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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길에서 잡은 고래
지금 지구 저쪽 나라인 프랑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특히 신앙에 대한 열정과 신앙 운동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직도 신앙을 간직하고 열정적으로 살고 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궁금증이 일어난 것은 「길에서 잡은 고래」라는 책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저자 르네 뤼크 신부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그가 쓴 책을 더 보고 싶었다. 순식간에 책을 읽어 내려가며 르네 뤼크 신부의 삶에 개입하신 하느님의 손길과 그의 마음에 들어가 사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이토록 파란만장한 삶을 겪은 기구한 운명이 있을까 싶을 만큼 그의 인생은 험난했다. 좋아하는 형과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 아버지의 이름을 쓰는 난에 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름이라고 써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 그뿐만 아니라 사생아로 태어난 르네 뤼크의 담담한 어린 시절의 고백을 읽으면서 정말 그는 어떻게 사제가 되었을까, 이 기적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하는 호기심마저 일었다. 폭력조직의 일원이었던 새 아버지 마르시알 아저씨와 아름다웠던 관계와 새 아버지의 성을 받을 수 있다는 행복했던 순간은 잠시뿐이었다.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형들과도 헤어지고 언제나 어미 닭이 날개 아래 병아리들을 품듯이 지켜주었던 엄마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사건을 끔찍했던 저녁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함께 마음이 아파왔다. 좋아하고 의지했던 형들이 떠난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은 어린 나이에 자신도 폭력에 몸을 맡기고 오토바이 폭주족이 되고 그렇게 파괴된 가정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지냈다. 더구나 감옥에서 나온 새 아버지가 길에서 총을 쏴 자살하는 모습을 목격한 그 순간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그는, 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걷잡을 수 없이 폭력의 길로 빠져든다. 소위 말하는 문제아로 그토록 사랑했던 엄마에게 반항하면서 자신이 누구인가 알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인생 최대의 기폭제가 된 사건이 벌어진다.
우연한 기회에 엄마와 함께 니키 크루즈의 강연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엄마는 뉴욕 갱 두목이었던 니키 크루즈의 전력을 강조했고 그 전략은 그대로 르네 뤼크에게 먹혀 들어갔다. 니키가 회개하여 목사가 되었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강연회였다. 니키 크루즈의 책 「달려라 니키」를 참 감동 깊게 읽었었는데 이 책에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니키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저는 예수님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고 제 영혼은 변했습니다. 예수님이 저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삶도 변화시킬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구체적으로 그분을 향해 한 발 다가가기를 초대합니다. 이 단상 아래로 내려와 우리 함께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여러분의 삶을 그분께서 변화시켜주시길 간청합시다.” 이 초대에 한두 사람이 움직이더니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는 니키의 삶에 비해 덜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었기에 예수님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니키가 평화롭고 온화한 얼굴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처럼 기도하고 싶다는 원의가 생긴 것이다. 그리곤 그도 기도한다. “예수님, 당신은 니키 쿠르즈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저도 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제 마음을 당신께 열려고 합니다. 저 또한 다른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기도의 분위기 안에서 눈물이 뺨 위로 흘러내렸다. 하느님이 나를 움직이신 것이다. 그날 저녁, 몽펠리에에서 나는 처음으로 니키에 힘입어 ‘성령의 내림’을 체험했다. 성령은 숨결과 같다. 성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에게 오신다. 그렇게 하나의 문이 열렸고, 창문도 열렸다. 우리 모두는 그 순간 성령의 숨결이 우리 마음의 벽을 통과하는 것을 느꼈다. 그날 저녁 나의 풍향계는 자유로워졌고,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되었다.”(본문 중에서)
막 열네 살이 된 그는 루르드를 순례하게 되고 은총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강하게 느끼고 자신의 삶 전부를 바칠 결심을 하게 된다. 사제로 부르시는 하느님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여러 영성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고, 같은 또래의 청소년들 앞에서 자신의 모든 체험을 증언하게 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변하게 된다. 여러 기도모임에 참석하면서 점차 하느님의 뜻을 알아가는 르네 뤼크는 전쟁이 한창이던 레바논의 가톨릭 청년들을 만나고 친아버지와 감격적인 해후를 하게 되고 가톨릭 록그룹 토투스 투우스(온전히 당신의 것)를 창단하여 록으로 하느님을 찬미한다. 로마에서 신학공부를 할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의 만남, 마더 데레사와 만남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사제로 서품되어 많은 선교활동을 해나가면서 특히 청소년들을 위한 사목에 헌신하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술 취한 레오폴 아저씨에게 고해성사를 주면서 새로운 선교에 대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는다. 이 순간을 그는 물고기를 낚는 것뿐만 아니라 길에서 고래를 잡은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교도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수감자들과 함께 그들이 직접 쓴 묵상을 나누며, 역할극을 하면서 걸었던 십자가의 길은 굉장히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의 영화 같은 생애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그들처럼 교도소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처럼….
이 지면에서 다 풀어내지 못한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는 이 책은 쉽게 허투루 볼 책이 아니다. 감동과 아름다움이 배어 있고 하느님의 손길이, 고독하고 아픔이 절절했던 한 소년에게 어떻게 어루만지고 사랑을 선택하게 되는지, 사제가 된 후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프랑스의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선교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있는 책이다.
그가 어린 시절 겪은 고난들을 회고하며 이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이 내게 해 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가족들과 그들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에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가슴 가득히 하느님을 받아들일 때 삶은 변할 수 있다!” 어쩌면 마음에 하느님을 진정으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외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 다음은 하느님께서 하실 것이다.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
2월이 오면 뵙고 싶은 그리운 사람이 있고 또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명동성당의 들머리에서 남산으로 가는 언덕을 돌아 퇴계로의 명동입구 전철역까지 길고도 긴 조문행렬, 그리고 그 긴 줄에 서있다는 것을 힘겨워하지 않고 기꺼이 감내하던 거룩한 얼굴들! 이들의 조문을 인자한 얼굴로 말없이 받아 주시던 김수환 추기경이다. 그들은 왜 추운 겨울날 손과 발을 얼리면서 그 긴 행렬의 맨 끝에 서기를 자처했는가? 이제는 손도 잡을 수 없고 이야기도 할 수도 없고 간단한 목례만 드릴 수 있을 뿐인데….
누군가 이 고단한 세상에서 깊은 연민과 사랑으로 편협함 없이 그렇게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끌어 주고 삶의 모범이 되어주는 스승을 원하는구나, 그래서 차마 그분을 그냥 가시게 할 수 없었던 것이구나 하는 마음에 그분이 가신 2월이 되면 더욱 추억이나마 붙들고 그분의 삶에 우리 삶을 견주어 보고 싶은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리던 그분으로부터 편지를 받아보자. 그것도 친전(親展)이라고 쓰인 편지를. 친전이란 편지를 받는 사람이 직접 펴보길 원할 때 편지 겉봉의 받는 사람 이름 옆에 쓰는 말을 의미한다. 그래서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로 시작되는 이 책은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 보낸 사랑편지의 ‘그대’이다. 그리운 마음에 얼른 펴보는 이 책은 생전의 우리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았던 자상하고 소탈한 김수환 추기경의 육성을 듣는 것 같다. 평소에 사랑해마지 않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런 절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저렇게,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준엄하게 시대의 가르침을 주기도 하면서 먼저 그 길을 앞장서 걷는다.
즐겨서 많은 이들이 인용하는 말씀 중에 늘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긴 여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것입니다. 머리에서 마음에 이르는 것. 머리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마음에까지 도달하게 하여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모두 잘 못합니다.”(본문 중에서) 이 말씀은 책을 읽을 때는 감동을 받아서 ‘아,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어느새 본성대로 살고 있고 머리로만 살고 있는 나에게 하신 말씀 같았다. 이처럼 각 장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직접 주시는 말씀들이 담겨 있는 친전 편지이다.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희망 없는 곳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한 그대여, 청춘이 민족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 내 기쁨을 그대와 나누고 싶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희망과 위로, 꿈과 인간적인 고뇌와 체험을 통한 교감, 그리고 일생을 관통한 기쁨과 행복의 원천과 비밀에 대해 알려 주시는데 하시는 말씀마다 우리를 치유하는 은총의 비로 적셔 주고 있다. ‘희망이 없는 곳에도 희망이 있습니다’에서는 사람이 희망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47세의 젊은 추기경 시절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여름에 한 소녀에게 써주었던 글귀는 평생 간직하고 희망의 등불로 삼게 하고, 누구에게라도 희망을 주는 글이다. 그 소녀는 “아빠는 집을 나가고, 엄마는 병으로 누워 있어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있지만…. 하루하루가 힘들어요. 추기경님이 저를 위해 좋은 말씀 하나만 적어주세요.”, “장마에도 끝이 있듯이 고생길에도 끝이 있단다.”
‘매스미디어에게 말한다’ 이 부분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매스미디어의 조명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누구보다도 매스컴의 힘과 본령을 잘 알고 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언론은 진리의 증거자로서 그 시대정신을 드높이고, 밝은 사회의 앞날을 열어주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매스미디어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뚜렷이 말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고, 인간으로 존경하고 사랑할 줄 아는 것, 글을 쓰든 시를 쓰든 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데서 우러나오고 인간을 아름답게 키워주기 위해 봉사하는 것, 이것이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기본이라는 것은 비단 언론뿐 아니라 나라에서 단체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새겨들을 일이다. 어쩌면 그토록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사셨기에 그분이 여전히 가장 보고 싶은 인물 1위를 차지하신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고독했던 그분, 그리고 우리 민족을 위해 30년 동안 앓았던 고질병인 불면증 등 그분의 인간적인 진솔한 내면의 고백에서는 가슴 아팠고, 또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과 ‘서시’를 좋아하지만, 감히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게 많아서 서시를 읊어 볼 생각을 못했다는 내용은 그분의 겸손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외적으로 어려울 때일수록 내적으로는 더 심화되고 마음의 문이 열려서 인생을 더 깊이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 만약 시련의 때라면 오히려 우리 자신을 보다 더 성장시킬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십시오. 어떤 고통도 겪지 않은 인간, 고독도 슬픔도 겪지 않은 인간은 사실 존재하지 않겠지만 있다면 그런 인간은 무미건조합니다. 인간의 깊이도 없고 향기도 없습니다.”란 말씀은 현재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보내는 희망의 연서이다.
여러 계층, 여러 성향의 사람들을 사랑하셨지만 특별히 젊은이들, 약자, 소외된 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이신 그분, 사랑은 배려이자 친절이자 축복임을 자주 강조하셨는데 사랑이 축복인 것은 기적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추기경이기 전에 죄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바보야’라는 스스럼없이 그린 자화상, 한결같이 진리, 정의, 사랑을 실천하고 가르치고 전하셨다. 그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 정의, 사랑은 이제 그분의 편지를 받은 우리의 미덕이자 등불이다. 때로는 강하고 용기있게 그렇지만 부드러운 그분의 행동은 생명의 움을 결코 꺾어버리지 않았고 그 모든 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었음을 다정하게 보여주신다. 이제 온 몸으로 살아내신 우리의 영원한 신앙과 삶의 스승께 우리도 사랑의 삶으로 답장을 쓸 차례다. (*사진출처 : 굿뉴스)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
‘아기의 웃음소리가 천상 소식으로 들린 때가 있었다. 그 웃음소리는 티 없이 맑고 금방 돋아나는 새순 같은 것이었다. 이제 앎의 욕구를 포기하려 한다. 그리하여 아기처럼 온전한 믿음으로 살고 싶다. 나는 그분 안에 있고 그분은 내 안에 있다.’(책머리에서)
책을 읽으면서 인생의 스승들을 만난다. 앞서 의연하게 삶을 살아내신 그분들을 보면서 참으로 감사의 정을 느끼고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감히 삶의 변화에 대한 갈망과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느끼는 것은 감동이 크면 클수록 더 커진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예술가이신 최종태 선생의 책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은 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맑은 겨울날 투명하면서도 차갑도록 명징한 시린 하늘을 만난 느낌이었다. 그래서 쉽사리 장을 넘길 수 없었고 앞으로 읽을, 남아있는 장이 아쉬워 조금씩 아껴 읽는 몇 안 되는 책이었다. 인생의 스승이 여기 있구나, 하고 느꼈고 그 느낌들을 책 포럼 팀들과 함께 나누었을 때 어쩌면 그리도 공감하는 게 많던지 그 나눔 또한 보배로웠다. 그리고 과감하게 그 스승의 자취를 찾아 나서게 하였다.
그의 일생은 그림을 성취하는 일과 참삶을 찾는 일, 곧 종교와 예술,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탐색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한다. 쉰 살에 ‘그림이란 모르는 것’이라는 찰나적인 깨달음 앞에, 또 어떤 날은 환하게 쏟아지는 빛 속에서 빛은 사랑이고 생명이며 기쁨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탐색의 걸음을 계속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종교와 예술이 한군데로 모였다는 것이지만 역시 예술은 알 수 없는 것이고 하물며 하느님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피력한다.
고비고비마다 예술에 대한 깨달음, 하느님과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을 지닌 것은 그의 진정성이 담긴 고백 때문이다. 그는 그리는 일은 기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도와 그림이 둘일 수 없다고 한다. 화가에게 일하는 시간은 명상의 시간이며 자기 성찰의 시간이고 목적이 있는 게 아니고 그냥 과정일 뿐이라고, 사람이 숨을 쉬듯 화가에게 일이란 숨 쉬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예술과 종교, 인생, 그 모든 것이 산다는 것인 것만 같다고 한다.
책에서 보여주는 그의 예술의 길은 구도의 길처럼 그렇게 갈고 닦는 한결같음이다. 그의 작품세계도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조각을 하면서 줄곧 사람만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현대의 조각가들이 조형미의 탐구에 심취한다면 그는 인간, 정신이 깃든 영혼이 깃든 인간상을 만들어왔다며 거기에 보이지 않는 것이 함께하는 작품, 즉 조각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가 한결 같게 만들어온 소녀상도 그의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늘 높은 데를 향하고자 하는 그의 추구가 작품으로 우리에게까지 도달하는 것은 당연지사, 한국적인 아름다움도 그리지만 종교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경지는 작품 앞에 서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공감한다.
2011년 ‘구원(久遠)의 모상(母像)’이라는 작품 전시회가 서울에 이어 이곳 대구에서도 열렸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시대도 종교도 초월한 영원한 어머니를 거기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책에서 쓴 것처럼 단순한 어조로 이 전시회 직전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였다. 바로 “예술이란 무엇인지, 조각이 뭔지를 알기 위해 50여 년 동안 동서고금을 공부하고 세계를 헤맸지만 제대로 답을 찾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야 문득 깨달았어요. 답은 바깥에 있지 않고 내 가슴 속에 들어 있는 것을.” 하느님과 단순하면서도 숨바꼭질 하듯이 그렇게 만나고 있는 그 노예술가가 풍기는 인생의 향기는 하도 그윽해 절로 옷깃을 여미고 사색에 잠기게 하는 힘을 지녔다. 책을 통해서 글을 통해서 만난 그와 작품을 통해서 만난 그는 하나였다. 솔직하게 자기이야기 풀어내는 재주를 지닌 그는 작품에서도 그렇게 소박하게 그렇지만 인간의 내면에 깃든 영원성을 담아내면서 경계를 무너트린다. 그의 자유로운 영혼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깨달음 앞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작품에 담아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분께서 먼 데 계시지 않고 자기와 함께 늘 마주하고 계셨다는 것을 일순간 깨달으면서부터 사물이 다르게 보이고 세상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담아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어둠은 세상의 것이다. 자유는 ‘완전한 항복’에서만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죽음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싶다. 육신적인 죽음, 세상적인 것의 죽음, 그것이 완전한 항복이다. 자유의 나라, 사랑의 나라, 기쁨의 나라. 우리가 다 같이 희구해 마지않는 곳, 그곳이 하늘 나라다. 거룩한 곳이다.”
그가 만났던 그리운 분들을 회고하며 적은 글들에서 우리도 덤으로 그분들과 교유하는 선물을 받게 된다. 법정스님의 부탁으로 길상사에 관음상을 조각하고는 “성모상과 관음상은 영원한 어머니로서 대자대비이고 큰 사랑이며, 맑음과 깨끗함, 고귀함과 온화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여성상”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김 추기경님과 법정 스님의 죽음을 직접 눈으로 보니, 이분들은 진정 죽음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종교와 예술이 분리되는 21세기에 두 분을 만나 종교와 예술, 삶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고 고백했다. 책을 보면서, 또 그분을 직접 만나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나자렛 예수
이 책은 요제프 라칭거, 즉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예수’에 대한 책이다. 첫 권은 2003년 당시 요셉 라칭거 추기경 시절부터 틈틈이 집필에 들어가 일반에게 공개하기까지 오랜 여정을 거쳐 준비한 후 2006년 가을에 탈고하여 2007년 4월 출간하였고 예수의 요르단 강 세례부터 거룩한 변모, 예수의 신원 선언까지의 예수의 공생활을 담고 있다. 나오자마자 이탈리아어를 비롯한 전 세계 32개 언어로 번역됐고, 한 달 만에 15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세계 출판계를 놀라게 한 초베스트셀러로 기록된 책이다. 둘째 권은 2011년 3월 10일 사순절에 출간되었는데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되어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에 이르는 대단원을 담고 있다. 마지막 권은 올 성탄 즈음에 출간될 예정인데 초기 복음서 안에 드러난 예수님의 모습을 담고 있고 앞서 출간한 두 권의 책을 완성하는 훌륭한 신학적 학술적 가치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수는 누구인가? 그는 참으로 역사에 존재했던 한 인간이며 하느님이시라는 복음서의 고백은 과연 믿을 만한가?’ 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이 책은 오늘날 너무나 많은 주석과 방법론이 있어 진정한 예수의 모습을 가리고나 있지 않은지 고찰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우리는 나자렛 출신의 예수, 마리아의 아들이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인 그분을 선택하게 될까? 우리는 도대체 예수를 알기나 하는가? 우리는 그분을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맨 처음부터 그분을 다시 제대로 알기 위해 애써야 하지 않을까?’ 라고 본문의 여러 부분에서 질문을 던진다.
사실 「나자렛 예수」 1·2 권은 일생 동안 ‘주님의 얼굴’을 찾아온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기도와 노력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대 대표적 신학자이기도 한 교황은 예리한 통찰과 탄탄한 신학적 근거위에 복음서를 짚어가며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묵상과 기도를 생생하게 북돋운다. 공의회와 그동안 성경주석방법론이 제시한 모든 연구와 노력에 감사하고 그 내용을 폭넓게 수용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훌쩍 뛰어 넘어 새로운 방법론적 통찰을 응용해 복음서의 예수를 진정한 예수, 본격적인 의미의 ‘역사의 예수’로 소개하고 복음서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진실성에 새롭게 눈뜨게 해준다.
제1권은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었고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예수의 세례와 임무 수행에 앞서 필요했던 유혹, 하느님 나라의 선포 내용, 친교로 이루어진 제자 공동체를 소개하며,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사용하신 비유와 은유에 대해서도 거론한다. 인간 예수가 참 하느님이심을 알게 되고 성경의 말씀들을 현재에 적용하며 그 의미를 ‘오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특히 산상설교와 주님의 기도 부분은 현시대의 모습을 말씀 속에서 풀어내고 있어 더욱 생생하다.
제2권은 예루살렘 입성을 시작으로 예수 수난 여정을 향한 대단원의 문을 연다. 구약성경과의 연관성 안에서 그분은 이스라엘의 참 왕이며 새로운 인류의 참 왕으로 우리 곁에 오신다. 그분의 수난과 죽음 안에서 옛 제의는 사라지고, 옛 계약은 완성된다. 이 책 안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며 한 인간으로서 끝까지 사랑하시고 처절하게 고난을 받으며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이 오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며 성큼 다가온다.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이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 나의 현실이 되게 한다.
“인간이 필요로 하고 동경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오직 한 가지다. 그것은 생명, 충만한 생명 곧 ‘행복’이다. 요한복음서의 한 대목에서 예수는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이 간단한 것을 일러 ‘충만한 기쁨’(16,24 참조)이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의 숱한 소원과 희망들을 말해 주는 이 간단한 것은 주님의 기도 둘째 청원기도에도 나온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하느님 나라는 충만한 생명이다. 그 까닭은 그것은 나 혼자만의 행복이나 개개인의 기쁨이 아니라, 제 모습을 제대로 찾은 세상이요 하느님과 세상의 일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황은 결국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이며 모든 것이 포함된 이 한 가지 ‘행복’을 얻기 위해 인간은 당장의 소원과 아쉬움을 거치면서 비로소 그가 정말로 필요로 하고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걸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하느님이 필요하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하느님을 주시는 하느님 아드님으로서의 예수, 선물이시고 생명이신 예수, 그분의 전 존재는 나눠주심이고 온전한 ‘위타존재’라고 강조한다.
점점 깊어지는 묵상은 예수 부활의 본질과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낸다. 예수의 부활은 어느 한 죽은 이가 어느 한 때에 한 번 소생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서 존재 자체를 건드리는 하나의 존재론적 도약이 일어나 우리 모두와 상관되고 우리 모두를 위해 생명의, 하느님과 함께 함의 하나의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 차원이 하나 열렸다는 사실 때문에 본질적이라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되시고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신 분으로서 단지 당신 자신을 보이신 당신 제자들의 믿음을 통해 인류에게로 오길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계속해서 조용히 우리 심장의 문을 두드리시고, 우리가 그분께 자신을 열 때, 우리를 천천히 보게 만드신다.”
아, 이 깊고 깊은 묵상과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방대한 사료들과 질문들, 그리고 예수 시대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믿음의 역사를 나의 역사로 만들고 돌아보게 하는 이 탁월한 책에 대해 한정된 지면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직접 책을 읽으면서 예수도 만나고 자신도 만나고 생명도 만나는 행운을 ‘신앙의 해’로 선포된 이때에 꼭 누려보라고 강력히 추천한다.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관상에 이르는 묵주기도
이 ‘종이책 읽기’ 꼭지에 글을 쓰면서부터 내가 좋아하는 책을 고르는 것에서 독자들이 읽으면 좋겠고 도움이 되는 책, 양식이 되는 책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책을 선정하곤 한다. 이제 곧 책을 읽기 좋은 10월이 온다. 10월은 묵주기도 성월이자 로사리오의 성모님을 더욱 가까이 느끼고 함께 기도하는 달이다. 이 달에 꼭 필요한 책을 꼽으라면 「관상에 이르는 묵주기도」를 주저하지 않고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단순하고 계속 반복하는 기도인 묵주기도를 통해 신앙을 깊게 하고 관상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노리치의 ‘줄리안’ 성지의 원장이었던 로버트 르웰린 신부가 성지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들려주었던 묵주기도에 대한 글들, 그리고 짤막짤막한 기도 안내글로 엮인 작은 책이지만 아주 명쾌하고 쉽게 묵주기도의 방법과 의미뿐만 아니라 기도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끼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기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솔깃하고 맛깔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묵주기도는 우리에게 어린이의 단순성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작은 길’이지만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풍요로운 보상이 주어지고 우리가 쇠약해질 때 삶에 활력을 주고, 하느님께 향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특히 기도 초심자들은 부분적으로나마 묵주기도를 통해서 반복되는 언어의 힘을 넘어서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체험을 받아들임으로써 신앙 안에서 용감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또 이런 기도에 대한 초대가 짧으면서도 여러 예화를 들어 이해하기 쉽고 언제든지 펴볼 수 있고 다양한 묵주기도의 방법을 제시하여 묵주기도에 대한 고정관념과 틀을 벗어나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만일 당신이 기도하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면 존재하는 것이 행동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행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올바른 행동은 올바른 존재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보다 겉꾸미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확고히 뿌리를 내린다면 더이상 우리 자신을 위장하지도 위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좋은 토양에 뿌리내린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존재의 근원입니다. 기도를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근원이신 그분 안에 뿌리내리게 됩니다.”(본문에서)
저자는 기도의 아주 쉬운 길로 안내한다. 기도란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우리를 하느님께로 데려다주고 그분과 일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구나,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기도에 대해 그리 어렵지 않음을 느끼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미덕이 있다.
묵주기도를 할 때 분심이나 잡념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도 묵주기도를 하면서 한 번쯤은 아니 그 이상 더 많이 겪었을 어려움을 보살피게 한다. 처음에는 머릿속에 있는 단어나 문장을 강하게 의식하고 그것을 마음으로 끌어내리라고 말한다. 옛 스승처럼 “당신의 정신을 마음에 담아두고, 항상 하느님의 현존에 머무르십시오.”라고 조언하면서 14세기 저서인 「무지의 구름」의 관상기도 방법으로 초대한다. 즉 선택한 단어가 마음에 붙잡아 매야 하며 우리의 방패나 창이 되도록 이런 방식으로 묵주기도를 하며 성모송이나 다른 기도를 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방패로서의 기도는 유혹과 고통을 막아주고, 창으로서의 기도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다른 이를 위한 중재도구가 되게 하는 묵주기도의 좋은 점을 역설하고 있다. 묵주기도의 좋은 점이 많이 있지만, 우선 하느님께 당신의 사랑을 단순하게 바쳐 드릴 수 있다는 것, 하느님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 즉 하느님과 영혼을 일치시켜 준다고 말한다. 결국 모든 참된 기도와 참된 행위는 기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00년이 넘은 주님의 기도와 성경에 나오는 각 신비들의 현의와 오래된 사도들의 신앙고백과 1500년이 된 성모송, 1000년이 된 묵주기도를 교회가 한 마음으로 드리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거대한 우주처럼 흐르는 인류의 역사 면면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묵주기도를 통해서 위로와 평화를 얻었으며,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하느님과 일치의 길을 찾았으며, 얼마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묵주알을 돌리고 기도하면서 우리가 있는 이 시점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정말 감동스러운 기도의 역사에 나도 작은 모래알이지만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할 일인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기도하길 열망한다면 당신은 이미 기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기도하길 바라는가?”
당연한 귀결이지만 묵주기도를 통해 변함없이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습관을 기른다면 우리는 우울증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고 때때로 우리를 무겁게 내리 누르는 죄책감·수치심·근심·성욕·분노와 같은 다양한 감정에서 창조적인 해방을 맛보고, 육체적, 정신적 치유와 건강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노리치의 줄리안은 기도가 맺는 열매를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알고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온통 선하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위해 동료 그리스도인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은
창조된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기도를 통한 관상은 달디 단 열매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의 길을 우리 앞에 놓아준다. 이 자유의 길로 힘차게 걸어가는 믿음을 모두를 위해 청해본다.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
지난 5월 7일은 분도출판사가 한국에서 출판사 등록을 하고 책을 펴낸 지 50돌이 되는 날이었다. 참으로 기념하고 축하할 만한 날이었는데 출판사를 운영해온 성베네딕도수도회에 대한 감사와 축하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축하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졌다. 특히 50주년을 기념하며 펴낸 4권의 책 중 하나인 임인덕 세바스티안 신부님의 평전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를 읽으면서 더욱 그렇게 느꼈다.
독재와 민주화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던 이들에게, 절망에 빠진 한국사회에, 정의와 평화와 자유의 개념이 미처 꽃필 틈도 없이 싹이 나오는 족족 밟혀 꺾이던 그 암울한 시기에 분도출판사는 굴하지 않고 길과 희망을 제시하며 진리의 빛줄기를 비추는 역할을 계속해왔던 것이다. 또한 철학과 신학이라는 교회를 살찌울 커다란 보배를 지속적으로 지원해주고 인간의 선과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부단한 노력의 혜택을 우리가 받아왔고 누려왔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임인덕 세바스티안 신부가 있었다.
한 인간의 평전을 쓰고 읽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본다. 대개 존경하는 인물의 사상이나 견해 등을 연구하기 위해 평전 읽기는 필수적이리라. 오랜만에 감명 깊고 재미있고 역사 및 시대의 징표를 보여주는, 누구나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평전을 하나 읽었다. 그것은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거의 일생을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한’ 임인덕 세바스티안 로틀러 신부님의 평전인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이다.
이 책은 신부님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의 역사의 한 현장에 있는 듯 역동적인 필체로 우리를 가슴 졸이게 한다. 또 가슴 아프게도 하면서 늘 하느님과 사랑과 정의를 우선적으로 선택한 삶을 살아온 인간 하인리히에서부터,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어떠한 경우에서든 한국 사람들을 위해 “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질문하며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았던 한 수도사제의 사랑의 삶이 펼쳐져 있다. 그는 선교사를 지망해서 베네딕도회 수도자가 되었고 아프리카보다 더 가난한 나라라고 알려진 한국을 선교지로 지망한다. 한국에 오기 전 영어를 배우러 미국에 갔는데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성당에서 동가숙서가식, 미사도 드려주고 여행을 하면서 길 위에서 영어를 배우는 그의 공부방법이 참 놀라웠다. 한국에 도착하여 한국말을 배울 때도 그의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은 빛을 발한다. 한국어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던 무조건 외우라는 방식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벽에 붙은 벽보를 통해 독일어를 공부하는 대학생 그룹에 들어가게 되고 나중에 ‘우니타스’라는 독일어 성경공부모임으로까지 발전한 모임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공부하고 익히게 되었다.
그의 타고난 건강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은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며 본당 사제생활에서도 사랑이 넘쳐난다. 그리고 어린이 교리교육에 시청각 매체를 이용하여 흥미롭게 가르치고 어린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고 어울리면서 지내던 모습은 우리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풍광처럼 아름답다. 그때 만났던 두봉 주교는 젊은 선교사인 그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는 모범이었고 그의 강직함에 더욱 영향을 미쳤다. 사제의 양심과 책임, 신자들에 대한 신뢰를 한결같이 강조하고 더욱 낮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농민 사목의 토대를 마련한 두봉 주교의 시각은 그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비유로 하늘나라의 복음을 말씀해주시는 것에 창안해 영상매체를 통한 복음선교에 눈을 뜨게 되고 영상매체가 없던 시골 본당을 찾아다니며 문화의 응달에서 숨죽이고 사는 산간벽지의 신자들을 찾아가는 기쁨에 마음 설레기도 하였는데, 이는 장차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오는 나비의 날갯짓 같은 조용한 혁명이었다. 그리고 1971년 그에게 새로운 소임이 주어진다. 산업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 한국사회에서 베네딕도수도회는 이러한 시대 변화와 요구에 부응하는 선교활동의 시급성을 출판 사도직을 통해 찾으려고 하였다. 이런 중요한 때에 분도출판사의 책임자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하는 고민을 한다. 그리고 생각을 거듭해도 사람을 어떻게든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책,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답보다 더 좋은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 그는 이 나라와 이 시대에 책으로 말하는 선교사가 된 것이다.
그가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좋은 책들의 특징적인 면모를 일일이 열거하기에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 다만 그가 심혈을 기울였던 헬더 카마라 대주교의 저서 「정의에 목마른 소리」가 그 특징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현실 생활이 종교적 진리의 실천과는 거리가 멀거나 신앙 자체에도 배치될수록 아마 당신은 더욱더 깊이 진리를 사랑하며 정의를 위해 갖가지 어려움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가 이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초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베네딕도 미디어를 통해서 그는 한국인들에게 인간성, 자유, 희망 등 나자렛 예수의 의식과 가치를 심어주는 영화들을 소개했다. 채산성도 사업성도 없었지만 영화를 통해 영성을 전달하고 싶은 열정은 오래전에 시작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안동교구에서 매달 영화포럼을 열었고 고인이 된 권정생 선생도 열렬한 동참자였다. 아마 예수님이 이 시대에 오셨더라면 영화감독이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그는 이 사도직 때문에 겪어야 하는 모든 번거롭고 어려운 일들도 기꺼운 마음으로 감내하였다.
영화포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당한 교통사고, 여러 차례 받은 대수술도 그의 열정을 가로막지 못했고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그의 몸을 빌려 모든 일을 하고자 하신다. 사실 그는 자신을 통해 분도출판사가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칭송하기라도 할라치면 손사래를 치면서 거부할 것이다. 칭송의 허망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왜 고향을 떠나 여기에 있는지, 하느님이 자신을 통해 이루시려는 일이 무엇인지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은 독자가 인정해주는 것, 그러기에 우리는 이 노사제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진 은덕에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우리를 염려해주고 이 사회와 시대의 아픔에 민감했던 벽안의 노사제에게 경의를 표하며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한 우리의 미안한 마음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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