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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하신 하나님
22: 1-31
1.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찌니라
2.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 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3. 해 돋은 후이면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도적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적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4. 도적질한 것이 살아 그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무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찌니라
5. 사람이 밭에서나 포도원에서 먹이다가 그 짐승을 놓아서 남의 밭에서 먹게 하면 자기 밭의 제일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할찌니라
6. 불이 나서 가시나무에 미쳐 낟가리나 거두지 못한 곡식이나 전원을 태우면 불 놓은 자가 반드시 배상할찌니라
7.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 이웃의 집에서 봉적하였는데 그 도적이 잡히면 갑절을 배상할 것이요
8. 도적이 잡히지 아니하면 그 집 주인이 재판장 앞에 가서 자기가 그 이웃의 물품에 손 댄 여부의 조사를 받을 것이며
9. 어떠한 과실에든지 소에든지 나귀에든지 양에든지 의복에든지 또는 아무 잃은 물건에든지 그것에 대하여 혹이 이르기를 이것이 그것이라 하면 두 편이 재판장 앞에 나아갈 것이요 재판장이 죄 있다고 하는 자가 그 상대편에게 갑절을 배상할찌니라
10.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 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11.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로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12. 만일 자기에게서 봉적하였으면 그 임자에게 배상할 것이며
13. 만일 찢겼으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거할 것이요 그 찢긴 것에 대하여 배상하지 않을찌니라
14. 만일 이웃에게 빌어온 것이 그 임자가 함께 있지 아니할 때에 상하거나 죽으면 반드시 배상하려니와
15. 그 임자가 그것과 함께 하였으면 배상하지 않을찌며 세 낸것도 세를 위하여 왔은즉 배상하지 않을찌니라
16. 사람이 정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빙폐를 드려 아내로 삼을 것이요
17. 만일 그 아비가 그로 그에게 주기를 거절하면 그는 처녀에게 빙폐하는 일례로 돈을 낼찌니라
18.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찌니라
19.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20.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는 멸할찌니라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찌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 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
27.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28. 너는 재판장을 욕하지 말며 백성의 유사를 저주하지 말찌니라
29.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찌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찌며
30. 너의 소와 양도 그 일례로 하되 칠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팔일만에 내게 줄찌니라
31.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찌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것의 고기를 먹지 말고 개에게 던질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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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 변방을 이리저리 피해다니다가 아직까지 산 속에 기거하는 12명의 한 탈북 가족이 있습니다. 성경책을 위안삼아 살아가는 그들은 유일한 소식통인 라디오의 '그리운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교회와 함께 하는 한 단체의 활동소식을 전해듣게 되었고 지난달 2월 그 단체가 현지에 들어온다는 방송을 청취하고 막연히 꼭 한번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기도하던 중에 정말로 우연하게 그 단체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만남을 통해서 탈북 가족들과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오늘 또다시 생생하게 우리 손에 전해져 들어왔습니다.
가족 중 막내딸은 영양실조로 왼쪽 얼굴이 마비되었고 왼쪽 눈은 실명되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토굴을 짓고 살아가는 큰딸은 인신 매매범에 의해 끌려 다니다가 극적으로 탈출하여 교회의 도움을 받게 되어 주님을 영접하였고 집으로 돌아간 후 온 가족을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갈 수 없다는 답변들 속에 하루하루 긴장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들을 위해 할 일을 할 것입니다. 다음은 그 가족 중 큰사위의 글입니다.
엄마, 엄마, 여윈 두 손으로 어머니의 옷깃을 움켜쥔 채 죽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는 세 살 짜리 딸아이를 끓는 가마 속에 밀어넣고 어머니는 가마뚜껑을 닫았다. 끓는 물 속에서 살겠다고 아우성 치며 가마뚜껑을 밀어낸 딸아이가 기적적으로 몸을 솟구치었다. 익어서 절반 죽음을 당한 아이가 엄마 소리도 부르지 못하고 속으로 끙 하고 신음소리를 내고는 다시 가라앉았다. 굶주림에 지치다 못해 정신분열증에 걸린 딸아이의 어머니는 다시 가마뚜껑을 닫아버렸다. 독자들은 이것이 과연 현실이라고 믿어지겠는가? 내가 문장을 만들 줄 아는 작가라면 좀 더 상세히 이야기 해줄 것이다.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다섯 살부터 여덟살 아이들을 정확하게 열다섯 명씩 잡아서 독에다 절구어 놓고 먹던 사실도 자강도 전천군 황무로 동자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사건의 주인공들인 남녀 부부가 정상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행방없이 잃어버렸던 자식들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쌓여있는 뼈무지를 바라보며 절통하게 몸부림치던 어머니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를 부탁한다. 얼굴이 없는 뼈무지 속에서 어느 것이 제 아이의 것인 줄 알고 찾아내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998년 한 해를 흑룡강성의 어느 현에서 보낸 적이 있다. 중국 땅으로 탈출하여 채류한 기간 동안 나의 신상에서는 이 해가 제일 어려운 해였다. 한 해동안 중국 공안 기관에 세 번씩 체포되었다. 내가 세 번째로 잡혀갔을 때 한족인 공안 경찰은 슬그머니 나에게 너의 조선족들은 개 한가지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이 불쾌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나를 세 번씩이나 밀고한 사람들이 한족이 아니라 바로 조선족들이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세 번째로 나를 밀고한 사람은 내가 당시 도움을 받고 있던 교회 책임 집사라는 사람이었다.
중국인 경찰은 이 사람들과 토의하여 나를 빼돌려주겠으니 빨리 떠나라고 암시해 주었다. 비교적 양심있는 사람이었다. 경찰서를 떠나기 앞서 파출서 소장과 중국인 경찰이 마련해 준 술자리에서 탈북자 한 사람을 밀고하면 장려금이 이백원이나 삼백원 우리 돈으로 하면 이만 오천원이나 삼만원의 인민패라는 것을 알았다. 놀랄만한 일이었다. 얼마되지 않는 돈을 위해서 동족을 잡아먹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이 과연 무슨 짓인들 못하랴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이 일은 내가 신세를 지고 있던 교회의 책임집사의 밀고로 인해서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불필요한 북한 사람들로 인한 교회의 부담을 덜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교회 사람들과 작별하는 장소는 모두가 눈물의 광경이었지만 유독 그 책임집사는 뜻밖의 말로 나를 전송했다. "북한에 잡혀가도 무서울 것이 없지요. 다른데 가서도 살기 바쁘면 북한으로 다시 가십시오. 복음을 전하다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 아닙니까?" 철면피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상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이런 충고를 주고 떠났다. "하나님이 진짜 살아있다면 가슴 한 구석에 재만 남아있을 것입니다. 진리가 좋다고 외우지만 말고 당신의 것으로 믿으시오.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속물의 껍데기를 감히 벗지 못할 것이요" 진리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사는 인간들이 불쌍했다.
세상이 이렇습니다. 때로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조차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에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들로 인하여 당신의 뜻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면서 정말로 많은 기대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출애굽 시켜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석달을 함께 하는 동안 그렇게 믿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고 때에 따라서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한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셨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법이 있어야 될 것을 아시고 먼저 십계명을 주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여 모세를 불러서 율법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지금 귀에 들려주시고 계십니다.
출애굽기 22장은 21장에 이어서 율법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말씀으로 먼저 도둑에 대한 내용입니다. 도둑질하였을 때 배상하는 법과 도둑을 막기 위해서 도둑을 쳐죽였을 때 깜깜할 때는 정당방위가 되지만 해가 돋은 이후에는 살인죄가 된다고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배상에 관해서도 사람에 의해서 피해를 입었을 때 뿐만 아니라 짐승에 의해서 피해를 입었을 때를 각각 말씀하시고 실화(失火)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와 다른 사람의 물건을 보관했거나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빌렸다 훼손시켰을 때 배상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1-14절).
또한 윤리 문제에 있어서는 혼인빙자 간음 문제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말씀하셨고 짐승과 관계한 사람들은 반드시 죽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문제에 대해서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며 하나님 이외 다른 신을 찾아 간 사람은 반드시 죽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부담해야 할 의무 그 중에서 오늘 본문에는 고아나 과부와 나그네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16-27절).
절도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는 법으로 해야 마땅하고 종교적인 의무 역시 충분히 수긍되지만 고아나 과부, 나그네에 대한 문제까지도 법으로 정해야 했을까요? 더구나 그들을 해롭게 하지 말라는 말씀까지도 법으로 해야만 하는 문제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람이란 마땅히 가난한 사람들과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와주어야 할 것인데 사람의 탈을 쓰고 저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 하고 질문하겠지만 이미 여러분이 익히 보시는 것처럼 또 하나님께서 수많은 세월동안 사람들을 보아온 결과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이 법의 제정이유입니다.
예수님 시절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눅20:46-47). 겉모양은 그럴 듯 하지만 자기 권한을 이용하여 과부들의 재산을 착취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린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중국에 있는 몇몇 사람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한 이 한국 땅에서도 이런 일이 없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나라가 이들을 보호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이러한 기대를 할 수 없습니다. 인권의 최고라고 하는 미국조차도 자국민 그 중에서도 백인들만 그렇게 보호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나라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역시 이 나라에 와서 장애인이 된 외국인 근로자들을 치료해 주지 않고 밀린 임금까지도 주지 않은 채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법은 오히려 저들을 압제하는데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불법 입국자 추방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그들이 정당한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빌려준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 이북 동포들이 중국에서 당하는 성학대보다 더 많은 일들이 법이 있는 나라, 예수 믿는 사람들이 1/4이나 되는 이 땅에서도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 나라는 믿을 것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밖에 믿으시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니면 이 세상에서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한없이 아프기만 합니다. 특별히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연연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신명기서에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데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신24:17-18)..
돌보아 주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 이 땅의 믿는 사람들에게 부탁하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에 대한 징벌은 다른 범죄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가혹합니다. 본문에서는 과부와 고아를 괴롭힌 자는 그 아내와 자식이 과부가 되고 고아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3-24절). 하나님께서는 세상사람들에게 보다 신자들에게 훨씬 더 엄격합니다. 아주 무섭습니다.
또 이 문제에 대해서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포로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려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사10:2-4)..
이러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벌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바세바를 탈취한 후 우리아의 생명까지 빼앗은 다윗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벌은 정말로 무서웠습니다. 범죄로 말미암아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가셨으며 사랑하는 딸이 집안에서 폭행을 당하였고 그녀를 폭행한 아들 암논은 다른 아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였으며 그를 죽인 압살롬은 반역하여 뭇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열 후궁을 폭행하였으며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아들 아도니야는 반역하여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다윗 자신은 한 사람을 죽였지만 그의 네 아들이 죽었고 열 후궁이 수치스러움을 당하였으며 집안의 환난이 끊임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힘없고 연약하며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한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건드릴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하심은 정말로 탄복할 정도입니다.
본문에서도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 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26-27절).. 얼마나 자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바라시는 바는 구체적으로 주신 법을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가난한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따뜻함과 자상한 마음을 여러분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마음을 신명기서에서는 추수할 때 미처 거두지 못한 곡식단이나 감람나무를 딴 후에 남은 것이 있거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범사에 복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24:19-20).
하나님의 마음이 이렇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이 마음으로 일어섰고 오늘의 이 부요함과 평안함을 누리고 계십니다.
레위기에서는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19:13-14)..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대하여 본문에서는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27절)..
어순으로 보면 그가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그렇게 악한 사람에게 나는 무자비한 자임이라고 표현하여야 할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절묘한 화법으로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물론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한 하나님이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도 악하게 대하여 무자비한 하나님으로의 대접을 받지 말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무자비라는 말을 쓰지 않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그 무서운 심판대 위에 서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이 정도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자비한 사람, 사랑이 넘치고 긍휼이 있는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 선생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 ♥
참회의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가 한이 없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그 자비하심에 이 아침에 찬송하고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아버지여, 한없이 자비하신 아버지 앞에 무자비한 우리 인생들이 설 때에 회개하지 아니할 수 없고 참회의 심정을 토로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불문하고 받아 주셔서 은혜 베풀어주시고 사랑해주시건만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많이 따졌습니다. 잘난 일이 있을 때도 그것을 따졌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과 허물이 있는 과거를 돌아보고 화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선물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지 못했고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큰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주신 선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줄 몰랐습니다. 우리는 한 잔의 차, 한끼의 외식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인지, 우리의 따뜻한 한 번의 손길이 저들을 살게 하고 웃게 하고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바로 얼마 전의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였습니까? 우리가 주님께서 보내신 손길들을 통하여 오늘의 평안함과 이 부요함에 이르렀음에도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 귀한 손길들과 따뜻한 마음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은혜도 사랑도 감사도 잊었습니다. 아버지여,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양심이 마비되었고 인격이 화인맞은 자들입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 멀리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굶주린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들이 우리 눈에 많이 비치고 있습니다. 우리 귀에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정한 사람이라 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외면했으며 딴 세상의 일로 여기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나그네 되었을 때, 우리가 고아요 과부와 같은 사람이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오늘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서 배고픔, 고달픔, 서러움을 이기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제 우리가 손을 펴야하고 펼 수도 있는 지금 우리 마음이 차갑게 식어져있고 우리 손길은 딱딱하게 굳어져서 펼 줄 모르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어쩌다 우리 인격이 이런 초라한 모습이 되었으며 우리 인생이 이렇게 삭막하게 변하고 말았습니까? 저렇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고통도 알지 못하는 사람, 간절하게 우리를 기다리는 눈망울을 외면하는 사람, 우리들에게 안타까운 음성으로 애원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는 저들의 서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저희들입니다. 오 아버지여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는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소유하는 사람들, 나타내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