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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 구l합니다.(마1:1-8)
2022, 10/23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마1:1-8절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 구l합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충만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설악산에 단풍이 한 창인 것 같습니다. 우리 김향순권사님 고향 정읍에 있는 내장산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저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지만 단풍하면 내장산입니다. 오늘 오후예배 마치고 정읍으로 내래갈 예정인데, 가서 즐거운 시간 보내다 내일 올라오려고 합니다.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하게 여길 때 더욱 풍성해집니다.(2절)
둘째로, 하나님 은혜는 모든 것을 뛰어넘습니다.(5절)
셋째로,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도 넘칩니다.(6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할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국어사전에 은혜를‘사랑으로 베풀어주는 신세나 혜택’이라고 적고 있는데, 그러니까 누가 나를 사랑해서 그냥 베풀어주는 은전쯤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때문에 은혜를 잊어버리면 금수와 같습니다. 동물과 사람이 다른 것은 바로 이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든 사람에게 입은 은혜든 금방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오죽하면 원한은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에게 은혜를 받든지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특히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야말로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조상이 에덴동산에서 범죄 했을 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은혜를 주셨고, 구원까지 보장하셨습니다. 그러다 때가 되매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벽하게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원죄로 인해 지옥으로 끌려가는 우리를 천국으로 방향을 바꾸어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운 일인지요. 그러므로 이 은혜를 소중히 여길 때 은혜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또한 이 은혜는 죄가 있는 곳에도 더욱 임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하십니다. 이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이며, 은혜를 왜 소중하게 여겨야 생각해야 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하게 여길 때 더욱 풍성해집니다.(2절)
본문 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아멘.
2절은 하나님나라 제 1호 백성인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 그의 손자 야곱과 증손자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삭의 장자는 에서인데 차남인 야곱이 가문을 이어받았고, 야곱의 장자도 르우벤임인데 4남인 유다가 야곱의 가문을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서와 르우벤이 가문을 이어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여 년 전만 해도 장자가 부모재산을 더 많이 받고 가문을 물려받았는데, 고대근동에서도 장자는 다른 형제들보다 갑절의 유산을 받았고 가문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하찮게 여기고 동생 야곱에게 겨우 팔 죽 한 그릇에 팔아버리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르우벤은 또 어떻습니까? 그도 역시 야곱의 장자로 태어났지만 그의 서모인 빌하와 통간을 함으로 장자의 권리를 잃고 말았습니다.(대상5:1)
이 두 사람은 다 같이 장자의 엄청난 은혜를 받았음에도 이 은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이 은혜와 복을 동시에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걸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리 큰 은혜와 복을 받아도 이를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지 못하면 그 은혜와 복이 떠나는 것은 물론이고, 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히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복은 적든 많든, 귀하든 하찮은 것이든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소중히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오려고 먼 나라로 가면서 종들에게 한 므나씩을 맡겼는데, 종들이 각각 장사를 하여 어떤 종은 열므나를 남겼고, 어떤 종은 다섯므나를, 어떤 종은 한 므나 그대로 주인에게 가져오자 주인이 그 한 므나 가져온 종에게 빼앗아 열므나 남긴 종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눅19:26)
주인이 준 은혜와 기회를 소중히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던 종에게 그 은혜를 무시하고 안일하게 지냈던 종의 돈을 빼앗아 더 주시는 것을 볼 때 내게 주신 은혜와 복을 귀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건강주셔서 교회 나와 예배하고, 일할 수 있으니 그 은혜가 감사하고, 끼니 걱정하지 않고 세끼 밥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양손이 있어서 감사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하고... 따지면 모든 것이 은혜고 감가할 일입니다. 그럼에도 크고 좋은 것이 아니라고, 보잘 것 없고, 작은 것이라고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다면 더 좋은 것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유산을 줄 때 작은 것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자식에게 더 주고 싶은 것처럼 하나님도 이런 자녀에게 더 많은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기업총수들은 자녀를 기업의 팀장이나 실장이나 요직에 앉혀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하는데, 한 신실한 신앙인은 자기 아들을 생산직으로 입사시켜 밑바닥부터 한 단계씩 회사 일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회사를 물려주었는데 마침 IMF가 터졌지만 회사의 업무를 잘 파악한 이 아들은 이 위기를 오히려 발판삼아 회사를 큰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키게 됩니다.
또 다른 케이스인데, 미국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 청년이 회사에 입사했지만 회사는 그를 조그만 지방영업소 창고관리자로 발령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회사에 취직시켜준 은혜에 감사하여 열심히 일하던 중에 창고의 재고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회사에 보고해 전국 영업망을 전수 조사하여 문제점을 해결함으로 회사에 엄청난 이익을 안겨줍니다. 이로 인해 능력을 인정받아 본사 주요 관리자로 발탁되어 승진가도를 달렸답니다.
여러분!!! 만약 이 청년이 자신에게 일자리를 준 회사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았다면 문제를 발견하지도 못했고, 승승장구 영전을 거듭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든, 사람에게 받은 은혜든 그것을 하찮게, 소홀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작은 것도 귀하게 여길 때 더 많은 복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당장 친구에게 작은 것을 주었는데 그 친구가 진심으로 기뻐하고 고마워한다면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시끈둥하며 별로 탐탁치않게 여기면 그 다음부터는 일절 주지 않습니다. 사람도 이런데 하나님은 더하시겠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와 은사를 주시든지 또 어떤 복을 주시든지 불평불만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며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더욱 귀한 은사와 은혜와 복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소중히 여길수록 더욱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는 씨앗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현재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보잘것없어 보여도 무시하거나 홀대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더욱 감사하게 생각함으로 더 큰 축복을 받는 통로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 은혜는 모든 것을 뛰어넘습니다.(5절)
본문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아멘.
본절에“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았다고 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라합은 여리고성의 신전에서 몸으로 신탁을 수행하던 여 사제였습니다.
기생라합은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위해 보낸 정탐꾼이 잡힐 위기에서 그들을 숨겨줌으로 나중에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했을 때 라합은 큰 보상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이방여인, 그것도 신전에서 몸으로 우상을 섬겼던 가장 천한 여인이 어떻게 이스라엘, 그것도 왕통을 이어갈 유다지파의 살몬의 아내가 되었으며, 그것도 거룩하신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이 되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5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당시 이스라엘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사회로 족보에 여인들의 이름이 오를 수 없었습니다. 당시 여자들의 사회적 위치는 거의 남성의 소유물로 집에서 애 낳고 집안일하는 정도로 인구조사를 하면 항상 여인들은 빠졌습니다.
오늘 이 기생라합을 포함해 5명의 여인들 중에 예수님의 모친인 마리아를 빼면 모두 하자가 많은 여인들이었는데, 라합은 말씀드린 대로고, 다말은 가나안출신으로 시아버지인 유다를 속이고 통간하여 아들을 낳은 여인입니다.(창38장)
룻도 역시 모압여인으로 과부였고, 6절의 밧세바는 이방남자인 우리아와 결혼해이방인으로 취급받던 여인으로 다윗과 간음한 여자입니다.(삼하11:1-5)
사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나, 이삭의 아내 리브가 같이 정상적이고 현숙한 여인들이 많았음에도 모두 생략하면서 왜 흠 많고 하자 많은 이런 여인들을 거룩하신 예수님의 족보에 그 이름을 올렸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 빈부귀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학연, 지연, 혈연 등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설정하여 경계하고 통제하고 무시하고 차별하는 모든 장벽들을 뛰어넘어 임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주님은 이 족보가 의미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십자가로 모든 담을 허무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엡2:16-18절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임하는데,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가 마음속에 장벽들을 만들고, 차별하고 무시하면 절대 안 됩니다.
특히나 교회 안에서의 차별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절대 지연이나 학연, 있는 자와 없는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이념과 사상이나 가치관이나 철학에 따라 차별이나 분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골3:11, 톰10:12)
끼리끼리 모이고 교제하는 것도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공평하고 은혜로워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걸 알고 성숙한 교회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도 넘칩니다.(6절)
본문 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아멘.
본문에‘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기록했는데, 이 족보는 단순히 아브라함, 야곱의 후손들 족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족보이자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이 족보를 그리스도의 세계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물론 통치후기에는 하나님을 떠나 이스라엘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어 분열의 원인을 제공했지만, 당대 최고의 지혜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부와 명예를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가 주님의 족보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밧세바가 누구입니까? 그녀는 남편이 있는 유부녀임에도 다윗과 간음한 것도 모자라 남편이 살해당하는데 방관함으로 부작위 살인죄를 저지른 용서받지 못할 죄인으로 분명 돌에 맞아 죽어야하는 끔찍한 범죄입니다(신22:22).
그럼에도 하나님은 비록 간음으로 태어난 아이를 죽이기는 하셨지만 그로인해 절망에 빠져있던 밧세바에게 솔로몬을 주시고, 여기에‘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의‘여디디야’라는 이름까지 손수 지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여러분!!! 이 사실에서 무엇을 느끼시는지요? 비록 간음과 살인이라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 죄악까지도 용서하시고 덮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실로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죄 많고 허물 많은 여인을 용서하시는 것도 모자라 그녀를 예수님의 조상으로 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올려주셨으니 이런 기막힌 은혜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는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롬5:20절에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리 우리의 죄가 크고 많아도 하나님은 그 죄를 용서하셔서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바로 이런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구약의 하나님은 복수와 진노의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2분법적인 생각은 안 됩니다. 그렇다고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넘친다고 롬 6:1절 말씀처럼 일부러 죄 가운데 있어서도 안 됩니다.
혹 죄의 문제로 마음이 편치 않으시다면 본 절 말씀의 교훈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자복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 족보에 나온 저 죄 많은 인생들을 용서하시고 복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의 죄도 용서하시고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사66: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상한 심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 두렵고 떨림으로 죄를 자복하고 통회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밧세바와 기생라합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도 더욱 큰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시고,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싸매주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항상 주의 은혜 안에 거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