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화양비(救火揚沸)
- 불로 불을 끄고 끓는 물로 뜨거운 물을 식히다, 방법이 잘못돼 어리석은 일
[구할 구(攵/7) 불 화(火/0) 날릴 양(扌/9) 끓을 비(氵/5)]
불을 끄는 消火(소화)와 같은 말이 救火(구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어가 救火投薪(구화투신)이다. 불을 끄는데 물이 필요하지 섶을 던져 넣는다면 더 활활 타게 키울 뿐이다.
섶은 長斫(장작)이나 마른 나무를 통틀어 부르는 말인데 이처럼 분별없는 짓을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려 한다’는 속담으로 꼬집었다.
섶 위에서 자고 곰쓸개를 씹으며 복수를 다짐하는 臥薪嘗膽(와신상담) 등 사자성어가 다수 사용되고 있어도 섶은 땔감으로 쓰지 않아 구경하기 힘들다. 어리석은 행동을 말하는 말이 더 있다. 펄펄 끓는 물을 식히려고 그 위에 끓는 물을 붓는 揚湯止沸(양탕지비)다.
이 두 말을 각각 줄여 불로 불을 끄고(救火) 물로 물을 식히려 한다(揚沸)고 한 성어는 司馬遷(사마천)이 ‘史記(사기)’ 열전에서 처음 사용했다. 방법이 잘못되어 급한 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어리석음의 결정판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官(관)이 법만을 앞세워 도로 괴롭히는 酷吏(혹리)를 지칭했다.
덕치를 추구했던 循吏(순리)에 비해 정리에 좌우되지 않고 혹독하게 법을 이행한 혹리는 그러나 적을 만들고 부패에 연루돼 끝이 좋지 못했다. 열전의 서두에 孔子(공자)와 老子(노자)의 말을 인용한다.
‘정치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리면 그것을 피할 뿐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導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법령이 정비되면 될수록 도둑이 많아진다(法令滋章 盜賊多有/ 법령자장 도적다유)‘.
법령이 정치의 도구이긴 하나 청탁을 다스리는 도구는 아니라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옛날 秦(진)나라 때 천하의 법망은 치밀했지만 올바르지 못하고 거짓된 일이 끊임없이 생겼다. 위아래 가릴 것 없이 법령을 교묘히 피해(上下相遁/ 상하상둔) 나라가 휘청거렸다.
이렇게 되자 ‘관리들의 다스림은 마치 불로 불을 끄려 하고 물로 끓는 물을 식히려 하는 것과 같았다(吏治若救火揚沸/ 이치약구화양비)’고 표현했다. 중국을 처음 통일했던 진나라가 가혹한 법 집행으로 질서는 일사불란했더라도 백성들의 마음은 얻지 못해 단명으로 끝난 원인으로 봤다.
법만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겉으로 승복할 뿐 백성들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고만 하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법이 없었을 때는 양심적으로 가책되던 일도 세세하게 제정된 후엔 범법자가 된다. 살짝 피하기만 하면 오히려 떳떳하다.
많은 사람의 편익을 위해 소수의 권리를 규제하는 것은 모두 수긍한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소소한 규제는 갈수록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법을 제정하는 민의의 전당에서도 숫자만 믿고 지지자만 의식한 법령을 제정하는 일이 잦다. 옛날 혹리와 같이 불을 끄지 않고 키우는 짓이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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