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와 우희의
이별이 담겨있는
패왕별희
覇王別姬
글,편집:묵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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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 本質이 다를바가 없는가 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哀絶한 사랑이야기는 비록 묵은지 나이 六旬을 넘겼지만 생각만으로도 부러움과 설레임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2,200여년전인 그 시절에 열렬히 서로 사랑하다 서로를 위하여 죽음으로 끝을 맺은 가슴시린 사랑이야기는 어찌보면 요즘 靑春세대들의 가볍고 쉽게 만남과 離別을 주저없이 해 대는 戀愛의 世態에 어떤 本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그런 次元에서 되새김을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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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라는 중국의 京劇이 있습니다. 王과 한 女人의 애절한 사랑과 전장에서 죽음으로 離別하는 내용인데 그 경극의 주인공이 바로 '項羽'와 '虞姬'입니다. 항우와 우희의 슬픈 사랑이야기는 2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의 心琴을 울리고 있습니다. 항우는 중국 歷史上 최고의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勇將 가운데 한사람입니다. 비록 마지막에는 또 한사람의 명장인 한나라의 장수 韓信에게 '垓下전투'에서 패배를 하였지만 그 당시 그 어떤 장수보다도 더 勇猛스러움으로 天下를 호령하고 전투마다 赫赫한 戰果를 올린 王이자 將帥였습니다.
하지만 한나라 장수 한신의 計略에 말려 함정에 빠져버린 항우는 겹겹이 포위를 당하게 되는데 한신은 心理戰으로 초나라의 노래를 사방에서 부르게 합니다. 그 意圖는 항우와 그의 군사들의 抵抗意志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말이 바로 오늘날 困境에 처하면 쓰이는 말인 '四面楚歌'입니다. 사면초가에 내몰린 항우는 우희에게 投降할 것을 권했으나 우희는 항우가 탈출함에 있어 자신이 妨害가 되고 번거러움을 준다며 스스로 自決을 합니다. 항우 역시 烏江에서 부하들이 탈출할 것을 간언하였으나 敗將으로써 목숨을 구걸하는 부끄러운 짓은 않겠다며 곧바로 敵陣에 뛰어들어 敵軍들과 싸우다 처절하게 屍身이 잘리는 죽음을 당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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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항우 나이 겨우 서른 몇살, 이렇게 悲劇으로 끝난 이 두사람의 가슴아픈 사랑이 오늘날까지 膾炙되는 것은 묵은지로서도 궁금했으며 어떻게 적들과 부딪치는 전장에서 그런 진하디 진한 사랑을 나눌수가 있었는지 여러가지의 상상을 해봤습니다. 처음 항우와 우희가 因緣을 맺게된 것은 어느날 항우가 전장터에 나가던 길이었습니다. 군사를 이끌고 北方의 戰線으로 가던 중 한밤중에 숲에서 슬피 울고있는 少女를 발견하여 불려오게 되는데 그때 나이 14세에 불과한 어린 소녀였건만 그 美貌가 너무나 뛰어났던지라 그만 항우의 넋이 나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소녀가 바로 우희였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653B4A578315F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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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 역시 自身을 자상하고 친절하게 돌봐주는 항우에게 서서히 깊은 사랑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런 인연으로 만난 두사람은 전장터를 함께하며 사랑을 나눴고 生死를 오가는 전장터에서 지쳐가는 항우의 마음에 우희는 더없는 慰勞와 慰安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희는 이후 초나라 왕인 항우로부터 貞敬夫人 이상의 稱號인 '美人'이라는 職責을 부여받고 줄곧 사람들에게 '虞美人'으로 불리면서 항우와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달콤한 사랑도 그렇게 길지는 않았습니다. 한나라의 劉邦은 天下統一을 꿈꾸고 초나라와의 끊임없는 戰爭을 벌이고 있었는데 한나라 名將 한신의 활약으로 항우의 초나라는 차츰 戰勢가 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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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항우는 '楚漢志'의 마지막 부분인 해하전투의 패배로 사랑하는 女人인 우희의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아야 했고 자신 또한 敵陣에 뛰어들어 목이 잘리고 四肢가 찟기는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後世에 이런 悲劇的인 사랑과 역사의 事緣을 주제로 경극이 만들어졌는데 이게 바로 '패왕별희'입니다. 패왕별희는 1993년에는 同名의 제목으로 映畵로 까지 製作이 되었으며 장국영과 공리가 主演하고 천카이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입니다. 영화의 背景은 중국 근대사에 外勢의 침입과 理念的 대립, 그리고 경극을 통한 文化的 갈등과 同性的인 정체성 등이 주 내용이며 경극배우들의 삶과 哀歡을 담아 패왕별희 경극과 관련된 場面이 많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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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라는 영화의 내용은 이렇게 京劇배우들의 애환과 葛藤을 그린 것이지만 중국인들은 패왕별희 경극을 통해 그들의 조상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었다는 事實 하나만으로도 公演예술로 昇華시켰습니다. 영화는 우리나라에도 1993년부터 上映되어 그 당시 영화를 觀覽하고 記憶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 영화에 出演했던 장국영은 실제로 同性愛者 혹은 兩性愛者로 알려지기도 했고 후에 47세의 나이에 홍콩의 한 호텔에서 뛰어내려 自殺을 하여 他殺說과 함께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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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雄豪傑도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어쩔수 없이 남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제아무리 천하를 號令하는 항우라 할지라도 한 눈에 반해버린 아름다운 우희의 獻身的인 사랑 앞에서 어찌 無心할 수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心身이 고달픈 전장터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아끼며 사랑을 나누었던 戀人 사이였기에 더욱 사랑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敗北의 막다른 길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죽음으로 끝을 맺은 그들의 사랑이 비록 混亂과 混沌의 시절에 있었던 애절한 사랑 이야기 였지만 왠지 묵은지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 먹먹함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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