어떻게 놀려 볼까
쭉 써 내려가는데
노래미의 살결 같았죠
도 레 미 파 솔
멋들어진 자리에서 파닥거리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게
신바람을 돋우고
서로를 바라보며 놀라
눈이 튀어나온 놀래미
억센 지느러미가 튕기는 가락에
낚시 좋아할 어부 늘었죠
아무 때나 만날 수 없어
어서 오라며 기다리는 건
노래미에 펼쳐진 푸른 멜로디
쪽빛 바다 음률에 푹 빠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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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영
2019년 ≪시와문화≫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날개 달린 청진기』, 『바람이 흐른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