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한 손기정 선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러닝슈즈를 벗어들고 고개를 수그린 채 탈의실로 향했다. 우승자로서 느껴지는 환희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3위로 들어온 남승룡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일제강점기, 그들은 조선이 아닌 일본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시상식이 시작되고 일본 국가가 흘러나오자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손기정 선수는 들고 있던 월계수로 옷에 새겨진 일장기를 가렸고, 남승룡 선수는 일장기를 조금이라도 가리기 위해 바지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한 인터뷰에서 손기정 선수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웬일인지 이기고 나니 기쁨보다 알지 못할 설움만이 복받쳐 오르며 울음만 나왔습니다. 남승룡과 함께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서로 붙들고 몇 번인가 울었습니다.”
국내 신문사들은 올림픽 우승 소식을 전했고, 우리 민족의 우승임을 강조하기 위해 일장기를 지워 발행했다. 동아일보는 시상식 사진에서 손기정 선수 옷에 있는 일장기를 지우고 전체적으로 흐릿하게 하여 발행하였다. 이는 서울 용산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에 의해 발각되었고, 이로 인해 동대문서와 종로서의 유치장에는 동아일보 사원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조선중앙일보도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신문에 실었다가 문제가 되어 여운형 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으며 신문은 폐간되었다. 동아일보의 자매지인 월간여성지 「신가정」은 일장기를 넣기 싫어 손기정의 다리 부분만을 싣기도 했다.
그로부터 52년이 흐른 1988년, 손기정 선수가 또다시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에 등장했다. 서울 올림픽의 성화봉송자로 나선 손기정 선수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내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했고, 이 모습은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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