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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의 여왕 / 조상호 목사
서울 가정법원 조정위원인 김영희씨가 쓴 <만남, 사랑 그리고 헤어짐>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장은영이라는 분이 쓴 한 편지를 소개하고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여섯 살, 네 살 된 아들, 딸을 둔 서른다섯 살 가정주부입니다. 남편(39세)은 9년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7개월 전 정리해고 되었어요.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남편은 한동안 괴로워하다가 마음을 잡고 직장을 구하러 여기저기 다니더니 여의치 않자, 이제는 집에만 있으면 온갖 신경질을 부리고 화가 나면 안 하던 손찌검까지 합니다.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지만, 날마다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남편을 보면 속이 터져 미칠 지경입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능력 있다고 인정받던 사람이 왜 저렇게 무능한 사람이 되어 가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저도 남편이 직장에서 억울하게 부당한 해고를 당했다는 생각으로 분했는데, 남편을 믿었기에 얼마간 쉬고나면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으려니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아예 세상을 포기한 사람처럼 하루종일 잠을 자거나 동네 포장마차에서 술만 먹고 있습니다. 애들하고 살아가려면 무슨 일이든 일자리를 찾아봐야 할 터인데 자포자기 상태에 ‘갈 때까지 가자’는 심사인 것 같아요. 이젠 저도 지쳐서 차라리 이혼하고 싶은데 막상 이혼을 결심하고 보면 애들이 불쌍해서 마음이 흔들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요즘 주위에 보면 고개 숙인 남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동안 회사를 위해 몸이 상하는 것도 감수하고 정말 열심히 일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잃고 나서 느끼는 것은 절망감입니다. 절망감이 심해지면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자포자기에 빠진 남자들은 가정을 포기하며 이혼하기도 하고, 집을 나와 길에서 먹고 자는 노숙자가 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범죄를 저지르다가 인생을 망치기도 하고, 심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사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일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배우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용기입니다. 그들이 살아갈 용기를 잃었기 때문에, 두 손과 두 발이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든 얼마든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자포자기‘입니다. ’용기의 상실‘이 남자에게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저는 고개 숙인 남자들이 많은 이 시대에, 용기를 잃은 남자들이 많은 이 시대에, 용기 잃은 남자들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았던 한 여인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 시간에 용기 잃은 남자들에게 도전을 주는 한 여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라합입니다.
그녀는 여리고 성에 살고 있는 기생이었습니다. 기생이라는 말은 점잖은 표현이고 원래대로 번역하면 돈 주고 남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팔아, 생활하는 ’창기‘ 혹은, ’매춘부‘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여인에게 ’모험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습니다. 비록 그녀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고 남자도 아닌 여인이었고, 정상적인 여인이 아닌 몸 팔아 먹고 사는 창기였지만, 그녀는 모험의 여왕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라합의 삶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여리고성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제일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매우 견고하여 쉽게 정복할 수 없는 큰 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군대의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위하여 먼저 두 사람의 스파이를 그 안으로 몰래 들여보냈습니다.
여리고 성으로 숨어 들어간 스파이들이 찾아간 집이 때마침 라합의 집이었습니다.
라합은 자기 집에 숨어 들어온 사람들이 적군인 이스라엘의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두 사람을 삼으로 엮어 만든 지붕 밑에 숨겨 주었습니다.
라합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생명을 건 위험한 모험이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의 스파이를 숨겨주었다는 것이 발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자기뿐 아니라, 온 가족이 몰살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스라엘의 정탐꾼 두 사람을 자기 집에 숨겨주었습니다.
그런데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목격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이스라엘의 스파이가 라합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나중에는 왕에게까지 보고 하였습니다.
여리고 왕은 라합의 집으로 수색대를 출동시켜 스파이들을 끌어내라고 명했습니다. 이제 라합은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자기의 동족 편에 서서 “내가 두 명의 이스라엘의 스파이를 지붕 밑에 숨겨놓았습니다.”라고 신고하든지, 아니면 이스라엘 편에 서서 “저는 모릅니다. 저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라고 하며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을 돕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도 살다보면 라합처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가야 할지 가지 말아야 할지, 먹어야 할지 먹지 말아야 할지 ’가부(可否)‘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A를 선택해야 할지, B를 선택해야 할지, C를 선택해야 할지, 여러 가지 것들을 놓고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이 한창일 때, 한 농부가 윗도리는 북군의 군복을 입고, 바지는 남군의 군복을 입었습니다.
그는 상황에 따라 북군을 만나게 되면 북군편인 척하고, 남군을 만나게 되면 남군편인 척하면 안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남군과 북군의 격전이 벌어졌을 때, 그가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그는 북군과 남군 양쪽 군의 사격을 받아 결국에는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
가 소속을 불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양다리 걸치기 했기 때문입니다.
'토끼 블레어'라는 외국의 동화가 있는데, 어느 날 토끼 블레어는 두 집으로부터 똑같은 시간에 식사초청을 받았습니다. 일찌감치 집을 떠난 블레어는 두 집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두 집의 음식 솜씨를 재어보며 이리저리 방황하던 블레어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갈림길에서 계속 뛰어다니다가 결국에는 파티가 다 끝나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가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우뷰부단(優柔不斷)’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택해야 할 때는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험의 여왕 라합은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어느 쪽을 선택했을까요?
다같이 4절과 5절을 보겠습니다.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기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나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라합은 이미 두 정탐꾼을 삼으로 만든 지붕 밑에 숨겨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치미를 뗀 것입니다.
자기 집에 들른 것은 사실이지만, 밤이 되어 성문을 닫을 때쯤 밖으로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추격하면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을 신고하지 않고 그들을 돕든 쪽을 선택했습니다.
오늘 기생 라합의 모험적인 선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선택에 대한 몇 가지 기준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멀리보고 선택하라.
첫째로, 라합은 멀리보고 선택했습니다.
세상에서 선택할 때,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기준은 ‘손해냐, 아니면 이익이냐’(lose or profit)입니다.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약 어떤 일을 추진해서 손해가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면, 그 일에서 손을 떼버립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면, 그 일을 추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멀리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만을 추구하다보면, 나중에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서방 연합국들은 독일과 일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 소련의 스탈린과 손을 잡았습니다. 스탈린은 수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숙청하고, 인권을 철저하게 유린하는 독재자였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이 독일과의 싸움에서 고전을 하면서 상황이 자꾸만 어렵게 되어갔습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련의 스탈린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면서도 “이 다리를 건널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고 말하며 소련과 덜컥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연합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릴 무렵, 이미 영국의 처칠수상은 스탈린의 공산주의의 야욕이 히틀러의 파시즘 못지않게 무섭다는 사실을 알고, ‘철의 장막’이라는 말로 소련의 위협을 경고했습니다. 결국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은 순식간에 동유럽과 중국, 중남미 곳곳에 공산정권을 확산시켰습니다. 레닌이 예언한대로 60년대 초에는 세계 지도의 3분의 1이 공산주의 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눈앞에 있는 이익을 위하여 무서운 야욕을 품고 있는 소련의 스탈린과 손을 잡았던 것이 세계에 공산주의가 득세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지만, 만약 루스벨트 대통령이 조금만 더 멀리 보고 스탈린과 손을 잡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을 추구하다가 후에 미국은 공산주의 나라로부터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눈앞에 있는 이익을 놓아두고, 손해 볼 것이 뻔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당장 눈앞에 있는 것보다, 멀리에 있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라합은 우리의 상식과 정반대로 선택했습니다.
모험의 여왕답게 라합은 눈앞에 있는 이익보다는 멀리에 있는 이익을 선택했습니다.
라합은 여리고성의 원주민입니다. 이 여리고 성은 옛날부터 금성철벽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매우 튼튼한 성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 군사력을 비교하여 볼 때, 이스라엘 군대는 여리고 군대에 비해 오합지졸에 불과했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기적적인 방법으로 애굽을 탈출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고생하다가 이제 겨우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너 온 그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은 성벽이 2중으로 되어 있었는데, 외벽의 두께가 2m이고 내벽의 두께가 4m나 되는 두터운 성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벽과 내벽 사이에 5m의 간격을 두어 설령 외벽을 넘었다 할지라도, 내벽을 다시 넘기 어렵게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여리고 성을 출입할 수 있는 성문만 안에서 잠그면, 아무도 그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매우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리고성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들의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수 없고, 여리고성이 자기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라합도 그 성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여리고의 든든한 성과 여리고 군대가 이스라엘의 공격을 충분히 막아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적군인 이스라엘 편에 선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잘못된 선택입니다.
그런데 라합은 이스라엘의 스파이를 숨겨주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녀는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보다 멀리에 있는 더 큰 이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라합과 같은 모습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눈앞에 있는 것보다 멀리 있는 것들을 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보았지만, 롯은 눈앞에 있는 이익을 위하여 요단 동편을 선택했지만, 결국에 그 선택은 잘못되어 아내 잃고 사위 잃고 재산 다 날려버렸습니다. 여러분, 당장 눈앞에 있는 몇 푼의 이익 때문에 장래에 주어질 큰 것을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현재에는 이익이 된다하여도 장차 하나님 앞에 가서 부끄러움이 된다면 현재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앞에 있는 것만 보지 말고 멀리 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옳은 것을 선택하라.
둘째로, 라합은 옳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여러 가지 갈림길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갈등합니다.
이 길로 가야 하나, 저 길로 가야 하나 고민합니다. 시중에 유행한 한 유머가 있습니다.
도둑을 쫓던 한 경찰관 앞에 오른쪽과 왼쪽, 두 갈래 갈림길이 나타났습니다.
“어느 쪽으로 갈까? 도둑이 어느 기로 도망을 쳤을까” 한참 동안 망설 이던 경찰이 드디어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질문할까요?
경찰이 어느 길로 도둑을 쫓아갔을까요?
오른쪽 길이 아닌, 왼쪽 길로 쫓아갔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세요?
경찰관은 나쁜 짓을 한 도둑이 ‘오른 길(옳은 길, Right Way)’로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유머입니다만, 실제로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합니다. 왜냐하면 잘 택하면 복이 되지만, 잘못 택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0장 15절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촉구합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서로 상반된 것 중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옳은 길을 선택하면 생명을 얻고 번성하며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잘못 선택하면 사망과 화를 당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기생 라합은 옳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당장은 손해볼 것 같고 어려움을 당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옳은 것을 택했습니다. 야고보서 2장 25절을 보면 이렇게 그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라합이 여리고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적군의 스파이를 숨겨준 것은 사실 반역하는 행동으로 지탄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의 입장에서 뿐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녀의 행동은 분명히 옳은 행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사람들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녀의 행동은 옳은 행동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보면 세상의 기준과 맞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것은 당시의 사회 기준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잘못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옳다고 인정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원칙이 아닌, 하나님의 원칙을 붙잡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재미 사업가인 <백영중>이라고 하는 분은, 현재 미국의 '강철 왕'이라는 별명이 주어졌다고 합니다. 그가 자전적인 책을 썼는데, 제목이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라고 하는 이름의 책입니다. 책의 원제목은 입니다. '나는 돈도 없고 영어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패코스틱>이라고 하는 큰 회사의 회장인데, 아이빔(I-beam)을 생산 판매해서 연 매출액이 2억 불이 넘습니다. 경량철골 판매에 있어서 시장 점유율이 60%를 차지하고 있는 큰 회사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이 백영중 회장은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났고, 홀홀 단신으로 남한으로 내려와 잘 살아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후에 온갖 고생 끝에 자수성가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셔서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것을 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너무 고달프고 어려울 때, 식당에서 일을 할 때, 그 어려운 가운데서 늘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북에서 쫓겨나고 남에서도 못 살고 미국에 왔는데, 이 이상 더 물러설 수 없다.'고 속으로 되새기면서 오직 성실과 진실로 사람들을 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No Money No English, 돈도 없고 영어도 못하지만, 미국에서 경량철골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취급하는 큰 회사의 회장이 된 비결은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항상 정직하게 항상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당장은 손해 보는 것같이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늦는 것같이 보여도 빠른 길보다는 옳은 길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3) 믿음으로 선택하라.
셋째로, 라합은 믿음으로 선택했습니다.
앞에서 라합은 눈앞에 있는 이익보다 멀리보고 선택했고, 라합은 빠른 길보다 옳은 길을 선택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것들보다도 더 중요한 라합의 특징은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1절을 보면 그녀에 대해서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라합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어떠한 것보다도 믿음으로 선택했습니다.
9절과 10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라합은 자기와 자기 가족의 생명도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결단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순히 한 나라의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스라엘의 스파이를 숨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라합이 이스라엘 편에 서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서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라합이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을 숨겨주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도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야말로 살아계신 참된 하나님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라합은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을 숨겨주었던 것입니다.
결국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다른 사람들은 다 죽임을 당했지만, 그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후에 라합은 이스라엘 사람 살몬과 결혼을 하여 보아스가 태어났고 보아스는 룻과 결혼했습니다.
보아스와 룻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오벳이었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는데, 이새는 이스라엘의 성군이라고 일컬음을 받고 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천하디 천한 기생 라합이 믿음으로 행한 결과 그녀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음을 얻게 되었다면, 그 믿음이 우리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경험도 중요하고 학식을 의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가장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라합처럼 믿음으로 모험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제 한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1858년 뉴욕의 어느 가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고 시력도 극도로 나빴습니다. 게다가 천식까지 앓아서 앞에 있는 촛불조차 입으로 불어서 끌 수 있는 힘도 없을 만큼 호흡 곤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생명을 연장하여 드디어 열한 살이 되던 날, 아버지는 이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란다. 네가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와 함께 한다면, 오히려 너의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진실로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단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도전했습니다. 그리하여 23세가 되던 해에 뉴욕 주를 대표하는 주의회 의원이 되었고, 28세에는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뉴욕 주지사가 되고, 부통령을 거쳐,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신화를 재건하는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앞서서 소개한 데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입니다.
그가 미국 대통령에 재임하던 시절 잘못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장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자신에게 신체적인 핸디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으로 도전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불가능하다고 하는데도 그는 믿음으로 모험했습니다.
결국 그 믿음의 모험이 그로 하여금 미국 대통령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믿음으로 모험하십니까?
아니면 제 자리에 앉아 계산만 하고 있습니까?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조상들은 대부분이 믿음으로 모험한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모험을 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지팡이를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미는 모험을 했기 때문에, 홍해바다가 갈라졌습니다.
▶베드로가 믿음으로 물 위로 발을 내딛는 모험을 했기 때문에, 인류 최초이자 유일하게 물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 라합이 믿음으로 이스라엘 스파이들을 숨겨주는 모험을 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되었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모험하는 나라임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들어가는 나라임을 아십니까?
믿음으로 모험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무리 불경기라 할지라도,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귀국하여 손님이 줄어들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방안에 틀어박혀 고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를 일
으키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밤새도록 계산기만 두드리며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모험하여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살린 라합처럼, 여러분 자신을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