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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1)(롬 14:17)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가서 영원히 누릴 삶이 곧 우리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천국이 없다면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신앙생활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나라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의 원형은 물론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낙원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이 가득한 곳,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바로 구원의 목표입니다.
일제시대 때 주기철 목사님이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죽기를 한하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러니까 경찰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죽으려고 하느냐". 그때 주기철이 짤막하게 대답합니다. "나에게는 그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니까 듣던 사람들이 모두 순간 숙연해지더라고 합니다. 그 나라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씀하기를 "그 나라가 없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관복음에서 강조하는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 나라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은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1)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입니다. 흔히 하나님 나라 하면 장소를 먼저 머리에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 천국은 장소 이전의 문제입니다. 본문 누가복음 17:20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질문을 던집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 ” 그들은 아마 예수님을 조롱하는 뜻으로 질문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하나님나라가 어쩌고 그러는데 도대체 하나님나라가 어디 있소? 언제 임하는 거요? 그런 식입니다.
얼른 보면 시기를 묻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장소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다분히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대했고, 이 땅에서 이스라엘의 독립 국가를 꿈꾸었습니다. 가시적인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언제 이뤄지냐? 당신이 그런 나라를 세울 수 있냐? 이겁니다. 그때 예수님의 대답이 뭐였나요?
(눅 17:20,21)"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나라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겁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대답하셨던 말씀도 그런 의미였습니다. 요18:36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와 전혀 다릅니다. 세상 나라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나라입니다. 장소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리고 ‘통치’하기 위해 이 땅에 임하여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전제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기본개념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주권문제인 것입니다. 장소에 관계없이 어디서나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면 그곳이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눅 11:20 보면 예수님이 벙어리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때 하신 말씀입니다.
(눅 11:20)“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인격을 귀신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즉 마귀가 그 사람을 통치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이 그 사람의 인격을 통치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져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우리가 온전히 순복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내 삶속에 먼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네 생각이 최고라고, 너에게 가장 유익한 것은 바로 네 생각이라고, 자기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기 왕국을 이루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타락한 죄성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생각을 앞세우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는 것이 바로 지혜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삼고 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의 명령앞에 순복하면 그 나라의 기쁨. 그 나라의 영광, 그 나라의 능력을 체험할 때 “아하, 이것이 하나님 나라구나”하고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당신은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2)하나님의 나라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자기가 왕인 나라, 자기만족을 위해서 세상을 살아왔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중심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이제 나를 넘어서 우리라는 공동체를 생각하고 하나님나라인 우리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두 개의 공동체는 바로 가정과 교회입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나는 우리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 분명히 우리입니다. 가정이 그렇고 교회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한 가족입니다. 하나됨을 인정하고 언제나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존중,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함으로 상대방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을 우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나를 넘어서 우리를 생각하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으면 우리가 살아납니다. 공동체가 회복되면 우리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너가 행복함으로 내가 행복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회복되면 거기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성령은 우리모두를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됨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성령의 특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중심이 되시면 그곳에 있는 모든 지체들이 하나가 되어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섬기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된 가정이요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입니까?
1.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라고 본문은 시작합니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우리의 육신의 삶을 말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환경, 넉넉한 환경,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환경. 그래서 세상 누구보다 육신을 위해 모든 것을 갖춘 상태를 소망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구할 것을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덤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육신의 안정과 풍성한 삶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너희가 구했던 것의 우선순위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 너희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해서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모든 것들을 이루어지는 환경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게 됩니다.
세상은 육체를 따라 행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사도요한은 이렇게 세상에 있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육체를 따라 인간적으로 살면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육신의 정욕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만족합니까? 아닙니다. 그다음에 육체의 쾌락을 찾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즐거움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좀 더, 좀 더, 계속 찾습니다. 그런데 보이는 것은 반드시 끝이 오고 맙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면 소돔 고모라처럼 타락의 끝을 달리고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마는 것입니다.
2)안목의 정욕입니다. 역시 눈으로 보는 것으로 인한 욕심입니다. 여러분, 보는 것과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미혹합니까? 보는 것에 즐거움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고 우리의 믿음을 빼앗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모든 죄악의 시작은 눈으로 보는 데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는 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3)이생의 자랑입니다. 내가 갖고있는 것, 내가 소유한 그 어떤 것을 자랑하고 싶은 우리의 욕망, 역시 대단한 유혹입니다. 자기를 과시하고 싶고 그래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욕망, 그것이 그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죄성인 것입니다. 교만의 죄악의 뿌리인 것입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원초적인 죄악입니다. 사탄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경쟁자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제압하고 그 위에 올라가야 내가 행복할 것 같은 욕망입니다. 그래서 시기와 질투, 더 나아가면 전쟁입니다. 이러한 욕망이 어디서 옵니까? 우리 속에서 나오는 육체의 욕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성의 실체입니다. 짐승은 먹을 것을 먹고 배부르면 더이상 찾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끝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속에는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끝이 없는 욕망을 가진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죄성은 세상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세상 것으로 가득차면 만족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마귀가 가져다 준 착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천국은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육신의 욕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뜻이 현실이 되고 생활이 되는 환경을 말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환경적인 육신의 풍성함이 하나님 나라의 실체라면 물질이 풍성하고 잘 살면 더 이상 죄가 없는 낙원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는 선진국일수록 더 죄가 많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질이나 환경이 좋아지면 저절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모함이 있고 간절함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성경에서 말하는 관점으로 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변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감정의 경험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현실이 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의 현장위에, 여러분의 중심안에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그대로 이루어져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성령안에서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성령은 육체를 거스립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을 거스립니다. 성령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강물처럼 흐르려면 우리안에 어떤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까?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이 우리의 삶이 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령님입니다. 우리곁에 오셔서 우리의 보혜사가 되시는 하나님, 그분이 지금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운데 임하신 성령이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 역할입니다.
1)깨닫게 합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듣게 만듭니다. 전에는 내 생각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역사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지혜입니다. 지혜가 주어지면 성령의 감동하심에 민감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합니다.
2)변화시킵니다. 성령안에서 산다는 것은 변화를 이루어갑니다. (엡 4:23-25)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심령이 변화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그다음 어떻게 합니까?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이 변화되면 우리의 언행심사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다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주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기 위해 변화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변화가 되기를 바랍니까?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성장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해가 가면 갈수록 우리 심령이 변화되고 우리의 언행심사가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향기가 나서 주변의 사람들까지 변화시키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능력을 주십니다. 이제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성령의 은사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면 각종 은사들이 주어집니다. 지혜,지식의 은사, 방언, 예언의 은사, 병고침, 능력행함의 은사, 사랑과 믿음의 은사, 긍휼과 구제의 은사, 가르치는 은사, 권위하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등 다양한 은사들이 주어집니다. 그 은사를 통해서 두 가지 목적을 이룹니다. 1)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2)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구원합니다.
이렇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면서 우리가 깨닫고 우리가 변화되고 우리가 능력을 행함으로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거기 무엇이 임합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러한 영적인 현장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3.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외부적인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의와 평강과 희락”의 정서를 누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1)하나님 나라의 특성은 '의'입니다. 의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우리 속에는 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내안에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의를 '칭의'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로운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죄값을 다 치루시고 의를 이루셨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고 그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의를 옷입고 그의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이 내안에 생명으로 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의인 것입니다. 이 의를 믿고 이 의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하나님 나라 특성은 '평강'입니다. 평강은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평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에 이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바로 평강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이 엄정나게 풍족하여서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관계가 깨어지면 지옥이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주어지는 가장 큰 축복은 평강입니다. 성령은 바로 이 평강의 띠로 하나되게 하십니다. 갈등과 분쟁, 시기가 있어도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면 그곳에 하나님의 평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하나님 나라의 특성은 '희락'입니다. 세 번째 특성은 희락, 기쁨입니다. 깨어졌던 관계가 회복되고 평강이 이루어지면 그 결과는 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닙니다. 내안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기쁨으로 인해서 내 영혼의 기쁨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평강과 기쁨입니다. 여기서 희락은 육신적이고 현실적인 쾌락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령한 기쁨입니다. 의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평강이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기쁨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먹을 것이 있든 없든, 마실 것이 넉넉하든 부족하든, 세상의 것들이 좀 있든 없든, 몸이 건강하든 병들든 간에 그런 육신의 상황과 관계없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기쁨이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눅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그 기쁨을 노래하며 살아가는 마음이 바로 천국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우리 마음에 의와 평화와 기쁨으로 먼저 작은 천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임재하시면 의와 평강과 기쁨의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우리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가 머무는 삶의 현장이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거기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안에 여러분의 삶의 현장인 가정과 직장, 사업장에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그 나라가 우리 맘속에 우리 가정가운데 우리 교회가운데 임하여서 함께 섬기며 함께 사랑하면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시는 양문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