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정 베드로 신부님 강론_2022년 9월4일 연중 제23주일
모이세 축일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 복음 14,25-33
살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을 대할 때 많은 분들이 당황한다.
지금껏 겪어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쉽고 편한 길이 아니다.
오죽하면 주님께서도 그 길을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렇게 신앙의 길을 가다보면
때로 세상이 좋다 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것들과 마주서게 된다.
이 갈림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게 된다.
모 아니면 도라는 선택을 강요받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결정을 해 왔을까.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그 선택의 기로 자체가 유혹일 수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 채 고민하곤 하는데,
사실 여기에 악의 교묘함이 깃들어 있다.
악은 언제나 선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꼭 그 갈림길이 아니어도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우리의 눈과 마음은 그 갈림길에 콱 박혀 도무지 다른 것을 돌아보지 못하게 된다.
그럴 때 그 문제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지혜가 아닐까.
주께서 말씀하신 당신을 따르는 길,
자신을 미워하고, 소유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어떤 선택의 강요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현명하고 지혜로운 길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선택의 강요라는 유혹에 맞닥뜨리면
우리는 모 아니면 도라는 것에 붙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계산에 묶이게 되는 것.
그런 경우에는 어떤 결정을 해도 찜찜함이 남지 않던가.
탑을 세우고 전쟁을 하러 간다는 비유의 말씀은 지금 이 순간이 전부가 아니라
더 멀리, 더 깊이 볼 수 있는 분별을 갖게 될 때, 우리가 진정한 지혜에 이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존의 자신을 뛰어넘게 되고, 이것이 바로 자신을 미워하고 소유를 버린다는 뜻이다.
자신을 미워하고 소유를 버리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손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거기에 꽁꽁 묶여 어쩔 줄 모르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전의 내가 가진 것에서 밖으로 나와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질 수 있기를 청하자.
그렇게 얻은 지혜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으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이르는 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