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계2:18-29)
갈등
1. 요한계시록 내러티브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1장 서론에 이어 2장과 3장은 계시록의 수신자인 아시아 일곱 교회(오늘날 터키)에 예수님이 요한을 통하여 편지를 보냈습니다. 박해 가운데 분투하는 교회들을 향해서 천상에 계신 주님이 직접 각 교회에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일 24시간 다 보고 아시고, 우리가 맞이하는 환경과 상황도 속속들이 아셔요. 주님이 우리를 항상 보고 아신다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기에.
예수님은 아시아 일곱 교회 사정을 다 아시고, 그 교회에 맞게 칭찬도 하시고 책망도 하셨습니다. 일곱 교회 가운데 주님께 칭찬만 받은 교회도 있고, 칭찬과 더불어 책망만 받은 교회도 있고, 책망만 받은 교회도 있습니다. 주님이 오늘 각 교회에 임하셔도 세 가지 유형의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네 번째 교회, 두아디라 교회는 어땠는지 봅니다. 두아디라는 버가모에서 동남쪽으로 60km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입니다. 4년 전 터키 선교지 순회사역 가운데 선교사님과 함께 가보았습니다.
2. 도시 한 가운데 있고, 교회 터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모습을 보았어요.(터키의 중요한 관광 자원이니까요) 앞의 세 교회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에베소-서머나(이지미르)-버가모, 가다가 다시 남쪽으로 서머나와 버가모 사이의 두아디라 교회 이야기로 이어졌어요.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은 매우 짧고(한 절), 책망이 많았어요.(네 절) 자랑거리보다 허물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이러한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18절,“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주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시며, 불꽃 같고 빛난 주석과 같은 모습으로 임하셨어요. 주님이 이런 모습으로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두아디라 교회가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것은 한 가지입니다. 19절,“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이 교회가 고무적인 것은 처음보다 지금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자랑할만한 것은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입니다. 모든 교회가 가져야 할 참 귀한 것들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처음보다 지금이 나으니까 참 다행이었어요. 그런데, 이 칭찬이 떨어지게 무섭게 주님이 두아디라 교회를 거세게 책망하셨어요. 책망을 주로 받아야 할 교회인데, 칭찬할 요소는 가볍게 넘어가는 듯한 모습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책망은 20절,“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버가모 교회와 비슷한 양상입니다. 그들도 순교자를 양산하는 믿음이 있어 보였는데, 발람의 교훈-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이들이 있었어요. 에베소 교회-버가모 교회에 이어 두아디라 교회에도 우상 제물을 먹는 것과 행음하는 것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발람의 교훈-니골라 당의 교훈-이세벨을 용납함이 같은 과입니다.
4. 교회를 유혹하고 타락하게 하는 유형이 다른 것 같지만, 대개 비슷한 양식을 보여요. 이교도의 종교 의식 가운데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는 요소가 오랫동안 이어졌어요.(우상 제물-고기를 먹는 기회와 음행으로) 이세벨은 아합왕의 아내였습니다. 바알 신의 발상지 출신이었습니다. 이 여인으로 인해서 남편 왕과 이스라엘을 백성들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영적인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개인 파멸만 아니라-가족 파멸-교회 파멸-국가까지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우상숭배와 무당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이들의 사상과 삶은 매우 더럽습니다. 온갖 불의와 부도덕함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잘 알고, 두아디라 교회에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21절,“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하나님은 언제나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변화를 기다리십니다. 그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회개하지 않고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그들의 죄를 깨닫고 새 삶을 살라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입니다.
5. 두아디라 교회는 예수님이 회개하라는 경고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한 징계를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침상에 던지고(병들게 하고), 큰 환난 가운데 던지셨어요. 또 자녀들이 사망에 이르게 하시며,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셨어요.(23절) 주님은 그들을 징계하지만 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깨닫고 권면하셨습니다. 25절,“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예수님이 두아디라 교회에 원하신 것은 이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재림) 때까지 너희에게 있는 것(믿음)을 굳게 잡으라. 이것만이 너희가 살 길이라는 진리를 선포해주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주님이 주신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징계를 받았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를 무시하고 반복적으로-아담 이후 두아디라 교회만 아니라 오늘까지-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실마리
6. 예수님이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실 때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같은 모습으로 임하셨습니다. 눈이 불꽃 같다는 것은 두아디라 교회를 다 보고 잘 아신다는 의미에요. 발이 빛난 주석 같다는 것은 그의 큰 권능으로 두아디라 교회를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교회를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하셨어요. 주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누구도-어떤 교회도 그의 심판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어요. 정확한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예수님께 회개할 기회를 받았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당신 회개하라고, 당신은 변화되어야 산다고 할 때 바로 겸손하게 듣고 나의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생각을 바꾸고, 내 말과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떠나고 하나님과 가까이해야 해요. 이것이 두아디라 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이었어요. 그들은 이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를 맞았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같이요. 하나님의 통치는 고대 이스라엘이나 신약 시대 교회나,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변함이 없어요.
7. 하나님은 각 사람-각 가정-각 교회-각 나라에 맞게 징계하십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경우에는 질병과 큰 환난, 자녀들이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환난을 통해서 두아디라 교회만 아니라 모든 교회가 깨닫기를 원하셨어요. 23절,“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사람들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우상숭배를 하고, 무당을 곁에 두고, 온갖 불의와 죄를 범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보다 그 세계를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인격이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같이 성결하고 인격적입니다. 우상숭배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온갖 불의를 빠져 있는 자들은 이런 삶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인격이나 인권 등에 별 관심이 업성요. 그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밖에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들은 육신의 삶에 만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끝까지 회개할 줄 모릅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그런 경우입니다. 교회라고 안전하지 않습니다. 성도라고 안전하지 않아요.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교회 안에 있어도(직분자도) 소용없습니다.
복음 제시
8.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를 향하여 그들이 믿음을 굳게 잡고 믿음으로 끝까지 이기라고 권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에 편지하시며 그들에게 도전을 주며 말씀을 맺으셨어요. 너희가 믿음으로 끝내 이기면, 내가 너희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줄 것이다.(20:6,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또 새벽 별(예수 그리스도)을 주리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은 정확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세상 권세가 아닙니다. 세상 재물도 아닙니다. 세상 명예도 아닙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오직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사는 자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와 음행에서 벗어납니다. 온갖 불의와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창조하실 때처럼 사람 다운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복음입니다.
기대
9. 세월은 흘러가도 사람들의 모습이나 교회의 모습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담 이후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보아도, 신약 시대 제자들과 각 교회의 모습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아시아에 보내는 일곱 편지를 보면서 다시 확인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오늘 우리의 자화상-각 교회의 자화상이 훤히 보여요. 성경을 읽고, 설교도 하고, 성경공부도 하지만, 우리의 자화상은 변화되고 있습니까? 이런 것들이 단지 교회 성장의 도구로만 여기지는 않습니까? 이런 자세에서 벗어나야 참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참된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각 사람-각 가정-각 교회-한국교회 전체-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을 보십니다. 우리 삶의 최후 잣대는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듣고 순종하고자 하면 불행한 삶에서 벗어납니다. 삶의 질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지 않으려 하면 현실은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불행한 삶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삶의 질은 점점 더 떨어질 뿐입니다. 이 시간 오늘 말씀을 나누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굳게 지키며 세상을 이기고, 사탄의 권세를 이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도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