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도심이 서쪽으로 간 까닭
전주는 동으로는 전라선 철도 너머 기린봉, 서로는 전주천 건너 서산, 남으로는 완산 칠봉으로 둘러 쌓여있으며, 북쪽은 탁 트인 지형이지만 팔복동에 공단이 있다. 이러한 분지 안에서 마땅히 뻗어 나갈만한 곳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발전과 함께 도심은 어디론가 확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할 때, 손바닥에 침을 뱉아 손가락으로 딱 쳐서 침이 튀는 방향으로 소리지르며 찾아 나서던 개구쟁이처럼 전주 도심도 어딘가로 튀어야만 했다. 1980년 당시 영생학원 이사장이던 강홍모 목사는 남노송동 간납대에 있던 학교를 이전하기 위해서 터전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그를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전주천 건너 서산을 지나 십리 쯤 격해있는 천잠산 기슭 다섯 개 마을 이장들이었다. 학교를 옮기려거든 자기네 땅을 팔 터이니 그곳으로 오라 했다. 땅값은 자기네가 매겼다. 강홍모 목사는 그들의 뜻을 좇아 45일 만에 21만여 평을 매입하고 영생학원은 간납대에서 천잠성으로 이전했다. 이 행보는 전주 도심의 방향을 견인하는 나침반이 된다.
백제대로에서 전주대학교 사이 서부신시가지가 들어설 때도 효자동 사람들은 도심을 위해 기꺼이 자기네 마을들을 내놓았다. 이들의 희생으로 전주는 순조롭게 서쪽으로 뻗어 나갔다. 이제는 황방산까지 가뿐히 넘어 혁신도시를 건설했다. 곧 김제와 맞닿을 판이다.
서부신시가지 서쪽 전일고등학교에 연한 야트막한 산에 ‘바위백이 근린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 오르면 전주 도심의 웅비를 위해 고향을 잃은 이들의 선한 마음씨를 기리는 망향동산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는 기꺼이 마을을 내놓았다”라는 글귀를 남기고 6개 마을이 흩어져 지금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개발과 토지수용이라는 한국 현대화의 이면에 있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다. 본디 토지거래는 이렇게 이루어짐이 마땅하다.
구약성경 창세기 23장에 보면 사라가 죽었을 때 그의 남편 아브라함이 아내의 무덤을 위해 땅을 매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까지 땅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지역 토호들은 마음에 드는 땅을 고르라 했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이라는 사람의 ‘막벨라’굴을 지명한다. 에브론은 두말없이 이에 응수하여 자신이 받고 싶은 금액을 부르고 거래가 성사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장사지낸 ‘막벨라 굴’ 아브라함도 나중에 거기 묻힌다. 그들의 후손도 묻힌다. 이후 유다의 왕으로 선정을 베푼 자들만이 막벨라 굴에 봉안된다. 막벨라 굴은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에덴동산으로 통하는 초입’이다. 한 생애를 살고 육신을 봉안하는 곳에서부터 길을 나서야 에덴에 당도한다. 그 첫 발걸음 이면에 선한 이들의 아름다운 토지거래가 있었음이 놀랍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