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경영에 대해 종종 '물살을 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왜 물살이 저절로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가?
유럽을 대표하는 마케팅 석학 장 클로드 라레슈(Jean-Claude Larreche) 인시아드(INSEAD) 교수는 "스스로 물살을 만들어서 올라타라. 그러면 멀리까지 갈 수 있고, 경쟁자들은 그 물살의 끝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라고 말한다. 기업이 스스로 물살을 만드는 것, 이것을 라레슈 교수는 '모멘텀 이펙트(momentum effect)'라고 이름 붙이고, 같은 이름의 책을 썼다. 이 책은 아마존이 선정한 2008년 최고 경영서 10선(選)에 꼽혔다.
모멘텀이란 눈덩이처럼 저절로 굴러가면서 커지는 힘을 말한다. 기업이 성공으로부터 스스로 에너지를 축적해 성장의 가속 효과를 만들어내는 힘을 말한다. 마케팅 활동을 통해 제품을 고객에게 밀어붙이기(push marketing) 식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 자체가 스스로 팔릴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라레슈 교수는 세계 1000대(大) 기업의 20년 경영 성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시도, 성공 기업들의 공통점을 뽑아냈다. 그가 찾은 비밀의 열쇠가 바로 '모멘텀 이펙트'였다. 그는 파리의 중심가 샹젤리제 거리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가진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모멘텀이란 간단히 말해서 적은 것으로 더 많이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고객들의 숨은 욕구와 가치를 찾아내 이를 제품화 한다면, 엄청난 마케팅과 영업비를 들이지 않고도 고객들이 그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고객들이 사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위력적인 제안, 즉 '파워 오퍼(power offer)'를 제공하는 기업만이 모멘텀 이펙트를 누리며 효율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마케팅하지 않고도 고객들이 사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것,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세상의 어느 기업인들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기자는 따지듯 물었다. 사실 모든 기업이 '고객'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어떤 기업은 당신의 말처럼 고객에게 파워 오퍼를 제공하는 데 성공하고, 어떤 기업은 실패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이 질문에 라레슈 교수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받아넘기더니 사례를 들기 시작했다. "기업은 소비자의 내면적인 욕구에서 새로운 상품 수요를 읽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닌텐도의 위(Wii)는 '몸을 움직이며 놀면 더 재밌다'는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간파한 제품입니다. 스카이프(Skype)의 경우를 볼까요? 미국이나 유럽에 스카이프와 유사한 수많은 비즈니스 모델이 있었지만, 스카이프는 확실한 승자로 살아남았습니다. 프로그램을 다운받는 데 10초면 충분하고, 다운로드 후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탁월한 장점 덕이죠. 스카이프 제품 사용자의 95%는 다른 이용자의 입소문을 듣고 가입한 사용자들입니다. 스카이프의 광고비 지출액은 제로(0)입니다. 이게 바로 모멘텀 이펙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추락한 결정적 계기는 '윈도 비스타'입니다. 2001년 '윈도XP'를 내놓은 뒤 2007년 후속 버전인 '윈도 비스타'를 출시했지만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죠. 시스템 간 충돌과 느린 속도 등 사용상 문제점이 속속 노출되면서 고객에게 외면당한 것입니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는 고객들의 부정적 감정이라는 더 큰 문제에 부딪혔다"고 말을 이어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빅 브러더(big brother)'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미워합니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다 문제가 생기면 스크린에 '문제 발생 내용을 알려달라'는 안내가 뜨지만, 사용자의 5%만이 그 단추를 클릭하죠. 소비자의 이런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려면 적어도 20억달러 정도는 이미지 광고에 쓸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평소 탁월한 성과를 내는 기업도 고객의 욕구를 잘못 읽으면 참담한 실패를 낳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실패 위험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업이 저지르는 실수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잊고 안 하는 실수(omission)와 행위를 했지만 엉뚱한 결과를 낳는 실수(commission)입니다. 영국에서 출시된 코카콜라의 다사니(Dasani) 생수가 실패한 것은 두 가지 실수가 모두 겹친 케이스이죠. 이 제품은 이미 30년 전에 나왔어야 할 제품이었는데, 30년 동안 생산을 안 한 것은 전자의 실수입니다. 그 후 소비자에 대한 설득 없이 생수를 출시한 것은 후자의 실수이고요. 유럽 소비자는 미국 소비자보다 좀 더 섬세하죠. 파리엔 세계 각국의 생수를 파는 '워터 바(water bar)'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들은 수돗물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코카콜라 생수를 당연히 외면했어요."
모멘텀 이펙트는 기업 성장의 원동력을 '고객'에게서 찾는다는 점에서 김위찬 교수의 '블루오션 전략'과 비슷하다. 그러나 모멘텀 이펙트는 실행 전략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라레슈 교수는 "블루오션 전략이 고객에게 혁신적인 가치를 찾아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전략이라면, 모멘텀 이펙트는 혁신적인 가치를 찾아서 제품이 스스로 판매되는 동력을 얻기까지의 실행 전략"이라고 말했다.
라레슈 교수는 육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혈기왕성했다. 지난 일주일간 덴마크와 독일, 프랑스, 남미(南美)까지 다녀오는 강연 일정을 소화했다는데도 막 휴가를 다녀온 사람처럼 힘이 넘쳤다. 자신의 저서 〈모멘텀 이펙트〉처럼 인생의 모멘텀을 박진감 넘치게 이어가는 사람 같았다. 그는 26세에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29세 때 독창적인 마케팅 시뮬레이션 프로그램(Markstrat)을 창안했다. 그가 만든 마케팅 교육 프로그램은 전 세계 500개 경영대학원에서 지금도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는 로레알, 네슬레, GE 등 세계적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 자문에 응하고 있다.
■'강렬한 만족'에서 '강렬한 충성', '강렬한 연대'로
―하지만 고객의 욕구에 맞는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세계 모든 기업의 기본적인 출발점 아닌가요?
"모멘텀 설계 과정을 통해 최초의 모멘텀을 만들었다면, 이를 유지하고 지속하는 모멘텀 이펙트의 또 하나의 엔진, '모멘텀 실행'이 필요합니다. 애플은 아이팟에 이어 아이폰으로 고객의 '강렬한 충성(vibrant retention)'은 물론 '강렬한 연대(vibrant engagement)'까지 지속하게 만들었어요. 이는 모멘텀 실행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애플이 아이폰 출시 두 달도 안 돼 가격을 인하하자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티브 잡스 회장은 공개적인 사과 편지를 씀으로써 '강렬한 연대'를 이어가고 모멘텀을 지속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편지를 통해 '여러분을 실망시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우리는 애플에 대한 여러분의 높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정가를 주고 아이폰을 구매한 모든 고객에게 '앱 스토어(애플의 온라인 장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100달러 상당의 상품권을 발급했어요.
이처럼, 최초의 성공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모멘텀 이펙트가 기업의 한 부분이 되면, 자연스럽고도 효율적으로, 그리고 쓸데없이 자원을 낭비하는 일 없이 매우 쉽게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모멘텀 이펙트의 핵심입니다."
―교수님의 책에서 월마트의 샘 월튼이 한국 기업에서 힌트를 얻어, 단체 체조로 직원들의 기강을 잡은 스토리는 매우 재밌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모델이 독일 사람들에게선 거부감을 일으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문화권에 따라 모멘텀 이펙트 전략을 달리 적용해야 하나요?
"월마트의 단체 체조는 한국 기업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지만, 한국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미국 기업 풍토에 맞게 변형해서 적용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선 현지 관습을 잘 모르는 미국인 매니저들이 미국식을 강요했어요. 독일 기업 분위기와 독일 소비자에 맞추는 모멘텀을 사용했어야 했는데도 말이죠. 마치 과거 유럽 강대국들이 식민지 경영에도 사용했던 강제적인 방법과 같은 식으로 접근하다 실패한 것입니다."
■한국엔 아직 모멘텀 이펙트를 창출한 기업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