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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6일(월) 마태복음 8:5~13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새찬송가 471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오늘은 마태복음 8:5~13 말씀을 중심으로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한 백부장이 예수께 나와서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의 중풍병이 낫겠습니다”라고 하자 주께서는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하인을 고쳐주십니다. 올 해 저희 교회의 표어가 ‘믿음으로 전진하자’입니다. 이 표어처럼 저와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한 해를 힘차게 뚫고 전진하며 나가는 한 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칭찬받은 믿음의 인물을 보게 됩니다. 그는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100명의 군인을 거느리고 있는 로마의 지휘관을 말합니다. 백부장은 높은 보수를 받았으며 로마사회에서 좋은 직업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런 로마의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중풍병으로 괴로워하는 하인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5,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십니다. 7절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그렇게 하자 로마 백부장은 감사합니다. 빨리 가서 고쳐주세요라고 하지 않고, 8절에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라고 합니다. 당시 새 한 마리 값도 안 되었던 하인을 위해 백부장이 주님을 찾아온 것도 참으로 대단한 일이지만, “가서 고쳐주겠다”는 말씀에 “말씀만 하옵소서”라고 고백한 것은 그 이상의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백부장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놀라워하시며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10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도다”그랬습니다. 도대체 백부장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길래 주님께서 그렇게 놀라와 하시고 기뻐하셨을까요? 당시 종은 사람의 개념보다는 소유물의 개념이 컸습니다. 우리는 전화기가 고장 나 못쓰게 되면 버리고 새로 사지 그것을 사랑하여 고쳐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시의 종의 개념은, 종이 병들면 버리고 다른 건강하고 일 잘하는 종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이 죽음 직전에 있던 상황으로 보입니다. 백부장은 그 종을 사랑했습니다. 본문의 기록자는 그를 일반적인 노예의 의미로 가리키고 있지만, 백부장은 자신의 종을 ‘하인’(6절, 8절)이라고 말했는데 그 단어는 일차적으로 ‘아이’, ‘자녀’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백부장은 그 종을 자신의 ‘아이’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인의 치료를 위해서 주님 앞에 나왔구요. 또한 주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고 했을 때, 그는 8절과 9절의 고백을 합니다. 8절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9절“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누군가가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 그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은 복종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위로 로마 왕과 천부장이, 아래로 십부장이 있었습니다. 권위를 가진 자가 오든지 오지 않든지 명령만 하면 순종했던 것입니다. 백부장이 했던 말은 이렇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이 질병 위에 권세를 가진 분이 아닙니까.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가장 높으신 하나님으로서 만물을 발아래 두고 계신 분이 아닙니까. 굳이 내 집까지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당신에게 권위가 있지 않습니까.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백부장은 주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으로 최고의 질서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이 자신을 낮게 평가했던 것은 예수님을 높게 보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이 여전히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10절) 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위대했습니다. 예수님이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에 의심치 않았고, 굳이 그 장소에 있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는데 소문만 듣고 예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의 겸손한 마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하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겸손은 단순히 나를 낮추는 것으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덕목입니다. 자신을 낮추다보면 그렇게 낮추었다는 생각에 다시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하나님과 나를 바르게 바라볼 때 따라오는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분인지 알면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얼마나 가치없는 존재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겸손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죄를 사하는 권세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병 고침의 능력을 바알세불을 힘입었다며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철저히 자신들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고 했던 그들을 예수님은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유대인 지도자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 등의 종교지도자들이 더 거룩해 보이고 하늘나라 백성에 합당한 자들이다 여겨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백부장, 즉 하나님 앞에서 낮아져서 종을 사랑했던 그을 칭찬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놀라운 권세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 그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은혜를 구했던 백부장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세상의 사람들을 기쁘게 해도 혜택이 돌아오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별한 은혜와 사랑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병이 들면 하나님께서 그 병을 빨리 낫게 해주시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면 도와주셔서 다시 흥하게 하시고, 자녀가 없는 가정에는 자녀를 주시고, 또한 지혜를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며, 축복 중의 축복, 은혜 중의 은혜를 주십니다. 성경말씀 시편 37편 4절을 보면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오늘 13절에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해주십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 지금은 볼 수 없고 지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바라보고 기도하면 그것이 내게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있는 믿음의 그릇, 통로를 하나님이 축복으로 사용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믿음의 통로를 통해서 복을 부어주시고 치유의 사건을 주시고 사용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믿음을 보고계세요. 내가 말하는 거, 내가 헌금하는 거, 내가 봉사하는 것을 보고 나의 믿음을 보고 계세요. 오늘 이시간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묻고 계세요. 너희 믿음대로 되라. 내가 너의 병을 치유할 줄로 믿느냐? 내가 일 할 줄로 믿느냐? 주님 묻고 계세요.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믿고 우리가 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믿고 나아가면 너의 믿은대로 되어라. 고 말씀하세요. ‘가라 네가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앞에 내가 구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질서를 따라 주신 자리에서 내 옆에 괴로워하는 지체를 긍휼히 여기며 ‘말씀만 하옵소서’의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