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소 : 무등산 편백나무 숲과 약사암
일 시 : 2023.10.012(목)
참 가 : 강공수 김상문 김영부 김재일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정남 윤상윤 이용환 장휘부 정원길 등 12명 전원 참석
불 참 : 0명
회 비 : 120,000원
식 대 : 96,,000원(장어탕 7, 애호박찌개 3, 김치찌개 2 등)
오늘 잔액 : 24,000원
이월 잔액 : 446,000원
총 잔 액 : 470,000원
부곡정에 도착하였더니 회원들이 모여 있었고 10시 안에 대부분 회원들이 도착하였다. 10시에 회원 9명이 산행을 시작하였다. 4명(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이용환 등)은 편백나무 숲으로 가서 맨발 걷기를 하고, 5명(강공수 김영부 김재일 나종만 윤정남 등)은 약사암 쪽으로 올라가서 볕 바라기를 하고 오기로 하였다.
편백나무 숲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버리고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합쳐야 20여 명에 불과하였다. 맨발 걷기를 하면서 동호인들에게 길을 따라 도는 방향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처음 와서 맨발 걷기를 할 때 윗길로 내려와서 아랫길로 올라가야 한다고 배웠으니 그 규칙을 지키는 것이 좋다고 말해 주었다. 사람이 적을 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이 많을 때에는 비켜가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나는 10바퀴를 돌고, 월전과 춘산은 7~8바퀴, 춘강은 4~5바퀴를 돌고 음악정자로 갔다.
약사암 쪽으로 간 사람들은 <의재(毅齋) 미술관> 1전시실과 2전시실에서, 기획전시하고 있는 인재(忍齋) 박소영의 <꽃과 새 이야기>(2023. 09.01~2023.12.24.)를 구경하고 내려왔다.
12시에 음악정자에 모여서 오늘의 노래로 <나뭇잎 배>(박홍근 작사, 윤용하 작곡)를 공부하였다. 먼저 지난주의 노래 <숨어 우는 바람소리>를 부르고, 다음에 작사가 박홍근과 작곡가 윤용하에 대하여 조사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블루투스 스피카에서 나온 박진감 넘치는 반주에 맞추어서 노래를 불렀다. <나뭇잎 배>에 숨겨 있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6·25전쟁 때 시달린 어린이들을 위로한 <나뭇잎 배>
<나뭇잎 배>는 노랫말과 리듬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동요다. 8분의 6박자, 내림마장조 곡으로 조금 느리게 나간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선율로 국민애창동요로 꼽힐 만큼 사랑받는 명곡이다. 티 없이 맑은 동심(童心)이 곳곳에 배어있다.
북에 두고 온 가족, 벗들 그리움 담겨
<나뭇잎 배>는 6·25전쟁으로 시달리고 찢어진 어린이들 마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북한에서 피난 온 아이들을 생각하며 만든 서정동요다. 북녘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벗에 대한 그리움이 담겼다. 1절 첫 소절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에 대입돼 슬픈 시름(애수)이 느껴진다. 그래서 새터민, 실향민, 출향인을 비롯한 어른들도 어릴 때를 떠올리며 즐겨 부른다. 둘째소절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도 순수한 어린이 마음이 읽힌다. 시적인 감각과 동심이 조화된 한편의 자장가다.
놀이에 빠진 아이에게 푸른 달과 흰 구름 떠가는 연못은 그 자체가 우주요 동심의 공간이다. 어린이의 영혼은 놀이를 통해 펼쳐진다. 만들어 띄운 나뭇잎 배는 물이랑이 이는 쪽으로 간다. 해가 지자 아이는 집으로 가 밥을 먹고 엄마 옆에 누워 자려하지만 나뭇잎 배가 자꾸 아른거린다. 놀이의 달콤한 뒷맛에서 깨어나지 못해서다. 엄마 품 같은 연못에서 나뭇잎 배를 탄 동심이 엿보인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엄마와 함께했던 그 옛날 어린 시절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나뭇잎 배는 친환경장난감으로 만들기 쉽다. 넓은 갈댓잎이나 억새 잎을 3등분해 아래 위 잎이 만나게 접는다. 접힌 윗부분을 나뭇잎 결을 따라 둘로 나눈다. 양쪽으로 나뉜 잎을 마주보게 끼워주면 앞면이 뾰쪽한 나뭇잎 배가 된다. 뒷면도 그렇게 해주면 마무리된다.
KBS ‘곱고 아름다운 노래부르기운동’으로 태어나
노래가 처음 소개된 때는 1955년. ‘KBS 방송동요’로 발표돼 널리 불렸다. 휴전협정(1953년 7월 27일) 이듬해 KBS가 펼친 ‘곱고 아름다운 노래부르기운동’을 통해 태어난 것이다. 해군군악대에서 근무했던 아동문학가 박홍근(1919~2006년)이 순연(純然)한 마음으로 가사를 썼다. 엄마 곁에 누워 잠자리에 든 어린이마음의 고요와 평화가 그려진다. 여기에 작곡가 윤용하(1922∼1965년)의 멜로디가 붙여져 곡이 마무리됐다.
작사가 박홍근은 1919년 9월 19일 함경북도 성진시에서 태어났다. 김책시로 지명이 바뀐 곳이다. 그는 두만강 북쪽지역 일대인 간도(間島)의 대성중학교와 일본 고등음악학교를 거쳐 니혼대학 예술과를 중퇴했다. 1945년 ‘문화’지에 동시 ‘돌아온 깃발’을 발표, 등단했다. 성진시 광명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46년 동시 ‘고무총’을 새길신문에 발표, 아동문학가로 이름이 알려졌다. 1950년 6·25전쟁 때 남으로 와 인생후반의 삶을 꾸렸다. 1953년 해군본부 편수관, 1959년 KBS 문학프로그램담당, 1960년 월간 ‘새 사회’ 주간으로 활동했다. 1981~86년 한국아동문학가협회장을 지냈다. 대표작품으론 ‘나뭇잎 배’, 동요 ‘모래성’ 등이 있다.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1999년), 대한민국 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받았다. 우리나라 아동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그는 2006년 3월 28일 별세했다. 그는 ▲동시집 ‘나뭇잎 배’, ‘날아간 빨간 풍선’ ▲시집 ‘입춘부’ ▲동화집 ‘시계들이 본 꿈’ ▲장편동화 ‘해란강이 흐르는 땅’ 등을 남겼다.
작곡가 윤용하도 유명한 분이다. 그는 1922년 황해도 은율에서 옹기장이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독학으로 음악공부를 하다 만주 신징(新京)음악학교에서 기초과정을 밟고 같은 학교 음악원을 수료, 신징과 펑톈(奉天)에서 음악활동을 했다. 펑톈에선 조선합창단을 만들어 발표회도 여러 번 가졌다. 특히 광복 후 만주에서 돌아와 박태현, 이흥렬 등과 국민개창운동을 펼치고 음악가협회를 통한 음악운동도 했다. 6·25전쟁 땐 종군작곡가로 여러 군가와 ‘사병의 꿈’을 작곡했다. ‘민족의 노래’, ‘광복절 노래’(정인보 작사)도 만들었다. 전쟁피난지 부산에서 ‘보리밭’, ‘나뭇잎 배’, ‘노래는 즐겁다’ 등을 작곡했다. 서울 한양공고, 동북중·고 음악교사로 교단에 서다 교향곡 ‘투쟁과 승리’, ‘농촌풍경’, ‘조국의 영광’을 작곡 및 공연지휘를 했다. 1960년 서울시공관에서 자작동요 100곡 발표회도 가졌다.
윤용하는 1959년 사라호태풍 때 의연금품을 받는 신문사에 찾아가 입고 있던 겉저고리를 벗어놓고 나올 정도로 마음이 따뜻했다. 어렵게 살았지만 작곡에 온힘을 쏟았다. 그럼에도 정부나 대중으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43살 때인 1965년 서울시 중구 허름한 단칸방에서 간경화로 삶을 마쳤다. 자신의 집과 악기를 가져보지 못 한 채 정리되지 않은 오선지뭉치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종이상자를 뜯어 여민 단칸방의 거적 위에서 눈을 감았다는 얘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1972년 그의 벗들과 세광출판사 배려로 윤용하작곡집(‘보리밭’)이 나왔다. 정부는 2005년 그의 타계 40주기를 맞아 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뜻있는 분들이 참여한 윤용하기념사업회(회장 오현명, 부회장 이부영)도 만들어졌다. 그가 교편을 잡았던 한양공고 자리이자 생을 마칠 때까지 살았던 서울 광희문 일대(서울시 중구 청구로 134 일대)를 가상무대로 한 ‘윤용하 아트센터’ 사이트가 올해 대한민국 실내건축대전출품작으로 만들어져 눈길을 모았다.
이상은 왕성상 대기자(2023.08.16.)에서 모셔 온 글입니다.
그리고 우리 십오야 동창회 차기 회장으로 동명 강공수가 내정되었고, 월전 윤상윤이 총무를 맡기로 수락하였고, 부회장과 다른 임원들도 회장이 점지한 적합한 인물들을 선정하며 앞으로 집행부가 꾸려지면 우리 목요산우회 모든 회원들이 자기 일처럼 적극 돕기로 마음을 모았다. 그리고 10월 21일(다음 주 토요일) 십오야 총회와 순천 정원 박람회 구경에도 적극 참석하며 인원 동원에도 적극 협조하기로 합의하였다.
다시 부곡정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장어탕 7, 애호박찌개 3, 김치찌개 2 등으로 정하였다.
첫댓글 항상 함께 걷기를 하지 못해 미안함 감정 숨길 수 없다.그렇지만 수 랑 회장의 글을 읽으면 그대로 머리에 그려져 내가 산을 오르는 느낌에 젖어 대리 만족을 한다.물론 산에 오르는 게 맞다. 나 혼자서 걸으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다. 문제는 함께 걸으면 심장에 무리 가 와서 못 걷게 된다. 다만 함께 노래 부르고 밥 먹고 예기에 꽃을 피우는 재미로 참가한다. 동요를 부르는 것은 동심으로 돌아가는 첩경이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행복의 지름길이다. 노래를 함께 한다는 것은 우리 라는 틀 속에 들어가 는 것이다. 그래서 노래를 보른다. 60여년전 사범학교대배운 노래가 우리들의 향수를 부러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