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전개 때 좌익 날개를 맡았던 하이랜즈 장창기병대와 휴레인 성기사대,
그리고 페이서스의 기마병단은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가 기여코 격멸하고야 말겠
다는 듯이 퇴각하는 크로세스 군의 뒤를 쫓았다.
- 크와아아---!!!!
- 두두두두두두.....!
페이서스 드래곤 나이트들의 기룡이 내뿜는 울부짖음이 크로세스 기마병의 머
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화아아악....! 쩍 벌어진 아가리 속에서 무엇보다 뜨겁
다는 용의 화염이 타올랐다. 그러나 그 용은 브레스를 뿜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
다.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페란드가 슬쩍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쏜살같이 날아
든 화살 하나가 용의 왼쪽 눈에 틀어 박혔던 것이다. 페이서스의 드래곤 나이트
들이 모는 기룡은 황금룡의 고룡 레이메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하위 용이었
다. 몸길이 20~30 미터 정도의 어린 용은 안구를 완전히 관통하고 대뇌에까지
이른 미스릴제 화살촉을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절명한체 지면에 추락했다.
콰아앙! 지면이 크게 패이고 흙벼락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대열의 맨 후미에서
뒤따르던 크로세스 기병 몇몇이 드래곤의 거구에 깔려 압사했으나 주검이 된 용
의 거체는 일종의 바리케이트가 되어 크로세스 군을 추격하던 연합군 기병대의
진로를 방해했다.
크로세스 군과 연합군 기병들 사이의 거리가 급속도로 벌어졌다. 그러나 페란
드가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강인한 기백을 담은 자신만만한 호령이 기병 1
만기의 말발굽 소리를 압도하며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어디로 도망치는 거냐, 적장군!”
검과 방패를 교차한 바스엘드 령의 군기를 휘날리는 한 무리의 기마병이 크로
세스 군의 우측으로 따라 붙었다.
“적색투마대....!”
과거 적기사단과 함께 크로세스 제국 최강의 단위 유니트로 손꼽혔던 기마병단
을 발견한 레이아드가 의미심장하게 뇌까렸다. 2차 대륙대전에서 치명상을 입었
던 혈제 자하르를 구한 친우이자 제국내 2인자였던 라이오넬 바스엘드 대공 직속
의 정예 부대인 적색투마대를 지휘하는 것은... 다름아닌 라이오넬 루나스 벨룬
바스엘드 대공의 아들, 케이아스 레아스 그룬 바스엘드였다.
바스엘드의 다섯 검이라 불리우는 다섯 맹장들의 호위를 받으며, 케이아스는
퇴각하는 크로세스 군과 나란히 평형을 이루도록 휘하 부대를 따라 붙였다. 부
대는 모두가 기병, 그 수는 거의 2만에 달했다. 케이아스는 호기롭게 외치며 레
이아드의 옆으로 바싹 말을 몰아 붙였다.
“20년에 걸친 너의 거짓된 명성을 오늘 이 자리에서 철저히 깨부숴주겠다!”
- 쐐액!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날아든 참격. 일격으로 끝장내기에 충분한 힘과 속도가
붙어 있었다. 고개를 숙여 피해낸 레이아드의 투구 휘장이 예리하게 잘려 날아
갔다. 케이아스의 손에 들린 창백한 붉은 검신을 확인한 레이아드는 우울하게
읊조렸다.
“아젝트 베큐터.... .”
“그렇다! 검이 같은 이상 사용자의 역량이 승패를 좌우하는 법! 자아, 우열
을 가리자!”
- 카각! 쨍! 쩡쨍그랑!카라랑! 크라라랑! 카가칵! 쩡! 쳉그랑랑!
마검과 마검이 뒤엉키며 또 다시 붉은 섬광을 뿜어냈다. 레이아드와 케이아스
는 직선으로 말을 달리며 20 합쯤을 겨루었다. 케이아스의 실력은 분명히 어디
에서나 초일류라 불리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레이아드보단
떨어졌다. 그러나 전력을 다해 승부를 겨루는 케이아스에 비해 레이아드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지휘관인 자신이 결투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에도 자신
을 뒤따르는 다른 병졸들은 두 배가 훨씬 넘는 적색투마대와 어울려 힘겨운 싸움
을 전개하고 있었다. 아직까진 퇴각하며 싸우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으나 점차
낙오하는 자들이 많아졌다. 이러다가 조금 뒤쳐져서 추격해오는 연합군의 다른
기병들에게 애워싸이기라도 하는 날에는 승패의 향방은 뻔한 일이었다. 이미 두
명의 드래곤 나이트들은 크로세스 기마병들의 머리 위를 기룡들을 몰아 가로지르
며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었다.
‘할 수 없군. 이런 위험한 모험은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
레이아드는 한 차례 매서운 공격으로 케이아스를 물러서게 만든 다음 근처에서
바스엘드의 다섯 검중 하나인 헥터를 맞아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페란드를 돌아
보았다. 페란드는 곧바로 레이아드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 역시 저돌적인 공격
으로 헥터를 밀어 붙인 다음 기묘한 형태의 화살 한 자루를 뽑아 들어 허공을 향
해 쏘아 붙였다. 화살촉이 있어야 하는 곳에 뭉툭한 필터가 달린 특수한 화살이
었다.
- 피류류류류류류류------!!!!!!!!!
작지만 날카로운 소리가 길게 꼬리를 끌며 사방에 메아리쳤다.
“뭐, 뭐야 이건?!”
신성 휴레인 왕국 성기사단장 가더 가레인은 어안이 벙벙한 듯 소리질렀다.
전장의 소음을 압도하며 울려 퍼진, 유리를 문지르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는 그
역시 들었다. 그것이 무슨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당연히 했었다. 그래서
한층 더 가열찬 기세로 퇴각 속도가 떨어진 크로세스 군을 덮치려는 찰나... 휴레
인 유일의 성기사는 생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경악스러운... 아니 황당한 광경
을 목격했다. 뒤따라 붙은 바스엘드 군과 뒤엉켜 접전을 벌이던 수천의 크로세
스 군. 그 수천의 크로세스 군이 말 그대로, 폭발한 듯 흩어져 제각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몇명씩 조를 짜서 도망친 것도 아니었다. 그 수천명
모두가,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떤 자들은 거꾸로 연합군에
게 달려드는 자도 있었으며, 어떤 자들은 수해쪽으로, 어떤 자들은 협곡쪽으로,
어떤 자들은 끝 없이 펼쳐진 서쪽으로... 마치 알에서 깨어난 거미 새끼와도 같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이건 시정잡배들이나 소수의 레지스탕스 - 저항군
들이 도망칠 때나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던가. 설마 이런 방법을 수천명의 규모
로 재현할 줄이야.... . 가더는 이를 악물었다. 이건 만약의 경우 어디에서 만나
자는 확약이 되어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변칙의 극을 달리는 퇴각법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 주변의 지리에 통달해 있지 않는 이상은 전개할 수 없는 일률적
인 퇴각이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절대적.
수천명이 하나로 뭉쳐 있었을 경우에는 1개 부대로도 쉽게 제압할 수 있겠지만
흩어져 버리면 도저히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1만의 군사가 1백의 병력을 몰살
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1백명의 병사들이 1백여 방향으로 제각기 흩어져 버
리면 1만의 군사들 역시 1백 조각으로 갈라질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또한 이 싸움에 참가한 크로세스 군의 숫자가 예상했던 것의 절반에 지나지 않
는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이 주변의 지리에 어두운 그들로선 어떤 함정이 기
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판국에 무턱대고 수백, 수천 갈래로 갈려서 추격전을
펼칠 수는 없었다. 와이번 한 마리를 쓰러뜨리는 것과 사방으로 숨어버린 1백만
마리의 쥐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 드래곤에게 있어 어느 쪽이 더 힘들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무엇보다 하나의 부대를 편성하고 있는 그들로선 분화하여 흩
어진 적들을 뒤쫓을 방도가 없었다. 아니.. 단 한가지, 방법이 있긴 있었으나 그
건 휴레인 유일의 성기사로선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명령이었다. 그건.... .
“제기랄! 아무나 하나 생포해서 적들의 집결지를 알아 내라! 무슨 수를 써
서라도 실토시켜라!”
...하이랜즈의 라벨 장군이 가더를 대신해서 부르짖고 있었다. 그러나 가더는
그 방법도 별 다른 실효를 거두리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저 크로세스 군들중에
순순히 생포될 자들이 몇명이나 있을까. 분명 포로가 되기보단 죽음을 택할진데.
게다가 적장군 역시 집결지에 막사를 펼쳐 놓고 맥 없이 휴식을 취하진 않으리
라. 분명 일정 숫자 이상의 아군이 집결한 후 최대한 신속이 장소를 이동하겠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오늘의 전투에서 1 백만 연합군은 처음부터 끝까지 적
장군이 정해 놓은 각본대로,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고 말았던 것이다. 씁쓸하게
혀를 차며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가더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했다.
“아, 아니!”
“쳇, 잔재주를 부렸군. 하지만 너만 잡으면 다른 잔챙이들 따윈 아무리 도망
쳐도 상관 없다!”
버럭 부르짖으며 거세게 검을 떨쳐오는 케이아스. 휘하 부대들이 애초에 약정
한 대로 흩어지기 시작한 것을 확인하고 여유를 되찾은 레이아드는 어렵지 않게
케이아스의 검을 걷어 내며 몸 안쪽으로 다시 검을 내질렀다. 쨍! 간발의 차로
가슴을 젖혀 피한 케이아스였지만 불꽃이 튀길 정도로 힘껏 갑옷을 긁은 레이아
드의 검압에 밀려 비틀거렸다.
“큭... 이 놈이!”
케이아스의 안색이 가볍게 굳었다. 그는 아젝트 베큐터를 고쳐 쥐면서 미간에
힘줄이 돋을 정도로 정신을 집중했다.
- 바아아아앗!
파지직! 스파팟! 케이아스의 아젝트 베큐터가 시뻘건 섬광을 발하며 타오르
기 시작했다. 케이아스의 의지를 먹고 ‘힘’으로 구현한 것이다. 검붉은 스파
크가 마검의 검신을 타고 일어났다. 흐릿한 붉은 안개가 케이아스의 몸 주위로
엷은 반원형의 막을 이뤘다. 마검에 집중된 검기(劍氣)가 극에 이름과 동시에 케
이아스의 몸 주변을 보호하는 일종의 방어벽을 형성한 것이다. 몇몇 전설의 검
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 능력이었다. 시뻘건 빛의 검을 쥔체 의기양양한 미소
를 짓는 케이아스를 보며 레이아드는 나직히 말했다.
“1대 1 마상 대결에서 마검의 힘에 의지하다니... 어리석군. 마왕 아델베르크
의 마검의 힘을 제압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보통은 넘는 것 같지만 저 라이오넬
대공의 아들이라곤 생각 되지 않는군.”
“뭐라고?!”
- 그아앗!
분노한 케이아스는 체 말을 끝맺기도 전에 강력한 검격을 수평으로 뿌렸다.
공간이 웅웅거리며 울릴 정도의 힘이 집중된 마검이 레이아드의 몸통을 단숨에
동강내 버리겠다는 듯이 허공을 양단했고... 슬쩍 몸을 숙여 무시무시한 혈광의
검격을 지나쳐 보낸 레이아드는 똑바로 검을 뻗어 케이아스의 겨드랑이 아랫부분
을 찔렀다. 퍼억! 갑주가 깨지는 단단한 느낌과 맨살을 파해치는 부드러운 감
촉이 검끝에서 전해져오는 순간, 레이아드는 내질러지던 칼끝을 딱 멈췄다.
“크허헉!”
그 반동으로 떠밀린 케이아스는 말에서 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몸을 굴려 낙
상을 피하는 것은 그가 초일류의 검사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
이아드의 공격은 일격으로 케이아스의 전투력을 빼앗았다. 만약 마검의 방어막
이 아니었다면 이 공격으로 케이아스는 절명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케이아
스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증오스런 눈으로 레이아드를 올려다 보았다. 레이아드
는 마무리를 가하지 않았다.
“큭... 너....!”
“...이건 라이오넬 대공에게 빚진 황제 폐하의 목숨값이다. 간신히 살아난 그
목숨, 소중히 간수해라.”
레이아드는 제 2차 대륙대전의 와중에 하이랜즈의 핸드릭스 장군에 의해 사지
에 몰렸던 자하르를 몸바쳐 구해낸 케이아스의 아버지, 라이오넬 루나스 벨룬 바
스엘드 대공의 은공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레이아드의 시선에 케이아스는 순간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곧 그
것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지지 않고 소리쳤다.
다급한 부르짖음이 격렬한 말발굽 소리와 섞여 들려왔다. 강맹한 기세로 케이
아스와 레이아드 사이에 끼어든 것은 바스엘드의 다섯 검이라 불리우는 다섯 맹
장중 두 명. 그들은 볼 것도 없이 레이아드를 애워싸고 공격을 시작했다. 힘과
기(技)가, 그리고 검과 검이 부딪치는 격렬한 칼부림이 다시 시작됐다.
한 명 한 명으로도 가히 대륙 전체에 이름을 떨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평가
받는 바스엘드의 다섯 검중 이 인(二人)을 상대로 하면서도 레이아드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방어에 급급한 것은 바스엘드의 맹장들. 레이아드의 검은 때로
는 유성처럼, 때로는 질풍처럼 난무하며 적의 공격을 원천봉쇄했다.
“과연 적장군, 명불허전이군! 하지만 그대는 어차피 이 자리에서 죽어야 할
운명!”
페란드를 놓쳐 버린 헥터가 소리치며 2대 1의 격투에 끼어 들었다. 그의 대도
(大刀)가 산이라도 쪼갤 듯한 기세로 내리 그어지고, 그 격렬한 참격을 막아내느
라 한 순간 균형을 잃어버린 레이아드를 향해 다른 두 명의 검이 일제히 날아 들
었다. 레이아드는 투구 밑으로 얼핏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죽어줄 수 없겠는걸. 내가 죽을 자리는 십 수년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검광이 시야를 가릴 듯 난무하고 말들의 거친 호흡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귀를
멍멍하게 울렸다. 짧고 강한 기합 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어김 없이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고 네 마리의 말들이 엇갈리는 주변으로 자욱한 흙먼지가 일
어났다. 그러나 서풍의 집행자라 불리우는 바스엘드 대공령의 다섯 검중 세 명
을 상대로 싸우는 와중에도 레이아드의 아젝트 베큐터가 더 위세를 뿜었다.
비척대는 몸으로 간신히 간신히 일어난 케이아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
로부터 물려 받은 아젝트 베큐터를 고쳐 쥐었다. 그러나 휘두를 수는 없었다.
적장군이 남겨 놓은 상처는 온 몸의 힘을 흡수하는 듯 했다. 다음번엔... 반드
시....!
그러나 다음번은 없다는 것을 케이아스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결
코 저 남자의 적수가 못 된다는 것을, 초일류 전사로서의 본능이 가르쳐주고 있
었다. 케이아스는 부르르 떨었다. 그럴리 없었다. 지금껏 아버지 라이오넬 대
공 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었던 자신이 아니던가! 그리고 언젠가 아버
지를 뛰어 넘었다고 자부한 이후, 그는 스스로를 최강자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러나....! 자신도 제대로 싸워야 한 명을 상대할 수 있는 바스엘드의 다섯 검.
그들중 세 명을 상대로 오히려 밀어 붙이고 있는 저 남자는 무엇인가.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깨져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케이아스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베스오렘! 드레이번! 어디에 있는 거냐!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자의 목을 잘라 내 앞에 대령하라! 목과 몸통이 분리된 다음에도 저
런 시건방진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 저 자를 죽여 버려라!”
이길 수 없다면 죽어 버리겠다. 그래서 내가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
다.
주군의 명에 따라 달려온 바스엘드의 다섯 검이라 불리우는 맹장 두 명이 3대
1의 격전에 가세했다. 이렇게 되자 레이아드로서도 말 위에서 이들을 상대하기
엔 벅찼다. 실력의 문제라기보다도, 한 꺼번에 다섯 방향을 빼앗기게 되면 반전
이 어려운 말 위에서는 등 뒤를 언제나 노출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팔이 두
개 밖에 달리지 않은 인간으로서는 말 위에서 한꺼번에 자신과 비등한 역량을 지
닌 4명 이상의 적을 상대로 싸울 수 없었다.
레이아드는 저돌적으로 말을 앞으로 몰며 정면의 헥터를 거세게 몰아 붙였다.
느닷 없이 퍼부어진 강맹한 공격에 주춤한 헥터가 조금 물러서는 틈을 틈타 레이
아드는 검을 수평으로 뿌려 그의 오른편에 버티고 서 있던 베스오렘을 물러서게
했다. 그리곤 그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뚫고 포위망에서 빠져 나가기 위해 말을
몰았다.
그러나 서풍의 집행자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드레이번의 창이 예리한 기세로
레이아드의 등을 찔러 들어왔고, 원래는 레이아드의 몸을 관통했어야 할 그 창끝
은 육감적으로 몸을 뒤집은 레이아드의 등받이 갑옷을 깨뜨리고 스쳐지나가면서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혔다. 레이아드가 주춤하는 사이 슬쩍 물러섰던 베스오렘
이 다시 다가오며 검을 휘둘렀다. 어깨의 힘은 물론 말의 힘까지 실은 강력하고
도 탄력 있는 참격이었다. 칼 자루 부근에서 그 검격을 막아낸 레이아드의 검이
튕겨지고 베스오렘의 검은 적장군의 어깨죽지를 파고 들었다. 검으로 기세를 저
지시키지 않았다면 어깨를 날려 버렸을지도 모르는 강력한 검격이었다. 두 번의
공격을 받고 휘청하는 레이아드를 향해 다른 두 명과, 맨 처음에 물러났던 헥터
가 결정타를 가하기 위해 달려 들었다.
“쯧.... .”
레이아드는 혀를 찼다. 아마도 바보 같은 실수를 한 자신을 향해서. 그는 왼
손목에 착용된 철갑으로 왼쪽에서 찔러 들어온 두 자루의 병기를 한 꺼번에 튕겨
냈다. 그리곤 정면에서 검을 휘두르며 달려든 헥터를 향해 마주 말을 몰아 달려
가며 검을 휘둘렀다.
- 쩡!
“억?!”
검과 검이 격돌하는 순간 전해져온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검압에 떠
밀린 헥터는 그대로 안장에서 붕 날아 뒤로 낙마했다. 헥터가 낙마하는 모습을
보지도 않고 고삐를 잡아 당겨 말의 방향을 바꾸는 레이아드. 불안정한 자세의
적장군을 향해 드레이번이 내지른 창 끝이 유성처럼 날아 들었다! 레이아드는
고삐를 쥔 왼 손을 내뻗었다. 덜컥!
“으윽?!”
질풍의 창이라 불리우던 바스엘드 대공의 다섯 검중 하나, 드레이번은 신음을
토해냈다. 레이아드가 찔러 들어오던 드레이번의 창대를 움켜쥐는 순간, 질주하
는 말의 돌진력과 강철처럼 단련된 어깨의 탄력을 실은 창끝이 덜컥 정지해 버린
것이다. 드레이번은 안간힘을 쓰며 창대를 잡아 당겼으나 레이아드의 한 손에
잡힌 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놈!”
베스오렘이 소리치며 그 유명한 장검을 휘두르며 레이아드의 뒷쪽으로 달려 들
었다. 그 은색 검신에는 적장군의 피가 묻어 있었다.
“..... .”
레이아드는 잡고 있던 드레이번의 창을 살짝 놓았다. 잡아 당기던 힘을 이기
지 못하고 드레이번이 뒤로 넘어가려는 순간, 레이아드는 다시 힘껏 창을 잡아,
확 끌어 당겼다. 레이아드의 손이 창날에 긁히며 피가 흘렀으나 그는 전혀 개의
치 않았다. 뒤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앞으로 힘을 쏠리던 드레이번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앞으로 끌려 왔고, 레이아드의 아젝트 베큐터는 그런 드레이
번의 허리를 깊숙히 베어버리고 있었다.
“......!”
비명 소리도 지르지 못한체 죽어간 드레이번의 주검이 땅에 체 떨어지기도 전
에 레이아드의 왼 손은 그의 허리춤에 매여 있던 장검을 뽑아 들어 뒤로 휘둘렀
다. 레이아드의 오른손에 들린 아젝트 베큐터에만 신경을 쓰고 있던 베스오렘은
반사적으로 검을 세워 방어했고... 레이아드의 왼 손에 쥐어진 드레이번의 검은
단숨에 베스오렘의 검을 부러뜨리고 그의 미간에 박혔다.
- 쿠웅!
무거운 소리와 함께 두 맹장의 시체가 사이 좋게 낙마한 것은 동시였다. 막
재공격의 태세를 갖추던 바스엘드의 다섯 검중 두 명은 경악스런 표정으로 적장
군의 핏빛 실루엣을 응시했다. 단 한 순간에 자신들중 두 명을 쓰러뜨리고 한
명을 패퇴시킨 이 남자는.....! 다섯 명이 동시에 싸웠는데도 이길 수 없었던 적
을 겨우 두 명이서 어떻게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들이 우물거리는 사이 레
이아드는 말 머리를 돌려 어디론가로 달려갔다. 바스엘드의 다섯 검, 대륙 전체
에 그 명성을 떨치는 맹장들은 말 없이 적장군의 뒷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제기랄, 이 놈들이....!”
페이서스 왕국의 명실상부한 최강의 단위 유니트 - 드래곤 나이트. 두 마리의
기룡을 몰아가며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는 크로세스 군을 추격하던 그들은 마침
내 분통을 터뜨렸다. 물론 말 보다 훨씬 빠른 드래곤을 타고 있는 그들은 사방
으로 흩어져 도망치는 크로세스 군을 추격하여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혀 주었다.
그러나 크로세스 군의 산개(散開)가 일정 이상 이루어지자 그 것도 한계에 도달
했다. 도대체 죽어라 뒤쫓아가 브레스를 퍼 부어 봤자 한 명 이상의 적을 죽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로선 수지가 안 맞는 싸움이었다. 그
들은 이미 한 마리의 귀중한 기룡을 잃지 않았는가. 이를 갈며 허공을 선회하던
그들은 청색과 녹색의 기룡을 나란히 몰며 서로간의 의견을 교환했다.
“어떻게 하겠나?! 계속 사냥을 시도할 건가?!”
“그래야 하겠지만 이래서야 도저히....!”
- 그아아악?!
그 때 주인들의 투덜거림을 지워버리는 다급한 비명이 그들의 기룡들에게서 터
져 나왔다.
“그라텔, 왜....?!”
그러나 페이서스 드래곤 나이트의 충실한 기룡은 어리둥절한 주인의 물음에 대
답하지 않았다. 두 마리의 기룡은 그야말로 무서운 기세로, 아니 맹렬한 기세로
좌우로 갈라져 하강했고 순간적으로 가해진 그 엄청난 관성에 드래곤 나이트들은
고삐를 있는 힘껏 움켜쥐며 버텼다.
“왜.....?!”
그러나 쥐어짜듯이 입을 연 그 드래곤 나이트는 두 번 질문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기룡이 허겁지겁 물러선 그 자리로, 거대한... 정말 거대한 황금빛 그림자
가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그 스치고 지나갈 때 발생한 풍압 만으로도 몸 길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그들의 기룡이 비틀거릴 정도로.
- 우워어어어-----!!!!!!!!!
고막을 터뜨리는 듯한 무시무시한 포효가 창공을 뒤흔들었다. 드래곤 피어.
만일 그 두 명의 드래곤 나이트들이 오랜 시간 용과 함께 지내면서 드래곤 피어
에 대한 면역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면 즉사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맙소사....!”
한 드래곤 나이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들이 타고
있는 기룡의 다섯 배는 될듯한 거대한 체구. 햇살을 반사시키며 금빛으로 번들
거리는 견고한 비늘과 우아하면서도 냉혹한 네 쌍의 뿔. 좍 펼쳐진 양 날개의
피막은 군대군대 찢겨져 있었으나 여전히 그 거체를 지탱하는데 모자름이 없을
만큼 위용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최강의 마수라는 용족중에서도 최상위종족으로
불리우는 골드 드래곤의 고룡(古龍) 레이메드. 이 최강의 생명체가 한 쪽 눈에선
시뻘건 피를, 다른 쪽 눈에서는 시퍼런 분노의 불길을 뚝뚝 떨어 뜨리면서 크로
세스 군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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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걱.. 연합군은 맨날 쫓아라만 하는군요... 하는 수 없지, 그런 상황이니...
칠성전기 외전 대륙사 제 25편
고룡 레이메드를 죽이는 장면은 내일 올리죠
120미터짜리 고룡을 어떻게 죽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