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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 째로 쓴 수필을 올립니다.
어떤 말씀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따끔한 충고와 쓴소리 부탁드립니다.
담배
창피한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개인적으로는 창피한 얘기이고, 교육자로서는 수치스런 얘기이다.
내가 담배를 처음 피우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 부터였다. 내 아들이 지금 열다섯 살 중학교 2학년이니 딱 아들과 같은 나이에 담배를 배운 것이다. 그 나이의 어린 소년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하니 실망과 우려를 넘어 슬프기까지 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때는 담배에 대한 관용이 크던 때였고, 나아가 담배를 권하던 사회였다. 거실에 나가면 재떨이에 아버지가 피우던 장초가 수북하고, 할머니가 방안에 손주들을 앉혀놓고 담배 연기로 도너스를 만들어 보여주시고, 교무실에 가면 선생님이 담배를 피우고 계시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6년 중 유일하게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남자분이셨는데, 연세가 지긋하시던 그 분은 쉬는 시간마다 교실에서 담배를 피웠고, 주번 어린이들은 재떨이를 비웠다. 또한 군대에 가면 군용 담배가 한 달에 한 보루 반씩(열다섯 갑) 보급 되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하다가, 또는 작업을 하다가 '초전박살 10분간 휴식! 담배 일발 장전!'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전투복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고, 담배를 안 피우던 훈련병까지도 그냥 있기가 민망해 배우게 되었다. 훈련소에서는 그게 유일한 낙이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우리 가족은 강원도 속초 근처의 송지호 해수욕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그 때는 아버지가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되어 초보운전으로 포니 투 승용차를 몰 때였다. 나는 스스로 좀 컸다고 생각했는지 앞자리인 조수석에 앉길 원했고, 부모님도 별 반대가 없어서 뒷자리엔 엄마와 여동생이 타고, 난 조수석에 앉아서 가게 되었다.
애연가인 아버지는 강원도까지 가는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중간, 중간에 담배 생각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된, 두 손 모두 핸들을 움켜쥐고 앞만 봐야하는 초보 운전자에게 운전을 하면서 담뱃불을 붙이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하셨나보다.
"선태야, 거기 아빠 담배에 불 좀 붙여 줘라."
하시는 거였다.
난 무슨 얘기인지 금방 눈치를 채고는 시거잭의 시거라이터를 눌렀다. 아버지의 담뱃불을 붙여줘도 될 만큼 내가 컸다는 우쭐함도 느끼면서 88 라이트 담배 한 개비를 뽑아 물고 불을 붙여서 건네 드렸다. 그렇게 강원도까지 가면서 담뱃불을 한 너 댓 번은 붙여 드렸나보다. 처음엔 맵고 지독하던 담배 연기가 몇 번 들어오자 어느새 좀 익숙해 졌고,
"그러다가 애 담배 배우겠어요."
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뒤에서 들릴 무렵엔 언제쯤 또 담뱃불을 붙여달라고 할 지 기다려지게 되었다.
해수욕장에 도착해 즐겁게 놀다가 밤에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감았는데 아까 낮에 피워본 담배 생각이 자꾸 났다. 나는 부모님 몰래 숙소 밖으로 나와서 해변가로 걸어갔다. 그리곤 슈퍼마켓에 들어가 88 라이트 한 갑과 라이터를 사서 바닷가로 갔다. 그땐 미성년자 술, 담배 판매 금지법이 없어 아버지 담배 심부름 꽤나 하던 때였다.
인적 뜸한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내 인생의 첫 담배를 피웠다. 한대로는 모자라 조금 후에 한대를 더 피우고는 숙소 입구에 숨겨 놓고 다음날과 그 다음날 밤에도 몰래 바닷가로 나가 담배를 피우다 들어왔다. 중학교 2학년 소년이 무슨 인생 고민이 많다고 바닷가에 홀로 앉아 담배를 피웠는지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기도 하다.
그렇게 담배를 배웠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난 부모님께 담배를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엄마가 안 계실 때 집에서 피웠어도 걸리는 일은 없었다. 거실에도, 화장실에도 재떨이가 있어 아버지가 피우던 꽁초들이 나의 담배 냄새를 가려줬고, 또한 우리에겐 창문 밖으로 선풍기를 강하게 틀고 담배를 피우는 신공도 있었다.
내가 담배를 처음 걸린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그것도 학교에서였다. 아. 겁이 없던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3월도 채 가기 전에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학생부장 선생님한테 그대로 딱 걸렸다. 점심시간에 화장실 변기 칸에 들어가서 한대 피우고 나왔는데 바로 앞에 선생님이 서 계셨으니 빼도 박도 못했다. 1학년이 입학하자마자 학교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기가 막혀 하셨다.
귀를 잡힌 채 학생부실에 끌려가서 흠씬 두들겨 맞고 벌을 받았는데 그 벌이란 나한테 남아 있던 담배 열 개비를 한꺼번에 입에 물고 손을 안대고 피우는 것. 무릎을 꿇고 손을 뒤로 열중쉬어 한 상태에서 한꺼번에 담배 열개비가 다 탈 때까지 물고 있는 동안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흡사 화생방 훈련 가스실에서 방금 나온 훈련병 같은 몰골이 됐다. 지나가는 교무실 안의 선생님들은 혀를 차기도, 또는 재밌어서 웃기도 했다.
집으로 전화가 왔기에 부모님도 알게 되었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생각 외로 크게 혼나지는 않았다. 절대 학교에서는 피우지 말고, 될 수 있으면 끊으라는 얘기만 들었다. 사실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 입장에선 본인도 피우면서 아들을 혼내는 건 나라도 마음 편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피웠던 담배를 처음 끊은 건 교직에 들어온 다음해였다. 처음 근무했던 학교에는 교무실에 흡연실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면 남자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며 두런두런 학교며, 애들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오전에는 괜찮다가 오후 수업만 되면 말할 때 목이 아픈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담배를 피워 와서 그런지 난 유독 목이 약해서 감기가 왔다 하면 목감기가 먼저 오곤 했다.
교직을 일, 이년 할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목이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담배를 끊기로 결심을 하고는 같이 피우던 선생님들에게 알렸다. 그랬더니 자기네들도 끊겠다고 하면서 그냥 끊으면 의지력이 약해질 수 있으니 돈을 걸자고 한다. 즉, 금연을 하기로 한 다섯 명이 각각 10만원씩 내서 담배를 안 피우는 선생님에게 맡기고 최후까지 금연한 사람이 50만원을 갖는 것이었다. 퇴근 후 학교 밖에서 피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각자 양심에 맡기기로 했고, 굳이 양심이 아니더라도 50만원 때문에 밖에서 피우는 담배를 학교에서 계속 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어 선생님 한 명과 나를 포함해 체육 선생님 네 명이 도전을 했는데 며칠도 못 가 처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제주도 출신의 영어 선생님이었다. 학교에 출근을 하면 맥심 커피 믹스 두개를 한꺼번에 머그잔에다 타서는 쉬는 시간마다 마시며 담배를 필터 있는 데까지 피우던 분이었다. 혹시 믹스 커피와 담배를 동시에 즐기는 사람의 입에서 나는 냄새를 아는가? 질문이 있어서 찾아온 아이가 설명도 듣지 않고 바로 돌아갈 정도의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석…
윽! 아니에요. 안녕히 계세요."
그 분은 금연한지 이틀 만에 온 몸에 상처가 나서 왔다. 금단 현상 때문이었다.
담배를 피우면 일산화탄소 때문에 혈관이 좁아지는데 금연 후 다시 혈관이 원래의 넓이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가려움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 선생님은 정도가 심했었는지 자다가 밤새도록 가려워서 벅벅 긁다보니 온 몸에 손톱에 긁힌 피딱지가 앉아서 온 것이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도저히 가려워서 못살겠다고 하면서 금연 포기를 제일 먼저 선언했다.
2주쯤 지났을까?
금연을 잘하고 있던 체육 교사들이 회식을 하게 되었다. 횟집에 가서 광어, 우럭 회에다 매운탕도 시켜 얼큰하게 소주를 마신 후 방 안에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누가 먼저 얘기를 꺼낼까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리곤 동시에 외쳤다.
"우리 딱 한대만 피우자!"
막내였던 내가 담배를 한 갑 사와 우린 그동안 했던 금연의 고충에 대해 열을 올렸고, 사실은 중간에 몰래 폈다고 고백하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해 50만원은 두고두고 회식비로 썼다.
아들을 낳았다고 끊고, 건강을 위해서 끊고, 새해가 되었다고 끊고, 한 열 댓 번은 금연을 시도했었던 것 같다. 분 단위로 피어오르는 흡연 욕구를 참는 건 차라리 고통에 가까웠다. 그러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매번 며칠을 못가 번번이 실패하다가 결정적으로 담배를 끊게 된 계기는 우연이기도 하고, 유별나기도 하다.
서른 중반쯤 되었을 때였던가, 금연 교육 수업을 하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금연 교육이라니. 나도 내 자신을 한심하게 느끼며 보건 선생님이 보내주신 영상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담배의 유해 성분이라든지, 암을 유발한다든지, 하는 뻔한 내용인줄 알았는데 충격적인 내용이 나왔다. 그건 바로 미국의 거대 담배 회사 필립 모리스 사에서 미 전역의 마트, 편의점, 가판대에 보낸 안내문의 내용이었다. 안내문의 내용은 이렇다.
'앞으로 청소년들이 담배를 훔치는 걸 목격하더라도 절대로 잡지 말고, 신고도 하지 말기 바람. 청소년들이 절도한 물량은 빠짐없이 본사가 전량 보상해 줄 예정임.'
감이 잡히는가?
내가 그랬듯 담배는 일찍 배울수록 나중에 끊기가 힘들다. 담배를 피운 기간이 오래 되면 오래 될수록 니코틴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진다. 나이 어린 청소년들은 미래의 훌륭한 고객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투자는 전혀 아깝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건강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들어간 식품을 고의적으로 판매하는 기업을 악덕기업이라고 부른다. '네스카페'로 유명한 '네슬레'라는 기업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분유, 치즈,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 주로 유제품을 이용한 가공식품을 제조, 판매하는 스위스의 거대 기업이다. 이 기업이 아프리카에서 분유를 판매했던 방법은 악덕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네슬레는 아프리카에서 모유보다 분유가 아기의 건강에 좋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 광고판에는 백인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분유를 먹이는 사진이 크게 보인다. 백인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의 산모들은 광고처럼 분유를 먹이면 백인들과 같이 병에 안 걸리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네슬레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아프리카의 산모들에게 무상으로 분유를 보급했다. 분유에 아기들이 맛을 들이고, 엄마 젖이 끊길 때 쯤 돈을 받고 판매한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우리나라처럼 집안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고 우물에서 길러 먹여야 한다. 정수되지 않은 물에 분유를 타 먹인 엄마들은 아기들이 왜 설사병으로 죽어 가는지 몰랐다. 모유를 먹였으면 탈 없이 자라났을 것이라는 것도 역시 몰랐다.
무지한 아프리카에서 분유를 판매했던 네슬레는 국제기구의 제제를 받고 판매를 중단했다. 판매를 한지 10년 만이었다.
몬샌토나 카길 같은 악덕 거대 농업 기업들에 대한 얘기도 할 게 많지만 담배 얘기로 돌아와야 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건강, 혹은 목숨까지 위협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악덕기업들. 그 선봉장에 1980년대까지 담배의 유해성분을 밝히지 않았던 담배 회사가 있다. 내가 어릴 때는 담배가 암 발생의 주원인이 된다는 걸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오직 담배 회사들만 알고 있었다.
난 그런 악덕 기업주들에게 100원 한 장 보태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20년간 피워왔던 담배를 끊었다. 끊은 지 10년이 넘었으니 완전히 끊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내 건강보다, 가족의 건강보다, 새해 결심보다도 정의감이 담배를 끊게 해 준 계기가 되었던 게 조금은 의아스럽기도 하다.
담배를 끊기는 매우 어려워도 끊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끊게 될 때까지 끊는 것이다. 금연에 실패했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나도 열 댓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으니. 10년, 20년 동안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나와 함께 했는데 그게 쉽게 끊기겠는가? 매번 금연을 결심할 때마다 다른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다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계기가 완전한 금연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담배를 끊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 중의 하나는 금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예 시작도 안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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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쉽지 않은 결단을 했군요.
지적하자면 분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연습이 필요해 보이는데 작가는 분량도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중학교 2학년 때..." 이전의 서론은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네스카페', '악덕기업' 같은 긴 예문은 주제를
한참 비켜가는 겁니다. (예문이 주제처럼 보인다는 것) 따라서 이 부분만 정리해도 이 메시지를 절반에 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의 흡연문화, 악덕기업에 관한 글은 별도의 주제로 정리해 보십시오.
원래 댓글에 평을 달지 않는데 요청하시니 잔소리 좀 남겼습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 글이 수필 치고는 항상 긴 편입니다.
애써 기른 나무를 가지치기 하는 것처럼 길이를 줄이는 건 저에겐 때론 섭섭한 일이지만 독자가 지루하게 느낀다면 당연히 줄여야겠습니다.
옥고를 읽고 금연에 대한 희망이 생가는 것 같아요 끊을 수 있을 때까지 끊어라 오호 이거 혹하는데요
저는 한 열다섯 번의 금연 시도만에 완전히 끊었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커피를 드시고도 밤에 잘 주무시면 특별히 안좋을 거는 없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