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11/16~18),
“제주×전남녹색당, 우리는 교류 중 ― 평화야 고치글라!” 행사가 있었습니다.
고흥 녹동항에서 순천의 ‘공유 공간 너머’를 거쳐
‘대한성공회 여수교회’에 잠시 깃들였다가
순천만을 만나고 벌교의 ‘아즘찬이’를 들른 후
보성 ‘거북정’에서 탄성과 웃음과 만감이 교차하던 밤과 아침을 보내고
커먼즈(공유지) 실험실, 해남 ‘미세마을’을 경유하여
우수영여객선터미널에 이르기까지 함께한 2박 3일간은
무엇보다 노래가 춤추며 흘러가던 시간이었습니다.
내내 갖가지 노래가 피어나 자리에 함께한 이들의 마음과 영혼에
색색의 무늬를 남기고 이울어갔습니다.
여순항쟁의 아픔이 배어 있는 <꽃물이 든다>와
노래하는 청년당원, 찬호 님이 지어 들려준 <그대와 나> 사이에
<잠들지 않는 남도>가
<쌀 한 톨의 노래>와 <녹색당가>와 <제주를 지켜라>가
<좋아해>와 <나무들의 약속>과 <모든 것이 아름답다>와 <이룰 수 없는 꿈>이
<팥>과 <쑥>과 <울고 있는 가수>와 <불행아>와 <사철가>가
<동지 노래>와 <밥상>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없던 당신들께도 다 다 들려주고 싶던
아름답고 울림이 큰 노래들이었습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태어난 노래들 속에서 11월의 한복판이,
늦가을의 밤과 낮이 더할 나위 없이
도란도란 환하고 다정하고 풍요로웠습니다.
노래들 사이에서 자정이 가까워오도록
은영 님과 수수 님을 향해 둘러앉아
오래 전부터 우리 안팎을 바람처럼 넘나들거나 안개처럼 서성이던
정치라는 언어, 언어라는 정치를 목도하던 시간은
세상과 사람을 향한 낙관에 기댄 희망을
구체적으로 품어보게도 되던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에서의 폭력을 이겨내고 모두가 주체가 되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녹색평화’, ‘생태민주주의’가 구현된”
아직은 이상향일 수도 t상상 속의 해방구일 수도 유토피아일 수도 있는
‘그곳’이면서 ‘그때’인 ‘그것’이 실은 진작부터
우리 속에서 쑥쑥 자라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가라는 자각이
깃을 치기도 하던 밤이었습니다.
고은영 님의 “앞으로도 ‘녹색정치’의 문을 힘껏 두드릴 것”이라던 다짐,
이 길에 함께할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말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과거, 정치공학의 ‘습’에서 벗어나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공간 축을 줄이고 시간 축을 늘이는 것이 필요하고,
이는 모든 시간과 공간에 적용되는 고유의 단단한 정치 언어가
‘지역적으로’ 통용되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라는
수수 님의 얘기도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너머>가 <아즘찬이>가 <미세마을>이
‘그러한’ 공간 축을 줄이고 시간 축을 늘이기 위한
새로운 시도의 장소로 구축되어가길 바라게 되던,
지역 안에서 이러한 공간들이 늘어나는 만큼 우리의 상상력도
길고 넓게 뻗어갈 수 있을 것이란 짐작을 해보게도 되던 시간이었습니다.
한편 이번 여정은 멀게는 70년 전,
‘제주 4‧3’과 연계된 ‘10‧19 여순항쟁’ 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한 이들을,
가깝게는 1년 전, 제주의 한 음료 제조 사업장에서 일하다
제품 적재기 벨트에 목과 몸통이 끼어 사망한
당시 열여덟 살, 현장실습생이었던 고 이민호 님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억울한 죽음의 과정을 되새기고 돌아보며
이런 어이없는 희생을 멈추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헤아려보고,
우리 사회 곳곳의 모순과 부정의와 부조리를 줄여나갈 것을
촉구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는 또한 제주녹색당에서 준비해온
"공간 축을 줄이고 시간 축을 늘이는" 데 기여해왔다고 할 수 있는,
제주의 여성농민들이 자식들을 돌보는 심정으로 갈무리한
여러 가지 귀한 씨앗과 책(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 지음, 제주도 우영엔 토종이 자란다, 시금치, 2013.) 선물이 오간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씨앗들과 책이 자리에 함께했던 어린이들 ―
서윤이 같고 다랭이 같고 희성이 같고 온이 같고
희준이 같고 다나 같고 유성이 같고 완이 같고 희진이 같고
다울이 같고 강이랑 찬이 같았습니다.
2박 3일간은 무엇보다 산과 들과 바다와 누군가들의 노동 덕분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이 밥상 위에 한껏 부려지던 시간이었습니다.
껍질째 먹으면 더 맛났던 귤과 달고 아삭한 감과 배와 사과며 키위 같은 잘 익은 과일들, 오메기떡 가래떡 기정떡 같은 갖가지 떡들, 굴떡국과 현미밥과 미역국, 무채무침 고사리나물 죽순나물 버섯볶음 파겉절이 미역무침, 배추김치와 백김치, 삶은 꼬막과 방어회와 이름 모르는 물고기회, 한라산소주와 해창막걸리, 무굴밥과 된장국과 두부톳무침과 미세맥주….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함께 튼실한 감들로만 골라
두 개의 큰 상자에 꾹꾹 담아 나눠주신 무안의 이정현 당원과
지난해, 제주에서의 교류회 자리에서 회가 먼저 동나던 것을 기억하였다가
양껏 먹으라는 듯 회를 넉넉히 선물해준 고흥의 먹거리위원회 당원들에게,
멀리서 가까이서 오는 이 누구라도 편히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따스한 공간을 마련해 준 ‘공유 공간 너머’의 임경환 당원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현재진행형인 여순항쟁의 아픔을 속속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항쟁에 관해 들려주고 유적지 곳곳을 안내해준 ‘여수교회’의 이우경 당원,
벌교 ‘아즘찬이’의 이현준 당원과 보성 ‘거북정’의 김향진 당원,
해남 ‘미세마을’의 여러 친구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 전합니다.
무엇보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귀한 시간 내어 다녀간
제주 당원들에게 많이 반가웠다고,
지난 지방선거 과정의 감동을 2년이 채 남지 않은 총선 시기까지(그 이후까지도)
내내 이어가길 바란다는 인사도 건넵니다.
평화를 일구며 함께 가려는 길에 마련되었던 우정과 환대의 자리가
서로의 가슴에 묵직한 빛 한 움큼씩 뿌려놓고 저물었습니다.
그 빛이 우리가 발 딛고 선 여기저기로 시나브로 번져가기를 바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