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7일 목요일 묵상
“요셉을 잊었더라” ( 창세기 40:9-23 )
친위대장의 집에 있는 옥에서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수종 들게 된 요셉은 그들이 꿈을 꾼 날 그들의 안색을 살피고 이해할 수 없는 꿈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서 해석해 주실 것이라면서 꿈 얘기를 들어줍니다.
9-11절에 보면, 먼저 술 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말합니다. 그 꿈은 술 맡은 관원장의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포도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그 가지에 익은 포도가 있어서 그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에게 바쳤다는 것이었습니다.
12-13절에서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즉시로 해석해 줍니다. 그 꿈은 그가 3일 안에 복직되어, 다시 예전처럼 바로의 술 맡은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꿈 해석은 그저 요셉의 해석 능력에 의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전에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명확한 해석을 해준 요셉은, 14-15절에서 앞으로 말한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자신의 형편을 살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14절에서 “나를 생각하고” 라고 했는데, 이는 “기억하다”라는 말로,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만약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해준 대로만 된다면 요셉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정말 의지할 것은 하나님 한 분 이신대, 요셉이 오랜 시간 꿈을 이룰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 기다림에 지쳐 잠시 믿음이 약해지고 하나님보다 자기 눈앞에 있는 술 맡은 관원장이 더 자신의 처지를 바꿔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생사화복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달려있는 것입니다.
16-17절에서는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이 좋은 해석이 나오자 떡굽는 관원장도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의 꿈은, 흰 떡 세 광주리가 자기 머리 위에 있었는데 그 중 맨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해 구운 음식이 있는 것을 새들이 와서 먹는다는 뭔가 불길한 꿈이야기였습니다.
18-19절에서 요셉은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꾸밈없이 명확하게 해석해 줍니다. 이 꿈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사흘 안에 바로에 의해 처형을 당하고 나무에 달려 새들에게 뜯길 것이라 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적당히 각색을 하든지 해서 포장할 수 있었겠지만, 요셉은 정직하게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의 해석을 말해줍니다. 요셉은 이렇게 정확하게 그 해석을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해석이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만큼은 적당히 좋은 말로 얼버무리지 말고 정확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0-23절은 요셉리 해주었던 꿈의 해석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장면입니다.
사흘 후 바로의 생일 때, 요셉이 해몽한 대로 술을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고, 떡을 굽는 관원장은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해몽이 정확하게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이 뭔가 자신을 위해 해 줄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23절에서 보는 것과 같이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그에게 기억해달라고 부탁했건만, 그는 요셉을 잊고 만 것입니다. 요셉은 그 후 2년 동안 계속해서 옥에 갇혀 있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사람을 의지하는 것의 무가치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들을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우리 생각에는 일이 다 잘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많은 경우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의지해야 했던 요셉이,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아닌 것을 의지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를 깨닫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의지하게 되어질 때, 더욱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합니다. 꿈의 해석이 하나님께 있는 것처럼, 요셉의 억울함이 해명되는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요셉의 희망대로 되지 않은 일도 하나님께서 요셉을 잊지않고 주목하고 계심의 증거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이지만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상황과 경우에도 우리를 아시고, 항상 우리를 기억해 주십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바라보시고, 우리를 기억하고, 절대로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때가 되면 반드시 은혜로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가 우리의 생각과 차이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고 빠른 때인 것입니다.
요셉이 만약 술 맡은 관원장의 도움으로 바로 감옥에서 나왔다면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거나, 복권되어 노예생활을 계속하는 정도로 인생이 끝났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 때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조치가 내려오지 않자 실망했겠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옥에 주시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언제나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우리도 요셉이 옥에서 보낸 것과 같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기다림의 기간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를 향한 선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내하고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는 이후에 우리 삶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하시고,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 우리를 그 환경에서 건지시고 합당하게 사용될 자리에 두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 어떤 상황에서든지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더라도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모든 은혜와 축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는, 지혜롭고 신실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