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미스트롯] 최후의 승자는 중도탈락자였다
4일 열린 2021년 미스트롯 최종결선에서 미스트롯 진으로 양지은이 뽑혔다./TV조선
시답잖은 감상문에 매주 쏟아진 의견 중 가장 많은 것은 아무개나 머시기가 미스트롯 경연을 심사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재미있으면 그만인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이 30%를 넘어가니 시청자들은 정의(正義)를 요구하고 있었다. 시중에서 실종되고 타락한 정의를 누가 노래 잘하나 하는 TV 프로그램에서나마 지켜주길 원하는 것이다. 미스트롯이란 프로그램은 그렇게 제작진의 손을 떠났다. 시청자 투표 비율을 최종 결선에서 대폭 늘린 것은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누가 1등을 하느냐는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순위가 공정하게 매겨지는가가 가장 큰 관심사가 된 것이다.
양지은이 최종 1등에 오른 것은 그럴 만하면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애당초 경쟁에서 탈락했다가 어떤 출연자가 예견치 못한 사정으로 중도하차하면서 추가로 재합류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연자를 탈락시켰던 심사위원들의 안목은 무엇인가. 그들은 최후의 입상 결과를 보며 리모컨을 눌러 그녀를 떨어뜨렸던 자신들의 손을 허리 뒷춤으로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대중예술이든 순수예술이든 무엇을 심사하고 평가하고 감정한다는 것은 허공에 매인 외줄을 타는 것이다. 흔들리는 건 얼마든지 괜찮지만 떨어지면 끝이다. 심사위원이 여러 명으로 구성되는 것은 공(功)이든 과(過)든 서로 나누겠다는 보험의 의미가 크다. 미스트롯 심사위원들이 쑥덕거리는 장면은 한결같이 한 사람이 칭찬하면 다른 사람이 거드는 식이었다. 단 한 번도 의견이 갈리거나 누가 잘했다는데 그건 아니라고 반박하지 않았다. 심사위원이란 자리는 그런 것이다. 세미나 발제자처럼 뭔가 혼자 주장하는 자리가 아니다. 누군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렸다가 거들거나 아예 입을 다무는 사람이 심사위원이다.
중국의 무명 화가가 그린 로스코와 폴록의 가짜 그림들을 소더비를 비롯한 세계 최고의 미술계 큰 손들이 8000만 달러어치나 사들였다가 개망신 당했을 때 그들이 내놓은 변명이 무엇인가.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이것은 명백한 진품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다’고 평가하기에 진품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전문가들은 휴지가 된 800억원 앞에서 꼬리를 가랑이 사이에 감추고 조용히 눈을 깔았다. 그것이 이른바 예술을 심사한다는 전문가들의 기본적 생리다. 그러니 왜 아무개를 떨어뜨렸느냐 왜 누구한테 편파적이냐고 흥분할 수 있으나, 절대로 과몰입할 일이 아니다. 호(好)와 불호(不好)의 경계에서 과하게 열받은 사람은 타자를 배격하고 공격하다가 결국 독선과 아집에 빠져 고립된다.
미스트롯 마지막 회를 보면서 누구의 발성과 창법과 호흡이 어떻느냐를 관찰하고 설파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지은을 1등으로 뽑은 뒤 계단 높은 곳 왕좌에 올라가 앉게 했을 때, 그녀는 행복하거나 뿌듯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몇 달 간의 합숙과 연습으로 이미 가족처럼 가까워진 2등 이하의 동료들에게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들을 모아놓고 올림픽 대표를 뽑는 자리에서 최종 출전자로 결정된 사람은 결코 거만하지 않다. 내가 운이 좋았구나, 다들 나만큼 또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인데 하는 심정이다.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은 양지은의 표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지막 회 방송하는 세 시간 동안 400만명이 응원 문자를 보냈다. 400만은 경이로운 숫자다. 우리가 잠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용필 공연에서 본 인파가 기껏해야 4만명이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보낸 문자 투표를 생방송에 맞춰 집계하는 것이 제작진의 최대 업무였다고 한다. 작년까지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했던 가수들의 경연이 그만큼 공정의 지표가 됐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미스트롯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민간의 영역은 이처럼 공정의 압박 논리가 여전히 엄격하다. 오늘 한국의 공적 영역에서 과연 공정의 논리는 얼마나 유효한가. 백성들은 무엇 하나 흠 잡히지 않으려고 애면글면하는데, 궐에 앉은 것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이요 사기 치는 설레발이다.
미스트롯에 출연한 모든 사람의 노래 실력이 사실은 비등하다. 어쩌면 이들 가운데 1등을 뽑는다는 발상 자체가 유치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이들 참가자야말로 진정한 예술인이요 가수들이라는 사실이다. 가수라는 이름으로 데뷔해서 맨날 뜀박질 하거나 뭘 우걱우걱 먹거나 잡담으로 일관하다가 광고 모델로 나와 통닭이나 피자를 파는 자들이 텔레비전에 한가득이다. 가수가 유일하게 하지 않는 게 노래인데도, 그들은 여전히 가수라고 불린다. 그런 시대에 오직 노래로 자웅을 겨뤄 온 미스트롯 출연자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미스트롯2’ 양지은 최종 眞, 대반전의 ‘제주댁 효녀 가수'
善 홍지윤에 문자투표로 재역전하며 우승
“미스트롯 제 2대 진(眞)은? 양지은!”
김성주 MC의 호명에 양지은은 눈물을 글썽였지만, 흘리진 않았다. 4일 밤 방송된 TV조선 ‘미스트롯2’ 결승전에서 양지은이 최종 ‘진’이 됐다. 그는 수상 소감으로 “오늘 몇 등이 되든 간에 울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나왔다”고 했다. “동료들이 모두 함께 고생을 했고, 모두 잘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제가 축하를 해주고 싶다 마음을 먹고 울지 않아야지 했습니다.” 이어 그는 “팬과 시청자 분들의 사랑으로 이 상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며 “앞으로 좋은 가수가 되어서 여러분께 많은 위로와 감동을 드릴 수 있는 좋은 노래를 들려 드리겠다”고 했다. 준결승에 추가 합격한 ‘제주댁' 양지은은 ‘톱7’을 넘어 최종 진에 오르면서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김성주 MC가 “가족들에게도 한마디 해달라”고 주문하자, 양지은은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제주 출신으로 중학교 때 판소리를 시작한 양지은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부가 이수자였다. 이후 아버지에게 신장을 이식한 뒤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판소리를 놓았다. 이번 ‘미스트롯2’로 간암과 당뇨 합병증을 앓는 아버지에게 힘을 주기 위해 도전하는 사연이 알려지며 ‘효녀 가수’란 애칭을 얻었다. “저희 아버지 너무 사랑합니다. 제가 신장 이식 수술을 하고 나서 후회를 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제 가족들에게 이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양지은은 결승 2라운드에서 강진의 ‘붓’을 들고 나왔다. 그는 “꿈을 다시 갖기에는 늦은 나이가 아닌가 생각했다. 아이도 생겼고 육아를 하느라 지쳐 있었다. 둘째 몸조리할 때 ‘미스트롯 1′을 봤다. 그때 마미부를 봤는데 날 설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한테 시즌2는 첫 사회생활이었고, 모든 게 낯설고 모든 게 어려웠다. 그 과정 안에 동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 내 동료들한테 위로가 될 수 있는 노래를 하면 의미 있는 무대가 될 것 같았다”며 선곡 이유를 밝혔다. 양지은은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하듯 안정적인 가창력과 풍부한 성량을 뽐내며 마스터들의 갈채를 받았다. 김용임은 “노래할 때 천연 암반수 사이다 같은 깨끗한 느낌을 받았다”며 “노래를 깨끗하고 담백하게 불러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결승 1라운드에서 1위를 한 양지은이 최종결승을 앞두고 찍은사진. 자신의 기호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고운호 기자
이날 방송 중 실시간 문자 투표는 403만표를 넘었다. 지난주 1라운드 투표수와 합치면 622만표를 넘기게 됐다. 최종 순위는 1위 양지은에 이어 2위는 홍지윤, 3위 김다현, 4위 김태연, 5위 김의영, 6위 별사랑, 7위 은가은을 기록했다.
2대 선(善)에 오른 홍지윤은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꿈을 다시 펼칠 수 있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하고, 많은 사랑 주신 시청자분들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홍지윤은 결승 2라운드에서 김태곤의 ‘망부석’을 흥겹게 열창했다. 그는 “내 봄날을 기다리는 내용으로 불러보고 싶어서 선곡했다”고 했다. “대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성대 낭종이 생겼고, 처음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노래를 안 하는 건 상상하지 않았고, 무조건 노래를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이돌 연습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많이 힘들었어요. 목이 나은지 얼마 안 됐는데 다리를 다쳐서 마비되니까 ‘항상 열심히 하는데 왜 되는 일이 없을까’ 싶었어요.”
양지은과 홍지윤은 이번에도 문자 투표에서 희비가 갈렸다. 1라운드 최종점수와 2라운드 마스터 총점을 합한 2라운드 중간순위에선 홍지윤이 지난주 1위 양지은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양지은은 문자 투표로 역전해 승부를 가르면서, 최종 진을 차지했다. 그는 ‘미스터트롯’ 진 임영웅으로부터 직접 왕관과 트로피를 받았다. 양지은은 “아버지가 발이 불편한데, 계단이 있는 5층 집에 사신다. 1등 상금을 받으면 1층 집으로 이사를 시켜 드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